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하지만, 기성학계가 만만한 곳도 아니고, 재야사학과 무슨 권력싸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반도사관 내지는 식민사관 조차도 그 기본논리를 쌓아올리는데 있어서 재야사학 보다 많은 물증을 사용하고 있다는게 번번히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문헌학은 역사학의 보조적 학문으로써 그 과학적 가치가 인정되어 19세기에 크게 발전했지만, 한번도 문헌학이 역사학을 대체한 적은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역사학은 역사학이지 문헌학이 아니죠. 문헌자료 그 자체로 역사적 사실이 증명되는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상세하고 그럴듯하게 기술되어 있어도 트로이도 몇겹으로 유적이 쌓여있는 실지가 발견되지 이전 까지는 가설의 존재에 불과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하겠죠.
일단, 서양사가 전공이고 동양사는 보조로 배웠기 때문에 아무래도 약하지만, 그런 전제를 깔아놓고 역사학적 방법론에서 몇가지 드신 예를 다시 검증해보기로 하죠.
1. 추정사실 및 가설의 혼돈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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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순전 : "東巡望秩 肆覲東后(동순망질 사근동후)" : "순이 동쪽으로 순행해서 제사를 지내고 동쪽의 임금을 뵈었다." 여기서 覲(근)은 아랬사람이 윗 사람을 만날 때 쓰는 한자이며 지나인들은 애써 后(임금후)를 써서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_-*
사마천의 사기(史記) : " .... 遂見東方君長(수견동방군장)" : 순임금이 요임금으로부터 통치권의 법통을 계승한 첫 2월에 동방의 군장(동쪽 임금)께 인사드리러 왔음을 다른 정사의 기록과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단군을 君長으로 낮춰 은폐하려 했습니다.(추정사실/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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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두가지 기록이 있다고 봅시다. 위의 것이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 이 동쪽이 어디를 기준으로, 어느 곳을 얘기하는지에 대한 지형적 근거
2) 사료 내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지명
3) 그 지명과 같은 명칭을 지닌 오늘날의 실지
4) 같은 명칭을 지닌 지역이 다수인 경우, 실제 유적발굴을 통해 그 특졍 지역이 상고사의 순임금대의 지역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물적 근거
이 정도 네가지 물증이 필요합니다. 그 네가지가 모두 갖춰줬다고 해도 사실로 밝혀지는 것은 그 지역이 그 시대 사람들의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것이 밝혀질 뿐이죠. 따라서, 문서상의 진위를 따지기 위해서는 언급된 "동쪽"의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실한 문헌학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일부러 언급안하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그 "동쪽"의 사람들이 단군조선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추정사실 및 가설단계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인지해야겠죠.
2. "인용"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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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에 자유중국의 희늑격씨는 자신이 저술한 <중국사승중미상제국고증(권7)> 군자국 고증에서 고대중국역사에 기록한 군자국은 어느 나라인지 미상이었다. 그런데 중국 <천문지>와 <상서우공(尙書禹貢)> 등 문헌을 고찰하면 그 군자국은 바로 한국이다라고 하였다. <상서우공(尙書禹貢)>은 4천년 전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중국인이 4천여년 전에 한국을 군자국이라 칭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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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하면 그 군자국은 바로 한국이었다"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고찰의 과정이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남이 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고찰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다시 따져봐야하는 이중고가 생기는데, 그런 필수적인 절차에 유달리 무심한 것이 재야사학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3. 문헌적 고증의 해이함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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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동이열전> 예기 왕제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동방을 夷라 한다. 夷를 뿌리라 한다. 뿌리는 어질어서 생명을 사랑하여 만물이 사는 땅을 근본으로 산출됨을 의미한다. 그러한 연고로 夷(단군조선족)는 천성이 유순하고 道로써 다스리기 쉬우며 군자의 나라, 불사의 나라도 있다. 따라서 공자가 9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구이(九夷)의 지역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전한서」: "조선의 동이는 천성이 유순하여 남만, 북적, 서융과 다르다. 그러므로 공자가 도가 펴지지 않음을 한탄하여 바다를 건너서 구이(九夷)나라에 살고자 하였다. 공자가 도(道)가 펴지지 않는 노나라를 버리고 뗏목을 타고 동이 나라에 가고자 함은 이 나라에는 어진 교화가 있어서 가히 도를 펼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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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료에 나온 구문들의 경우엔 무리없이 사실로 받아들일만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혼재해있지 않을까요? 동방과 동이(-夷)의 근원을 밝히는 부분이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에 속하겠죠. 문제는, 뒷 부분에 "군자의 나라"와 '불사의 나라"가 함께 언급됩니다. 이 "동방의 불로불사의 땅"의 개념은 사서에서 되풀이 되는 내용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그러한 내용의 구문이 등장한다면 그 중 어느만큼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전반부에서 "동이"를 서술한 부분은 사실이고, "불사의 나라"는 거짓일까요? 동이족의 존재에 대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런 구문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후반부의 "불로불사의 땅"의 내용 또한 마찬가지 비중을 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료선별에 있어서 신뢰성의 문제죠. 앞의 내용을 뚜렷한 물증없이 글자그대로 받아들일만한 자신감이 있다면, 그 문헌자료의 신뢰성을 크게 믿는다는 뜻이 되니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앞의 내용 또한 후반의 내용 만큼이나 (아무리 논리적으로 그렇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검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과 모든 역사학자들이 똑같기는 하지만, 재야사학에는 특히나 이런 부분의 불철저함이 눈에 확 띕니다. 유리한 것을 취하고, 불리한 것은 되도록이면 감추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좀 심하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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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 : "동이는 군자나라요, 오래 살아 안죽는 사람들이 아울러 동방에 있다."
진(晋)의 시인 곽박 : "동방 어진 나라에 군자훈화가 있으니 예절로 늘 사양하기를 좋아하며 예는 이치로써 따진다."
후한의 학자 허신 「설문」: "오직 동이는 대(大)를 좇으니 대인이다. 동이의 풍속이 어지니 어진 이는 오래 산다. 군자가 죽지않는 나라가 있다하니 공자와 같은 성인도 뗏목을 타고 가고 싶어 했다."
한무제 때 동방삭의 「신이경(神異經)」:"태연하게 앉아 서로 범하지 않고 서로 기리고 헐뜯지 않았다. 사람에게 근심이 있으면 서로 구해줘 선인(善人)이라 이름했다"
이아(爾雅)」: "구이(九夷)는 동방에 있는데 태평의 사람이라 칭한다. 그들은 인(仁)하여 인간을 사랑한다. 그런데 인간을 사랑하는 인(仁)은 지기(地氣)에서 나왔다."
한(漢)나라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夷는 동방사람인데 大와 弓의 두 글자로 된 글자다"라고 되어 있고 <설문통훈정성>에는 "仁은 夷의 옛글자"라고 하였으니 "夷"字에는 용기와 어짐의 두 뜻을 아울러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제왕세기」 : '태호복희가 동방(震) 출신이되 왕위를 취한 바 없을 때의 벼슬(位)은 동방에 있었다.' - 당연한 기록입니다. 태호복희는 배달국 태우의한웅이기 때문입니다.
「초사」: "東皇太一(동방의 황제가 최상 최고의 임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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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방의 어진 나라가 한반도를 얘기하는 것이라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대단히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문제는 위에 언급된 어느 사료도 실지를 기록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 지명, 장소, 실존가능성이 보이는 인물의 이름 조차도 없다는 것이죠. 막연하게 동쪽의 이상국과도 같은 땅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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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볼 때 요나 순 모두 동이의 제후국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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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은 논리를 뒷받침 하나요? 도출될 수 없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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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 상,은 -주를 지나사의 역사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요와 순의 시대는 夷족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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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마찬가지죠. 가설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지만, 물증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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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마디 더 부연하면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이미 지나 25사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실재의 역사입니다. 고조선사까지 부인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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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서술된 갖가지 모호한 지명의 땅이나 모호한 국가들이 바로 고조선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자체가 허황되고 티미하다는거죠.
....
그렇다면, 기성학계가 바보천치 사대주의자들이라서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를 만드느냐? 오늘날 역사교과서에 실린 정도의 내용만이 어느정도 물증이 뒷받침되는, 확인되는 내용이라는겁니다. 가설 중에서도 그럴듯한 것도 있고 허황된 것도 있고, 거의 사실이라고 생각되어 여러사람에게 인지되는 것도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사실확인이 되지않는다면 가설 - 즉, 까놓고 말하자면 "뻥" - 임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좀 격하게 얘기하자면, 그 "수법"이라고 하는 것이, 서로의 사실근거를 밝히기 위한 자료들의 선택과 검증의 과정이 전적으로 모호한 단계에서 출발합니다. 어느 분의 말마따나 진위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역사적 자료가 있고, 그 역사적 자료의 검증 자체가 끝나지 않은 단계에서 그 내용을 기반으로 가설을 만들어낸 후에, 그 가설과 논리적인 연관성이 있어보이는 내용들을 사서에서만 긁어모으면 그 자체로 사실이 입증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물증이 뒷받침되지 않은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
상기 내용이 모두 사실로 밝혀지기 위해서는:
1) 고조선의 구체적 영토경계를 밝힐만한 유적지의 분포와(이것은 어느정도 조사되었지만..)
2) 중국측 사료를 크로스-레퍼런스 할 수 있는 고조선 측의 사료나 비문, 포고령, 등등등...
3) 구체적인 지리와 지명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실지/유적 조사발굴 보고서
이 정도가 최소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세가지 요인 중에서 과연 재야사학은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요? 재야사학자가 직접 발굴에 나서거나, 실지를 조사하거나 한 적이 있나요(제가 아는 한은 없는데요)? 좀 엄한 식으로 표현하자면 모두가 2차사료, 남의 보고서, 다른 책의 내용만을 토대로 짜집기하여 만들어진 가설 투성이죠. 그것은 말하자면, 지금으로부터 1000년 뒤에 누군가 대한민국이 등장하는 소설책을 발굴하여, 그것만을 보고 그 내용을 토대로 단편적인 사실을 추론해낸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역사가 어땠는지 쓰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다 전문적으로 알고있는 것도 아니공.. 대충 주워들은 지식으로 얘기할 수도 있는거고 하니, 일일이 이렇게라도 지적을 해 주셔야 하겠지요.. 다만 동양사는 우리쪽에선 매우 민감한 부분이고 추정적인 사실이지만 진실인 것 처럼 알려진 것도 매우매우 많잖아용?
2)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지명? - 포괄적인 것을 말하는 겁니까? 지엽적인 내용을 말하는 겁니까? [서경]이나 [사기] 전체 부분을 언급하는 겁니까? 아니면 대상이 되는 순임금에 대한 기록에서 말하는 겁니까? 아~님은 [서경]과 [사기] 중에서 지명 언급이 없는 부분은 모두 논거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요?
3)도 똑같은 맥락이군요. 지명과의 일치를 어느 수준에서 요구하는지 모르겠는데, [사기]나 [서경]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거의 다 고증할 수 있는 지명들입니다. 그러기에 [사기]와 [서경]이 정사로서 인정받는 것입니다. 도대체 정사의 기록까지 무시하고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심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건지......
2. 인용의 문제 - 이 부분은 언급할 가치도 없군요. 고대사에 대해서는 국내 학계의 연구 결과가 너무 부진한 실정 아닙니까? 게다가 고조선 시대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국내 사서가 얼마나 있습니까? 또 한가지, 국내 학자가 연구한 부분을 인용하면 기존 국내 학계가 인정하는 자세라도 보였나요?
그러니 당연히 사고의 접근이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고조선 시대에 지나인들은 한반도에 대한 지리적 관점이 없었다는 주장과 똑같지 않습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고조선의 역사 무대는 한반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이라도 제대로 보고 말하십시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조선사를 반도 내로 끌어들이려는 망상을 바꾸십시요. 그리고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문헌 고증과 지명 고증, 유물 고증에 대해 좀더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잇는 증거를 없다고 우기시지 마시고, [서경]이나 [사기] 같은 정사의 기록도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부정하지 마십시요.
첫댓글 동감합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요,순이 중국쪽 왕이었으니 동쪽이면 한반도 쪽인거 같은데 그 당시 한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에 의해 저런 기록을 남길 만큼 동쪽에 세력을 형성한 나라가 있었나요?
한반도..... 라기 보단 지금의 산동지방입니다. 주로 대문구 문명권입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한반도라는 지역이 있는 지도 몰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거 같습니다.
ㅋㅋ.. 저 말씀들은 다 맞는거 같은데.. 중요한건 '기정사실'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줄 아시는'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신 분들이 꼬집어 주셔야 알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다 전문적으로 알고있는 것도 아니공.. 대충 주워들은 지식으로 얘기할 수도 있는거고 하니, 일일이 이렇게라도 지적을 해 주셔야 하겠지요.. 다만 동양사는 우리쪽에선 매우 민감한 부분이고 추정적인 사실이지만 진실인 것 처럼 알려진 것도 매우매우 많잖아용?
요즘 책 보시면 그 특성상 진짜 사실이었던 것처럼 서술하는것도 많공-_- 일반인들로선 자신이 착각 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는 법 아닌가 합니다..(문헌학 연구에 해당하는 책들 말구용..;)
걍..제 생각입니다. 이쪽 오시는 분들 진짜 실력을 모르니 함부로 이래저래 얘긴 못하겠지만용..
추정사실/가정 부분 : 공자의 [서경]과 사마천의 [사기] 등의 기록을 추정이라고 한다면 이제껏 기존 역사학계에서 인정한 역사적 사실(?)도 모두 추정이라고 하겟습니까? 님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의 오류는
기존의 정설에 대해서는 그 내용의 진위성 여부는 고사하고 의구심을 갖지는 않으면서 새로운 학설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고 고리타분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서경]과 [사기]의 기록 자체를 부인하는 권위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되묻고 싶군요.
1)동쪽이 어디인가? - 이 부분은 님이 애써 안보시려고 하는 건지 보이는데도 인정하지 않는건지 모르겠군요. 궂이 여러 사서를 인용할 것도 없습니다. 고대 지나인들에게 동쪽은 곧 동이, 조선을 뜻했음습니다. 그 사실은 위에 다 나와 있으니 더 자세히 읽어 보시지요.
2)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지명? - 포괄적인 것을 말하는 겁니까? 지엽적인 내용을 말하는 겁니까? [서경]이나 [사기] 전체 부분을 언급하는 겁니까? 아니면 대상이 되는 순임금에 대한 기록에서 말하는 겁니까? 아~님은 [서경]과 [사기] 중에서 지명 언급이 없는 부분은 모두 논거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요?
3)도 똑같은 맥락이군요. 지명과의 일치를 어느 수준에서 요구하는지 모르겠는데, [사기]나 [서경]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거의 다 고증할 수 있는 지명들입니다. 그러기에 [사기]와 [서경]이 정사로서 인정받는 것입니다. 도대체 정사의 기록까지 무시하고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심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건지......
4)2~3과 똑같은 내용이지만 고고학적인 뒷받침을 말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역으로 묻겟습니다. 양자강 중하류의 선진 문명에 대해서는 님은 어떻게 보시고 설명하시겠습니까? 1990년 1월 16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화살편 발굴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기존 학계의 문제는 기존에 자신들의 학설로서 증명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고고학적인 발굴이 있더라도 이를 연구, 검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물로써 발굴된 문명이 이미 존재한느데 그 실체는 모른다? 역으로 되묻고 싶군요.
2. 인용의 문제 - 이 부분은 언급할 가치도 없군요. 고대사에 대해서는 국내 학계의 연구 결과가 너무 부진한 실정 아닙니까? 게다가 고조선 시대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국내 사서가 얼마나 있습니까? 또 한가지, 국내 학자가 연구한 부분을 인용하면 기존 국내 학계가 인정하는 자세라도 보였나요?
한단고기의 천문학 현상의 검증만 봐도 그 사실에 대해 우리 학계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자꾸 뫼비우스 띠만 맴돌고 있군요.
님의 사관은 이미 고정관념으로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사고를 바꾸십시요. 님의 글 [동방의 어진 나라가 한반도를 얘기하는 것이라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대단히 그럴듯하게 들리지만....]여기를 보십시요. 님은 고조선의 역사가 한반도 내라고 못박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고의 접근이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고조선 시대에 지나인들은 한반도에 대한 지리적 관점이 없었다는 주장과 똑같지 않습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고조선의 역사 무대는 한반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이라도 제대로 보고 말하십시요.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에 대한 기록을 보아도 [연의 동쪽에는 조선이 있고....]로 분명히 조선은 그들의 지리적 관점에서도 매우 근접한 이웃 국가였습니다. 자꾸 이상한 논리, 고정화된 반도사관으로 비껴갈려고 하는군요.
맨 마지막에 대한 부분은 차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군요. 님의 사고방식은 고조선의 역사를 거의 부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1)은 당연히 비파형동검 등의 발굴로 입증되었고, 2)는 국내 사서가 아닌 지나측 기록으로 실존 국가임이 증명되고 있고-[사기] 등
3)은 북경 인근에 [조선성]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까? 아시는 건지? 아니면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이것이 님이 말하는 역사학자의 객관적 자세라고 하십니까?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지명 고증도 모르시는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조선사를 반도 내로 끌어들이려는 망상을 바꾸십시요. 그리고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문헌 고증과 지명 고증, 유물 고증에 대해 좀더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잇는 증거를 없다고 우기시지 마시고, [서경]이나 [사기] 같은 정사의 기록도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부정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이곳은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계가 아닙니다. -_- 님은 저하고 논문을 올려가며 토론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님들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 내에 국한 시키려는 아주 잘못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님들이 표현하는 말마다 '한반도'가 언급되는 오류는 지극히 위험합니다. 가급적 표현에 신경써 주시기 바랍니다.
풉... 듕귁 놈들이 쓴 것을 토대로 그 넘들은 동이의 제후국이였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 듕귁 놈들이 써서 고조선이 실제 역사였다구요? 뭐 어쩌라는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