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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25.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금요일 강론>
<마태18,19ㄴ-22>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성모님이 세 번째로 나타났다는 1917년 7월13일에(첫번째 5월13일, 두 번째 6월13일) 보여줬다는 첫 번째 비밀은 “거대한 불의 바다”인 지옥의 환시입니다.
회고록 등을 통해 `파티마의 비밀'을 전파한 루시아 수녀와 만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두 번째 비밀은 1차대전 종식과 2차대전 발발, 러시아(소련)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묵주기도를 통해 무신론과 사회주의인 러시아가 회개하고 성모님께 봉헌되지 않으면 죄악을 퍼뜨리고 전쟁을 일으키며 교회를 박해할 것이라는 게 성모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2년 세계를 파티마의 성모성심께 봉헌하면서 “러시아인들”을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교황 비오12세는 “지옥의 문은 절대로 승리하지 못한다”며 성모님의 도움으로 무신론을 이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무신론과 교회 박해를 비난하는 교황청에 맞서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교황은 나치 협력자였다며 흑색선전 공작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서방세계에서 소련 붕괴에 큰 기여를 한 두 사람으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꼽을 수 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며 스타워즈 구상 등 군비 경쟁으로 소련을 물질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고국을 방문해 소련의 영향하에 있는 동유럽 사회주의를 크게 흔들어 놓습니다. 1989년에는 13세기 보헤미아(체코 서부의 옛 이름) 공주 아그네스를 시성하고 며칠 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을 무너뜨린 벨벳혁명이 일어납니다.
레이건은 취임 69일 만인 1981년 3월30일 총격을 받았으며, 요한 바오로 2세는 몇 주 뒤인 5월 13일에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터키 청년이 쏜 총에 맞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살아나 1982년 6월에 만났을 때 ‘신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우리를 살려주셨다’ 는 대화를 했으며, 살려주신 목적은 ‘소련을 붕괴시키고 철의장막 너머의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파티마 성모님의 세 번째 비밀을 교황청이 2000년에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세 번째 비밀에는 “흰 옷을 입은 주교”가 총탄과 화살에 맞아 순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루시아 수녀는 어렸을적에 이 예언을 들을 당시 이 인물이 교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총격 직후 병상에서 세 번째 비밀의 내용을 접하고서는 “흰 옷을 입은 주교”가 바로 자신을 의미한다고 풀이했습니다.
“20세기 역사는 파티마의 성모님이 경고한 바 있는, 1917년 볼셰비키 10월혁명 때문에 시작된 무신론적 공산주의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9~19991년까지 이어진 투쟁은 카롤 보이티야(요한 바오로 2세의 본명)와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최종적으로 평화롭게 끝나게 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루시아 수녀가 세상을 뜬 지 50여일 만인 2005년 4월5일에 선종하십니다.
무신론과 사회주의의 소련의 붕괴는 파티마 성모님의 메세지와 그 메세지를 굳게 믿고 묵주기도를 바친 신자들 덕분일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신앙의 위기는 과거 페스트로 어려워진 신앙의 위기와 같습니다.
무신론과 사회주의가 아닌 인본주의인 것이지요.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 즉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원죄와 같은 유혹인 것입니다.
14세기에 페스트로 무죄한 어린이들이 떼죽음 당하고, 하느님께 애절히 기도했는데 사제까지 내 자식까지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한 그들에게 신앙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하느님 전능에 대한 부정적인 불신앙의 현실이 있는 것입니다.
의료의 발달로 의료 자체도 하느님 은총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페스트로 반 교권주의가 형성되고 인본주의인 르네상스 문화가 태동되었듯이, 코로나19로 반 종교주의가 형성되고 원죄와 같은 하느님 자리에 인간이 차지하려는 유혹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반 종교주의와 인간 지상주의적인 인본주의에 맞서 실천해야 할 사항은?
1.회개와 대속의 마음으로 첫토요일 미사에 나갑니다.
2.묵주의 기도를 정성껏 바칩니다.
1)지향을 말씀드립니다.
2)성호경,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구원송을 바칩니다.
3)각 신비를 통해서 성모님과 예수님을 만납니다.
4)주님의 기도(1) 성모송(10) 영광송(1), 구원송(1)
5)5단까지 각 신비를 통해서 성모님과 예수님을 다시 만나며, 각 단 마다 (4)번을 반복합니다.
3. 희생을 죄인들과 사회 정화를 위한 대속의 의미로 합니다.
4.나만 잘해서는 안 되며, 너와 내가 함께 공동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에 연합합니다.
<matthew18,19b-22>
19 I say to you, if two of you agree on earth about anything for which they are to pray, it shall be granted to them by my heavenly Father.
20 For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21 Then Peter approaching asked him, "Lord, if my brother sins against me, how often must I forgive him? As many as seven times?"
22 Jesus answered, "I say to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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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파악하는 특별한 재주, 즉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직감적으로 알아내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의 국민이 되려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더 큰 어떤 것, 즉 공유하는 법적이고 지리적인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조지 폴로이드의 죽음에 반발하는 시위에서 우리는 그 현상을 보았습니다. 서로 전혀 몰랐던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분노로 하나가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순간에는 여론만이 아니라, 국민 감정, 즉 국민의 ‘영혼’ 이 드러납니다. 사회가 지속적으로 쇠락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생존을 위한 투쟁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욕망,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 정의와 창조에 대한 관심, 가족과 축제를 향한 사랑과 같은 본원적인 가치를 끝가지 지키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국민에게 하나의 영혼이 있다’ 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국민의 영혼에 대해 말한다면, 곧 그 국민이 세계를 보는(LET US DREAM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ES, 오스틴 아이버레이/김주현 옮김,(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20, p.232)/
관점, 즉 ‘자각awareness’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자각은 경제 체제나 정치 이론의 결과가 아니라, 그 국민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에 형성된 성격의 결과입니다. 그 중요한 순간들이 그 국민들에게 강력한 연대감과 정의감 및 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등을 심어줍니다.
(LET US DREAM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ES, 오스틴 아이버레이/김주현 옮김,(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20,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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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전례에 표징과 상징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은 우리 인간이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를 지닌 존재임을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정신적이고 내적인 실재를 인식하고 표시하기 위해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162)/
표징과 상징이 필요합니다.[1145-1152]
상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를 볼 수 있도록 표현된 언어입니다.(게르트루트 폰 프 포르)
상징 언어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유일한 외국어라고 생각합니다.(에리히 프롬<1900~1980년>, 정신 분석가)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표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붉은 장미와 결혼반지, 검정색 옷, 그라피티와 같은 표징들을 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사시며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인간의 표징들을 이용하시는 데, 빵과 포도주, 세례수, 성령을 상징하는 도유(기름 부음)가 그 예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리스도가 정하신 하느님의 이 거룩한 표징들에 대해 경외심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응답합니다. 무릎을 꿇어 경배하거나 복음을 들을 때 일어서는 행위, 고개를 숙이는 절과 합장한 손 등이 그 예입니다. 우리는 결혼식 때처럼 곷과 초, 음악 등 우리에게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전례를 꾸밉니다. 물론 때대로 어떤 표징들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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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어떻게 거행하는가?
표징과 상징들
->1145 성사의 거행은 표징과 상징으로 짜여 있다.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교육 방법에 따라 창조 사업과 인류 문화에 근거를 두고 있는 표징과 상징의 의미는 구약의 사건들 안에서 점차적으로 드러나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업적에서 충만하게 계시된다.
->1146 인간 세상의 표징. 인간의 삶에서 표징과 상징은 매우(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463)/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물리적인 표징과 상징을 통해서 영적인 실재를 표현하고 인식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나 몸짓, 동작을 통한 표징과 상징이 필요하다.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1147 하느님께서는 가시적 피조물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지성을 갖추고 있는 인간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물질적인 우주에서 창조주의 흔적을 읽어 낸다(지혜13,1; 로마1,19-20; 사도14,17 참조). 빛과 어둠, 바람과 불, 물과 대지, 나무와 열매들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해 주며, 그분의 위대하심과 가까이 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1148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이러한 피조물들은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이 표현되는 수단이며, 동시에 하느님께 경배드리는 인간의 행위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사회 생활을 위한 표징과 상징도 마찬가지이다. 씻고, 기름 바르고, 빵을 떼고, 잔을 나누는 행위들은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며 창조주께 대한 인간의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
->1149 인류의 주요 종교들은 때때로 종교 의식의 이러한 우주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교회 전례는 피조물과 인간 문화의 여러 요소들을 전제로 하며, 그것들을 통합하고 성화시킨다. 이 때 교회의 전례는 그 요소들을 은총의 표징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의 표징으로 승화시킨다.
->1150 계약의 표징. 선택된 백성은 그들의 전례 생활을 특징짓는 특수한 표징과 상징들을 하느님께 받았다. 이것들은 이제(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464)/
우주 운행의 주기나 사회 활동에 대한 단순한 기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표징이며, 당신 백성을 위해 행하신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의 상징이다. 구약의 이 전례적 표징들을 들어 보면, 할례, 왕과 사제에 대한 도유와 축성, 안수, 희생 제사, 그리고 특히 파스카 등이 있다. 교회는 이러한 표징들 안에서 신약의 성사들의 예표를 본다.
->1151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표징. 주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는 중에 종종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하시고자 피조물을 표징으로 이용하신다(루카8,10 참조). 예수님께서는 물질적인 표징이나 상징적 행위로 병을 고쳐 주시거나 당신의 설교를 부각시키신다(요한9,6; 마르7,33-35; 8,22-25 참조).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사건과 표징들, 특히 출애굽과 파스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다(루카9,31; 22,7-20 참조). 그분 자신이 바로 이 모든 표징들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1152 성사의 표징. 성령 강림날부터 성령께서는 교회의 성사적 표징을 통하여 성화 활동을 하신다. 교회의 성사들은 물질 세계와 사회 생활의 풍부한 모든 표징과 상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화하고 수용한다. 그뿐 아니라, 구약의 예표와 형상들을 완성하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상징하고 실제로 현존하게 하며, 하늘의 영광을 예시하고 미리 누리게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