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규제에도 中화웨이폰 ‘7나노칩 기술자립’… “美 한방 먹였다”
美가 반도체 장비 수출 막았는데도
中, 기존 장비로 7나노 공정 성공
“예상 넘는 발전”… SMIC 주가 급등
“한정 판매… 대량생산 의문” 지적도
국내업계 “韓과 기술 격차 아직 커”
중국 화웨이가 최근 출시한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중국산 최첨단 반도체 칩. 게티이미지
“뜯어봤더니 진짜 7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가 있었다.”
글로벌 기술 분석업체 테크인사이츠가 4일(현지 시간) 미국 블룸버그통신 의뢰를 받아 세계 이목이 집중된 중국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 ‘메이트 60’을 분해한 결과 자체 생산한 7나노 공정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이 AP가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SMIC의 2세대 7나노 칩 ‘기린 9000s’라고 확인한 것이다.
7나노 공정은 세계 1, 2위 파운드리 기업 TSMC와 삼성전자가 양산 경쟁 중인 3나노 공정에 5년 이상 뒤처진 기술이다. 하지만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 수입이 제한됐음에도 어느 정도 양산(量産)에 성공했다는 뜻이어서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실효성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충분한 양산이 가능한지, 비용 효율성은 갖췄는지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 “中반도체, 미국 한 방 먹이다”
중국 반도체기업 SMIC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 와중에도 최신식 7나노 칩을 개발해 이 스마트폰에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칩이 들어 있는 화웨이 스마트폰의 외양. 화웨이 홈페이지 캡처
화웨이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중국 방문 기간인 지난달 29일 자사 온라인몰에서 신제품 ‘메이트 60’ 한정 수량 판매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AP 사양도 밝히지 않고 조용히 판매에 들어간 것이다. 화웨이는 한정 판매 물량이 모두 팔렸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매체는 “미국에 대한 승리”라며 치켜세웠다.
화웨이와 SMIC 모두 미국 제재 대상 기업이다. 한때 세계 1위 통신장비 기업이자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을 추격하던 화웨이는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제재로 첨단 나노 공정이 요구되는 5G 지원 AP를 살 수 있는 길이 끊겼다.
지난해 중국의 14나노 이하 반도체 개발을 막기 위한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네덜란드가 동참하면서 네덜란드 장비 업체인 ASML은 EUV 노광 장비에 이어 이달 1일부터 이보다 낮은 단계인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의 중국 수출도 금지했다. 테크인사이츠 분석대로라면 SMIC는 보유하고 있던 DUV로 7나노 공정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비트코인 채굴기에 쓰이던 SMIC 1세대 7나노 칩과 달리 이번 2세대 7나노 공정은 양산 체제를 일정 정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고 테크인사이츠는 분석했다.
댄 허치슨 테크인사이츠 부회장은 로이터통신에 “중국이 미국 면전에 한 방 먹인 것”이라며 “이 칩은 러몬도 장관에게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 “대량생산 가능할지는 미지수”
블룸버그의 ‘화웨이 메이트 60 분해’ 보도 직후 홍콩 증시에서 SMIC 주가는 11% 넘게 상승했다. 하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의문점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미 투자사 제프리스의 에드슨 리 애널리스트는 “몇 시간 만에 화웨이 새 스마트폰이 다 팔렸다는 것은 재고가 제한됐다는 의미”라며 “중국은 7나노 칩을 아주 소량만 생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투자사 샌퍼드 번스타인 측은 “화웨이 칩은 첨단 패키징(가공된 웨이퍼 포장 기술)과 (상대적으로 적은) 전력 소비로 (5G급) 속도를 내고 있다”며 “예상을 뛰어넘는 발전”이라고 평했다.
다만 화웨이 7나노 칩은 최신 반도체 기술과는 2세대 이상 벌어져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2019년 EUV 노광 기술을 적용한 7나노 제품을, 지난해 6월 3나노 제품을 각각 양산하기 시작했다. 2025년에는 모바일용 2나노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애플은 다음 주 3나노 칩을 장착한 아이폰15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긴장하면서도 한국 반도체 기술을 위협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는 분위기다. 업체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기술력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성과이지만 속도나 발열, 생산 단가, 수율 등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어느 수준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과의) 기술력 격차는 아직 크다”고 말했다.
7nm 반도체 공정
반도체 회로의 선폭이 7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인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공정. 선폭이 좁을수록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9년에 7나노, 작년 6월부터 3나노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변종국 기자
기술 제재 뚫고 나온 화웨이 5G폰… “中이 美 뺨 때렸다”
3일 오후 중국 주요 도시의 화웨이 매장 앞에는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사려는 사전 예약자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미국의 대중 규제를 뚫고 3년 만에 내놓은 5세대(5G) 스마트폰이자, 자체 제작한 첨단 반도체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공식 판매를 시작한 3일은 공교롭게도 중국의 78주년 ‘항일(抗日)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이었다. 제품을 처음 공개한 지난달 29일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항미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미국 기술 분석업체 테크인사이츠는 스마트폰을 분해해 보니 7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들어 있었다고 4일 밝혔다.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가 생산한 ‘기린 9000s’였다. 화웨이는 2020년 10월 내놓은 메이트 40 시리즈에 대만 TSMC의 5나노급 ‘기린 9000’을 탑재했지만 이후로는 미국의 제재로 TSMC 칩을 쓸 수 없었다.
▷화웨이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를 상징한다. 2019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화웨이에 대한 미국 기업의 수출 금지를 단행했다.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 장비로 부품을 만드는 외국 기업에까지 수출 규제를 확대했다. 지난해부턴 14나노 이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장비의 수출도 막았다. 그런데도 규제 기준을 뛰어넘는 반도체를 들고 나온 것이다. 미국 언론에선 “중국이 미국의 뺨을 때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물론 7나노는 최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있다. 2018년에 나온 애플 아이폰 12세대에 들어간 칩에 쓰였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가 3나노 제품을 양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4, 5년가량 뒤졌다. 하지만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첨단 생산 장비의 수입이 막힌 상황에서 초미세 공정의 반도체를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간과 비용은 더 들지만 낮은 수준의 장비로 반도체 회로를 여러 번 그리는 ‘멀티 패터닝’ 기술로 극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선언이 실제인지 허장성세인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는 점에서 대량 생산은 힘들 수준이란 관측도 있다. 미국 제재 이전에 비축된 대만 TSMC의 칩을 사용했을 것이란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마냥 무시할 순 없다. 1일 독일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IFA 2023’ 부스의 절반 이상을 중국 기업이 차지할 정도로 ‘테크 굴기’는 위협적이다. 한국으로선 초격차 기술을 갈고닦아 더 달아날 수밖에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