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김기리
오래된 영정影精들은 마음 벽에 걸린다는데
어쩌자고, 누구의 슬픔에 걸리자고, 영정사진을 찍네.
어디서 자주 본 듯한 얼굴로 사진이 나오고
사진틀에 담긴 낯선 여인을 데려다 문갑 위에 앉혀 놓네.
가장 고요한 표정만 데리고 앉아 있는 여인이네.
날마다 거의 한 번씩은 마주 보게 되는 어색한 저 여인
네 마음 다 알고 있다는 듯 흔들리지 않는 얼굴색이네
저 여인이 오고 나서부터는 미미한 신경으로 거추장스럽네.
끼니때가 되면 밥상에 숟가락도 한 벌 더 놓아야 할 것 같고
밤이 되면 여벌의 이불도 한 채 더 깔아두어야 될 것 같고
외출 할 때나 집에 돌아와서든지 꼭 인사를 해야 될 것 같고.
세상에서 한 얼굴이 사라질 때마다
새로 태어나는 얼굴이 있다네.
한 가지 표정으로 만 가지 일들을 상기시키는 얼굴이 있다네.
저 얼굴에도 호칭이 있어
엄마, 어머니, 할머니, 큰형수님, 어니, 새언니, 형님, 아우님, 친구, 사모님 등으로 불릴 저 여인
사라진 한 사람을 대신해 많은 눈물과
흐느끼는 소리와 이야기들을 보고 듣게 될 저 여인
저 여인의 틀에 박힌 일생도 고달프겠다는 생각에
가끔 맑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도 주네.
이젠 수십 장의 영정이 걸린 마음이 무거운 나이가 되었다네.
찰칵, 하는 순간이 가득 채워진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계절은 진설陳設이라네.
일생의 어느 시절에 딱 멈춘 여인의 눈길
어디서 많이 보았다는 듯 자꾸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저 여인.
―『미네르바』 201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