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필요 없는 원작자 존 르 카레(1931~2020)의 언급이 엔딩 크레딧에 나온다. 취지는 이렇다. "모두 허구인데, 글로벌 제약업체들의 끔찍함은 내가 상상해 그려낸 것보다 훨씬 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시만 해도 청초롬했던 레이첼 바이즈에게 이듬해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기고 국내 여성 팬들에게도 제법 인기있는 랄프 파인스가 공연한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2005)를 넷플릭스에서 찾아내 흥미롭게 봤다. 지난해 2월 말 넷플릭스에서 사라질 영화로 소개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제껏 살아남아 알고리즘이 보라고 추천했다.
조경사가 되고 싶었던 외교관의 지순한 사랑과 영국 정부와 글로벌 제약업체의 정경 유착, 도움의 손길이 절박한 아프리카의 현실을 교직했다. 당연히 로맨스와 스릴러, 사회고발 장르를 뒤섞으니 일정 정도 혼란은 피할 수 없었다.
르 카레의 원작이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제프리 케인의 각본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브라질 영화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리스의 연출력은 관객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든다. '시티 오브 갓'(2002)으로 가능성을 드러낸 뒤 '눈 먼 자들의 도시'(2008), '360'(2011)과 '두 교황'(2019)으로 연출력이 영글기 전의 풋풋함 또는 의욕 과잉으로 비치기도 한다.
늘 정원을 돌보며 식물들과 호흡하며 살기를 원하는 저스틴(랄프 파인스)과 당차며 무엇이든 부딪치고 보며 그 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테사(레이철 바이스)의 로맨스란 설정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대타로 강연에 나섰다가 테사를 만나 자신에게 부족한 강렬함에 끌린 저스틴은 그녀와 함께 케냐로 향한다. 사실 테사가 저스틴의 외교관 신분을 이용할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테사가 아놀드(위베르 쿤데)와 수상쩍다 싶을 정도로 붙어 다녀도 그녀가 하는 일을 묵묵히 응원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폐가 될까봐, 또는 남편이 말릴까봐 저혼자 일을 진행한다. 테사는 심지어 정부 관리인 남편의 친구 샌디(대니 휴스턴)에게 몸을 허락하기까지 한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다며 아놀드와 함께 여행을 떠난 테사가 강도들에게 당한 듯한 사체로 발견된다. 아놀드는 시신이 없었다가 나중에 참혹한 형태로 발견된다.
저스틴은 아내가 하던 일을 파헤치려 한다. 이 과정에 아내가 얼마나 옳은 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지, 얼마나 큰 짐을 지고 버거워했는지, 자신을 얼마나 배려했는지 차츰 알아간다.
테사가 규명하려 했던 것은 거대 제약업체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실험용 쥐' 마냥 취급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영국 정부와 손잡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끈질긴 추격 끝에 진실을 알게 된 저스틴의 해법이 조금 뜨악하다. 테사를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곳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물론 죽음을 맞기 전에 어딘가로 서류를 보냈고, 자신의 장례식에서 모든 것이 폭로하게 준비했다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철부지 망나니들의 칼춤을 수굿이 기다리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원작의 결말을 영화화하며 크게 흔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르 카레가 왜 이런 결말을 지었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극성을 최고점으로 끌어올리거나, 지순한 저스틴의 조경사 기질이 발휘된 것으로 보이게 하려 했는지 잘 모르겠다.
카메라를 여간 거칠게 다루는 것이 아니다. 표정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고, 핸드헬드 카메라로 흔들리게 촬영했다. 고발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도드라지게 하려고 의도했다고 해도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을 때도 있어, 차라리 케냐 현지 로케이션에 여러 제약이 따라 급박하게 촬영 일정을 진행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
분명 아쉬움이 적지 않은데, 감정적으로 뭔가를 툭 건드린 것은 분명하다. 이 작품처럼 척박한 아프리카의 현실, 그나마 검은 대륙에서도 가장 형편이 나은 것으로 평가받는 케냐의 빈곤층을 이렇게 진득한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높이 살 대목이다. 영화 중간 '죄책감'이란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이 아프리카의 오늘을 낳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성찰을 르 카레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나이로비에 있는 키베라 슬럼에서 촬영하며 열악한 현실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 현지인들에게 기본 교육을 제공하는 '콘스탄트 가드너 트러스트'를 만들었다는데 지금도 잘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편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동조자’ 7부작 가운데 1~3편을 박찬욱 감독이 연출했고, 4편을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했으며 5~7편은 마크 먼든이 연출했다. 국내에선 쿠팡플레이를 통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