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만난 꽃 사진 감상하세요
어느 꽃에게 넌 왜 나만 보면 기침을 하니? 꼭 한마디 하고 싶어하니?
속으로 아픈 만큼 고운 빛깔을 내고 남 모르게 아픈 만큼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오늘도 나에게 말하려구?
밤낮의 아픔들이 모여 꽃나무를 키우듯 크고 작은 아픔들이 모여 더욱 향기로운 삶을 이루는 거라고 또 그 말 하려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꽃 한 송이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김용택·시인, 1948-)
꽃의 선언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성(性)을 사용할 것이며 국가에서 관리하거나 조상이 간섭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상이 함부로 손을 넣지 못하게 할 것이며 누구를 계몽하거나 선전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정녕 아름답거나 착한 척도 하지 않을 것이며 도통하지 않을 것이며 그냥 내 육체를 내가 소유할 것이다 하늘 아래 시의 나라에 내가 피어 있다 (문정희·시인, 1947-)
꽃의 이유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마종기·시인, 1939-)
꽃비
꽃은 거울이다. 들여다보는 이를 비춰주지 않는 거울이다. 들여다보는 이가 다 꽃으로 보이는 이상한 거울이다.
꽃향기는 끌어당긴다. 꽃향기에 밀쳐진 경험은 한 번도 없다. 꽃은 주위를 가볍게 들어올려준다. 꽃 앞에 서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마음은 꽃에 여닫히는 자동문이다.
꽃잎을 만져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아, 빛깔도 참 곱다."
빛깔을 만질 수 있다니, 빛깔을 만질 수도 있게 해주시다니. 사람들을 다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꽃은 봄의 심지다. (함민복·시인, 1962-)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시인, 1954-)
꽃은 언제나 진다
나를 항복시키려고 꽃이 핀다 어떠한 권력도 어떠한 폭력도 이와 같은 얼굴을 가질 수 없어 며느리밑씻개란 어처구니없는 이름의 꽃도 내 앞에 권총을 빼들었다 총알을 장전한 꽃 앞에 이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이중 삼중 문을 닫고 커튼까지 쳤으나 몽유에 든 듯 여기가 어딘가 깨어보면 꽃에 코를 처박고 있거나 눈동자에 그득 꽃잎을 쑤셔 박고 있다 나는 이미 수형에 든 것이다 네가 꽃인 것이 죄인지 내가 사람인 것이 죄인지 쏟아진 물처럼 살아있는 것은 다 스며야한다 이 지독한 음해의 향기에 수갑 채여 꽃비 촘촘한 창살 속 애벌레처럼 둥글게 몸을 말아 바치며 나는 너를 이길 수 없어 완전히 내가 졌다고 생각할 때 꽃이 졌다 나를 항복시켰으면 너는 잘 나가야지 꽃은 언제나 져서 나를 억울하게 한다 (김종미·시인, 1957-)
앙큼한 꽃
이 골목에 부쩍 싸움이 는 건 평상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다
평상 위에 지지배배 배를 깔고 누워 숙제를 하던 아이들과 부은 다리를 쉬어가곤 하던 보험 아줌마,
국수내기 민화투를 치던 할미들이 사라져버린 뒤부터다 평상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동백 화분이 꽃을 피웠다 평상 몰아내고 주차금지 앙큼한 꽃을 피웠다 (손택수·시인, 1970-)
꽃
꽃이 눈에만 보일 뿐 꽃의 소리가 안 들린다면
아직 꽃을 잘 모르는 거다.
꽃 앞에 가만히 서서
두 눈을 감고 가슴의 귀를 활짝 열면
꽃의 아름다운 겉모양 너머
보이지 않는 내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정연복·시인, 1957-)
늙은 꽃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문정희·시인, 1947-)
꽃 나에게 꽃이 있었지 어느 별 어린 왕자처럼 매일매일 물을 주고 항상 바라봐줘야 하는 꽃 한 송이 있었지 (양해남·시인, 1965-)
꽃무릇
꽃이 아니라 불꽃이다 푸른 촛대 끝에 열린 붉은 절규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십만 시위대의 촛불처럼
선운사 산문에 운집한 저 뜨거운 꽃불의 아우성
누구를 향해 무엇을 어쩌라는 저리도 붉은 시위인가 (임보·시인, 1940-)
불꽃
예쁘지도 향기도 없는 꽃
손발을 덥혀주고 시린 가슴까지 덥혀주는 꽃
제 몸 다 태워 재가 되어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꽃
누군가의 길잡이로만 피었다가 지는 꽃 (작자 미상)
돌아가는 꽃
간밤 비에 꽃 피더니 그 봄비에 꽃 지누나
그대로 인하여 온 것들은 그대로 인하여 돌아가리
그대 곁에 있는 것들은 언제나 잠시
아침 햇빛에 아름답던 것들 저녁 햇살로 그늘지리 (도종환·시인, 1954-)
제비꽃 편지 제비꽃이 하도 예쁘게 피었기에 화분에 담아 한번 키워보려고 했지요 뿌리가 아프지 않게 조심조심 삽으로 떠다가 물도 듬뿍 주고 창틀에 놓았지요 그 가는 허리로 버티기 힘들었을까요 세상이 무거워서요 한 시간도 못되어 시드는 것이었지요 나는 금세 실망하고 말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없었어요 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지요 그래서 좋다 시들어라, 하고 그대로 두었지요 (안도현·시인, 1961-)
순간의 꽃
그저 무심히 내가 너를 스쳐갔을 뿐인데 너도 나를 무심히 스쳐갔을 텐데
그 순간 이후는 네가 나를 내가 너를 스쳐가기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간밤의 불면과 가을 들어서의 치통이 누군가가 스쳐간 상처 혹은 흔적이라면
무심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너와 나와는 그 무심한 스침이 빚어놓은 순간의 꽃이기 때문인 것이다 (복효근·시인, 1962-)
꽃 앞에 서면
세상에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처럼
해맑은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작은 꽃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내 가슴속 응어리져 있는
삶의 슬픔과 괴로움 걱정 근심
햇살에 눈 녹듯이 사르르 녹고
엄마 품속에 포근히 안겨 있는
아가같이 마음이 밝고 평안해진다 (정연복·시인, 1957-)
봄꽃을 보니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다 지고 싶습니다 (김시천·시인, 1956-)
다
당신입니다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 피는 대로 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 대로 비오면 비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다
당신입니다. (김용택·시인,
1948-)
봄은
굳었던 관절이 부드러워지듯 봄은 가까이 더 깊숙이 들어왔다 걸음이 빨라지고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나는, 꿈꿀 준비가 되어 있는 자와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는 욕심 없이 건강해질 수
있는 계절이다 봄은 오, 그 누가 첫사랑 같은 설렘 가득한 봄날에 희망으로 가는 통로를 행복으로 가는 첫 계단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집중할 수 없는 순수와 열정은 가라 거짓사랑도 가라 (이희숙·시인,
1964-)
봄날, 사랑의 기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소서 큰 것보다도 작은 것이 좋다고, 많은 것보다도 적은 것이 좋다고, 높은 것보다도 낮은 것이
좋다고, 빠른 것보다도 느린 것이 좋다고.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그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 장미의 화려한 빛깔 대신에 제비꽃의 소담한 빛깔에 취하게 하소서 백합의 강렬한 향기 대신에 진달래의 향기 없는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잊어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 물이 차 오르게
하소서
꽃이 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얼음장을 뚫고 바다에 당도한 저 푸른 강물과 같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안도현·시인, 1961-)
목련 후기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복효근·시인, 1962-)
봄날의 사랑 이야기
사랑은 장미처럼 활활 불타지 않아도
좋으리
사랑은 목련처럼 눈부시지 않아도 좋으리
우리의 사랑은 봄의 들판의 제비꽃처럼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게 작고 예쁘기만 해도 좋으리
우리의 사랑은 그저 수줍은 새색시인 듯
산 속 외딴곳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꽃 같기만 해도 좋으리
이 세상 아무도 모르게 우리 둘만의
맘속에서만
살금살금 자라나는 사랑이면 좋으리 (정연복·시인, 1957-)
꽃 피는 봄엔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신나도록 필 때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겨우내
얼었던 가슴을 따뜻한 바람으로 녹이고 겨우내 목말랐던 입술을 촉촉한 이슬비로 적셔 주리니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온몸에 생기가 나고 눈빛마저 촉촉해지니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피어 님에게 바치라 향기를 날리는데
아! 이 봄에 사랑하는 님이
없다면 어이하리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용혜원·목사 시인, 1952)
봄마중
그리움 깊어 노란 빈혈을 앓는 산수유꽃을 지났더니
봉분처럼 치장한 진달래 꽃무덤 못 다한
사랑얘기 속살거리고
솜털옷 벗는 백목련, 웃을 때 살짝 보이는 그 사람 송곳니 같아서 볼 때마다 눈이
부셔 실눈을 하게 되고
아이참, (최원정·시인,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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