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장 1 - 13절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악명 놓았던 스탈린이 죽은 후에 그의 뒤를 이어 소련의 실권을 쥔 후르시쵸프는 늘 스탈린의 정책에 대해 못 마땅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스탈린 지지자들이 내각에 남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이 개혁 정책을 과감히 시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선적으로 소련에 남아 있는 스탈린의 유적을 서서히 없애기로 작정했습니다. 먼저 그는 스탈린의 유해를 외국에 옮겨두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먼저 프랑스의 드골에게 나폴레옹을 안장한 앵바리드 묘지에 스탈린의 유해를 두게끔 승인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드골은 앵바리드 묘지는 프랑스의 영웅들만을 위한 묘지하려 거절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워싱톤에 전화를 해서 미국의 앵링턴 묘지를 빌려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역시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후르시쵸프는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서는 기꺼이 받아 주겠다며 회신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후르시쵸프는 얼굴에 환한 웃음이 반쯤 피어올랐을 때 그의 비서는 계속해서 회신을 읽고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러하오나 귀하께서 미리 양해해 주셔야 할 것은 신뢰할 만한 국제적인 통계에 의하면 신성한 이스라엘에서는 부활의 확률이 세계에서 으뜸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회신 때문에 스탈린의 유해는 아직도 러시아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활 사건은 모든 종교를 다 따져 봐도 너무도 희귀한 일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먼저 본 사람들은 여자들이었는데 이 여자들의 반응이 어떤 반응이었냐면 8절에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부활의 사건을 보고도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무서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자신들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던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말 했을 때 미친 사람 취급당하지는 않을까? 이런 염려 때문에 입도 뻥긋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중에 알아보고서 다른 제자들에게 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자들이 믿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13절에 보면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여인들은 부활의 사건을 보고도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부활의 믿음이 확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확실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부활의 믿음 정도는 없어도 되는 것 아니겠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부활의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절대 완성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어야 우리에게 주신 새생명도 믿을 수 있고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새하늘과 새땅에도 소망을 품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 부활의 믿음이 확실하지 못하면 이 귀한 믿음은 절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 18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부활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확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 헛된 것을 쫓고 있는 것이고 결국 그 믿음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너무 신비로워서, 다른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쉽게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확실하게 믿어야 하는 것이 부활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부활을 믿는 수준까지 이르렀는지 반드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서 제자들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면 부활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기 전까지는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확신하고 나서는 목숨조차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부활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되면 세상이 우리의 믿음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믿음이 부활의 믿음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부활의 믿음에 대해서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복 중에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왕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면 이런 수준까지 믿어서 부활의 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영광을 반드시 허락해 주실 줄 믿으시고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