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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벌과 모세의 두 번째 중보기도
출 32:25-35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출 32:25-35 / [모세와 레위 사람의 열성] 모세는 무리가 제멋대로 놀아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무리가 그렇게 놀아나는 것은 아론이 그 무리를 제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 까닭이었다. 그 때문에 이 백성은 원수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있었다. 26) 그래서 모세는 진지 문 앞에 서서 외쳤다 `여호와의 편에 설 자 누구냐? 다 내게로 오라.' 그러자 레위 사람들은 모두 모세에게로 나아갔다. 27) 모세가 레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이시다. 너희는 모두 허리에 칼을 차고 진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금송아지에 머리를 조아린 일이 있는 사람이면 자기 피붙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칼로 쳐죽여라.' 28) 레위 사람들은 모세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그래서 이날 무리 가운데에서 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3천 명쯤 되었다. 29) 모세가 레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오늘 자식들과 피붙이들을 죽이면서까지 너희 자신을 온전히 여호와께 바쳤으니, 분명히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 [모세가 하나님께 다시 빌다] 이튿날 모세가 무리에게 말하였다. `너희의 허물이 너무나도 크다. 그래도 혹시 너희 허물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 내가 여호와께로 올라가 보아야겠다.' 31) 모세가 이렇게 말하고 여호와께 가서 여쭈었다. `주님, 이 무리가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어 주께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32) 이들의 허물이 엄청나게 큰 줄은 아오나 아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소서. 주께서 이들의 허물을 용서할 마음이 없으시거든 주께서 손수 쓰신 책에서 저의 이름도 함께 지워 버리소서.' 33)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앞으로 누구든지 나를 거슬러 못된 짓을 하는 자는 그 이름을 내가 쓴 책에서 지워 버리겠다. 34) 이제 이 무리를 데리고 내가 너에게 말하였던 그곳으로 가거라. 내 심부름꾼이 너희를 앞서갈 것이다. 지금은 내가 마음을 이렇게 고쳐 먹었다만 너희의 잘못을 따질 날이 반드시 을 것이다.' 35) 그 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아론이 빚어 낸 수송아지 신상을 그들이 섬긴 까닭이다.
이스라엘 진영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삼천 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죽음이 우상 숭배로 인한 죄에 대한 해결이 되지 못해,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두 번째 중보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25-29)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로 나타난 타락한 모습은 일부가 아닌 전체 공동체 안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하며, 절기를 만들어서 기념하는 불신앙의 근본적인 원인이 지도자의 잘못에 있었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 안에는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일종의 폭동까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타락한 모습은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신실하고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헌신하며,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여호와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을 찾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레위 자손들이 응답했습니다. 레위 자손들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있는 삼천 명 가량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들이 비록 레위 자손들의 형제와 친구, 이웃일지라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 숭배가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를 각인시켜주고, 공동체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한 심판의 대리자의 역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된 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모세의 두 번째 중보기도(30-35)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는 개인적인 것이 아닌 공동체적인 것으로 모세는 이스라엘이 지은 죄의 심각성을 분명히 밝혀줍니다(30). 이스라엘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었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죄는 심각한 것이었기에 모세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이 지은 죄의 용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처음에 모세가 시내 산 위에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중보 기도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32). 그에게서 참 중보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모세의 중보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당장의 보응은 미뤄졌지만, 언젠가 죄에 대한 보응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34).
적용: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각오하고 있습니까?
응답받는 기도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찾는 깊은 열망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약한 마음, 끈기의 부족, 용기와 힘의 결핍이 생기는 것은 영적인 열망이 약하기 때문이며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열망이 죽었다는 심각한 표시입니다. 타는듯한 열망이 없이는 성공적인 기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 하겠나이다”(창 32:26)라고 한 야곱의 기도처럼,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 32:32)라고 한 필사적인 모세의 기도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내어던지는 기도가 바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인 것입니다.
< 설 교 >
모세의 중보기도
출 32:30-35 / 김윤기 목사
애굽의 그 무서운 쇠사슬로부터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에서 쫒아오는 애굽의 군대를 뒤에 두고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걸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목이 말랐을 때 반석을 쳐서 생수를 마셨습니다. 아침에는 만나요, 석양에는 메추라기로 연명을 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기다리다 못해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형 아론에게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만든 것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입니다. 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은 농업과 풍요의 상징으로 애굽에서 숭배하던 생활습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도자 모세가 없는 동안 쉽사리 출애굽을 시켜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애굽의 습관으로 돌아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신 자신들의 의도한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상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절기와 예배를 더럽혔습니다.
이 죄악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저지른 죄악 중 가장 큰 죄악이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모세의 후손만 남기시고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진멸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세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서 애끓는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시고 선민으로 택하셨는데 이제 와서 멸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요 둘째, 이 백성이 진멸 당한다면 애굽인의 승리하는 일이라는 것이요 셋째,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효로 돌아간다는 것이 지요. 이 때에 모세는 기도하기를 출32:31-32에서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가 그 민족이 범한 죄악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한 것이 오늘 말씀의 본문입니다.
1. 모세는 동족이 저지른 죄를 무관심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탈선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32:7-10절 이하에서 "너는 내려가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때 모세는 자기 백성이 저지른 그 엄청난 죄악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진노를 그치고 그 뜻을 돌이켜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이웃의 죄에 대하여 방관하거나 무관심으로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요 목사였던 본 훼퍼는 나치의 학정이 극심할 때 독일교회와 민족을 향하여 "오늘 우리의 적은 나치의 학정이 아니라 우리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동족이 저지른 죄에 무관심하지 말고 모세와 같이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항 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처형당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한 일이 없는데도 잘못 잡혀온 사람이 끼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저항운동가들과 함께 처형당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는 저항운동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저 평안하기를 바라는 자인데, 이렇게 처형당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저항운동을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라고 말입니다. 이때, 한 저항운동가가 옆에서 조용히 말하기를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잘못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 죽어 마땅하다. 전쟁은 5년이나 계속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도시가 파괴되고, 조국과 민족이 멸망 직전에 놓여 있는데, 도대체 왜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라고 매우 인상 깊은 말을 했습니다. 사실, 빈둥거리며 아까운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불법이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히 부도덕한 일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사랑, 달콤한 사랑은 실천이지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무관심은 큰 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무관심한 것이 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웃의 죄인들을 무관심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중보기도를 통해 그들의 마음이 열리도록 하고 전도의 달에 꼭 구원을 받도록 힘을 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모세는 민족을 사랑으로 감싸안고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사랑의 기도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4백 3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출애굽 해서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시내 광야까지 왔으며, 또 홍해를 건너는 하나님의 기적을 본지도 얼마 되지 아니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 대신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기들의 신이라고 춤추고 먹고 마시는 그 동족을 볼 때, 그 얼마나 원망스럽고 낙담이 되고 증오스럽겠습니까?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책임 부재가 있습니다. 이 때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아론에게 묻습니다. 왜 이런 죄를 범했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론은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 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라고 출32:22-24에서 대답을 합니다.
이 대답에 대해 주경가 베이커는 "이 얼마나 유치한 책임 전가인가,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어리석은 변명인가"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자연이나 사회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세는 너무 격분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써주신 두개의 십계명 돌판을 내 던져 깨뜨리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우상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3천명을 죽이게 하지만, 곧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라고 뜨겁게 기도하고 했습니다. 이렇게 중보의 기도는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아론이 회피하고 백성이 내팽개쳐 버린 죄의 책임을 모세가 사랑으로 그 죄를 걸머멘 채 땅바닥에 엎드려 죄를 사해 주십시오. 아니면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 보다 나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하는 일이 달라야 합니다.
모세는 죄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자기 자신이 대신 사랑으로 뒤집어쓰고 땅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만약 용서해 주시지 아니하면 차라리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사랑의 중보기도를 배워서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애족 애국심은 참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복음을 배척하는 동족을 위해 사도 바울은 롬9:1-3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라고 구원을 절규합니다.
우리나라는 무서운 일본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 혹독한 탄압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중국 서북간도로 이민을 간 사람도 있습니다. 침략을 받은 지 10년만인 1919년 3월 1일 기미 대한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은 세계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이적인 대 사건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순전히 거족적인 거사로 모든 이념과 종파를 초월해서 오직 독립만을 민족의 살 길임을 외쳤습니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의 지도자들이 합쳤어도 갈등이 없었습니다. 순전히 애국 애족심의 자생적인 발로였습니다. 선교사나 외부 인사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순전히 민족적 양심에서 일어난 자발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일경의 감시가 심했어도 감지되거나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수 백명의 수개월 동안 비밀결사를 꾸미고 회의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고하거나 배신한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죄를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에 사랑의 중보기도로 나라를 구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독립투사들도 이 운동이 사랑의 중보기도 운동으로 확산되었더라면 우리민족이 더 쉽게 해방의 길을 갈 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왜 우리민족은 독립을 위해 사랑의 중보기도회의 모임이 강력하게 나타나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세처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과 태신자를 놓고 사랑의 중보 기도를 드려 응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모세는 자기를 희생해서 민족을 구하려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죄는 그들 속에 잠재해 있던 불신앙을 겉으로 드러낸 일입니다. 이것은 그냥 묵인할 수 있는 작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 백성 전부를 멸망시키려고 하실 정도로 하나님을 진노케 한 큰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출애굽 할 때부터 줄곧 그들을 사랑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한 죄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습니다. 모세는 그들이 범죄한 죄가 너무 큰 죄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 앞에 아무런 변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과 자신의 운명은 둘이 아닌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기를 "합의하시면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한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모세는 울부짖었습니다. 나 혼자만은 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를 백성의 속죄의 희생물로 받아 달라는 간구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이웃을 위해 나를 희생해보려는 희생적인 중보기도입니다. 내 민족을 사랑으로 감싸안고 기도해야 합니다.
영국의 학교에서는 왕자나 귀족의 아들을 매질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소위 'Whipping Boy'라 하여 매를 대신 맞아 주는 그런 자가 있다고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나라의 재난이 극심할 때 지방의 수령인 현감이나 목사가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이 재난을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여겨 큰 죄를 뒤집어쓰고 자책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세처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희생의 중보를 기도를 드려 10월에 출산하여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지경 넓히기
출 32:30-35 / 홍문수 목사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호흡을 할 때 육체가 힘을 얻는 것처럼 기도할 때 우리 영혼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숨을 못 쉬면 육체가 죽는 것처럼 영혼도 마찬가지 기도하지 못하면 죽어갑니다. 따라서 우리 영혼은 기도하면 살고 기도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대변해 주는 중국의 속담이 있습니다. “다도고다능력(多禱告多能力) 소도고소능력(小禱告小能力)” 기도를 많이 하면 능력을 많이 얻고, 기도를 적게 하면 능력을 적게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신앙생활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아니, 인생 전체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우리가 늘 기도해 왔습니다만 금년에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더욱 기도에 힘쓰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변화를 소원한다면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마치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직 기도생활의 변화가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는 의미로 오늘은 구약의 대표적 인물인 모세의 기도생활에 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기도생활이 더 풍성해지고, 기도의 열심이 불길처럼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1] 모세의 중보기도 : 생명을 건 필사적 기도
모세는 80세에 부름 받아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40년간 광야에서 이끌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기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노익장이라 해도 80세 고령 모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 기적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였고, 모세의 기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40년 광야생활을 기도로 이끌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한 것도,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한 것도, 하늘에서 메추라기가 내려오게 한 것도, 끊임없는 전투에서 승리하게 한 것도 모두 기도를 통해서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니까,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 가운데 모세가 기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32: 앞부분을 보면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금송아지 우상 사건이 있었죠?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 기다리던 백성들이 종교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애굽인들이 풍요의 신으로 숭배하는 황소 우상 아피스(Apis)를 본떠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니 이제 아피스나 따라가겠다는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모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두 가지였습니다. 대노한 것과 중보 기도한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우상의 난장판을 보고 대노합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을 징계합니다.(출32:19~20, 26~28) 그는 우상에 빠졌던 백성들을 징계하는 의미로 금송아지를 갈아서 가루를 물에 타서 먹입니다. 금송아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제스처였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에 연루된 자 3천명을 처형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소동 후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3차에 걸쳐 기도하는데 ... 생명을 걸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1차 중보기도(출32:11~14), 2차 중보기도(출32:30~35), 3차 중보기도(출33:12~16) 등입니다.
본문을 보면 모세의 중보 기도가 나옵니다. 출32:31. “ ...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생명책 The Book of Life, 계20:12 참조)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생명책은 하나님 보좌 앞에 놓여있는 명부인데, 하나님의 백한 백성의 이름 즉 영생을 얻은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 이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삭제되더라도, 다시 말하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보살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토록 애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출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출33: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이제 다시 함께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모세의 기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중보기도에 대한 예표입니다. 둘째는, 성도들이 본받을 기도의 모델입니다.
[2] 예수님의 중보기도 :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십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代言者)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런 기도가 있기에 우리가 예수 믿고 난 후에도 연약하여 늘 범죄하고 넘어지는 일이 있지만 멸망치 않고 다시 일어나 천국을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고 실패했던 베드로가 변화 받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대사도가 된 것도 다 예수님의 중보기도 덕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는 한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납니다. 이런 확신을 갖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인의 기도 생활 : 자신을 위한 기도를 넘어 이웃을 위한 기도로!
성도들의 기도 생활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한 기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웃(타인)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선 우리 기도생활에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을 정말 하나님이 들으시느냐, 그리고 응답하시느냐 하는 겁니다. 이런 확신이 있으면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힘 있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고 작동하는 영적 현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이 공간에도 보이지 않지만 공기가 있고 대류 현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대류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나에게로 내려옵니다.
그 중간에서 예수님이 도와줍니다. 죄인인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기도할 수 없지만 대속해 주신 예수님 때문에 가능해진 겁니다. 요즘은 통신이 발달되어서 휴대폰을 들고 다니지만, 옛날에는 어떻게 전화했습니까? 중간에서 교환수가 받아 상대방에게 연결해 주었습니다. 요16:23~24에 보면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이 중간 역할을 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천사들의 역할도 있습니다. 계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성도들의 기도를 금향로에 담아 하나님께로 올리는 겁니다. 단9:21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성도가 기도한 후 하나님의 응답을 천사가 전달해 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일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the confidence)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여러분, 이렇게 분명한 약속이 있는데 어찌 기도 응답에 대해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무시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기도를 듣고 계시는 게 분명한데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당연히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면 그만큼 내 인생이 풍성해집니다.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기도의 특권을 이웃을 위해서도 사용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를 성경에서는 ‘도고’(禱告)라고 부릅니다. 딤전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禱告, Intercession) 와 감사를 하되 ... ” 그런데 한국교회에 중보기도라는 말이 보편화되어서 안 쓸 수도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예수님의 중보기도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중간에서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과 이웃 중간에서 기도로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이런 예를 들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합니다. 교복을 사는데, 친구가 걸립니다. 너무 가난해서 교복 살 형편이 안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요청합니다. “아빠, 친구가 가난해서 교복 못사는데 한 벌 사서 주시면 안 되나요?”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부탁하는 겁니다.
성경 보면 이웃을 위한 기도에 관한 명령이 곳곳에 나옵니다. 그 중에 엡6:18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 ”
따라서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해야 됩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모든 문제들에 관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지경을 넓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우리의 사명이며 이웃에 대한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의 폭이 신앙의 폭입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의 크기가 신앙의 크기입니다. 신앙의 성숙도는 바로 이런 기도로 평가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기도해야 될까요?
❶ 영혼을 위한 기도 :
모든 기도 제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해도 구원받지 못하면 헛된 것입니다. 영생과 영벌,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엄숙한 구원의 문제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게 또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나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 이제 눈을 들어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살펴야 합니다.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민족과 만민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쉽지 않은 기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C 권사님 오빠는 무려 43년 만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젊은 날 강하게 거부했지만 동네 권사님이 그의 영혼 구원 문제를 위해 계속 기도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교회에 인도되었고, 바로 그날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후 신앙생활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오래지 않아 장로가 되어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갖고 부모, 형제, 친구, 이웃, 이 민족과 만민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❷ 문제를 위한 기도 :
이웃의 어떤 문제든지 내가 직접 해결해 주지 못해도 기도는 해 줄 수 있습니다. 무슨 문제든지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 그 어떤 문제도 기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이웃의 질병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직접 고쳐줄 수 없지만,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닥터 버드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그는 입원환자 393명 두 그룹으로 나눠 특이한 임상 실험을 했습니다. A 그룹은 중보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물론 본인들은 모르게 했습니다. B 그룹은 기도해 주는 사람들 없이 치료했습니다. 한참 후 결과를 보니까 차이가 났습니다. 중보기도를 받은 A 그룹은 합병증, 폐렴, 심장마비 등의 발생률이 현저히 낮았고, 항생제 사용량도 현저히 적었다고 합니다. B 그룹은 정반대였습니다. 중보 기도의 위력입니다.
❸ 교회를 위한 기도 :
교회는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변화시킬 때 교회를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잘 돼야 합니다. 교회가 잘 되려면 무엇보다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사역 중 기도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사역이 기도를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직접 사역에 동참하는 경우에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시행하고 마친 후 기도로 감사하며 마무리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의 모든 사역에 동참할 수 없죠. 역량과 시간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기도 책’을 보시면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책이 뭐죠? 주보입니다. 주보를 보시면 교회 사역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역의 일정, 내용, 참가자, ... 그것들을 놓고 기도하면 함께 동역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단기선교팀이 활동 중인데 나는 가지 못했을지라도 기도로 동참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교회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성도들이 계시기에 오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비단 저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❹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키겠습니까? 그러나 기도로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뿐 아니라 사실은 위정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문제들 앞에 그들도 어쩔 줄 모르고 고민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인간들끼리 머리를 짜내고 노력한 것보다 더 큰 역사를 이뤄주십니다.
기도의 사람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미국 16대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전 광 著, 생명의말씀사)애 나오는 내용입니다. 링컨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너무 기도를 많이 한다고 주변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지혜, 내 능력, 내 노력만 갖고 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합중국의 통일을 이룩하고 흑인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는 남북전쟁 승리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 같은 명장이 없었음은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위기에 처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는 한, 한국교회가 깨어 기도하는 한 이 나라 이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융성해서 세계 선교를 책임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기분 좋은 기사를 보았습니다. 골드만삭스(글로벌 금융그룹)에서 2050년에 우리 한국이 1인당 GDP 8만 1천불로 세계 2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는 겁니다. 현재로서는 잘 믿어지지 않지만,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얼마든지 그렇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❺ 세계와 선교를 위한 기도 :
우리가 연약한데, 우리교회가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데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뤄집니다. 기도는 아무리 큰일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해 주십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기도를 통해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겠지만, 이제는 기도의 지경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이타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넘치도록 축복하십니다. 이기적인 삶은 자기 혼자만은 잘 될 것 같지만, 자기도 잘 되지 못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꼬마가 말썽을 피워 부모님이 소풍을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소풍날이 다가오니까 안쓰러워서 한번만 봐 줄 테니까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며 소풍 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꼬마가 좋아하질 않고 오히려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늦었잖아요. 벌써 하나님께 그 날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 ”
어쩌면 우리의 기도 생활이 이 꼬마처럼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곤란합니다. 최소한 나는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을 위할수록 나도 잘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나누고 구제해도 더욱 부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잠11:24) 기도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타적인 기도를 할 때 자신에게 득이 됩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마10:12~13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남을 위해 기도하면 상대방에게 유익한데, 혹시 합당치 않아 기도가 이뤄지지 않아도 기도한 본인에게는 유익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특권이며 사명입니다. 기도하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나 자신을 위해 기도에 힘써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기도의 지경을 넓혀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큰 기쁨과 감격, 보람, 그리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지경을 넓히면 축복의 지경도 넓혀집니다. 아무쪼록 모세와 같이 넓고 큰 기도 생활로 나 자신도 승리, 내 주변에도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는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세의 가장 훌륭한 순간
출 32:30-35 / 이종윤 목사
오늘 본문말씀인 출애굽기 32장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지도자 모세의 생애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모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다면 자기 동족의 죄를 보고 용서를 빌면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라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Ⅰ. 진중에 있는 죄
①모세는 율법을 받으려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이스라엘백성들은 아론을 필두로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출 32:4). ②하나님은 모세에게 산에서 내려가라고 하시며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이 부패하였도다”(출 32:7).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고 말씀하셨습니다. ③모세는 애굽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진멸하려고 출애굽을 시켰다면 않되지 않겠느냐면서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그들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하면서 진노의 뜻을 돌이켜 달라고 간구했으며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화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출 32:14).
Ⅱ. 사랑의 행동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진중의 죄를 보고 십계명의 돌 판을 노함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아론을 책망하면서 레위자손을 다 모아놓고 배교자 3,000명을 칼로 죽여 버리고 금송아지를 부셔버렸습니다. ①모세는 인간적 입장에서 죄를 다루었습니다. ②하나님의 타협이 없는 의, 그리고 죄를 지으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온다는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③모세는 밤새도록 고민한 후 다시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진노를 되돌리려 했습니다. ④모세는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 32:32)라고 기도했습니다. ⑤하나님은 모세가 동의한다면 죄를 지은 이스라엘백성을 멸하고 모세로 하여금 히브리의 새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출 32:10). 모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⑥모세의 애국심, 동포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Ⅲ. 사도 바울의 기도
①로마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민족의 불신앙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②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롬 9:2-3)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이들이 불신, 배신의 죄를 지어 저들을 구원하기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렇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맺는말
바울과 모세가 기도한 것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도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만 계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만일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나 자신을 헌신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믿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며, 모든 불의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 그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새 영을 부어주실 것이니 이 복을 다 받으시는 서울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구약 인물들의 기도 이야기
출 32:32, 시 99:6 / 김명혁 목사
오늘 2006년도의 마지막 날과 마지막 주일을 맞으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우리의 영혼은 죽고 맙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끊어지고 맙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우리의 삶에 풍요로움이 끊어지고 맙니다. 오늘 아침에는 “구약 인물들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주님께 기도합니다” 라는 복음 찬송을 다 일어서서 부른 다음에 “구약 인물들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 모세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얼마나 귀하게 보시고 예쁘게 보셨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를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민12:7,8).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모세의 기도 중에 대표적인 기도 한 마디를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드린 중보 기도와 비슷한 기도였습니다. 자기를 부정하면서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너무 놀라시고 너무 큰 감동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 기도가 출32:3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32:32). 만약 우리가 이런 자기 부정의 중보 기도를 흉내만 내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총애를 흠뻑 받게 될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 한 마디를 더 소개합니다. 모세가 말년에 드린 소박한 기도입니다. 홍해를 가르는 영웅적인 기도는 아닙니다. 지극히 소박한 지극히 진솔한 지극히 인간다운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가 시90:1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4). 사실 우리는 너무 대단한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극히 소박하고 지극히 진솔하고 지극히 인간다운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주님이 내리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평생을 만족하고 즐겁고 기쁘게 살게 해 달라는 기도는 소박하지만 참으로 귀한 기도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소박한 기도를 날마다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또 하나의 이스라엘의 구원자 사무엘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어릴 때부터 기특하게 보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그 당시 엘리 제사장이 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어린 아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아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어머니 한나의 아들이었고 젖 뗀 후부터 평생토록 하나님의 집에 있으면서 기도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그의 기도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축복 받은 아이였는지 모릅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사무엘이 후에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이스라엘을 불레셋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삼상7:9).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무엘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와는 달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응답 받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99편의 저자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는 사무엘이라”(시99:6). 우리도 사무엘처럼 어릴 때부터 한 평생 사는 동안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기도가 모두 응답되고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던 다윗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처절한 참회의 기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다윗처럼 그렇게 처절하게 참회의 기도를 드린 사람도 이 세상에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요를 적시면서 기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다윗의 대표적인 참회의 기도가 시51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51편은 제가 저의 평생에 가장 많이 읽은 성경입니다. 고등 학생 때부터 새벽 기도 후 남산에 올라가서 시51편과 시103편 등을 읽으면서 2,30분 동안 기도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1-5). 우리의 가슴에 처절한 회개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품 안에 있게 됩니다. 우리의 가슴에서 처절한 회개가 살아졌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서 멀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는 다윗의 기도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 기도가 시139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넘치도록 충만한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고백한 기도문입니다. 저는 1983년7월 21일 북극 근처의 나라인 아이스랜드 리카벡의 어느 호텔 방에서 이 기도문을 읽다가 그만 하나님의 넘치도록 충만한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항복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는 다음과 같은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 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7,18). 다윗은 참회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힌 감사와 감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그런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성전을 건축해서 봉헌한 솔로몬의 봉헌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솔로몬이 범한 허물과 죄가 많았지만 그가 이룬 업적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은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 위에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께 봉헌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가장 거룩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과 교회를 건축해서 봉헌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그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그렇게도 소원했던 일을 아들 솔로몬이 이룬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면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들으소서 들으소서” 라는 기도를 13번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13번째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 보옵시며 주께 득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대하6:39,40). 그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7:15,16). 너무나 간절한 간구의 기도였고 너무나 귀한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말년에 많은 실수와 허물과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책인 전도서 서두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그리고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겸손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이 기도는 우리 모두가 날마다 손을 들고 항복하면서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다섯째, 옷을 찢고 벽을 향해서 기도한 히스기야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국가적인 위기와 개인적인 위기를 당했을 때 옷을 찢고 벽을 향해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앗수르 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유다를 공격하는 국가적인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국가적인 위기를 당했을 때 군사적인 대응을 하는 대신 옷을 찢고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처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사37:14-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자로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으로 주만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사37:14-20).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천사들을 보내어 앗수르 군대 십 팔만 오천을 모두 진멸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나중에 죽을 병에 걸리는 개인적인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리는 개인적인 위기를 당했을 때 의학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대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사38:2,3).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통곡과 눈물을 보시고 그의 생명을 십 오 년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군사적인 의학적인 대응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위기를 당할 때 히스기야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사자 굴 앞에서도 기도한 다니엘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신앙의 정조를 지킨 사람이었고 기도를 중단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함께 하셨고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천하에 나타내셨고 그리고 역사의 종말에 구원이 성취될 것까지 보이셨습니다. 다니엘은 위기에 처했을 때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우리는 쉽게 환경에 굴복합니다. 정치 세력과 경제 세력에 무릎을 꿇거나 아부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신앙과 기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신앙의 정조를 지켰고 기도를 생명처럼 지켰습니다.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하였더라.”
그는 또한 무너진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예루살렘의 재건과 회복을 위해서 자기와 열조의 죄를 회개하며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단9:19). 여기 다니엘의 기도의 특징과 위대함은 “주 자신을 위하여” 라고 부르짖어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위대한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급히 천사 가브리엘을 다니엘에게 보내셨습니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9:20-24).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자기의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곱째, 절망과 소망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하박국은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군사적으로 혼란에 처한 어두운 시대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고 부르짖던 절망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캄캄한 절망 중에서 주저앉지 않고 성루에 올라가서 하나님께로 얼굴과 눈을 향하고 하나님께 호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2:1). 결국 하나님의 음성이 임했습니다. 믿음과 소망을 심어주는 음성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2-4).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는 음성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믿음과 소망을 지니고 다음과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가 합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의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하나님의 긍휼과 부흥을 간구하는 기도는 참으로 귀한 기도입니다.
마지막 기도는 믿음과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한 기도입니다. 이 부분을 기도라고 할 수도 있고 노래라고 할 수도 있고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박국의 마지막 기도와 노래와 신앙 고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캄캄한 절망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하박국처럼 믿음과 소망과 기쁨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 웃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즐거움과 기쁨과 새 힘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하박국처럼 하나님의 긍휼과 부흥을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비록 캄캄한 절망의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박국처럼 믿음과 소망과 기쁨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축복입니다. 새해에 저와 여러분들에게 우리를 살리는 기도를 주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주시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도를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