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 정경부인 윤씨 할머니(백강상국 첫째 부인) 돌아가심
효자를 애도하는 사 병서〔哀孝子辭 幷序〕
윤공(尹珙) 원벽(元璧)이 통천(通川)에 유배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 고(故) 상국(相國)의 부인께서 따라가셨다. 어느 날 집에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부인께서 병을 앓던 중이라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셨다. 친정에 왔던 딸 수부(水部) 이경여(李敬輿)의 처(妻)와 시집가지 않은 효자 윤공의 막내딸과 병 시중하던 상국의 첩이 모두 부축하다가 불타 죽었다. 효자도 마침내 화염을 무릅쓰고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아, 불길이 사나워 그 가족을 태웠단 말인가, 귀신이 어질지 못하여 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단 말인가. 내가 장차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에게 묻는단 말인가. 대개 아들을 따라가는 것은 경(經)이고 수재(水災)와 화재(火災)를 만나는 것은 변(變)이니, 사나운 불과 어질지 못한 귀신을 어찌한단 말인가.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 의지하여 생활하며 생사를 함께하여 몸이 불타 없어지는 데 이르러서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았으니, 효순(孝順)의 도가 한 집안에 모인 것이다. 장차 천지가 다하고 만고(萬古)의 세월이 지나도 그 효열(孝烈)과 그 원통함이 닳지 않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혼이 기를 타고 산산이 흩어져 돌아오지 못할까 염려하여 애사를 지어 혼령을 부르노라. 애사는 다음과 같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 火之炎炎兮
부인이여 부인이여 / 夫人乎夫人乎
불이야 외쳤도다 / 鬱攸譆譆
좌우에서 부축하며 / 左扶兮右持
두 딸이 따르고 / 二女從之兮
첩도 함께 뒤따랐네 / 妾又媵之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 / 火之烈烈兮
효자여 효자여 / 孝子乎孝子乎
어머니께서 화마와 싸우시니 / 母與火鬪
효자가 뛰어들어 / 孝子投身兮
불길 속에서 만났어라 / 火離而合
누가 불을 뜨겁다 하였나 / 誰謂火熱兮
내가 편히 죽을 곳을 얻었어라 / 我安得所
하느님 어질어도 / 天公之仁兮
급한 상황 헤쳐내지 못하셨나 / 急不暇掀
불이 장차 그치나 했는데 / 火將止兮
바람이 일어 타게 했네 / 風起煬之
상제님 계신 곳 멀어 / 脩門遠兮
산과 숲 막혔던가 / 嶺樹以障
효자가 돌아가자 / 孝子欲歸兮
부슬비가 전송하니 / 零雨送之
비단 치마 수놓은 옷 / 錦帔兮繡服
혼령은 해 가린 구름길로 / 靈蔽日兮雲之路
바닷물 출렁이고 깊어 / 滄溟漾深兮
당기기만 하면 바로 문 앞이었도다 / 挹之在戶
아홉 용이 구제하지 않았으니 / 九龍不救兮
천제께서 노하여 너희를 죽이시리라 / 帝怒殛汝
계서를 거르고 향기로운 산초를 따서 / 釃桂醑兮掇芳椒
효자를 기다리는 무속의 마음도 슬퍼하네 / 待孝子兮巫心惻
만세가 뒤에 있어 / 萬世在後兮
백성들이 슬퍼하며 잊지 않으리니 / 民悲不忘
지금부터 시작하여 / 其始自今兮
거듭 한식을 삼으리라 / 重作寒食
[주-D001] 윤공(尹珙) :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원벽(元璧)이다. 생애는 자세하지 않으나, 이조 판서를 역임한 윤승훈(尹承勳, 1549~1611)의 아들이다. 《광해군일기》 9년 3월 24일 기사에 “통천(通川)에 정배(定配)한 윤공의 배소(配所)에 불이 났다. 윤공의 어미는 고 상신 윤승훈의 부인인데, 역시 윤공을 따라갔다가 한밤중에 졸지에 당하여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이에 윤공 및 윤공의 여동생인 이경여(李敬輿)의 아내, 그리고 윤공의 서모가 서로 뛰어 들어가 구하다가 모두 불에 타 죽었으며, 윤공의 딸 역시 죽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주-D002] 이경여(李敬輿)의 처(妻) : 이경여의 부인은 윤승훈의 딸이다. 송시열의 글에 “공의 첫 부인은 영의정 윤승훈의 딸로, 부덕을 지녔으며 효를 다하다가 죽었으므로 정려되었다.[公先娶領議政尹承勳女, 婦德甚備, 以孝死旌閭.]”라고 하였다. 《宋子大全 卷157 白江李公神道碑銘 幷序》
[주-D003] 계서(桂醑) : 계화(桂花)를 넣고 빚은 술로, 계화주(桂花酒)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맛 좋은 술을 의미한다.
[주-D004] 지금부터 …… 삼으리라 : 윤공이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추모하여 또 다른 한식일(寒食日)을 만들 것이라는 말이다. 본래 한식은 면산(綿山)에 은거하던 개자추(介子推)를 불러내기 위해 진 문공(晉文公)이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나무를 껴안고 불에 타 죽었으므로, 그가 불에 타 죽은 날에는 불을 피워 음식을 익히지 말고 미리 만들어 놓은 찬 음식을 먹게 한 데서 유래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24年》
동주집 문집 제4권 / 애사(哀辭) 동주 이민구 선생
ⓒ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강원모 김문갑 오승준 정만호 (공역) | 2016
哀孝子辭 幷序
尹珙元璧謫通川。其母先相國夫人實從之。一日火發。夫人病不克下堂。其女李水部妻歸寧者。其孝子之季女未行者。其相國妾之侍鞶匜者。悉提携扶服以及於熸。孝子遂冒焰入不復出。嗚呼。回祿之虐而爇其族耶。鬼神之不仁而毒是人耶。吾將孰怨之而孰問之耶。蓋從子。經也。水火。變也。其如虐而不仁者何哉。子與母相依爲命。以生以死。至於燔滅其身而靡有怨悔。孝順之道萃乎一家。將窮天地亘萬古。載其烈載其冤。而有不磨不滅者歟。余懼其魂之乘氣飄散而不得返也。作哀辭以招之。辭曰。
火之炎炎兮。夫人乎夫人乎。鬱攸譆譆。左扶兮右持。二女從之兮。妾又媵之。火之烈烈兮。孝子乎孝子乎。母與火鬪。孝子投身兮。火離而合。誰謂火熱兮。我安得所。天公之仁兮。急不暇掀。火將止兮。風起煬之。脩門遠兮。嶺樹以障。孝子欲歸兮。零雨送之。錦帔兮繡服。靈蔽日兮雲之路。滄溟漾深兮挹之在戶。九龍不救兮帝怒殛汝。釃桂醑兮掇芳椒。待孝子兮巫心惻。萬世在後兮民悲不忘。其始自今兮重作寒食。
동주집 문집 제4권 / 애사(哀辭)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2
* 동주집 [東州集]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이민구(李敏求 : 1589~1670)의 시문집.
43권(전집 8권, 시집 24권, 문집 10권, 별집 1권) 13책. 서문과 발문이 없어서 편자와 간행연대는 알 수 없다. 권두에 1639년(인조 17)에 쓴 자서가 있다. 전집과 시집은 모두 시로서 선위록·종군록·영남록·가림록·묘유록·동유록·관동록·관서록·철성록·아성록·서호록·단륜록으로 나뉘어 2,000여 수가 실려 있다.
문집의 권1에는 교·차·서, 권2에 서, 권3에 기·발, 권4에 설·제문·애사, 권5에 상량문·잠·명·전·부, 권6에 행장, 권7에 비명, 권8에 묘지명, 권9·10에 비갈명, 별집 권1에 시 105수가 있다. 시는 실려 있는 양이 많으며 저작연도별로 구분하여 실었다. 규장각·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 이민구[李敏求]
출생 1589년(선조 22) 사망 1670년(현종 11)
경력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대표작 동주집, 독사수필, 간언귀감, 당률광선
본관 전주(全州)
조선시대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州)·관해(觀海). 신당부수(神堂副守) 이정(李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희검(李希儉)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수광(李晬光)이며, 어머니는 김대섭(金大涉)의 딸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해 진사가 되고, 1612년 증광 문과에 장원급제해 수찬으로 등용되었다. 이어서 예조·병조좌랑을 거쳐 1622년 지평(持平)이 되고, 이듬 해 선위사(宣慰使)로 일본 사신을 접대하였다.
교리·응교 등을 거쳐 1623년(인조 1)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위해 젊은 관료들에게 독서에 전념하도록 휴가를 주던 제도)했고,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626년 대사간이 되고, 이듬 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병조참의가 되어 세자를 모시고 남쪽으로 피난하였다. 그 해 승지가 되었다가 외직인 임천군수로 나갔다.
1636년 이조참판·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역임하였다. 이 해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도검찰부사(江都檢察副使)가 되어 왕을 강화에 모시기 위해 배편을 준비했으나, 적군의 진격이 빨라 왕이 부득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소임을 완수할 수 없었다. 난이 끝난 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로 아산에 유배되었다가 영변으로 옮겨졌다. 유배지에서 책임을 통감하면서 날마다 눈물로 자책을 하다가 1649년에 풀려났다. 그 뒤 부제학·대사성·도승지·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고 사부(詞賦)에 능했을 뿐 아니라, 저술을 좋아해서 평생 쓴 책이 4,000권이 되었으나 병화에 거의 타버렸다 한다. 저서로는 『동주집(東州集)』·『독사수필(讀史隨筆)』·『간언귀감(諫言龜鑑)』·『당률광선(唐律廣選)』 등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