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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5>정치이등병 선언한 귀신잡던 전 해병대사령관 '전도봉 장군' | ||||||||||||||||||||||||||||||||||||||||||||||||||||||||||||||||||||||||||||||||||||||||||||||||||||||||||||||||||||||||||||||||||||||||||||||||||||||||||||||||||||||||||||||||||||||||||||||||||||||||||||||||||||||||||||||||||||||||||||||||||||||||||||||
거제! 21세기 해양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일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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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해병이기를 꿈꾸는 부드러운 뚝심-'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검게 그을린 얼굴에 번뜩이는 눈빛, 특이한 박수와 구호, 팔각형의 모자에 빨간 명찰…. 바로 대
평생을 '평범속 비범함'을 고집 깨끗하고, 올바르며 거제를 사랑하는 새 일꾼이 되겠다- "나는 정치 이등병"
우여곡절 많았던 젊은 시절- 대학때 데모로 투옥 ROTC퇴출, 해군사관후보생 지원, 공군비행학교 사건으로 해병대 옷 벗고 육군이등병,소청심사로 복권 '영원한 해병으로'
.젊은 해병대 소위와 조폭 '황우'와의 氣싸움-그때는 이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 싸움
해병대 소위 임관하고 철 없고, 겁도 없을 때 부산의 조폭 두목급인 '황우'에게 덤벼들었다.. “항복할래, 아니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래?” 했더니, “졌다. 그만두자.”해서 받아들였는데, 뒤에 알고 보니까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결코 이긴 것이 아니었다. 그분이 대단한 사람인지를 정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젊은장교의 기상을 그 분이 이해한 것 같았다고 말한다. 다만 그때에도 ‘기(氣)싸움’에서는 이긴 것이었다고 회고한다.그리고 해병대 신임 소위시절 공군부대를 쳐들어간 사건은 자신이 해병대의 군복을 벗어야 했으니 전사령관에게도 여러가지 후유증을 남긴 사건이었다.해병대원들이 버스를 탔다가 공군부대원들과 사소한 말싸움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자존심 대결의 상황까지 갔는데 결국 시비 끝에 공군들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던 해병대가 또 다른 천하무적 공군의 빨간 마후라 전투기 조종사를 만나 결국에는 피투성이 싸움이 되었고 기초반 장교 전체가 공군비행학교에 있는 빨간 마후라 전투기 조종사 전체하고 붙는 사태로 비화돼 결국 자신이 희생하기로 마음먹고 군복을 벗었다. 공군과는 나중에 자매결연도 맺고 화해가 되었지만 기소되어 군법회의에서 “전체 동기생들과 모셨던 상관들 다 그대로 살려준다면 혼자 옷을 벗고 해병대를 떠나겠다.”며 해병대를 떠났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말과 같이 옷을 벗었고 결과는 육군에 가라는 영장을 받고 이등병으로 논산훈련소로 가게 된다. 당시 법무감이었던 이양우씨의 도움을 받아 국방부에 소청심사를 했고, 1년 뒤에 해병대 소위로 다시 임관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해병대가 완전히 해체됐다. 해군에 통합되어 해병대는 25년간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해군 속에 있어도 해군과 해병은 역사와 전통, 싸우는 방법, 관습도 다르고 문화도 달라 해군총장이 지휘하는 것보다는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를 지휘는 것이 맞는거라며 독립을 요구했다. 해군 참모총장이 수군의 전문가라면, 해병대사랑련관은 해병의 전문가로서, 전문가에게 해병대를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며 독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군에는 지휘권이 가장 큰 문제이므로 지휘관이 함부로 상관에게 지휘권을 요구하는 것은 좀 고약한 요구로 비춰져 항명으로 비춰지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제 자식, 제 아내보다 해병대를 더 사랑했습니다" ‘최강 해병대론’ 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낼 때 많은 사람들이 해병대를 알고, 해병대를 거쳐간 대원들이 해병대를 아는 것처럼 내면속에 있는 해병의 정신세계, 해병의 역사와 전통속에 숨겨진 얘기들을 다 담으려 했다. 그 핵심 가치는 깃발에 쓰여져 있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라는 그 가치는 굉장히 귀중한 가치라고 말한다. 그걸 이해하는 해병의 헌신과 자부심을 맞추었다 사랑 받아야 강해지고, 강해져야 싸워도 이길 수 있다.. 사랑받는 해병대, 그것이 최강 해병대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그래서‘Once marine always marine.’ (‘한 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는 말이 생기고 한 번 거쳐 갔다고 해서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속에 끊임없는 변화와 노력을 해야 소위 ‘영원한 해병(always marine)’이 되는 거란다.반면 전사령관은 가정에서는 부끄러운 가장이었다.현역에 있을 때는 "자식, 아내보다 해병대를 더 사랑했는데 ‘남편이 간첩으로 오래 살면, 마누라도 간첩으로 산다.’ 라는 말처럼 해병대로 오래 살다보니 아내도 해병대가 되어서 이해를 해주고 도와주었다"고 한다."솔직히 미치면 같이 미치고, 사랑하면 같이 사랑하고 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지금도 부인은 “당신은 나보다 해병대를 사랑했다.”고 말한다는 것.그래서 인지 본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아들들도 다 자기들이 지원해서 해병대를 마칠정도로 해병대의 분신이다. 군생활 역시 소위로 임관한 뒤 파월 청룡부대 소대장으로 참전, 수없이 많은 날을 죽음의 그림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 원하는 도시 거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소원 거제발전을 위한 주장이나 정견에 대해서는 "거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본 이치처럼 거제시민이 바로 주인이자 책임자이며, 심판자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즉 陶工이 진흙을 주물러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내듯이 시민 모두가 도공이 되어 시장,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을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형상으로 다듬고 만들려는 주인의식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바르게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도의회와 시장, 국회의원 3박자가 힘을 모아 거제시 발전을 위해 매진토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산업과 천혜의 관광자원을 잘 관리 보전하고, 경영하여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고싶어하는 환상의 섬 거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며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를 원하는 도시로 거제시가 되도록 만들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지난날 잊을 수 없는 추억담이나 소개하고 싶은 사연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거제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유학길에 나설 때마다 부둣가와 버스정류장에 환송나와 치마끝을 풀고 줌치(천으로 된 돈주머니·쌈지)를 꺼내 꼬깃꼬깃 보관하던 쌈짓돈을 꺼내 주머니에 넣어주며 “야 이사람아. 나중에 출세하면 우리 자식 잘 돌봐주게, 부탁하네” 라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정겨웠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다. 이제 내가 그분들의 바람과 은혜를 갚아야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귀하의 인생관이나 연애관, 생활철학은 ▶盡人事待天命(진인사 대천명)이 나의 인생관이요 생활철학이다. 연애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 '사랑이란 끝없는 용서와 이해와 기다림'이란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거제인으로 살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1959년 태풍사라호때 모든 선박의 통행이 금지됐는데 부산 뱃머리에서 추석장거리를 싣고 거제도로 몰래가려는 짐배에 운좋게 승선했다. 그러나 운항도중 어떻게나 파도가 세고 높았는지 아무래도 배가 파도속에서 두동 강 날 것만 같아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닷물로 뛰어들 준비를 갖추고 밖을 내다보니 바다가 온통 뒤집혀 육지고 하늘이고 아무것도 보이는 것 없이 험난한 파도와 흰물거품 뿐이었다. 그 때 느꼈던 절대 절명의 위기는 평생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목사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이명박후보는 분명히 좌파와는 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전문경영인이었던 그가 지난 10여년간 무너진 우리나라 시장경제와 실물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인물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에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성공신화를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에 자신은 있는가? ▶이 역시 盡人事待天命아니겠는가. -거제시민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앞에서 말했듯이 거제의 주인은 바로 거제시민들이다. 21세기는 해양의 시대이며, 우리 거제도는 천혜의 해양자원을 갖춘 도시인 만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특히 새로운 시대를 새롭게 열어갈 강력한 추진력과 결단력을 갖춘 새 일꾼을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거제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기타 질문> -평소 좌우명이나 가훈은? ▶盡人事待天命, 가훈은 정직·성실·겸손·담대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이유는? ▶이순신장군, 위국헌신과 순종을 실천한 분이시기 때문이며, 정신적·이념적 혼돈시기인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종교 및 믿은 기간, 종교적 지위는? ▶기독교, 25년, 장로
▶나훈아, 신형원의 개똥벌레. 개똥벌레는 지난 1992년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 MBC 우정의 무대 사상 처음으로 현역장성이 무대에 올라 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그 당시 갑작스레 정한 노래여서 음정과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곤란을 겪었던 일도 있지만 이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중 하나가 됐다. -기억에 남는 책, 영화, 그림은? ▶책=바라바, 영화=쎈, 그림=이삭줍는 여인 -좋아하는 연예인은? ▶평소 연예방송을 잘 보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평소 군생활과 퇴역후 거제시민에게서 느끼는 소감은? ▶향수란 단어는 고향을 떠나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시절 고향을 떠난 뒤 부산을 시작으로 월남의 하늘아래까지 수많은 곳을 떠다녔지만 내 가슴의 한켠에는 늘 고향의 땅과 바다와 바람이 함께 해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제 나는 그 고향으로 돌아와 나를 낳아준 땅에서 여생을 보내며 헌신하고 싶다. 내가 살았던 시절과는 너무나도 많이 변했지만 거제시민이라는 이름하나만으로도 반갑고 정겨울 뿐이다. 나 역시 그런 거제시민중 한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의 정치적인 포부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것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않고 있다. 하지만 우선은 내가 태어난 고향, 나의 부모님이 묻혀있는 고향발전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만약 국회의원 당선이 되는 꿈을 이룬다면 거제시 발전을 위해 제일 먼저 하고픈 일은? ▶시장과 시의회와 협력해 거제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술, 담배는 어느 정도하는가? ▶예전에 술과 담배를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본인의 장기나 단점을 든다면?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 및 결단력이 장점이라면 고집이 너무 세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군 근무시절 이 고집 때문에 오해를 싸기도 하고 곤란을 겪기도 했었다.
▶처 유명자·63· 롯데백화점 부산점 ‘그린힐’경영 장남 전진용·39· 미국 텍사스 A&M대학교 유학중 차남 전진서·38· 미국 LA PRIMER JUN EDUCATIONAL INSTITUTE경영 3남 전진윤·36· 롯대백화점 관악점 일식집 ‘SAPPORO'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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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아수라장인 정치판에 왜? 거짓말은 정치인이라면 안할수가 없을텐데 .....
개인적으로 ....... 정치는 안 하심이 어떠실지.....
저는 개인적으로 해병대의 장군으로서 최고로 존경하는 분입니다.비록 정치판이라는대가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똥냄새가 물신나는 곳이라 할수있겠지만 해병대의 장래를 위해서 전도봉 前사령관님이 꼭 금뺏지를 달고 법을 만드는 국회에 입성하여 해병대의 원상회복에 크게 힘을 보태주실것으로 기대하고 믿습니다. 군대라는 곳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과 법에의해서 그 운명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73년도 통합때 이미 절실히 경험했고 ,전두환시절에는 말 한마다로 공수훈련이 막을 고하는 쓰라린역사도 있습니다. 저돌적인 스타일의 전도봉 前 사령관님은 우리의 한을 풀어즐것으로 믿습니다. . 해병대!!!!!
필~~~승!!!
전도봉 장군님이 정치에 입문하는것은 해병대 원상회복을 위해서 입니다.이분은 해병대 이외에 다른건 없습니다~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