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영상의 기온에 서리가 멈춘 아침을 맞는다. 올봄들어 처음이다. 그냥 이대로 쭈욱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촌부의 바람일 뿐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비소식이 있어 그럴게다. 아직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기 전이기는 하지만 이따금씩 비가 내려주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이다.
매년 이맘땐 초봄에 맛보는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바로 언땅을 뚫고 쌓인 눈을 헤집고 나온다고 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명이나물(산마늘) 수확 시기이기 때문이다. 올봄은 여느해에 비하여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 수확이 많이 빠르다. 그만큼 날씨가 좋았다는 것으로 풀이를 해야하는 것일까? 굳이 그런 것까지 따질 필요는 없는 것이겠지만... 아내가 명이나물에 쫑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며 더 이상 수확을 미루면 안될 것 같다고 했다. 감히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분부를 거역하겠는가?
플라스틱 바구니, 농사방석을 챙겨 밭으로 나갔다. 맨손으로 뜯으면 풀물 든다며 얇은 요리용 장갑을 챙겨주었다. 그러고보면 요즘 농사에는 별의별 게 다 동원이 되는 것 같다. 편리하고 좋기는 하지만... 그 옛날 농사짓던 어르신들이 보셨다면 웃을게다. 이놈의 명이나물은 다른 산나물과는 달리 특이한 식물이라서 잎을 마구 다 뜯으면 안된다. 힘들어도 한 줄기에 한 잎은 필히 남겨두고 꽃망울이 맺히는 쫑대가 다치지않게 조심해서 잎을 뜯어아만 한다. 그렇게 잎파리를 하나씩 뜯어야 하니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의 댓가를 요구하는 식물이 명이나물이다.
올해는 제법 많이 번식을 하여 수확량이 좀 늘었다. 둘째네 조금 나눠주고 나머지는 깨끗이 잘 씻어서 물기를 뺀 다음 장아찌를 담근다. 수확은 촌부 몫, 장아찌 담그는 일은 아내 몫이다. 명이나물은 그냥 생으로 쌈을 싸먹어도 좋지만 주로 장아찌를 담가 저장하면 두고두고 먹게 된다. 아내는 아우들에게 장아찌를 담가 나눠주곤 한다. 우리가 텃밭농사를 지어 얻는 것을 비롯하여 산나물을 채취해 거두는 것들은 우리가 먹는 것보다 아우들과 지인들에게 나눔을 하는 것이 몇 배나 더 많다. 돈벌이를 위해 짓는 농사가 아니라서 기르는 기쁨, 수확의 기쁨에 나눔의 기쁨까지 느끼는 것이라서 흐뭇하고 좋다.
우리의 수고로움이 우리 아닌 다른 이들에게 미소 짓게 하는 것은 꽤 보람된 일이 아니겠는가? 굳이 돈으로 환산한다며 아주 보잘 것이 없는 것이지만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인지라 기쁨의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명이나물 잎파리를 한 잎 한 잎 씻는 아내 모습에 곱디고운 정성이 엿보여 너무 좋다. 아직 본격적인 텃밭농사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산골부부의 나눔은 이미 시작되었다.
명이나물 잎을 뜯다가보니 아무래도 포기나누기를 하여 번식을 시켜야만 좋을 것 같았다. 명이나물은 씨앗으로 번식이 되거나 포기나누기를 하여 심으면 번식을 하게 된다. 명이나물 2~3년생을 사다 심은 것이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씨앗을 받아서 번식을 시켜왔으나 포기나누기는 한번도 하지않아 처음에 심은 두세 줄은 포기가 많이 엉켜져서 자라고 있다. 때마침 비가 내릴 것이라 하여 포기나누기를 해볼 생각에 큰밭가 자그많게 일궈 열무, 얼갈이배추를 심어먹던 밭으로 옮겨보려고 한다. 봄이 시작된 지 불과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개망초를 비롯한 온갖 잡초들이 돋아나 주인인냥 떡하니 진을 치고 있다. 초봄부터 촌부에게 누가 이기나 내기 하잖다. 호미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 매는 것이 힘들 것 같아 갈고리를 뒤로 하여 모서리로 콕콕 찍어 캐냈더니 서서하는 일이라서 훨씬 힘이 덜 들고 좋다. 어찌나 무성하게 자랐는지 자그마한 밭뙈기 하나의 김을 매고 밭을 일구는데 거의 두어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직 정리 못하고 남은 묵밭이 정리한 것보다 배가 넘는다. 이곳에는 돼지감자가 들어있고 더덕씨앗을 뿌려놓은 곳인데 이번 참에 번식력 좋은 돼지감자 캐내고 어린 더덕뿌리는 다른 곳에 옮겨볼까 싶다. 온갖 잡초들이 함께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볼상이 사나워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늘 뒤로 미루었던 밭이다. 기왕 시작한 김에 정리해 명이나물 밭으로 만들어 볼까 싶다. 한꺼번에 다 하면 좋겠지만 급할 것이 없으니 사나브로 차례차례 정리하려고 한다.
첫댓글
푸르름에
눈도 시원해 집니다.
첫 수확 축하 드립니다.
드디어 올봄 첫 수확의 기쁨을 누립니다. 이 녀석들을 심지않았으면 이런 즐거움도 없었겠지요. 긴 겨울을 견디고 이겨낸 장한 녀석들이랍니다. 감사합니다.^^
으아. 내먹거리.
확실히 염소띠인가봐유
풀만 좋아하니 ㅎㅎㅎ
원숭이띠도, 닭띠도 좋아하는 먹거리인걸요. 염소띠(양띠)면 나이가 57세? 설마 69세는
아니실 것 같고...ㅎㅎ 좋은 날 되세요.^^
잘하고 계시는거 뵙고 대리 만족합니다. 못하시는게 없으시니 100점짜리 전원생활입니다.
과찬이십니다.
만년초보라서 시행착오 투성이랍니다. 이것저것 깊이보다는 폭넓게 알아야 하는 것이 산골살이의 기본이거든요. 감사합니다.^^
소리없이 이슬비가
오네요~
찬서리 내리고 코끝이
찡한 가을 아침이 그리워져요 ..역발상 ㅎ
오늘은 더덕의 상기한
냄새가 퍼져나는 글입니다.
어디신데 비가 내리는가요?
이곳 산골은 잔뜩 흐리기만 합니다. 이제 봄인데 벌써 가을을 기다리시면...ㅎㅎㅎ 여긴 풀내음, 흙내음 가득 퍼져나는 오전입니다. 밭에서 흙을 파고 있거든요. 좋은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뽀식이
그동안 서리 내린 촌부댁이 부러웠던게지요..ㅎㅎ
코 끝이 쌩~ 한 날씨를
맛보고 싶더라고요.
오전,서울 떠나 파주 헤이리마을 가는 동안
이슬비가 촉촉이
뿌리던데요. 목적지 도착하니 신기하게
햇살이 비쳐 주고요~
즐거운 하루였답니다.
감사합니다~^^
@희연 촌부의 일상이 부러우셨다니
고맙고 감사하면서 죄송하기도 합니다. 편안하 주말 저녁되세요.^^
명이나물 무침이 먹고 싶어지네요.
첫 수확의 즐거움에 동참하고 싶어집니다.
이다음 명이나물 장아찌 드시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