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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베 치쿠운사이 4세·앙투안 피에리니·장연순 참여… 단순 복제 넘어선 현대미술로의 변환 조명 |
송미리내 작가
[글.송미리내] 대나무를 엮고, 유리를 불고, 천을 바느질하던 전통 가업이 현대 조각과 건축적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본의 대나무 공예가 다나베 치쿠운사이 4세, 프랑스의 유리 예술가 앙투안 피에리니, 한국의 섬유 조형 작가 장연순 등 3인의 예술가는 앞선 세대의 기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단순한 복제를 넘어, 이를 동시대의 새로운 예술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승은 복제가 아니다… 3인이 던지는 새로운 질문
예술가의 손은 한 개인의 재능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전 세대가 익힌 기술과 오랜 시간 축적한 감각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생업이었던 대나무 쪼개기, 유리 다루기, 천 염색하기 등의 기술이 다음 세대에 이르러 전혀 다른 형태의 예술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3인의 작가에게 "전통은 완성된 답안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물려받은 기술을 어디까지 유지하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세대 간의 치열한 선택 과정이 곧 예술의 독창성이 형성되는 현장이다.
다나베 치쿠운사이 4세, 바구니에서 건축적 공간으로
일본 오사카 사카이 지역에서 이어져 온 대나무 공예 가문의 네 번째 작가인 다나베 치쿠운사이 4세는 2017년 가문의 예명을 이어받았다. 도쿄예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가족의 기술적 계보와 현대 조각의 문법을 결합했다.
전통적으로 대나무 살을 엮는 행위는 바구니나 다구 등 실용적 기물을 만드는 데 쓰였으나, 다나베는 이를 대형 설치 작업으로 확장했다. 그의 대표작 '커넥션(CONNECTION)'은 벽과 천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대나무 구조물로, 건축과 조각의 경계를 허문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측은 그의 전시를 조명하며 설치 후 구조물을 해체해 다음 작품에 재활용하는 순환의 과정에 주목했다. 한 작품의 끝이 다음 작품의 시작이 되며, 기능적 기물에서 공간적 경험으로 기술의 목적이 이동한 것이다.
다나베 치쿠운사이 4세, 쇼코지 절_도야마 중요 문화재, 2021, 작가홈페이지 발췌
앙투안 피에리니, 유리의 물성을 넘어 빛과 축적의 언어로
프랑스 남부 비오(Biot)에서 활동하는 앙투안 피에리니는 프랑스 스튜디오 글라스 운동의 선구자인 아버지 로베르 피에리니의 공방에서 기초를 다졌다. 2005년부터 본격적인 독자 행보를 시작한 그는 유리 융합, 주조, 필리그리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작업 반경을 넓혔다.
피에리니에게 유리는 단순한 기술적 숙련의 대상이 아니다. 고대의 양손잡이 항아리인 '앰포라'를 모티브로 한 작업 등에서 그는 자연의 구조와 지중해의 문화적 기억을 유리의 반복과 집적을 통해 시각 언어로 구축했다. 가족의 유산인 유리 제작 전문성을 토대로 하되, 자신만의 새로운 형태와 조형 언어를 탐색해 낸 결과다.
앙투안 피에리니, 언덕, 2009, 작가 홈페이지 발췌
장연순, 가족의 바느질에서 투명한 조형 구조로
한국의 섬유 조형 작가 장연순은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로부터 전해진 한국 전통 의복 제작 과정을 현대미술로 전환했다. 염색, 다림질, 재단, 바느질 등 전통적 의생활 유지를 위한 반복적 수공예 기술이 그의 작품에서는 공간과 형태를 구성하는 핵심 조형 원리로 작동한다.
아바카 섬유를 천연 염료로 물들이고 꿰매 입체 구조를 세운 '매트릭스(Matrix)' 연작, 금박과 유리섬유 망을 중첩한 '중심으로 향하는 길' 연작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수공예적 기술과 정신이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새롭게 번안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옷을 짓던 손놀림이 빛이 통과하는 표면과 비어 있는 공간을 감각하게 하는 입체 조형으로 진화한 것이다.
장연순, 중심에 이르는 길 시리즈, 2022, 한국 공예관 발췌
과거의 기술이 동시대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세 작가의 작업은 전통 기술의 전승이 원본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새로운 조건 속에서 의미를 탐색하는 '번역'의 과정임을 증명한다. 대나무는 공간의 경험이 되고, 유리는 빛과 기억의 매체가 되며, 바느질은 투명한 공간을 만드는 원리가 되었다.
단순히 기술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넘어, 앞선 세대의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동시대의 감각에 맞게 변형할 때 전승은 미래를 만드는 과정이 된다. 세대는 예술의 한계가 아니라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이들의 작품이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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