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교운 1장 38절의 두목과 수교자의 수에 대해 알려 주세요.
A 먼저 교운 1장 38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상제께서 동곡에 머물고 계실 때 교운을 펴시니라. 종도 아홉 사람을 벌여 앉히고 갑칠에게 푸른 대(竹)나무를 마음대로 잘라 오게 명하셨도다. 갑칠이 잘라 온 대가 모두 열 마디인지라. 그중 한 마디를 끊고 가라사대 “이 한 마디는 두목이니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이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하늘에 별이 몇이나 나타났는가 보라”하셨도다. 갑칠이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에 별 아홉이 반짝입니다”고 아뢰니라. 상제께서 “그것은 수교자의 수에 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이 구절은 상제님께서 동곡약방에서 상제님의 가르침이 장차 어떻게 펼쳐져 갈 것인가 하는 교운(敎運)을 보신 내용입니다. 김갑칠 종도가 대나무를 마음대로 잘라 오라는 말씀을 듣고 약방 뒤편 대나무 숲에서 잘라 온 대나무가 열 마디였습니다. 그 중 한 마디를 잘라 이 한 마디는 ‘두목’이고 나머지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 공사에 따라 하늘에 별이 아홉 개가 반짝이는데 이것은 수교자의 수에 응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내용에서 ‘두목’과 ‘수교자’가 핵심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로 보이는데 먼저 두목에 대한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두목(頭目)이란 어떤 단체나 조직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상제님의 교운이 펼쳐져 나가는데 어떠한 단체나 조직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 단체의 우두머리인 두목을 지칭하는 말씀이겠지요. 가져온 열 마디 대나무 중 한 마디를 가리켜 말씀하신 게 아니고 그 중의 한 마디를 잘라 이 한 마디는 두목이라고 말씀하신 게 특이합니다. 아마도 나머지 아홉 마디와는 별개의 존재적 가치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 구절만으로는 두목의 뜻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대두목에 대한 말씀이 교운 1장 41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 주면 되려니와 도통될 때에는 유 불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라고 상제께서 말씀하셨도다.
여기서 대두목은 일반적으로 두목보다는 좀 더 큰 두목이라는 말이지만 그 의미는 같다고 봅니다. 이 구절을 살펴보면 두목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두목은 상제님께 도통줄을 내려받고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분이라고 해석됩니다.
나머지 수교자(受敎者)는 도통줄을 내려받는 두목과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단지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는 분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교운을 펴시는 그 장소에 종도 아홉이 모여 있었는데, 상제님을 모시고 공사를 받드는 일을 한 훌륭한 분들이지만 단지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는 종도로서의 역할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분명 두목과 수교자는 그 역할이 다른 차원인 것입니다.
수교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라고 말씀하셨는데 9라는 숫자는 단순히 ‘숫자 9’의 뜻도 있지만, 숫자 중에 끝수로서 ‘수효가 많다.’든지 ‘모든’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예를 들면 구산(九山)은 중국에서 각 지방의 명산 아홉 개를 뜻하기도 하지만 많은 산을 뜻하고, 구주(九州)ㆍ구야(九野)ㆍ구유(九有)는 모든 땅인 천하를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렇다면 수교자를 단순히 종도 아홉으로만 보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사람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곧 상제님께서 가르침 혹은 덕화를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내리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석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가르침과 덕화를 내리시지만 도통줄은 특별한 존재인 두목(대두목)에게만 내리시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상제님으로부터 계시로써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께서는 그 증표로 1919년 정월 대보름날 정읍 마동에서 상제님의 누이이신 선돌부인으로부터 상제님의 봉서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1909년 4월 28일 상제님으로부터 봉천명하시고 1958년 3월 6일 화천하실 때까지 50년 공부종필하셨습니다. 이것은 공사 3장 37절의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과 ‘이윤의 도수’에 대해 말씀하시며 공사 보신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도주님께서 종통을 계승하신 분이라는 명백한 증거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께서는 무극도를 창도하시고 상제님께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이심을 밝혀 주셨습니다. 또한, 종단의 취지ㆍ신조ㆍ목적 및 시학ㆍ시법공부 법방 그리고 기타 종단의 모든 체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따라서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두목(대두목)은 바로 조정산 도주님인 것입니다. 물론 도주님께서 종통을 받으실 분이라는 것에 대한 상제님의 예시적인 말씀이나 종통에 대한 공사 내용은 앞에서 말한 이외에도 『전경』에 많이 나옵니다. 상제님께서 물샐틈없는 도수를 짜 놓았다 하셨는데 종통에 대한 부분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간혹 도주님만을 두목(대두목)이라고 생각하는 도인들도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도주님께서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도전님에게 전수하셨고, 도전이라는 직책도 도주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것이며 도전(都典)이라는 의미가 모든 법을 마음대로 쓰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도주님께서 짜놓으신 도의 모든 법을 마음대로 운용하시는 분이 도전님이라는 뜻이 됩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두목(대두목)인 도주님으로부터 유명으로 종통을 이으신 도전님 또한 두목(대두목)이라고 보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교운 1장 38절의 두목은 상제님께서 계시로써 종통을 내리신 도주님과 다시 유명으로 도주님으로부터 종통을 이어받으신 도전님을 의미합니다. 수교자는 상제님으로부터 단지 가르침을 받는 역할로서의 종도 아홉 명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홉의 9라는 숫자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수교자는 이 세상 모든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1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