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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 770m 폭 4m 최고높이 11m 영월 계족산(890m) 자락에 ‘방치된’ 삼국시대 산성, 정양산성(왕검성)의 성벽이 그런 고색창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풍파에 부대끼며 무너져내려 왔으되, 꼿꼿하게 섰던 1500년 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보기 드문 석성이다. 주민들은 ‘왕검’이란 이가 쌓았다 하여 왕검성으로 부른다. 동강·서강이 만나 몸을 불린 물줄기가 두어번 굽이치며 단양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영월화력발전소 옆, 30가구가 사는 정양리 마을길 들머리다. 산성으로 오르는 초반 낙엽송 숲길은 검은 색이다. 석탄가루 흙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일제 때부터 최근까지, 화력발전소 석탄 가루가 날려 쌓인 결과다. “집도 사람도 옷도 죄 새까맣던” 정양리는 몇년 전 발전소 가동이 중지된 데 이어, 올해부터 석탄 아닌 액화천연가스를 쓰는 복합발전소로 재건설이 추진되면서 검은 때를 벗고 있다. 150m쯤 검은 길을 오르면 정조대왕 태실을 만난다. 본디 발전소 뒤 야산(철탑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 때(1928년) 효율적인 태실 관리보전을 명목으로 전국의 태실을 창경궁으로 모아들였을 때 옮겨간 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997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 작은 물길(얼음 깔린 바위 조심)을 두번 건너면 정양산성 안내판이 나오고, 이어 점점 넓게 열리는 골짜기를 만난다. 골짜기엔 경작지 터로 보이는 두어개의 널찍한 계단식 평지가 있다. 이를 축성 당시 쌓은 방어용 축대로 보기도 한다. 정양리 주민들은 60년대 말까지 성 안팎의 땅을 밭으로 일궜다. 60년대에 정양리에 정착한 박사봉(81)씨는 “화전 정리로 경작을 그만두긴 했지만, 딴 이유도 있다”고 전했다. 성 주변에 출몰하는 커다란 뱀 때문이었다. “아, 대가리가 이만큼씩(주먹을 쥐었다 펴보이면서) 한 크단 뱀을 성 밑에서 만나 질겁을 했디야. 사람들이 밭 못붙여먹겠다며 관뒀어.” 적군·아군 다 물러간 성터에 지킴이는 따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물안개 몸 숨긴 뀡 한쌍 푸드덕∼ 손바닥만한 떡갈나무 잎들이 깔린, 다소 가팔라지는 산굽이를 돌아 오르면 돌무더기 흩어진 산성의 서문에 이른다. 서문 안쪽은 성 내부의 가장 낮은 지대로 꽤 널찍한 평지다. 잔설 희끗한 성 안은 물안개에 잠겨 고요한데, 꿩 한 쌍이 ‘푸드등 꺽’ 안개를 깨뜨리며 날아오른다. 성곽을 따라 크고 작은, 그리고 여리고 거친 꿩·노루·토끼 발자국들과, 콩알 같은 똥들이 지천이다.
성 둘레는 대부분 깎아지른 절벽과 급경사 골짜기다. 급경사지를 활용해 성 외벽은 수직으로 높게 쌓고, 안쪽은 낮게 쌓은 협축식 성벽인데, 일부는 외벽만 쌓는 편축방식이 쓰였다. 등산로 입구가 된 서문 일대는 많이 무너져 있지만, 좌우로 이어진 성벽들은 견고하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성벽 안팎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제대로 살펴보기엔 겨울이 알맞다. 가파른 기슭에 돌벽 깎아지른듯 동서남북으로 문터가 남아 있고, 적을 관측하고 공격하기 위해 돌출시켜 쌓은 치(雉)도 관찰된다. 문은 별다른 시설 없이 문턱을 높여 사다리 따위로 오르내리던 현문식(懸門式) 성문이다. 성문과 성벽의 원형이 살아 있는 곳이 북동쪽 성곽의 북문 일대다. 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살펴보면, 급경사 기슭에 칼로 자른 듯 거의 수직으로 쌓아올려진 돌벽이, 커튼처럼 드리워진 모습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전망은 동북쪽 성벽과 남서쪽 성벽, 그리고 계족산 등산로가 이어지는 성의 맨 꼭대기 부분이 모두 좋다. 별마로천문대가 선 봉래산과 태화산 쪽 산줄기들이 첩첩이 펼쳐진다. 남쪽 성벽에선 발 아래로 굽이치는 동강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겨울 아니면 대부분 우거진 나무들에 가려져 있을 경치다. 비 내린 직후라면 골골이 피어올라 산줄기를 덮어가는 물안개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산성까지 40분, 비탈진 성곽을 따라 한바퀴 도는 데 40분, 쉬고 구경하는 데 30분, 내려오는 데 30분을 잡으면 된다. 주의사항. 눈·비 온 뒤엔 비탈길이 미끄럼틀 수준이 된다. 아이젠을 준비하는 게 좋다. 어린 자녀 동반 산행엔 적당치 않다. 영월/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메주 쑤고 섶다리 건너 옛 마을 풍경 속으로 영월은 단종 유적으로 대표되는 역사문화의 고장이자, 청정 자연을 간직한 고장이다. 골짜기마다 옛 산골 마을의 정취가 묻어나고, 마을마다 체험거리·먹을거리도 푸짐하다. 중동면 유전리 메주 체험마을=행정지역명은 녹전3리. 5년 전부터 무농약 콩을 재배해 메주를 쑤고 된장을 만들어온 체험마을이다. 45가구 150여명이 사는 이 마을에선 지난해 콩 500가마를 재배해 지금 메주를 쑤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쥐눈이콩(서목태) 메주도 쑨다. 예약하고 찾아가면 메주 만들기, 두부 만들어 먹기 등을 할 수 있다. 단체로 예약하면 삼나무를 땅속에 묻어 쪄내는 ‘삼굿’ 체험도 할 수 있다. 땅을 파고 자갈돌을 쌓아 불을 때서 달군 뒤, 흙을 덮고 구멍을 뚫어 물을 붓는다. 이 때 발생하는 뜨거운 김으로 삼나무를 쪄내는 전통 방식이다. 방문객들은 삼나무 대신 비닐과 솔가지로 소·돼지·닭고기를 싸서 묻고 익혀 먹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마을엔 옛 농기구와 살림도구들을 모아 전시한 영월민속자료관도 있다. 새마을운동 바람에도 살아 남은 옛 성황당, 동물농장 등도 볼거리다. 황토방(7실)에서 묵어갈 수도 있다. 슈퍼도, 담뱃가게도 없는 산골이지만 해마다 설이면 마을 전체가 합동으로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올리는, 인정으로 똘똘 뭉쳐 사는 마을이다. 최종경 이장댁 (033)378-6633. 주천면 섶다리마을=판운리와 주천리에 섶다리가 놓여 있어 옛 마을 풍경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 섶다리는 소나무 등을 이용해 수량이 적어지는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강에 놓고 건너다니던 전통 임시 다리다. 주천리 주천교 옆 술샘 부근 서강엔 최근 쌍섶다리를 놓아 건너다닐 수 있게 했다. 다리 건너 낙엽송 숲길을 오르면 전망 좋은 정자 빙허루로 이어진다. 쌍섶다리는 강원도 관찰사 등이 영월 장릉(단종릉) 참배길에 건너다닌 데서 유래했다. 주민들이 두개의 섶다리를 함께 놓아 가마가 건너다닐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먹을 만한 식당들=주천면 신일리 주천묵집. 양재기에 담겨 나오는 도토리·메밀묵 맛이 좋지만, 감자가루만으로 수제비처럼 끓여주는 감자옹심이를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033)372-3800. 영월읍 장릉 옆 골목엔 산나물 반찬에 감자보리밥으로 이름난 장릉보리밥집(033-374-3986)이 있고, 영월역 앞엔 직접 잡은 다슬기로 해장국·탕·전골·부침 등을 만드는 다슬기마을(033-373-5784)이 있다. 영월읍 상동식당(033-374-4059)은 즉석에서 뽑아 삶는 메밀막국수를 낸다. 차진 면발과 진한 양념맛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영월엔 봉래산의 별마로천문대,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소나기재 정상의 선돌, 단종 유적지 청령포 등 볼거리가 많다. 곤충·책·사진·민화박물관 등 박물관 기행도 해볼 만하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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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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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