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학자이자 저술가 정약용. 그의 대표적인 삼부작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그중에 목민심서는 지방에 내려간 수령들이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행정 지침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흠흠신서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는데 때마침 시기적절한 때에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형사 재판 지침서를 훑어볼 수 있게 되어 참 감격스럽다.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이 조선 시대에도 법은 엄격한 잣대로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집행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다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대게 죄인에 대한 형벌 부과의 기준은 법 문서에 따라 차질 없이 진행되었음이 틀림이 없다.
정약용은 조선 시대에 집행되었던 형사 사건 판례들을 수집하고 유형별로 분류한 뒤 앞으로 공정하게 법 집행이 될 수 있는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새로운 법률 해설서를 작성했다. 바로 이 문서가 흠흠신서다. 흠흠이라는 뜻은 삼가고 또 삼가여서 법을 집행한다는 신중한 결의가 담겨 있는 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형사 사건 자체가 피해자와 피의자가 뚜렷이 구분되고 손쉽게 밝혀지는 것이 드물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범인이 범행에 사용하였던 여러 도구뿐만 아니라 범인의 행적까지 추적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있어 과학적 증거 확보가 쉬운 반면에 조선 시대에는 그야말로 지방관들이 지혜를 모아 사건의 핵심을 잡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관들의 역할과 책임이 제대로 된 법 집행이 우선순위였기에 법률에 대한 지식과 사건을 파악해 가야 하는 능력은 지속적으로 개발해 가야 하는 책무가 그들에게 있었다. 지금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몇 차례에 걸쳐 반복해서 시신을 검사하고 피의자들을 수소문해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노력한 점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처럼 지나간 형사 사건이라도 당시 잘못된 해석으로 판례를 결정지은 것이 있을 수 있기에 차후에 이런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소견을 비평문 형식을 빌려 판결에 해석을 달았다. 누군가에게는 재판할 때 가장 좋은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신분 사회였다고 치더라도 사망 사건에서 조금도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국가의 정신이 법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판결의 중심에 있는 권력자들은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떠나 명확하게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판을 해 왔었음을 흠흠신서의 문서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었고 판결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도록 노력했음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조선시대의 판례집이지만 읽기가 참 쉽게 해석해 놓았다. 최근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한 번쯤을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본다. 대학자 정약용의 자존심이 걸린 책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