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람여행 채비 1
우리 학교는 누리샘 5학년이 되면 자람여행을 갑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성장여행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우리 학교는 우리말을 살려 쓰려고 자람여행이라는 이름을 쓰지요. 2010년 여름 시작된 자람여행은 어렵고 힘든 여행을 만듭니다. 어렵고 힘든 걸 동무들,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나 자신을 이겨내고 호연지기를 기르며 추억을 쌓으니 자람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행은 떠나기 전날 짐을 쌀 때가 가장 즐겁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낯선 곳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차니 그럴 법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자연속학교도요)도 그렇습니다. 철마다 가는 자연속학교지만 사람이 달라지니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설레는 마음이 있어요. 물론 채비하고, 함께 지내면서 몸이 힘들기도 하지만요. 저는 이번 자람여행을 어떻게 할지 정하고서, 아직 한 달쯤이나 남은 자람여행을 생각하면 설레요.
여행이 즐겁지만 자주 가지 못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도 있겠지만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잖아요. 학교에서 가는 여행도 늘 돈이 걱정입니다. 아끼고 아낀다지만 바깥지원이 없는 처지에서 부모님들이 내시는 돈만으로는 여행을 기획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자람여행, 졸업여행을 가는 누리샘, 깊은샘은 무얼 자꾸 만들어서 사달라고 조르게 됩니다.
병가를 두 달이나 쓰는 동안 계획했던 것을 하지 못해 마음이 바쁩니다. 어린이들과 여행에서 쓸 돈을 마련하는 것은 장사꾼이 돈을 벌 듯 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로 시작해서 그 결과물이 자연스레 팔릴 물건이 되게 하는 것이라 한 해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생각을 해놓게 됩니다.
그래서 누리샘은 작두콩을 심고 가꾸고 거두어 작두콩차를 만들었습니다. 작두콩은 2019년 화순으로 자연속학교를 갔을 때 농부님 일을 도왔는데 그때 작두콩 씨앗을 얻어와서 심기 시작한 뒤로 작두콩차를 만들어 팔게 되었어요. 생김새가 작두 모양이고 아주 커서 어떤 어린이들은 징그럽다고 하기도 해요. 작두콩을 거두면, 햇빛 건조기(적정기술을 이용한 건조기)를 써보는 공부를 하게 되지요. 햇빛 건조기에도 복사열, 태양광 발전, 대류 현상 같은 과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니 참 좋습니다. 어린이들이 햇빛 건조기를 자주 쓰지 않다보니 3층 책장 위에 있는 물건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 잘 모르다가 이번에 잘 알게 되었어요. 해가 잘 드는 옥상에 갖다 놓았다가 오전에는 3층 앞 쪽마루로 옮기도, 이슬을 맞은 아크릴판을 깨끗이 닦기도 했어요. 그리고 다섯 몫으로 나누어 집에 가서 덖어오는 것을 숙제로 했지요. 약한 불로 타지 않게 줄고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면서 덖는 것을 가르쳐주었어요. 참 오랜 시간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한숨을 쉬었지만, 착하디 착한 누리샘 네 어린이가 모두 열심히 덖어왔습니다(물론 부모님들이 많이 도와주셨겠지요^-^).
두 번째는 고구마순 김치를 담갔어요. 고구마는 이맘 때 순을 많이 따주면 열매로 영양이 많이 가서 고구마가 더 굵어진다고 해요. 그래서 반찬으로도 해 먹고, 고구마도 더 잘 키우는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지요. 고구마순을 뜯을 때면 모기와 싸워야 해요. 고구마는 잎이 커서 그 아래에 모기가 참 많지요. 모기와 싸우며 고구마순을 100개씩 뜯고, 선생은 어른이니 200개를 뜯기로 했어요.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하자고 하는 거 참 잘해요. 고구마순을 뜯고, 잎을 떼서 다섯 몫으로 나누었지요. 이것도 숙제로... ^-^ 저는 점심 시간에 3층 마루에 앉아 껍질을 벗기는데 깊은샘 현준이가 옆에 앉더니 “이거 재밌는데, 저는 이런 것만 했으면 좋겠어요. 6학년이 되니 영어, 수학이 너무 어려워요. 이거 하면서 머리를 좀 식혀야겠어요.”하면서 도와주었어요. 미끄럼틀을 타러 온 해솔이가 “이거 뭐 하는 거야?” “응. 고구마순인데 껍질을 벗겨서 김치 담그려고.” “나도 해봐도 돼?” “그럼.” “어떻게 하는 거야?”해서 잎사귀 쪽을 잡아 톡 부러뜨리고 한 손으로는 붙어있는 껍질을 잡고 다른 한 손 아랫부분을 잡아 살살 당기면 벗겨지게 되는 걸 보면서 방법을 알려주었지요. 해솔이는 40분을 앉아서 줄고 고구마순 껍질을 벗겼어요. ※절대 시킨 거 아닙니다. 해솔이가 고구마순 껍질 벗기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하시면서 이예지 선생님은 사진을 찍어주시기도 하셨어요. 껍질을 벗기고 나니 양이 많이 줄더라고요. 그래서 해날 저녁때쯤 고구마순을 한 소쿠리 더 뜯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시화랑 같이 벗기고 양념들을 챙겨놓았어요.
달날 아침 어린이들이 가져온 고구마순을 씻어 자르고 양념을 만듭니다. 매운 걸 좋아하는 도윤이는 고춧가루를 더 넣으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여러 블로그를 검색해서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걸로 알려주신 분의 방법대로 만듭니다. 채소라면 손사래를 치는 도윤이가 맛있다고 줄곧 맛을 보았으니 맛이 나쁘지는 않았나 봅니다. ※드신 분들의 평가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어제는 고추장 만들기를 했어요. 지금 햇고춧가루가 나올 때라 지금 고추장을 담그면 색이 참 곱다고 합니다. 저도 뭐 곁에서 보면서 거들기나 했지 직접 만든 건 처음이에요. 그런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과천 막걸리 장인 ‘전정일 선생님’ 스승님이 발효음식 전문가이신데, 유투브를 하셔요. “발효깨비”(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한 번 찾아서 보셔요~). 아주 친절하게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 차례를 알려주셔서, 어린이들도 부모님들이랑 같이 한 번 보라고 하고, 저는 한 열 번 봤어요.ㅎ 찹쌀고추장 만들기에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은 찹쌀 경단을 만들어 찹쌀풀을 만드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찹쌀 3Kg 가운데 500g만 경단을 만들기로 하고, 2.5kg은 하루 전날 풀을 쒔어요. 발효깨비 선생님이 경단을 만드는 까닭은 많은 양을 풀을 쑤다보면 눌러붙거나 타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어린이들이랑 경단을 만들기는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들 거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옥상에 있던 간장독의 간장을 빈 통에 옮기고, 독을 씻어 뜨거운 물로 소독해요. 어린이들이랑 같이 해서 3층 3쪽마루로 옮기고 재료와 도구들을 챙겨 3층 마루로 갑니다. 어린이들과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경단을 만들고 전날 만든 풀과 섞고, 청국장가루를 체에 치고, 조청을 섞습니다. 왕규식 선생님이 보내주신 고춧가루 3kg은 정말 색이 곱습니다. 빨가디빨간 고춧가루를 점점 더 많이 섞어가니 색이 참 곱습니다. 청국장가루가 들어가니 냄새는 참 그렇습니다. 3층에 놀러온 동생들이 냄새가 고약하다며 코를 쥡니다. 커다란 양푼 두 개에 반쯤 찬 고추장을 실리콘 주걱과 나무주걱으로 젓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누리샘 방에 고추장을 놔두고 가끔 저어주었어요. 집에 가기 앞서 장독에 옮겨 담고 소금을 한 주먹씩 뿌려주고 깨끗한 면보자기를 덮고 유리 뚜껑을 덮으며 어렵고 힘들었던 고추장 만들기가 끝났어요.
이제 날마다 장독을 깨끗하게 닦으며 장이 맛있게 익기를 바랄 뿐입니다.
앞으로도 자람여행에 필요한 돈을 벌려고 몇 가지 더 할 거예요. 많이 도와주세요~~
※고추장 주문 받습니다. 많이 사주세요~~^-^
첫댓글 고추장 주문글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ㅠㅠ 친정부모님이 매해 주시는 작두콩차를 생각해 차마 이번 누리샘 작두콩차를 주문하지 못했어요 ! ㅠㅠ 대신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암튼 고추장 ... 기대합니다!!
별 표시 마다 빵 터졌네요. ㅋㅋ
고구마순 김치를 사러가야겠다고 생각하면 낚인거죠?
기꺼이! 늘 기꺼이~
고추장 기다립니다 ㅎㅎ
고구마순 김치 정말 너무 맛있었어요 더 살걸 하는 후회가 . 😍 고추장도 기대됩니다 좋은 먹거리들을 먹게 되어 좋고,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경제 교육의 씨앗이 된다면 더욱 값어치가 있네요!
화이팅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