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냉장고
김영숙
며칠 전부터 늙은 여자는
그렁그렁
가래가 끓더니
웅웅
앓는 소리를 낸다
헐떡이는 심장 열어보니
사시사철 어둠 속에서 참고 있던
벙어리 냉가슴도
발등을 찧던 가족들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낯선 죽음의 비린내가
유령처럼 떠다니고
수십 년
꾸역꾸역 밀어 넣는
빈손들 모두 받아주고
허기진 욕구를 채워주느라
뇌사 상태에 빠져버린
늙은 몸뚱어리
꼭꼭 마음을 닫아걸고
홀로 앓던 속울음
이제야 멈추고
마지막 떠날 채비를 한다
상처 난 길을 걷다
태백의 마지막 남은 장성공업소가
곧 폐광된다는 소식에
그는 폐부에 구멍 난 듯 기침을 해댔다
황금빛 인생을 꿈꾸며
광부로 일한 지 20년째
탄가루를 뒤집어쓴
흑백 사진이 복사되었다
가스가 터져 동료가 죽고
그녀와 이별했던
시린 기억들은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선술집을 찾아가곤 했다
희미한 알전구 조명 아래
탁주 한 잔에 적셔지는 붉은 눈시울
삼겹살이 지글거리는 연탄불 위로
억세게 피어오르는 그리움을 태워버렸다
비틀거리는 그림자
하현달에 걸려 넘어졌고
활기차던 목욕탕은
기척도 없었다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만
정적을 깨뜨리며
진창을 구르고
어둠을 찍어내는 세상을
거스리지 못하는
새벽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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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냉장고 / 김영숙
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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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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