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서기 / 정희성
■ 해제 : ‘누이’로 표상되는 1970년대의 공장 노동자의 기막힌 삶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삶은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를 통해 부각되어 있는데, 이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핍박받고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시인은 대지에 박혀 있어야 할 뿌리가 거꾸로 서 있다는 발상과 표현을 통해 물구나무서 있는, 뒤집혀서 비정상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뒤집혀 있는 비정상적인 현실은 도시뿐 아니라 누이의 고향인, 아버지가 있는 곳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고향에 있는 아버지의 삶 역시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려 있는 것이다.
■ 작품 감상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
뿌리(생존)가 뽑힌 모순적인 현실 └종결어미의 반복을 통한 율격의 형성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들으니 (원 :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입이 열이라서 할 말이 많구나 (원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관용적 표현(속담) 비틀기 :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현실
듣거라 세상에 원
└ 부정적 현실에 대한 탄식
[한 달에 한 번은 꼭 조국을 위해
누이는 피 흘려 철야작업을 하고
날만 새면 눈앞이 캄캄해서
쌍심지 돋우고 공장문을 나섰더라] ▸누이(도시 노동자)의 힘겨운 삶(철야작업, 힘겨운 노동)
너무 배불러 음식을 보면 회가 먼저 동하니
└ 반어법(너무 배고파 뱃속에 든 회충이 음식물 넣어달라고 꿈틀거리니)
남이 입으로 먹는 것을 눈으로 삼켰더라
└ 배고픈 현실
대낮에 코를 버히니
└ 관용적 표현(속담) 비틀기 (서울 가면 대낮에도 코 베어간다 - 각박한 현실)
슬프면 웃고 기뻐 울었더라
└ 역설법을 통한 모순된 현실의 표현
얼굴이 없어 잠도 없고
└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현실
빵만으론 살 수 없어 쌀을 훔쳤더라
└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욕구마저 충족시킬 수 없는 현실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고
└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현실 → 모순된 현실
멀리 고향 바라 울었더라
└ 1970년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도시로 올라와 노동자로 전락한 소외된 존재의 비애
못 살고 떠나온 논바닥에
└ 산업화의 과정에서 피폐해진 고향(농촌)의 현실
세상에 원
└ 반복(부정적 현실에 대한 탄식)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
└ 도시화, 산업화로 뿌리가 뽑힌 채 모순된 농촌 현실을 살아 온 아버지(이 시대 농민들)의 고달픈 삶을 감각적 제시
■ 핵심정리
▶ 성격 : 비판적, 민중적
▶ 표현 : 모순된 현실에 대한 반어적 표현
▶ 주제 :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한 고발
▶ 구성
1~3행 : 뒤집혀 있어 할 말이 많은 세상
4~8행 :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노동 현실
9~14행 : 누이의 궁핍한 삶의 처지
15~20행 : 피폐한 삶을 사는 고향의 아버지
■ 이해 및 감상
이 시는 누이로 표상되는 공장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핍박받고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을 대지에 박혀 있어야 할 뿌리가 거꾸로 서 있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물구나무서기>란 제목에서부터 이 시의 의미를 알 수가 있다. 물이 거꾸로 흐를 수 없고, 시계가 거꾸로 가선 안 되듯이,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부정부패와 같은 모순된 현상을 질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로 시작하여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로 끝맺어지고 있다. 하늘이 아닌 땅으로 뿌리가 내려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인 것을 어이없게도 그렇지 않고, 허공이라는 불안한 곳에서 늙으신 아버지의 수염만이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수염'은 시간의 경과이자 그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오를 수 없는 미끈한 절벽과 같은 세상에 시인은 할 말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위를 한 번도 오르지 못해 본 사람들 모두의 목소리인 것이다. 밑바닥에 사는 사람, 즉 위에 올라서 보지 못해 본 사람의 얘기라고 할 수 있는 시다. 정희성은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어조로 우리 시대의 노동 현실과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민중의 슬픔을 노래해 온 시인이다. 이 시 역시 정희성의 시세계를 잘 드러낸 것으로, 민중시가 나아가야 할 모델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