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nd
눈이 하얗게 내린 어느 날, 중년의 노신사가 문득 제과점 앞을 지난다. 그 제과점안에 흰 모자와 흰색 T셔츠, 파란색 앞치마를 두른 어여쁜 아가씨가 계산대 앞에서 손님에게 케잌을 포장해 주고 있다. 해맑게 웃는 그녀, 그녀를 보며 중년의 노신사도 같이 웃는다. 그 노신사는 어느 덧 20살 때 순수했던 자신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도 떠올려 본다.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그녀, 그 제과점은 30년 전, 그 노신사가 일했었던 곳이다.
‘회장님,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옆에 서 있던 비서가 노신사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다시 한번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돌아서며 그 곳을 바라본다. 검은 색 자가용에 몸을 싣는 노신사,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그 제과점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자동차는 멀리 사라진다. 아련한 추억만 남긴 채….
나만의 해피 엔드를 꾸며보았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 이렇게 멋지게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때때로 이런 망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이런 애뜻한 망상에 한 번쯤 빠져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헤피 엔드를 꾸미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중년의 노신사 토토처럼 키스장면만 모아 놓은 필름을 보며 사랑의 애절한 그리움으로 눈물짓는 장면, 혹은 <타이타닉>의 마지막처럼 로즈가 꿈속에서 도슨을 만나는 가슴 벅찬 사랑의 재회를 갖는 장면, 두 영화의 엔딩은 정말 보는 사람의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나 진짜 인생은 이런 헤피 엔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은 너무 각박하고 치열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처럼 아름답고 즐거운 장면만 게속해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때로는 헛된 죽음 앞에, 때로는 무미건조한 생활 앞에, 우리는 자주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항상 영화나, 소설의 결미를 보며 자신만에 행복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가슴 속에 묻어 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 때문에 울고, 정말 즐거운 기억이 있었다면 그 즐거운 추억에 웃곤 하는 게 삶이며 인생이다. 우리는 그런 삶 속에서 또는 그런 추억 속에서 얼마나 많은 헤피 엔드를 만들었는가? 나만의 해피 엔드를 꾸미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참 열심히 살고 있다. 비록 그런 헤피 엔드에 N․G가 날지언정 우리는 100%의 O․K 컷을 바라고 살진 않는다.
N․G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N.G에 가슴 아파할 필요는 없다. 우리 자신만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만 만족한다면 O․K 컷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