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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이 폭파했다고 야단인데
나는 이 뉴스를 보고 웃음이 나온다.
개성공단은 북한땅이다.
북한땅에 건물을 지은 바보가 어디있나.
건물이 우리건물이라고 그들이 폭파못하리라고 생각하는것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이해못할 일이다.
나도 2007년 4월에 개성공단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확실히 거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지 대한민국이 아니였다.
그때 쓴 개성공단 방문기를 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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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가 보는 북한에 대한 시각은 그야말로 동토의 땅이고 공포의 땅인데
드디어 그 공포의 땅 북한으로 입북하는 날이다.
몇일전부터 설레기까지 했다.
개성공단에 우리 협력업체가 있어 직원들은 가끔 가지만 나는 이번이 처음이다 .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서 현력업체 사장차와 자유로 휴게소에서 도킹하고 그 차를 따라서 자유의 마을까지 가서 내 차는 도라산역에 세우고 협력업체 사장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등록 된 차량 외는 갈수 없으니까.
입북절차를 밟으면서 또 뭔가 착오가 생겨서 한참을 버벅거리며 겨우 방문증명서를 만들어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주로 북한지역에 가서 조심해야 할 사항들을 듣는 교육이였다.
입북 서류를 만드는 데스크에 서류를 작성할려고 하고있는데 갑자기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자 한분이 소리를 지른다.
“ 해모수님 아니신가요?”
“어? 곰님 아닌가?”
“와~~ 해모수님.”
너무 반가움에 그녀는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나를 포옹까지 한다.
우리얼(천리안 문화유적 답사 동호회)에서 만나서 같이 활동했던 사람이다.
7년만인가? 안본지가.
그녀는 애들 대충 커서 이제는 북측으로 방문 하는 사람들의 가이드를 하고있단다. 평소에 참 활기차고 똑똑하더니 역시나 그런 당찬 일을 해 내고 있었다.
“해모수님은 언제 나오세요?”
“나? 2시에 나온데”
“ 아 그래요? 우리들은 개성공단 주변에 나무심으러 가요.
개성시내까지 갔다가 5시에 나올검니다.
나가서 전화할게요.”
“ 그래 그러자.”
보니 그 멤버들은 대충 무슨 시의원이나 그런 사회 지도층들인데 버스로 몇 대가 나란히 서 있는걸 봐서는 상당히 많이 가는 모양이다.
그 사람들을 일일이 도와주면서 가이드를 하고있었다.
결혼 전부터 내가 능력있다고 보아서 짝을 고르는데도 내가 좀 거덜고 했는데
역시 그런 일을 잘 해 내고 있는걸 보니 참 대견해 보였다.
북한 방문 절차는 복잡했다.
차도 출발 시간을 기다려야 되고 줄을 서서 가야되고 모든게 통제속에서 움직여야 된다. 입북은 시간대 별로 단체로 입북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10시 출발 팀으로 입북하는 팀이란다.
드디어 북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남측 초소를 지나니 비무장지대가 나오고 조금
가니 북한 병사의 복장을 한 군인들이 보이고 초소가 보인다.
드디어 북한 통과 세관이 보이고 거기서 세관절차를 밟았다.
북한 말씨가 나오고 북한 세관원들과 군인들이 그런데로 친절히 절차를
밟아준다.
북한땅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것이 산이였다.
나무 한포기 없는 민둥산이 펄처져 있다. 북산의 실정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모습이다.
개성공단에 들어가면서 보니 곰님이 인도하는 그 팀이 비가 쏘다지는 그
속에서 나무를 심고 돌아오고 있었다. 일회용 하얀 비닐우의를 입고 ..
“ 저 심은나무 제데로 있을런지 몰라요. 나무 뿌리까지 다 가져가서
불을때는 북한인데..”
협력업체 사장이 걱정을 한다.
북한땅에서는 완전히 통제된 사회인지 차도 마음데로 못가고 반드시 안내차
선두로 뒤에 따라가야 된다.
어차피 그 공단 안이야 다른길도 없는데 왜 안내차가 앞서야 갈 수 있는지
우리들의 사고로는 이해가 안된다. 도로야 똑 바로 보이는 길인데 길잃을
염려도 전연 없는 길인데도 안내를 한다. 친절하다고 해야하나?
협력업체에 도착하니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북한 노동자들이 라인에 앉아서 일을 하고있다.
한쪽 라인을 보니 종이 쇼핑펙을 만드는 공정인데 손잡이를 일일이 사람이
꾀고있었다.
“저 작업은 한국에서는 교도소에서 했데요. 지금은 교도에서도 안한담니다.”
협력업체 사장이 설명을 해 주었다.
한달 월급이 육만오천원 정도고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돈은 만 오천원 정도라고
하니 저런 작업도 할수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수공업 형태의 단순노동이고 기계를 조작하는 사람도 위함할
정도로 작업환경은 열악하다.
저래서야 생산성이 오르나 싶을 정도다.
우리회사 제품의 공정은 어차피 프레스 공정이니까 기계로 하는데 다른
공정은 전부 손으로 하는 작업이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비오는 날 가는 바람에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고 다녔다.
협력업체에도 우산이 없단다.
훼미리마트인가 암튼 그런 편의점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도 우산은 없었다.
비가 처음 오는것도 아닌데 공단전체에 우산이 없다니 .
올 때 내차에 있는 우산을 안가지고 온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제법 세찬 비를 자주 맞으니 덩어리가 축축해서 약간 한기까지 들었다.
그래서 차에 들어가서 히타를 틀고 한참 옷을 말리기도 했다.
협력업체 사무실에는 몇대의 컴퓨터가 있었다.
사무 여직원 여자들은 전부 대학을 나왔단다. 컴퓨터 자판을 치는 속도를
보니 상당한 수준 같았다.
“컴퓨터 좀 봐도 되요?”
“일 없시요.”
봐도 된다는 말이다.
“인터넷도 되나요?”
“인터넷요?”
잠간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는거 같았다.
“우린 기린거 안해요”
인터넷이 뭐 무슨 나쁜짓인가? 아주 강하게 부정을 한다.
컴퓨터 화면을 보니 아주 간단하다.
아이콘이라고는 딱 네 개가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익스프로러 아이콘도 없다.
휴지통과 탐색기 그리고 또 한개.. 정작 업무에 관계되는 아이콘은 하나 뿐이다. 호기심에 그 아이콘을 눌러보았다.
우리나라 한글 같은 워더 였다.
전부 문서작성 뿐이였고 당연히 업무에 있어야 할 스프레드 시트(엑셀 같은거)
도 없다.
계산도 계산기로 하는 모양이다.
그 이상 더 물어볼려다가 참았다. 내가 생각해봐도 거기서는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도 없을것 같았다.
공단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기 탈랜트 주병진씨가 만든 공장이라면서 그런데로 깨끗한 공장도 있었다.
로만손 시계도 있고 해서 그런데로 서서히 공단의 면모를 가주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넓은 공단에 공장이 들어서 있는 곳은 아주 일부였다.
공단 주변 경계 철조망 너머 조그만 마을이 몇 개 있었다.
봉동마을인가 우리나라 여당대표 어느분이 춤을 추었다고 한참 메스컴을
장식했던 곳은 조그만 창고같은 곳이였다.
거기 한번 가고싶었지만 통로를 막아놓아서 못갔다.
마을의 집은 거의 패가처럼 보였다.
“저기 사람이 사나요?”
“ 아 그럼요 가끔보면 노인들이 나와 있어요. 오늘은 비가와서 안나와있네
전기가 안들어가서 밤에 불도 없어요.“
“그럼 호롱불을 켜나?”
“모르지요. 밤에 보면 호롱불 빛도 없어요.”
자세히 보니 정말로 전선줄도 없었다.
저기에 사람이 산단다.
공단 안에 식당이 하나 있었다.
북한 노동자들은 한 끼 밥값이 반달치 월급이니 먹으러 올수도 없는 곳이다.
값은 오천원 정도고 식단은 우리회사 식단보다는 약간 못할 정도였다.
카운터에 여자둘이 아주 무표정한 자세로 앉아있다.
그 옆에는 당장 들고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담겨있는 식판이 하나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오늘의 메뉴란다.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나중에 저것도
누가 들고 가서 먹겠지.
공단 안에 주유소가 하나 있었다.
주유소에 들어가니 직원이 한참 있다가 나온다.
나는 처음에는 기름을 안파는줄 알았다..
“어디서 왔시우”
아니? 어디서 왔으면 뭐하나? 돈만 받고 팔면 되지.
주유기 위에는 비 가리게도 없어서 주유를 하는데 비가 막 떨어진다.
“기름에 물 안들어 가나?”
“일 없시요”
걱정 안해도 된다는 말이다.
“스른 두릿들 들어갔시요” 32리틀 들어갔다는 말이다.
돈 지불하고 나오는데 차를 막 잡는다.
“어디서 왔시요?”
“DG이라고 했자나요”
“다 적어야 되요”
사 가는 고객 이름까지 다 적어야 한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정말 사회주의의 비 능율성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장면 이였다.
나가는 시간인 2시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1시 반에 줄을 서서 대기해야 된단다.
북한 세관은 정해진 시간에만 통관을 하는 모양이다.
북한 면세점에서 북한 술을 세병 샀다.
산삼주라나? 이름이 좋아 불로초라고 산삼 목욕이라도 한 술인지 모르겠다.
산삼주는 그래도 포장은 깨끗한데 장뇌술은 포장부터가 조잡해서 금방
찌그러진다.
세관 통관은 쉽게 했다.
제일 염려했던 카메라에 대한 점검은 안했다.
그럴줄 알았으면 좀 더 리얼한걸 찍을걸.
겁이 나서 북한 가옥이나 산 등등은 말썽이 생길가봐 못찍었다..
북한 초소를 통과하는데 보니 북한 경비병들도 우의를 입고 서 있다.
한국 초소로 오니 우리경비병들은 선글라스에 우의없이 서 있다
옷 자체가 고아텍스라서 특별히 우의입을 필요가 없는 모양 같았다
외모 부터가 다르다.
자유!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통제된 사회에 있어봐야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할수있을 것 같다.
개성공단은 만약 활성화만 된다면 남북한이 동시에 이익이 되는 곳이다.
한국의 중소 제조업이 인건비 부담을 흡수하지 못해서 외국으로 내몰리는데
만약 개성공단이 제데로 활성화 되면 많은 중소기업이 살아 날 길이 열리리라.
그러나 아직은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는것 같았다.
우선 통행이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이 조금만 이해를 넓혀간다면 통행문제는 아무 문제 될게 없는데 답답할
정도로 경직된 사회의 단면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환경적 인프라는 그런데로 되어있는거 같았다.
전기 , 전화 등은 제데로 되어있었다.
언젠가는 그들도 개방으로 나오겠지.
빨리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2007년 4월 20일
해모수 김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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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 공동 연락소를 폭파한 미련한 북한이
또 서울을 불바다 만든다고 협박까지 한다 정말 용소할 수 없는 공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