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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프러포즈 할 때도 되지 않았어? "
녀석이 날 보며 픽 웃었다.
나 역시, 쓴 웃음을 지으며 오늘따라 유난히 쓴 술을 들이켰다.
그 애, 아니 이제는 ‘그녀’가 되 버린, 그 애와 사귄지.
어느덧- 삼 년.
어렸을 적, 그 때까지 합하면 이제 오 년정도 되어 가는 것이다-.
궁합도 끝내주고,
서로 알 것 다 알고.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해주는 커플인데다가,
서로 특별히 딸린다거나, 아니면 안 맞는다던가 하는 부분도 없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그 애에게 섣불리 결혼하자는 말을 꺼낼 수 없다.
마냥 행복하던, 그 어렸을 적 달콤한 추억 속의 나는.
분명히 아주 쑥스러운 듯 웃으며,
‘ 나중에 크면, 나랑 결혼할래? 은지야. ’
이렇게, 말했는데.
왜, 왜, 대체 왜 안 되느냔 말이다!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술을 따랐다.
그러자, 녀석은 내 손을 막으며 말했다.
" 그만 먹어, 자식아. 그러다 정말 취하면, 은지씨 화낼지도 몰라. "
" 아, 맞다. 우리 은지는 술 마시는 것, 싫어하지? "
" 우리 은지? 허이구, 참. 그런 사람이 왜 고백은 안 하는거래? 그러다, 누구한테 뺏기려고. "
" ……몰라, 하여튼 아직은 때가 아냐. "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팍 일어섰다.
취기가 도는지, 잠시 아찔했다.
그러자, 녀석은 날 보고 혀를 끌끌 차더니 고개를 두어번 저었다.
제기랄, 정말 제기랄이다.
나랑 결혼해, 이은지.
왜 이 말이, 왜 이 말이 안 튀어 나오느냔 말이다!
내가 공연히 탁자에 대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자,
녀석은 주위를 둘러 보더니 무언가 창피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나를 황급히 끌고 밖으로 나왔다.
밖의 공기는,
지독히도 찼다.
" 야. 나 오늘, 은수가 빨리 들어오랬거든. 먼저 간다? "
녀석이 손을 흔들더니 먼저 휙하고 택시를 잡고는 사라졌다.
제기랄, 나쁜 자식-. 감히, 십년지기 친구를 버려?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택시를 향해 욕을 내뱉고는, 휴대폰 번호 1번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몇 번의 신호음이 가지 않아
잔뜩 걱정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 뭐야, 너! 왜 안 들어와?! 지금, 몇 신줄 알아?!
" 자기이-. 아직 아홉시밖에 안 됬는데, 뭐얼 그러시나아? "
- 얼씨구? 술 먹었어?! 또 동원씨랑 먹었지?! 빨리 들어와, 이 새끼야! 내일 해장국이고 뭐고 없어.
" 우리 이쁜 은지야… 나 데리러 올래애애? "
- 이 인간이, 정말? 몇 년이 지나도, 그 버릇이 어디 가진 않나보네. 그래, 어딘데?
" 맨날 가던덴데… 어딜까아요? 빨리 와아. 추워어. "
쪽, 소리나게 휴대폰에 뽀뽀를 하자
곧바로 전화가 끊겼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취기가 싹 가시며 냉기가 감돌았다.
나는, 끊긴 전화기에 대고 조그맣게 중얼 거렸다.
" 나랑… 결혼해줄래? "
들을 리, 없겠지만.
바보같다는 생각에, 픽 웃어 버렸다.
들을 리 없는 말을, 왜 하는 거야 도대체.
" …후아. "
찬 공기 속에 쓸쓸히 있으니, 슬슬 취기가 가셨다.
취기가 가시자, 냉기가 차갑게 몸을 감돌았다.
몸이 차갑다고, 또 은지가 뭐라고 할텐데.
괜히 베시시 웃으며, 불이 꺼진 건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곧 이 쪽으로 뛰어 올 은지를 기다렸다.
" 야- 서재원!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나와라?! "
저 멀리서부터 씩씩하고 우렁찬,
우리 자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탁탁 바지를 털고 일어서서
해맑게 웃으며 은지에게 폭 안겼다.
그러자, 나보다 키가 한참 작은 은지는
살짝 비틀하더니, 인상을 화악 찌푸리며
다시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 야, 서재원! 술을 먹었으면 곱게 먹던가아?!
나 참, 오늘은 무슨 일로 먹었대? 동원씨가 승진했대? 아님, 은수씨가 애라도 가졌대? "
은지의 화난 목소리에, 나는 픽 웃으며
은지의 볼을 쭉 늘어뜨렸다.
그러자, 은지는 더 화난 표정으로 내 손을 탁 내리치며
먼저 뒤돌아 서서는 말했다.
" 밥이고 뭐고 없을 줄 알아. 빨리 와, 집에 가게. "
…그렇지만, 다행히 버리진 않는다.
역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그런건가-.
이래서, 오래된 연인이라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
.
.
" 재원아-. 저, 이거… 으음, 나, 나랑 사귈래?! "
눈을 꼭 감고 소리치는 그 애의 행동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수줍은 듯 웃는, 그 애의 표정이 너무 예뻐 보였다.
햇빛에 반사된, 그 애의 환한 웃음이, 마냥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그 애가 수줍게 웃으며 편지를 전해 주던 날,
그 애의 ‘나랑, 사귈래?’라는 말에, 허락했던 것은.
" 응! "
그것은, 그런 특별한 순간에 할 만한 말도 아니었고, 나도 널 좋아한다는 말도 아니었으며,
네가 좋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냥 단지, 허락의 뜻이었다.
그러나, 그 ‘응’은 2년간 지속되었고,
이윽고 우리가 졸업을 하고, 나는 남중으로, 그 애는 여중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헤어졌던 것 같다.
작은, 아쉬움을 남기고.
.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은지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 은지가, 문득 어렸을 적의 은지와 겹쳐 보여
픽 웃으며 은지를 꽉 끌어 안아 버리고 말았다.
달빛에 비친, 은지의 모습 역시.
그 때 그 애의 모습처럼, 예뻐 보였다.
마냥 해맑고, 마냥 수줍던.
그 어린 날의 나와 은지처럼.
달빛에 비친, 은지의 모습도… 추억에 가려졌을 뿐이지, 똑같았다.
두근거림이, 심장 깊숙한 곳에서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은, 점차 커져서 온 몸을 지배했다.
갑자기, 미칠 것만 같았다.
- 지금이 기회다.
그런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기분 좋게 뛰는, 내 심장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작게 내뱉었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 그 아이에게.
.
.
.
" 이은지? "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사고회로가 정지된 느낌을 받았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그 애는, 여전히 예뻤고,
또, 예전의 모습이 구석구석 남아 있었지만.
그렇지만, 그 앤 분명 달라졌다.
아주, 많이 바뀌었다.
" 서재원. 반갑다, 내 남자친구. "
그래, 딱 그날부터.
우린- 다시 사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누구의 고백도, 누구의 프러포즈도 없었지만.
그냥 너무도 당연한 듯, 우리의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고,
그것은 현재, 즉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다. 나 조차도, 놀랄 정도로.
이 쯤되면, 누구 한 쪽이 결혼하자고 할 것 같은데도,
나도, 그 애도. 결혼에 관한 일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부모님도, 이젠 그 일을 당연히 여기고.
친구들도, 하물며 나와 그 애까지도.
지금 이 상황을, 너무 당연한 듯 여기고 있었다.
오래된 연인-.
그것은, 굉장히 특별한 느낌이었다.
무언가, 딱 그만큼의 선- 같은.
사랑한다, 고 말하려고 하면.
갑자기 쑥스러워져, 다른 말로 어정쩡하게 말을 돌리는.
얼핏 보면, 새내기 연인 같기도 한.
그런- 연인사이.
그래서 우리는.
섣불리, 결혼이란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는.
.
.
.
" 나랑, 살래? "
그러자, 그 애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더니, 곧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버렸다.
마치, 그 때.
먼 옛날, 언젠가-.
내가 그 애에게, 응이라고 대답했을 때. 딱 그 때처럼.
빨갛게, 변해버린 그 애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이, 피어 올랐다.
" …기다렸어. "
마치, 너무 기뻐서. 너무 행복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듯.
그렇게, 은지는 울먹이며 내 가슴을 작게 쳤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애를 꽉 껴안아 주고 있었으니까.
" 기다렸다고, 이 바보야! 기다렸어, 얼마나. 얼마나 기다렸는데….
바보같이, 왜 이제야… 내가 얼마나, 얼마나…. "
울음이 섞인 그 애의 목소리는,
분명히 행복에 겨운 목소리였다.
너무 행복해서, 결국 울게 되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그 애를 더욱 세게 껴안으며,
내 심장소리가 그 애에게 전해질 정도로, 딱 그만큼 꽉 껴안으며.
나지막하게, 그 애를 향해, 내 심장을 향해, 이 세상을 향해.
그리고, 나와 그 애를 비추고 있는. 저 달을 향해.
그 애의 심장 속에, 아로새길 수 있도록.
그렇게, 말했다.
" 사랑해, 이은지. 나랑 살자. "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애가 기다릴 틈도 주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 애와 함께이고… 싶다.
이제는.
‘나랑 살래?’라는 물음표가 아닌,
‘나랑 살자.’라는 마침표-.
…그 마침표를 끝으로,
그 애와 나는. 더 이상 수줍어하던 ‘연인’ 사이가 아닌,
평생의 반려로.
우리는, 영원을 기약했다.
그렇게, 영원을… 약속했다.
먼 옛날, 그 애의 수줍던 웃음을 담은 태양의 빛과 함께.
또, 지금 이 순간… 그 애의 눈물 섞인 환한 웃음을 담은 달의 미소와 함께.
첫댓글 ,너무~멋있네요 ^.^ 이런소설많이써주세요~
이번소설은친구가부른노래듣다가필받아서써버린소설인데(^^;), 꽤오랜만에찾아온것같네요. 늦게와서죄송-하다랄까요.(웃음) 오늘날씨너무추운데,순돌님은어떠셨을지모르겠네요. 추워서바람을막으면서간신히왔답니다. 하하, 달달포스…가 조금 느껴지시나요? 최대한그쪽으로중점을둬봤지만, 어떻게잘느끼셨나-싶네요. 옷든든하게입으시구요. 주말, 행복하게보내시길-.
와!!! 멋잇어용~♡ 역시나 제기대를 버리지않으시고 후후후 넘 재밌어여!!
몽키언니님은매번하는말이지만, 정말언제나계시네요. 단편방의든든한후원자-랄까요. 그동안소재거리가없어서거의잠적하다시피했는데, 이제서야찾아뵙네요. 뭐랄까- 이번소설은정말‘충동’적으로쓴소설이라많이미흡할수도있?네요.(웃음) 그래도이렇게댓글까지남겨주시니, 정말몸둘바를모르?어요. 다음작품도, 언제올진모르겠지만기대해주시구요. 댓글, 감사합니다.(웃음)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으흣, 과연그이상의칭찬이있을까요? ‘좋다’는말한마디면, 저는정말힘이난답니다. 댓글쓰는것도, 꽤나귀찮은일이기때문에웬만한분들은그냥지나치시거든요. 하지만, 이렇게몇십초를투자해서댓글까지남겨주시는분들이있기때문에, 이렇게힘이나나봐요.(웃음) 이제주말인데, 푹쉬시구요. 다음에다시찾아올때까지, 기다려주실거죠? 하하, 그리고. 댓글- 감사합니다.
깍쟁이님! 오랜만이에요 우리ㅠ^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요번 소설은 정-말 재밌는거 같아요! 막..그냥 아직 나이가 어려서 결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은근히 공감되는? 공감까지는 아닌데 뭔가 좀 맞는듯한? 으히히..얼마전에 남자친구랑 2년 됬거든요!^^ 그래서 그냥 은근히 그렇더라구요~ 자주 오셔야죠! 이렇게 뜸하게 오시면 저 삐져요~~?
네오랜만이에요.(웃음) 자주와야하는데, 으후. 어떻게손이따라주지가않네요-. 휴식을즐기며천천히연재중이랍니다. 3군데에서동시연재중이다보니여간힘든일이아니네요^^; 이번엔조금달달한분위기로가봤는데, 요즘엔우울보다는행복에중점을많이두는것같아요. 남자친구랑2년이라, 긴시간이네요. 질릴수도있는게연인사이인데, 그걸꾹참고2년을버텼다는건-. 후후, 앞으로도잘사귀시길빌게요.(웃음) 저도자주오고싶은데, 영소재가생각이안나네요. 다음작품은시대극성향을조금넣어볼까, 생각중이랍니다. 언제나댓글달아주셔서감사하구요, 다음작품도기대해주시고. 으음… 사랑해요!(웃음).
좋아요 밖에.. 죄송합니다!
하하, 감사해요.(웃음) 사실어제확인했는데, 바로나가야해서답글을달지못했네요.(웃음) 아앗, 죄송하실것없어요. 댓글을다는, 그자체가저에겐힘이되니까요. 인이둥이님의마음은충분히전해졌는걸요?(웃음) 좋아요. 그한마디에모든의미가담겼다고, 생각할게요.(웃음) 지금노홍철씨소녀들으면서쓰고있는데, 자꾸웃겨서배가더아프네요. 아, 웃으면안되는데. 큰일났어요(^^;) 그럼, 댓글감사드리고. 다음작품도기대해주세요!
완전귀여운커플 ㅠㅠ, 나도저런남자친구있었으면...., 소설잘읽었서요, 참좋은소설이었어요~
아, 저도대략동감이에요. 그렇지만저는왠지여자쪽이(^^;) 그렇다고제가레즈는아니고, 음. 귀여운사람이이상형이다보니까(^^;) 왠지여자쪽이남자였으면하는소망, 이랄까요. 하하. 쓸데없는말이니무시해주세요(긁적) 아직부족한점이많은단편인데, 이렇게댓글까지달아주시니정말감사드려요. 다음작품에도댓글달리기를기대해봐도될까요?(웃음) 그럼, 안녕히계시고일요일하루잘보내세요!
아 예뻐요ㅋㅋㅋㅋㅋ
깍쟁이님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보는 군요.역시 good~!! 입니다.잔잔한 이쁜사랑 잘 봤구요.좋은 하루 되세요^^
아결혼하구십다~~
잘~읽었습니다. 아리하게 쓸쓸하네요^^ 부럽워서ㅠㅠ
아너무 부럽다는....ㄷㄷ ㅠㅠ 까울 ㅋㅋ
너무 예쁜 소설이네요 정말 감동적예요
진짜이쁜소설인것같아요!정말잘읽었습니다>_<
다음에도 좋은 소설 기대할게요
재미있네요~남주도 멋있기는 하지만 왠지 여주가 더 끌리는ㅎㅎ;;
이쁜소설이네요!ㅎㅎ
좋아요 좋아 ㅋㅋㅋ 이런 소설 좋아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