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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智異山) 산행 및 사찰순례(寺刹巡禮) ⑥
-지리산 법계사(智異山 法界寺)-
6월 18일 오후 5시 정각에 법계사에 도착했습니다. 중산리 버스터미널에 1시 16분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이내 걷기 시작하여 약 6km 정도를 3시간 40분 정도 걸은 끝에 도착한 것 입니다. 법계사 일주문에 도달하니 청량한 기운이 감돌아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듯합니다. 바 로 밑 로타리대피소와는 기운이 완전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어느덧 세 번째 법계 사에 듭니다.
지리산 법계사 일주문
이 법계사는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緣起祖師)께서 전국을 두루 다니시다가 천왕봉에서 약 2Km 아래에 있는 이 곳이 천하의 승지(勝地)로,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로 좌우 가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만 트여 있어 동틈과 함께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 합하는 곳이라 하여 법계사(法界寺)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올라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증샷을 해야죠. ^^
적멸보궁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함박꽃이 활짝 웃으며 맞이합니다.
우선 도착하자 마자 방사를 배정 받았습니다. 비니초님이 법계사에 미리 1주전에 기도를 예약 했기에 침식문제는 일단락 된 상태였습니다. 예약할 때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 보니 그것이 아니고 한산했습니다. 봉정암과 같은 상황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봉정암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습니다. 기도를 온 사람은 우리 일행을 빼면 불과 몇 명에 지나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연 숙소는 널널했습니다. 보살과 거사 숙소가 확연히 나뉘어져 상호 '접근불가'입니다. 숙소 대중방은 불을 넣어 뜨근한 상태이고 함께 잘 사람은 정파님과 오군, 그리고 전주에서 왔다는 청년 1명이 고작이었습니다. 옆에 화장실과 세면장이 잘 갖추 어져 있어 공양 전에 말끔히 목욕재계하고 공양을 들었습니다.
공양시간은 5시 30분부터이고 저녁예불은 6시 30분이었습니다. 여기의 공양은 사찰음식으로 오신채가 전혀 없어 정갈하고 맛이 있었습니다. 봉정암에 비교하면 여기는 호탤식이라고나 할 까요? 특히 질경이 장아찌는 처음 먹는 것인데 참 맛이 있었습니다. 인근에서 채취해서 담은 것이라 합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보궁이란 사리탑(舍利塔)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져 있어 상징적으로 보좌 (寶座)만 있을 뿐 불상을 모시지 않은 법당을 말합니다.
적멸(寂滅)이란 미혹(迷惑)한 세계를 영원히 떠난 경계로 열반(涅槃 Nirvāna)을 말합니다. 열반 의 경계는 무상(無上)의 즐거움이 있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합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 음을 얻으신 장소이며, 특히 이곳에서《화엄경(華嚴經)》이 설해져 를 보리도량(菩提道場) 혹은 적멸도량(寂滅道場)이라고도 합니다. 이 적멸도량은 인도 마가다국 가야성 남쪽 니련선하(尼連 禪河) 근처의 보리수하(菩提樹下)를 적멸도량이라 합니다.
보궁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고 불좌(佛座)만 놓여 있습니다.
공양 후 법계사에 처음 오신 정파님과 오군을 먼저 적멸보궁으로 안내하고 간단한 설명을 마치 고 오군에게 절하는 법을 가르친 다음 삼배를 드렸습니다.
법계사 연혁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해발 1450m) 위치한 법계사(法界寺)는 신라 진흥왕 5년(서기 544년)에 인도에서 건너오신 연기조사(緣起祖師)께서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여 창건하셨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퇴한다는 전설 때문에 고려말 왜적 아지발도에 의해 소실되 었던 것을 조선 태종 5년(서기 1405년) 을유년에 벽계정심(碧溪正心)선사께서 중창하셨다.
그 후 임진왜란과 서기 1910년 한일합방때 또 다시 왜인에 의해 불타고, 1938년(무인년)에 청 신녀 신덕순씨에 의해 중건되었으나 6.25동란 때 다시 화재를 당하여, 그간 초라한 초옥으로 3층석탑을 지켜오다 불자와 신도님들의 발원으로 현 대웅전과 산신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 고 있다.
옛 유물로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인 3층 석탑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불기 2536년 법계사 주지 합장』
어스름이 내린 사리탑
법계사 삼층석탑 (法界寺 三層石塔) 보물 제473호
이 탑은 법계사 유일의 문화재요 보물로서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위치한 법계사 유일의 문화재요 거룩한 성보(聖寶)입니다. 탑에 대한 안내문을 옮겨 봅니다 한 이형석탑이다. 기단부는 자연암반의 윗면을 삼단으로 가공하여 암반을 수평으로 고르 고 그 위에 몸돌을 얹었다. 자연암반을 기단석으로 이용한 예는 신라 이래로 유행하였는 데 이 탑처럼 하부 기단석을 모두 생략한 예는 많지 않다.
지붕돌은 두텁고 지붕주름은 각 층이 삼단으로 되어 있으며, 후대에 만들어 올린 것으로 보여지는 포탄형의 석재가 상륜부에 얹혀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과 만든 수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석탑의 높이는 2.5m이다.
법계사는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삼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이런 형태의 탑은 설악산 봉정암 불뇌탑과 비슷함을 봅니다. 그리고 이 탑은 일본의 후 지산과 일직선상에 있다고 합니다. 일본이 쇠말뚝을 박고 절을 불태우면서도 사리탑을 그냥 놔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사리탑앞에서
사리탑 앞에 있는 큰 바위돌.
전면에 무슨 글자가...
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자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대략 몇몇 글자를 보니 지리산 법계사의 사 적에 대한 글인 것 같습니다. 글자 중 지리산(智異山)이란 글자도 보이고 방장산(方丈山)이란 글자도 보입니다. 특히 "1938년(무인년)에 청신녀 신덕순씨에 의해 중건되었으나..." 하는 법계 사 연혁에 나오는 신덕순보살에 대한 '청신녀(淸信女) 女史신덕순(女史申德順)'이란 글자도 어 렴풋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글자를 새긴지는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내려다본 적멸보궁
사리탑과 바위 사이에 극락전이 보입니다.
극락전은 참배만 하고 사진은 담지 않았습니다. 전에 자세히 담은 바 있어 생략했습니다.
산신각
지리산 산신(山神)
지리산 여산신(女山神) 마고선인(麻姑仙人)
지리산에는 노고단(老姑壇)이란 것이 있는데 신라의 화항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塔)과 단(壇)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老姑)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다는 것에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그 노고(老姑)할머니가 여기 모신 산신일 것입니다. 그런데 노고는 바로 마 고(麻姑) 선인(仙人)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옮겨 적어 봅니다.
지리산 산신(山神) 마고(麻姑)할머니 이야기
『마고(麻姑)라는 말의 기원은 마구, 우마이, 할미 곧 창조주를 의미한다. 중앙아시아의 고대 투르크의 여신 우마이(땅을 관장하는 생명의 여신)에서 기원 되었으며, 몽골북부 흑해 바이칼 호수의 여성 무당인 어마이, 오마이, 우다간에서 왔으며, 우리 말은 할미에 해당한다. 인류역 사학자에 의하면 약 1만 4천 년 전 한 차례 기상 대이변 이후로 모든 생명이 사라졌으며 마고이 외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의 뜻에 따라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책, 신라시대의 박제상의 '부도지(符都 誌)'에 의하면 마고성(麻姑城)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고 천부(天符)를 받들어 선천(先天)을 계승했다고 한다. 마고는 선천(先天)의 남자로 후천(後天)의 여자로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았고, 이 두 딸이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精)을 받아 결혼하지 않고, 각각 황궁(黃穹), 청궁(靑 穹), 백소(白巢), 흑소(黑巢)를 낳아 황인종, 청인종, 백인종, 흑인종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마고의 뜻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과 같은 사람, 약 일만 년 전 요하강과 동북아의 문화를 꽃피웠던 주인공인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어머니이다. 마고가 사는 마고성은 북동쪽으로 천 산산맥(히말라야산맥)을 통해 중국과 인도로 접하고, 남서쪽으로는 율라이만 산맥과 이란 고원 을 통해 메소포타미아와 연결되어졌다고 한다.
마고할머니는 크고 위대한 인물로서 마고(麻姑, 마, 할머니)란 [마]의 땅의 여성 지도자를 뜻하 는 말이다. 삼베를 만드는 마(麻)는 마고성의 중요한 식물 중 하나여서 [麻(마)]라는 이름이 붙 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수의로써 삼베옷을 입혀 매장하는 전통이 있는데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麻(마)]자의 고대한자의 형상은 두루마기를 입은 지도 자의 형상으로 그 지도자가 입은 옷이 삼베옷이었던 듯하다.
마고의 장녀격인 황궁(黃穹)은 마고성을 떠나 황궁씨(黃穹氏)족을 이끌고 북동쪽으로 향하여 양 고산(백두산)부근에 안착했다. 그 후 약 1,000여년이 지난 뒤, 황궁씨의 자손 환인씨(桓因氏)가 천산산맥 가운데 영현산 부근에 환인국(桓因國)을 세우고 그의 자손인 환웅씨(桓雄氏)가 부근의 씨족사회를 배달족으로 융합하여 환웅국(桓雄國)을 세웠다고 한다. 마고시대는 고대의 모계 씨족시대를 상징하지만 환웅씨 이후부터는 부계 씨족사회를 상징한다고 한다.
마고는 12지파의 후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 나라를 세우고 번성하여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지리산(智異山)으로 들어가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지금도 지리산 천 왕봉(天王峰)에는 마고성모(麻姑聖母)를 모시는 사당이 있으며, 지리산 골짜기마다 봉우리마다 할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고할머니가 가지고 놀았다는 마고할머니의 5층 공기돌바위. 말 바위와 형제바위, 마고할미가 참았다가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발이 바위를 파서 자취가 남아 있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또한 마고가 지리산 산신이 된 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다. 마고는 마고성에서 인간을 보살피 다가 반야(般若)라는 천신(天神)과 사랑을 나누지만 반야는 매정하게 천상으로 올라간다. 마고 는 오랜 세월 옷을 지으며 반야을 기다렸지만 반야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가 어 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을 본 마고는 후손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반야를 쫓아 지리산에 오르지만 반야는 그녀를 외면하며 사라진다. 마고는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지리산의 성모신 (聖母神)이 되었다고 전한다.』
-정호선(15대 국회의원)님의 글을 옮겨 적음-
☞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자를 병기했습니다.
용왕탱화
저녁예불 전에 전각을 두루 살피고 다시 보궁에 들어 저녁예불에 동참 했습니다. 동참 대중을 보니 우리 다섯 명 외에 총 여섯 분 정도 였습니다. 법계사 대중도 포함된 상태입니다. 참으로 조용한 산사의 예불이었습니다. 천하의 명산 지리산 천왕봉하 법계사 적명보궁에서 우리님들 과 예불하고 기도하니 참 좋았습니다. 천수경부터 이어진 예불은 약 1시간 반 정도 이어졌는 데 이 중 석가모니불 정근이 40여분간 계속되었습니다. 정근하면서 108배도 올리고 기도하엿 습니다. 물론 우리 향불방 여러분들에 대한 기도도 잊지 않았습니다. 늘 사대강건(四大强健) 하고 육근청정(六根淸淨)하며 도업(道業)이 새롭기를 합장발원하였습니다. 또한 향불교 회원들 은 모두 부처님 정법을 공부하는 불자로 오시고 향불교가 화합속에서 발전하는 쉼터가 되었으 면 하는 바람을 가졌습니다.
종무소와 공양간 숙소가 있는 건물
8시쯤 저녁예불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보다는 내일 긴 산행을 위하여 미리 물병에 산신각 밑의 법계사 약수를 다 채우고서 여기 근처 빈터에 정파님과 더불어 잠시 담소하며 앉아 있노 라니 어느 곳에선가 부엉새가 웁니다. 음력으로 5월 17일이니 일기가 쾌청했다면 교교한 달빛 이 산사의 밤을 그윽하게 비췄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흐려 있으니 아쉬웠습니다. 내일의 천왕봉일출 전망이 어두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마고산신으로 하여금 구름을 밀어내게 하신다면 천왕일출 광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한편 비니초님은 법계사 공양주 등으로부터 법계사에 범종이 없어 불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범종불사에 동참할 뜻을 비추기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범종은 1인당 10만원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두 구좌를 신청했습니다.
보화님과 비니초님은 숙소로 들어가 종무소식이라 우리도 숙소로 돌아와 방을 깨끗이 훔쳐낸 다음 자리를 폈습니다. 큰 방에 달랑 넷이 있는데 tv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달리 일찌감치 자리 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재승군이 키득키득하며 웃는 것이었습니다. "왜 웃느냐?"고 물으니 손락으로 가르키는데 보니 방문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크고 작은 나방들이 방밖에서 방문을 긁 고 있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굉장히 우스웠던 모양입니다. 재승군은 나방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웃음이 났던 모양입니다. 빵 터졌습니다. ^^ 더구나 방안에는 큰 나방들이 들 어와 종횡무진 비행하고 있으니 웃음을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 이지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방안에 거대한 동물이 있는데 저 나방들도 우리들이 궁금해 호기심이 났던 모양이네. 저 비행나방도 불만 끄면 조용할 겁니다. 자, 이제 내일을 위해서 잡시다."
정파님도 "여기가 절이니 살생할 수도 없고..."
그런데 거의 아홉 시가 가까워 올 무렵, 비니초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용인즉 내일 새벽 산행은 3시부터이고 위반시 벌과금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2시에 기상하여 세수 를 한 다음 2시 반부터 움직이려 작정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람을 두 시 반으로 수 정해 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통 잠이 안 옵니다. 불을 끄니 비행나방도 방문 밖의 나방도 적 멸의 세계로 빠져 들었습니다.
☞ 다음은 제7부 천왕봉(天王峰)에 오르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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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고'의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재승군, 다시봐도 참 선하게 생겼어요 나방이 그리 많은 건 처음인가요 새벽 산행을 위해서 잠을 좀 청하셔야 할텐데 잠이 오질 않으시니 어째요
지난 번에도 한 번 올렸지만 못 한 번 지나가면 못 보기 때문에 다시 마고에 대하여 올렸습니다. 나방이 무척 많아 도심사람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할 _()_
도시에 살면 보기 힘듭니다. 산에는 각
것입니다. 잔 것 같지는 않은데 시간은 간 것 같아 시간을 보니 12시경... 집에서는 잘 생각을 슬슬할 때입니다.
그래도 누워 있다는 자체로 피로회복은 다 된 것 같았습니다.
마고 의 이야기는잘읽었읍니다 언제다녀왔는지 기역이가물가물하내요
마고의 이야기는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마고의 이야기는 신라 때의 박제상이 썼다는 부도지(符都誌)에 _()_
나옵니다. 지리산을 오래 전에 다녀오셨군요.
향불교 회원님들 사대강건하고 육근청정하시길 합장발원 했습니다.함께 산행 동참 했던
오재승군도 원하는 학업을 이루어 가길 바래요_()_
이번 지리산 산행을 통하여 기도하고 숙박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_()_
그런데 이 법계사에는 우리가 모르는 비경이 두 군데 있다고 하는데 이는 주지 스님을 통하지 않고는
가 볼 수 없는 곳이랍니다. 언젠가 이박한 연후에 스님과 차를 나누면 가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tv에서 보는 1박2일 보는 느낌 입니다. 항상 모두를 위해 열심히 기도 하여 주시는 백우님 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정말 1박 2일이네요. 함께하셨더라면 멋진 추억이 되셨을 텐데... _()_
모두를 위한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 됩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합장합니다.
1명더 추가 드려도 되느냐고 법계사에 전화 드렸을때 사람이 엄청 많다고 하셨는데, 가서 보니 우리 일행 다섯명과 당일 예약하고 온 총각 한명이었습니다. _()_
1당 100이었던 모양입니다. 왜 허언을 하셨을까.... 사람이 야예 없기를 바라셨나... 사람이 적으니 호젓해서 좋았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