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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알아가기 시리즈⑯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참고말씀: 창22:13-18; 24:62; 25:11; 28:16,17,19; 32:29,30; 33:20; 35:7; 출3:2-12; 33:20; 삿2:1-4; 6:11-20,22; 13:18,21,22; 시40:1-5; 사9:6
읽을말씀: 창16:7-14
주제말씀: 창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첫째,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창16:13)
오늘 우리가 배울 하나님의 이름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입니다. 왜 이 이름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를 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살피신다는 점을 확신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언제 일어난 사건입니까? 아브라함의 나이가 85세 때, 즉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십 년 후입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십 년 후였더라.”(3절 하) 이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한 채 하갈이라는 첩을 들였는데, 그녀가 임신하자 사라를 멸시했다가 도리어 학대를 받고 광야로 도망친 사건입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4절) /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6절 하)
이 때 누가 광야 한 복판에서 그녀를 만나 주셨습니까?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정확히 어디에서 만나주셨습니까?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7절)
이는 문맥상 누구를 가리킵니까?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동격으로 표현되고 있으며(출3:2-12; 삿6:11-14), 자기를 나타난 사람에게 자신을 신으로 인식시키고 있으며,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13절) /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32:29,30) /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삿6:22) /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삿13:21,22)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그러한 성격의 복을 베풀고 있으며(10-22절: 창22:16-18),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자신이 받고 있으며(창22:13; 삿6:16-20),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신이 한 일처럼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삿2:1-4). 이상을 종합하면 여호와의 사자는 신격을 가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3위이신 성령이 될 수 없는 것은 성령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요, 그렇다고 해서 제1위이신 성부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은 죄인으로서 그분을 뵌 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20)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 여호와의 사자의 출현이 중단되었고, 여호와의 사자의 호칭인 ‘기묘’가 그리스도의 호칭인 ‘기묘’와 동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삿13:18)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구약에 나타난 이 여호와의 사자는 제2위이신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라는 결론이 날 수 있습니다. 만나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9절)
그러면서 어떤 것들을 약속해주셨습니까?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크게 번성하고 그 후손들이 심히 많아질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10,11절)
그런데 그녀는 여기서 어떤 점에 더욱 크게 놀랐습니까? 어떻게 광야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었느냐는 점입니다.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13절 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하나님이 너무도 감격스러워서 그분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불러드렸습니까?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13절 상)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나를 살피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까? 원컨대 하갈이 만난 하나님이 곧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창16:14)
한편, 여기서 ‘살피시는 하나님’(히, 엘 로이)이란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혹은 ‘나의 눈으로 확인한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하갈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을 받고, 감격에 차서 부른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13절)
이 하나님은 하갈만 만나주십니까? 아닙니다. 오늘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채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하심만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이들을 만나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즉 형을 피해서 도망 중이던 야곱에게 그리 하셨고,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창28:16,17)
숱한 위기들 가운데 놓여 있었던 다윗에게 그리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40:1-5)
혹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눈으로 확인하듯이 내 삶으로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이런 하나님을 몸소 체험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말입니다.
하갈은 이 같은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나주신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 곧 ‘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이의 우물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14절)
왜 그리 한 것입니까?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고 보니 믿음의 선진들이 한 결 같이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공통적으로 어떤 일들을 했음을 볼 수 있습니까? 이름 짓기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22:14) /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창28:19 상) /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32:30) /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창35:7) /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33:20)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이 많아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념하고, 또한 그때마다 특별하게 부어주신 은혜들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들을 붙여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한편, 하갈이 명명한 이곳은 단순히 하갈에게만 의미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족장들, 그 중에서도 특히 이삭이 자주 머물고 생활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창24:62) /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창25:11)
이를 통해 무엇을 더 깨닫게 됩니까? 하갈을 만나주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동일하게 만나주셨으며, 오늘날 우리도 변함없이 만나주시고 위로하시며 붙드신다는 점입니다. 원컨대 우리 모두 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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