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책방에 들러 종교분야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 영성에 관한 책이 많았는데 대부분 기독교와 뉴에이지, 힌두교와 불교 등 잡다한 가르침이 혼합된 다원주의적인 영성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종교의 대상, 궁극적인 실체가 누구이든지 간에 우리 인간에게 행복과 유익을 안겨주는 존재라면 모두 환영한다. 그런 짬뽕영성에서 중요한 것은 초월적인 존재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그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얻을 수 있는 혜택과 실용적인 가치이다.
이런 실용주의 영성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미국제 영성에 깊이 배어있는 특성이다. 일찍이 실용주의 철학(pragmatism)의 대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다양한 종교체험(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s)”이라는 책에서 이런 실용주의적 영성을 주창하였다. 그는 다양한 종교체험과 현상을 분석함으로 참된 종교체험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탐구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진정한 영적 체험을 진단하는 척도는 그 대상이 누구이냐가 아니라 그 체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결과와 열매, 실용적인 가치에 있다. 우리 마음에 행복과 평안과 안정감을 안겨주며 우리 삶에 도덕적인 변화를 가져다준다면 어떤 신이든 종교든 좋다는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책, “다양한 종교체험”은 1902년에 발간되었다. 세계 일차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서구사회는 과학과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더 살기 좋은 세상, 유토피아가 바야흐로 도래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역사관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러나 과학과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더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고 인간이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의식은 보편적이었다. 제임스의 책은 이런 불안감을 잠재우고 과학이 선사하지 못하는 마음의 행복과 평안을 누리는 길이 종교체험에 있다는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과학과 문화의 발전으로 행복한 환경이 주어질 뿐 아니라 영적인 체험을 통해 마음의 행복까지 누리게 된다면 유토피아의 환상은 실현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각자 자신에게 맞는 종교와 신을 택해서 종교체험을 하라고 제임스는 권면한다. 결국 실용주의 영성의 목표는 자기실현을 통해 인간의 유토피아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성의 골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하나님나라의 완성이다. 영성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실용적인 유익과 혜택을 얻어내느냐가 아니라 우리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며 그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실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을 섬김으로 얻는 은택,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행복을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우선순위가 뒤바뀌거나 무시된다면 영성의 본질이 왜곡된다. 이렇게 실용주의적으로 변질된 영성이 현대교회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런 영적인 토양에서 제 입맛에 맞는 잡다한 신들을 불러 모아 혼합시킨 짬뽕영성이 더욱 기승을 떨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