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시의 향기(詩香)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운영자☆詩감상 스크랩 시 발표 소개 한국의 美_ 白
이제민 추천 0 조회 122 18.10.07 00: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한국의 美_ 白





새해에는 / 이제민


온몸
가지런히 새로 단장하고
맞이한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각오로
일출을 바라보며 다짐해봅니다.


마음속
겸허히 추억으로 간직하고
보내는 지난해


성숙한 마음으로
성숙한 각오로
일출을 바라보며 새겨봅니다.


떠오르는 희망찬 태양
새해에는
기쁨이 하나 가득
소망이 이루어지길 빌어봅니다.



한국의 美_ 白


白, 여백과 채움의 미학


밝고 둥근 보름달을 닮은 백자 달 항아리
조선 백자 달 항아리는 마음을 비우고 자연을 동경하는 우리 선조의 심성과 너무 닮았다. 눈빛을 닮은 순백의 달 항아리는 자연 그대로의 빛깔로 자연으로의 동화, 자연으로의 회귀와 상통하며 소박한 멋을 자아내고, 풍만한 곡선미는 후덕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자로 잰 듯한 원형이 아닌 모양은 꽉 차 있으면서도 넉넉히 비운 여백과 채움의 미학을 절묘하게 살려낸 것.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순백의 자태가 문득 가슴 저미도록 애틋하다.




흰옷을 사랑한 ‘백의민족’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있듯이, 흰옷을 즐겨 입은 우리 민족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밝은 빛을 사랑했다. 여백과 비움의 정신을 중시한 민족이었으니 백의를 즐겨 입었을 터이다.
하얀 저고리에서 은은하고 소박한 향취를 느끼는 까닭도 자연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숨 쉬기 때문이리라.




명주실


흰색은 청렴결백과 순결을 나타내는 색이다.
사람들이 흰색을 좋아하는 이유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있듯,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만든 명주옷이든, 목화밭 솜으로 만든 무명옷이든, 우리 선조는 아름답고 화려한 옷에 현혹되기보다는 소박한 명주옷이나 무명옷을 귀히 여겼다.





순백의 단아한 멋,
백자 사발


조선 백자는 단아하고 순결하다. 백자의 흰빛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아우를 줄 아는 포용력의 빛깔이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자연 그대로,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시간이,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까닭에 본바탕 위에 무엇이든 조화롭게 담아낼 수 있는 색인 것이다.


에디터 조민진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선우 스타일리스트 양은숙. 어시스턴트 김소혜, 주민영

소품협찬 달항아리(도예공방 예작,), 저고리ㆍ명주생사(담연, )





白, 건강을 먹다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에서 비롯된 오방색인 청·백·적·흑·황색 중 금(金)에 해당하는 흰색은 오장육부 중 폐장과 관련한 색으로, 실제로 흰색 식자재 중에는 기관지와 폐에 이로운 음식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뿌리 음식인 무와 도라지는 기침 등 기관지 질환에 좋으며, 항암 효과가 높다고 소문난 마늘에 양배추, 양파, 인삼과 조림 반찬으로 더 익숙한 연근 등 흰색 식자재가 생각보다 많다.


생활 속의 다양한 흰색 음식에 겨울철 원기 회복에 좋은 닭, 도미 등의 재료를 곁들여 건강한 새해를 맞이해보자.


누룽지영양백숙


재료(4인 기준)
재료 닭 1마리(토종닭), 물 10컵, 밤·은행 12알씩, 가시오가피 10g, 당귀 4g, 황기 2g, 대파 40g 누룽지 찹쌀 1½컵, 물 1½컵, 간장 1큰술, 참기름 1큰술, 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

1 찹쌀은 깨끗이 씻어 2시간 정도 불렸다가 물과 간장, 참기름, 소금을 넣고 골고루 섞는다.

2 냄비에 ①의 찹쌀을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눌러가며 끓인다.
3 밤과 마늘은 껍질을 벗기고 가시오가피와 당귀, 황기는 깨끗이 씻는다.

4 닭은 깨끗이 씻어 손질하고 대파는 흰 부분만 둥글게 채썬다.

5 냄비에 ②의 누룽지를 깔고 ④의 닭과 밤, 마늘, 가시오가피, 당귀, 황기, 물을 넣고 한소끔 끓여 ④의 대파를 올린다.




동치미국수


재료(4인 기준)
국수 400g, 동치미 무 200g, 동치미 국물 4컵, 식초 2큰술, 물 2컵, 얼음 적당량
만드는 법

1 국수는 끓는 물에 삶아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다.

2 동치미 무는 반으로 잘라 2×5cm 크기로 나박하게 자르고 동치미 국물과 식초, 물을 섞는다.
3 ①의 국수에 ②의 동치미 무와 국물을 부은 후 얼음을 곁들여 차게 먹는다.




송이버섯전복돌솥밥


재료(4인 기준)
송이버섯 4개, 전복 4마리, 밤 12알, 은행 16알, 수삼 4개, 연근 40g, 쌀 3컵, 찹쌀 1컵, 참기름 약간, 물 4½컵
만드는 법

1 송이버섯은 붓으로 이물질을 털어낸 후 0.5cm 두께로 자르고, 전복은 깨끗이 씻어 살만 발라내어 0.5cm 두께로 자른다.

2 밤과 은행은 껍질을 벗기고 수삼은 깨끗이 씻어 손질하고 연근도 깨끗이 씻어 얇게 채 썬다.

3 쌀과 찹쌀은 깨끗이 씻어 30분간 불린 후 체에 밭쳐둔다.
4 돌솥에 참기름을 살짝 바르고 ③의 쌀과 찹쌀, 준비한 재료를 골고루 섞어 담는다.
5 ④의 돌솥에 물을 붓고 강한 불에서 한소끔 끓인 다음 불을 줄이고 약한 불에서 뜸을 들인다.




도미살채소밀쌈


재료(4인 기준)
도미 살 200g(밀가루 약간, 달걀흰자 1개 분량, 식용유 약간), 도라지 100g(참기름 1/2큰술, 소금 1/2작은술, 참깨 1/2작은술, 물 적당량), 팽이버섯 100g(죽순 120g, 물적당량), 달걀흰자 2개 분량(소금 약간, 식용유 약간), 연근 80g(설탕 1/2작은술, 식초 1/2작은술, 물 적당량), 밤 8알(꿀 1½큰술), 밀전병 밀가루 1컵, 물 1컵, 소금·식용유 약간씩 소스 연겨자 2큰술, 꿀·식초 약간씩, 간 참깨 1작은술

만드는 법

1 도미 살은 포를 떠 밀가루를 얇게 묻혀 달걀흰자 옷을 입힌 후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노릇하게 굽는다.

2 도라지는 깨끗이 씻어 가늘게 찢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참기름, 소금, 참깨를 넣고 버무린다.
3 팽이버섯은 밑동을 자르고 죽순은 0.5cm 두께로 얇게 채 썰어 끓는 물에 데친다.

4 달걀흰자는 소금 간으로 간하고 얇게 지단을 부쳐 식으면 가늘게 채 썬다.
5 연근은 껍질을 벗겨 얇게 채 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설탕과 식초를 넣고 재운다.

6 밤은 껍질을 벗겨 채 썰어 꿀에 재운다.

7 볼에 분량의 소스 재료를 넣고 골고루 섞는다.

8 밀가루와 물, 소금을 골고루 섞은 후 체에 두 번 정도 내린다.

9 팬에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키친타월로 닦은 후 약한 불에서 한 수저씩 떠서 얇게 부친다.
10 준비한 재료를 그릇에 돌려 담고 ⑦의 소스를 곁들인다.


에디터 조민진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선우. 요리&스타일링 박용일(yong style) 어시스턴트 남경현



조희룡 ‘붉은 매화와 흰 매화’ (124.8×46.4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 선조는 차가운 땅에서도 홀로 희게 피어나는 매화의 고결함을 본 받고자 했다.


희고 정갈한 자연의 색


아침 창가에서 간밤에 내린 눈을 확인할 때면 출근 걱정보다 앞서 원초적인 희열이 느껴진다.
정돈되지 않은 도시조차 정갈하게 만드는 눈의 흰색은 색이라기보다는 관념에 가깝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자연 자체의 색. 빛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도 여백 그 자체인 흰색은 시각보다 정신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 선조가 자연을 바라보고 삶을 대하는 기본 정신을 발색하면 흰색이 된다.


우리 민족의 면면을 찬찬히 훑어보면 어느 분야에 대입해도 절대 빠지지 않는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더하고 덜하는 것 없는 본연 그 자체의 사랑이다. 이 특징은 색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선조가 가장 사랑한 색은 본질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천연 그대로의 색인 흰색이다. 여기서 흰색은 표백을 하거나 형광기가 가미된 흰색이 아닌,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의미로서의 색인 소색(素色)이다.

흰 눈을 소설(素雪)이라 하는 것처럼 소색은 무명이나 삼베의 고유색, 즉 본래의 바탕색을 말한다. 이 색은 우리의 역사와 함께했다. 아기는 흰 천에 싸여 태어나고 고인은 흰 수의를 입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는 몸가짐을 청렴하고 정갈하게, 정신을 소박하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연 사상과 저항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일상에 정신을 담은 백의민족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흰색 사랑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백의민족’이라는 명칭이다. 이는 무명으로 만든 흰옷을 즐겨 입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무명은 솜으로 실을 만들어 짠 옷감이라 목화처럼 천연 그대로의 흰색이다. 우리 민족의 백의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고, 그 기원의 정확한 시기는 확실치 않다.

다만 3세기에 편찬된 중국 사서 <삼국지>에 부여(BC 59~AD 494)에서 흰옷을 즐겨 입었다고 기록돼 있는 것,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여행기 <고려도경>에 ‘고려의 남녀 모두가 백저의(흰 모시옷)를 입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 등으로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경에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이 남녀노소 누구나 흰옷을 입고 다니는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1894년부터 네 차례나 우리나라를 다녀간 영국 여행가 이자벨라 비숍은 “한국인이 입는 흰색은 현성축일에 나타난 예수님의 옷에 대해 성 마가가 했던 ‘세상의 어떤 빨래집도 그토록 희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게 한다”고 서술했다.


1920년대 우리 거리 풍경을 본 한 외국인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밭처럼 희다”고도 기록했다. 육당 최남선 시인의 <조선상식문답>에도 “조선 민족이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이어진 것으로, 수천 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 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조에서도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고 강조했다.


그 밖의 많은 문헌에서도 백의민족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록으로 역사를 추정하는 건 별 의미 없어 보인다. 흰옷은 쌀로 밥을 지어 먹은 것만큼이나 우리에게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하나는 태양을 숭배하는 원시 종교에서 비롯해 태양빛인 흰색을 섬겼다는 것. 또 하나는 부여시대부터 입던 흰색 상복이 상례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상복이 되었다는 것. 여기에, 염료와 염색 기술의 희소성 때문에 염색 옷을 입을 수 없어 흰옷을 입었다는 설도 있다.

정확한 이유를 짚어낼 수는 없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백의가 처음에는 자연스레 정착된 문화였을지언정
시대에 따라 ‘의지’와 ‘절개’의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시대마다 백의에 대한 제재도 있었다. 고려 말부터 조선 말기까지는 상복을 일상화하지 말고 음양오행에 따라 청색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이유로 백의를 여러 번 금지했다. 13세기 후반 고려 충렬왕 때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도 태조 7년, 태종 원년, 세종 7년, 연산군 11~12년, 인조 26년 등 여러 번 백의를 금지했지만(숙종은 파란 옷을 입으라고 국명까지 내렸다). 그 어떤 금지령도 백의에 대한 우리 민족의 애착을 끊지는 못했다. 누구도, 민족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함께하는 색을 삶에서 밀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김홍도 '씨름'(39.7×26.7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명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독특한 필치로 그려졌다. 우리 선조는 씨름을 할 때에도 천연 그대로의 흰색 옷을 즐겨 입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결의를 담은 빛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백의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인은 물감을 들인 천으로 옷을 해 입었기 때문에 그와 대조되는 우리의 옷은 때가 타고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검은색 옷을 장려했다. 처음에는 천대에 그쳤지만 우리 민족이 이를 무시하자 곧 탄압으로 이어졌다. 흰옷을 입으면 상중에도 구타하는 일이 허다했다.

설날에 흰옷을 입고 세배하러 다니면 먹물을 채운 물총을 쏘기도 했고, 설 일주일 전부터는 흰 가래떡을 뽑지 못하도록 방앗간 문에 대못질을 했다. ‘백의퇴산 색복장려’라는 구호 아래 백의 말살 정책은 곳곳에서 계속됐다.


떡 팔러 장에 갔다
베옷에 먹물탕이라
옷이야 검었지만
배알까지 검길쏘냐


그 당시 번진 ‘남도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탄압이 거셀수록 우리 민족의 흰옷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졌고, 이는 곧 항일의 상징이 되었다. 학생들은 졸업식에 일본식 교복을 찢고 그 위에 밀가루를 뿌렸다.
의병대는 모두 흰옷을 입었고, 3·1운동 현장에는 흰 물결이 온 거리를 뒤덮었다. 백의를 무시하는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한 사실은 무엇을 더하지 않고 항상 본연의 것을 찾으며, 그것이 곧 하늘과 땅의 이치라고 생각한 우리 민족의 정신이다.

혹자는 백의가 고급 비단을 살 수 없는 이들의 가난함을 상징할 뿐이라 비하하지만, 염색 기술이 발달해 합성
연료가 흔해진 이후에도 흰옷에 대한 사랑은 계속됐다. 어느 순간부터 흰색은 군자의 지조를, 선비의 절개를, 민족의 결의를 담는 옷이 되었다.
소박하지만 청렴을 지켜야 하고 정성을 다해야 만날 수 있는 흰색의 영원불멸성은 그렇게 오래 시간 우리 곁에서 우리 정신을 탁마해왔다.



신윤복 '처네 쓴 여인'(29.7×28.2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새하얀 버선에는 선조 대대로 내려온 백의의 정신이 머물러 있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아 홀로 완전한 아름다움


흰색의 정갈함을 이야기할 때 한복이 빠질 수 없다. 한복의 아름다움은 색색의 옷감과 화려한 자수보다 내면의 깨끗하고 정갈한 차림새로 완성된다. 한복보다 더 설레는 건 새하얀 속치마와 속바지, 그리고 버선을 볼 때다. 염색하지 않은 천 그대로의 감촉은 입는 사람에게 고귀한 자태를 약속하는 듯하다.

버선에 발을 넣으면 그동안 양말에서는 느끼지 못한 정갈함이 느껴진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백의의 정신이
여기에 있다. 과한 표현이라 느껴진다면 직접 입어보길. 여름 한복을 맞출 때는 더하다. 그 기분은 중국에서 전해지는 한 이야기로 대신할 수 있다.


중국에 설요영이라는 미인은 몸이 너무 야위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지고 일어설 때는 양쪽에서 부축해야 할 정도였다. 그녀는 비단옷도 무거워서 가볍고도 훌륭한 옷감을 찾는 게 시급했는데, 그때 해답이 된 것이 바로 신라의 모시였다. 당나라 귀족 사회에서는 신라 모시를 최고의 옷으로 쳤으며, 고려에도 전승되어 <계림유사>에는 “한 여승이 모시 한필을 짜 임금에게 바쳤는데, 가늘기가 매미 날개 같아 들어도 든 것 같지 않았다”라고 표현돼 있다. 의복 외 부분에서도 흰 것의 심미성은 높이 평가됐다.


백마, 백조, 백로, 흰 매화 등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한 기개를 상징하며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받았다. 또 ‘백옥 같은 피부’나 ‘단순호치(丹脣皓齒)’, ‘박 속처럼 하얀 여인’ 같은 표현은 흰색으로 대변되는, 본연의 깨끗한 자태와 분위기를 뜻했다. 결국 우리 선조에게 아름다움은 곧 흰색과 같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예술 작품에서도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는 빠지지 않았다. 그 분위기를 가장 잘 묘사한 것으로 ‘다정가’를 들 수 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고려 말 문신 이조년이 지은 이 시는 봄밤의 애잔함을 그리고 있다.
고려 충신이었으나 억울한 사건에 연루돼 귀양살이를 하고 풀려난 후에도 10여 년을 고향에서 은거해야 했던 그의 복잡한 마음과 달리 시 속 풍경은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시어의 공간으로 들어서면 눈앞이 온통 하얗다.
은하수가 하늘에 떠도는 자정 무렵에 흰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밝은 달빛이 풍경을 비추니 깊은 밤이지만 모두 하얗게 빛난다.
이 풍경 속에는 이조년의 대쪽 같은 선비 정신이 들어 있다. 고려 말 혼란한 정국에서 충심을 지키려다 낙향한 이조년은 항상 자신의 절개를 흰빛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는 고향에 내려와 ‘백화헌’이라는 집을 짓고 당호를 따서 자신의 호도 백화헌으로 붙였다. 흰빛의 순수함과 순결함이 썩은 정치판을 구원해주길 바란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차백화헌(次百花軒)’을 보자.


이 꽃 저 꽃 주섬주섬 심을 것 있나
백화헌에 백화를 피워야 맛 아닌가
눈 속에는 매화꽃, 서리 치면 국화꽃
울긋불긋 여느 꽃 다 부질없느니


그의 말대로 눈을 현혹하는 여러 색 사이에서는 진짜를 가려낼 수 없다.
원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혼란의 시대에서 끝끝내 국권지키기를 바란 충신의 마음은 대쪽처럼 희게 빛난다. 그리고 그 마음은 매화로 형상화됐다. 이 시뿐 아니라 많은 문학 작품에서 매화는 선비의 청렴을 상징한다. 관직에 오른 선비가 매화도를 곁에 두는 이유는 아무리 차가운 땅에서도 홀로 희게 피어나는 매화의 고결함을 본받기 위함이다.
이렇게 흰색은 원형의 아름다움과 순결함, 선비의 곧은 기개를 상징하며 우리 민족을 대변해왔다.


글 김선미(칼럼니스트)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절제미로 표현한 선비 정신, 순백자


백자는 백토로 그릇의 모양을 만들고 투명한 흰색 유약을 입혀 구운 자기다.

장식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그중 순백자는 원료인 흙과 유약 외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순수한 자기를 말한다. 유려한 곡선과 순결함이 순백자의 백미로, 불순물이 많은 백토를 이용해 티 하나 없는 자기로 만들기 위해 당시 도공들은 무수한 노력을 해야 했다.

제작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백자가 인기있었던 이유는 선비들이 불투명한 것을 멀리하고 청렴결백한 흰색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후대는 선조의 장식 기술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절제미를 통해 정신을 수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GOLD & WISE

Magazine for the Prestigious KB Members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