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와 이명박
오 인 태(시인․ 경남작가회의 회장)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굶주린 시민들이 “빵을 달라!” 외치자 “빵이 없으면 과자(사실 그녀가 말한 brioche는 빵의 일종이다)를 먹지”라고 말했대서 두고두고 입질에 오르내린다. 프랑스혁명으로 참수형을 당한 루이16세의 황후였던 그녀도 끝내 혁명군의 심판을 받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 백성은 도탄에 빠졌는데도 국모로서의 체통과 자중자애의 본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사치와 방탕을 일삼아 혁명을 부채질한 데 대한 역사적 평가야 사뭇 엄중해야겠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연민의 정이 아예 끌리지 않는 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태어나 왕실의 정략에 따라 프랑스 황태자비로 시집와서 성불구자로 알려진 루이16세의 황후가 되었으니 구중궁궐에서만 지낸 몸이 어찌 여염의 물정을 알겠는가. 대개 오십 줄을 넘어선 어른들이 “옛날엔 밥이 없어서 많이 굶었다”고 하면 “밥 없으면 라면 끓여먹으면 되지요”라고 되받는 요즘 세태의 애들을 연상시키는 “빵 대신 과자” 얘기는 그래서 나왔을 법하다.
그녀의 병적인 ‘사치’와 ‘향락’에의 탐닉은 성불구자 남편을 둔 불행한 여인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리비도의 검열 결과이자 외로움에 대한 대체만족일 수 있다는 정신분석학적 이해도 가능할 테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심한 억압이나 검열에 의해 무의식에 잠재된 리비도는 직접적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서 만족감을 얻으려한다. 이때 리비도는 이미지로 변장하여 검열을 피하게 되는데, 그녀의 화려한 일탈의 이미지는 바로 리비도의 변장술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학문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절대왕정시대였던 데다 귀족들의 사치와 방탕이 극에 달했을 때니 시대적 정황도 이해할 만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고, 직접적으로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군주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앞에 “빵 대신 과자”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그것도 정책과 민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 나라의 대통령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며칠 전 이명박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수해의 근본대책을 주문하며 “산간에 흩어져 사는 주민들을 모아 아파트를 지어 살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요지의 말을 했다. 그러면 수해가 나더라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국가가 관리하기에도 편리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각설하고, 한 마디만 묻자. “도대체 뭘 해먹고 살라고?”
한 번의 말실수로 넘길 수 없는 문제인 탓이 그는 두어 달 전 모내기 행사에서도 ‘농촌대책’에 대해서 꼭 이와 같은 말을 했다. 그가 누구인가. 한다면 꼭 하고야마는 분 아니신가. 골목까지 침범해오는 대형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골목상인에게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아보라”든지, 등록금 인하를 외치는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받아라”든지, 청년실업대책을 요구하는 88만원 세대에게 “눈높이를 낮추라”든지……, 이렇듯 대통령의 독특한 상상력과 수사는 흔히 우리의 상식과 이성을 넘어선다.
오늘도 이명박대통령은 기발한 상상력과 화려한 수사를 쏟아내며 서민행보 중이시다. 그의 유별난 서민행보는 노점상, 고학, 뻥튀기 장사 따위, ‘안 해본일이 없는’ 풍부한 경험에 따른 의식의 소산일까. 아니면 어렵게 살았다는 유년기의 억압된 리비도가 자기검열을 피하기 위해 변장된 이미지일까.
<시와시학> 2009년 봄호에서였을 것이다. 거기서 이명박대통령은 어렸을 적 꿈이 시인이었다고 밝혔던 걸로 기억한다. 차라리 그가 시인이 되었더라면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훨씬 좋았을 뻔했다. 시는 합리적 이성 너머에 있는 상상력의 세계,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세계에 가까이 있는 탓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도 궁궐을 뛰쳐나와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면 그녀의 삶도, 그녀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영판 달라지지 않았을까. 명색이 시인인 나도 한껏 상상력을 발휘해서 해보는 말이다.
- <도민시론>, 경남도민일보, 2009.7.20.
첫댓글 절묘하네요...모든 권력을 혼자 다 갖고 있으면서 고집불통이니 대운하도 시작하는거겠지요. 국회도, 지방정부도 견제할 수 없고. 정부통신부에서 IP까지 추적한다는 소문이 있으니 비판기사도....ㅜㅜ
세상물정 모르고 자기세계에 갇힌 불쌍한 분이지요. 그것이 혼자만의 상황으로 그친다면 다행인데 그 영향으로 무수히 많은 백성들이 고통 속에 시달려야 함은 물론이고 나라의 장래와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아, 지난 10년이 그립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는 먹지 않아도 배부를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같이 그 모양인지...,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사실이 넘 부끄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