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89) - 제7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8
- 바다 건너 친구야, 사이좋게 지내자
4월 25일(목), 아침 일찍 일행들 몇 분과 숙소 앞의 방파제를 거닐며 담소하는 중 어느새 식사시간이다. 숙소의 여주인이 정성으로 준비한 아침 식사, 엔도 대표는 일본 여정 중 가장 친절하고 맛좋은 숙소라며 여주인에게 페넌트를 증정하고 치하한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후 오전 7시 10분에 미니버스 등을 이용하여 아시베항으로 향하였다. 날씨는 사흘째 흐리고 가랑비가 내린다. 7시 55분에 출발하는 후쿠오카 행 쾌속선에 탑승하려니 전날 마중나온 이키관광협회 관계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다. 터미널까지 배웅나온 숙소의 주인도 함께. 따뜻한 정을 베푼 친구들이여, 안녕!
이키 – 후쿠오카는 65km, 쾌속선은 현해탄을 한숨에 달려 한 시간 만에 하카다 항에 이른다. 배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후쿠오카 민단 관계자들과 이곳에서 합류하는 일행들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준다. 꽃다발과 플래카드를 준비하는 등 성심을 다한 민단관계자들의 환송을 받으며 버스에 오르니 9시 반, 다카하시 미오키 씨 등 3명과 작별하고 새로 이곳에서 하리우 헤이타로 씨 등 7명이 합류하여 일행 35명이 시모노세키로 향하였다.
하카다 항에 환영나온 민단관계자들과 함께
후쿠오카에서 시모노세키까지는 100km가 넘는 거리, 주변 산야가 연한 녹음으로 부드러운 기운이 감도는 고속도로를 달려 오전 11시 지나 본토와 규슈를 잇는 관문대교를 건너 시모노세키에 들어섰다. 도착지는 조선통신사가 매번 일본 본토에 배편으로 상륙한 지점, 아카마징구(赤間新宮) 앞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내리니 작은 비석이 눈에 띤다. 부산과 시모노세키가 1976년 10월 11일에 자매도시로 결연한 30주년을 기려 양 도시의 시장이 2006년 8월 19일에 세운 것이다. 전에도 여러 차례 이곳에 들렀어도 보지 못했던 것, 관부연락선이 오간 역사를 지닌 양 도시의 인연에 대한 감회가 별다르다.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아미타 절에 세워진 아까마징구
아까마징구 앞의 조선통신사 샹륙 지점이라 새긴 비석은 2006년에 세운 것, 비석에 한일의원연맹회장 자격으로 이름을 새긴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인걸은 가도 이름은 남는구나. 시모노세키로 가는 차중에서 엔도 야스오 대표가 지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아카마징구와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을 읽어준다. 아까마징구는 원래 아미타라는 절로 조선통신사가 상륙하면 그 절에서 묵었고 이에 관한 시문이나 여러 자료가 남아 있었는데 메이지유신 후 절은 없어지고 신궁이 들어서며 관련 자료들도 사라져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는 내용이다. 몇 차례 들렀어도 제대로 설명 듣지 못한 부분, 새로 접하고 알게 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로다.
아까마징구를 둘러본 후 버스에 오르니 12시, 준비해온 도시락을 하나씩 나눠준다. 다음 행선지는 히로시마, 200km 이상 떨어진 먼 거리다. 버스 안에서 점심을 들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한 시간 반 지나 중간휴게소에서 잠시 멈춘 후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가 가깝다. 평화공원은 1945년 8월 6일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20여만 명이 사망하고 수십만이 부상을 입은 끔찍한 참상을 교훈 삼아 평화를 염원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그 안에 2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전에는 우리 일행들만 조용히 들러 위령비를 돌아보며 명복을 빌고 평화의 종을 타종하며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기를 염원하였다. 이번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평화통일한국인연합회 중국지방(일본중부지역)연합회와 재일본히로시마한국인연홥회 회원들이 다수 참석하여 함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그 중에는 원폭피해를 직접 경험한 한욱수(89세) 명예회장도 참석하여 당시의 상황을 일깨기도. 평화통일연합회의 윤치중 사무국장이 당시의 피폭참상과 억울하게 희생당한 한국인들에게 미안하다며 위령비를 10년 넘게 날마다 깨끗이 청소하는 일본인 고시미치 씨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연합회의 회원들은 우리 일행이 도쿄까지 무사히 완주하기를 염원하는 뜻을 담아 색종이로 접은 천 마리의 학을 한데 모은 모형을 선물로 주기도.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세운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 앞에 함께 한 일행들과 현지교민들
평화공원에서 30여분 머문 후 오후 3시 20분에 다시 버스에 올라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국민휴양지 노로(野呂)국립공원으로 향하였다. 히로시마 출발에 즈음하여 느낀 소회, 시가지는 원폭투하의 폐허에서 웅장한 건물이 즐비한 현대식 도시로 변모하였고 평화공원에서 학습하는 청소년의 모습에서 전쟁의 아픔을 찾기 어렵다. 그 평화의 기운, 온 세계로 뻗어가라.
히로시마를 벗어나 구래시를 거쳐 노로공원 국민휴양시설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지났다. 해발 800여미터의 고지에 이르는 산길에서 내려다보는 세토내해의 경관이 그림 같이 아름답고 따뜻한 온천물에 담근 몸이 가뿐하다. 저녁은 엔도 대표의 생일축하를 겸한 즐거운 식탁, 여성회원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해피 버스데이를 합창하고 시원한 맥주로 건배하며 일본 여정 사흘째를 알차게 마무리하였다. 이키에서 배 타고 후쿠오카에 후코오카에서 시모노세키와 히로시마 거쳐 노로공원에 이르는 길은 400km 넘는 먼 거리, 일행 모두 수고하였습니다. 잘 쉬고 내일 또 새로운 날로 나아갑시다.
노로국립공원에 오르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새토내해 풍경
* 이키에서 다정한 이웃들의 전송을 받고 출발하여 후쿠오카에서 새로운 벗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어 감사하였다. 시모노세키에 도착하니 현지에 사는 일본인이 서둘러 버스로 다가온다. 내용인즉 일행인 이철민 씨의 친구 무라카미 요시키 씨가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 헐레벌떡 찾아오는 길이란다. 그는 창원시 창신대힉교에서 어헉 연수하는 동안 이현민 씨와 알게 되어 각별한 친구로 지내는 사이라며 2년 전에는 한국의 월간잡지 ‘좋은 생각’에 단문을 기고하기도 한 바다 건너의 친구다. 후쿠오카 출발에 앞서 일행을 환영해준 분이 버스에 올라 일본가수 노다 가슈이코의 카세트 ‘친구야’와 그 노래의 사연을 담은 신문기사를 선물로 주었다. 엔도 대표가 이를 건네 살펴보며 ‘친구야’의 가사를 메모하였다.
‘터널의 저 쪽에
조선통신사
친구야
바다 건너의 당신에게
터널의 저 쪽에‘
우리는 조선통신사가 이루고자 했던 성신과 우의를 다지며 열심히 걷고 있다. 바다 건너 친구야, 사이좋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