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패거리인가? 울타리인가? -설명하지 마라. 친구라면 설명할 필요가 없고 적이라면 어차피 당신을 믿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 엘버트 하버드 -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펼쳐진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한 군사 반란으로 그날의 긴박한 상황을 다룬 영화라는 것은 관람하지 않은 국민들도 이미 잘 알려져 있을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아울러 국민적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은 문화보다는 도리로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더 깊다. 정치에 깊은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주하기 불편하고 힘든 역사적 사건이었기에 이런 대중적인 영화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러한 상황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이 생긴다는 것에 이 영화는 모든 국민들이 보았으면 하는 욕심까지 생긴다. 그날 밤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수도 서울에서 암암리에 9시간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영화, 우리 세 식구는 영화는 끝났는데 쉽게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나오는 군가인 '전선을 간다'를 들으면서 울컥하는 마음으로 자막과 음악이 다 끝난 한참 후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의 결말이 통쾌한 복수나 선의 승리가 아니었다는 부분이 안타깝고 분노를 차오르게 하는 까닭이었으리라. 악이 승리하는 정의감의 진공상태라거나 정의의 상실과 결핍으로 느껴지는 공허감은 사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처참했을 것 같았기에 깊은 슬픔과 비애를 자극하는 영화였다. 12.12 사태의 결과는 12년이란 또 다른 독재의 시간을 만들어냈고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해 많은 무고한 희생이 뒤 따랐으며 그들은 오랜 기간 그들만의 영광의 순간을 누렸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비극의 씨앗을 그린 신군부 정권 탈환을 소재로 한 12·12 사태의 영화가 이제야 나왔다는 사실 또한 그만큼 신군부의 자취가 강했고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1987>을 관람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더듬어지는 대목이 있었다. 영화 ‘1987’은 모두가 제자리를 잘 지켰을 때 벌어지는 영웅담을 담은 영화라면 ‘서울의 봄’은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일어난 비극을 그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국방장관과 군 중요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제 임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불꽃 튀는 9시간의 대립에 군 중요 직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각자만 잘했더라면 군인들이 조국과 국민을 위한 자기 사명감을 끝까지 인지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으리라.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승자와 패자의 삶이 극명하게 갈린 것이 씁쓸했다. 그렇다면 강자의 편에 편승하는 것과 신념을 지키는 것 사이에서 보통사람들은 과연 서슴없이 후자를 선택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사실 지금도 우리나라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의로움보다는 목전에 있는 이익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의 봄>을 관람하면서 절실해지는 생각은 누군가의 잘못된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그러한 그릇된 신념으로 인해 고통 받아야만 했던 무고한 사람들의 반복된 삶은 나라의 대통령이라서 다르고 지자체 의원이라서 다를 바 없으며 비단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누구랄 것 없이 바른 인성으로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잘 살면 세상은 문제없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앞가림은 허술하게 하면서 남의 것을 탐내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패거리 문화를 만들고 욕심에서 나오는 부적절한 것들에 의해 세상은 혼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정한 조건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패거리’를 형성한 후에 자기들 패거리 조건에 맞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봐주고 조건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밀쳐내고 괴롭히는 것을 패거리 문화라 한다면 그 씨앗은 사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있지만 우리 일상의 주변에 다양한 성격의 패거리들이 사람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부패 지수가 악화한 것은 뇌물 수수와 같은 금전적 부패가 아니라 권력과 이권을 둘러싼 각종 이익집단의 패거리 문화를 배경으로 한 불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불만으로 해석된다 하였으니 그 패거리의 성격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 주변의 자잘한 모임이 패거리가 될지 구성원을 보듬어 주고 격려해 주면서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울타리가 될지 잘 판단하고 살아야 할 일이다. 주변에는 핵심인력이 인간관계를 이용하여 세력을 확대하려거나 출세지향적인 인물이라면 젊거나 늙거나 어울림에 있어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어울림 자체만으로도 스스로 패거리의 일원으로써 힘없는 내 이웃의 가해자가 되고 있음을 인지하여야 한다.
|
첫댓글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청산부터 군사독제등등 하나하나 이루어져야 할듯 생각됩니다
실패에는 어리석음도 있을 수 있으며 실수도 있지만 사실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실망의 아픔은 몇 배나 더 고통스러우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선한 사람 곁에 악의의 적은 늘 가까이에 있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모습이며 또한 당연히 내 편일 것 같은 지인으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뜻하지 않은 상처를 받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우리는 사람의 귀함을 여길 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