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미오와 줄리엣』(1968)으로 일약 청춘의 상징이자 청순한 미인의 표본으로 세계인들로부터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던 올리비아 허시(Olivia Hussey)가 우리들 곁을 떠났다는 소식이네. 10대 남녀의 단 5일간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세익스피어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에 나온 올리비아 허시의 이미지는 광풍처럼 청순 소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지. 뭐 서울 중앙극장에서 상영할 땐 암표가 기승을 부리고 이후 학생들의 책받침에 그녀의 얼굴 사진이 단골로 프린트되었다더만...
내 기억으로 우린 그 영화를 당시 개봉관에서 보질 못하고 대한극장 맞은 편 골목에 있는 '아테네극장'에서 본 듯한데...2본 동시상영관인 데다 명화를 많이 상영한 유명세로 돈 없는 학생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아테네극장의 추억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하구만. 이후에도 이 영화는 10년 뒤 재개봉을 한 데다 텔레비전에서도 상영됨으로써 올리비아 허시는 세대를 아우르는 청순녀의 아이콘으로 길이길이 자리잡게 되는 건 뭐 당연한 결과라 보여지긴 하지만...
게다가 줄리엣의 본가인 캐플릿가에서 벌어진 축제에서 처음 만난 두 남녀는 태생적으로 가문 사이에 원수지간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고, 가수 글렌 웨스턴이 부르는 노래「What is a youth」는 이들의 사랑이 슬픈 결말을 맺게 되리란 걸 일찌감치 암시하고 있었으니...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생, 특히 여고생들에게 이 영화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명화로 자리매김되어 왔는데, 우리들의 영원한 연인이었던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뼈저리게 느껴야 할 수밖에...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의 수필집『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문예출판사, 2017)에 나오는 글귀를 읊으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세월의 한 페이지 힘겹게 넘긴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열차의 차창에 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 시간. 번득이는 기차 창들이 유령처럼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미소를 띠고 차창에 서있는 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