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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암벽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의 노래(엄문형)
# 들어가는 글 ~
우리 홈피 메인페이지에 바탕화면으로 보이는 토왕폭상단이 이제 재현이에게는 남다르게 다가 올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알파인의 요체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리고 오르고 싶어했던 목표를 하나 이룬셈이되고,
무엇보다 이제 재현이도 토왕등정자의 명단에 이름 석자를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는 토왕을 보고 오줌을 누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ㅋㅋ
한땀한땀 옷을 꿰메듯 한바일 한바일 한스텝 한스텝 꼬박 한나절 쉼없는 오름짓으로 올라선 토왕의 정수리~
하늘로 이어질 것만 같은 하얀 얼음기둥 위에는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 옷이나 유토피아나 아님 적어도 요델의 맹아였던
엄홍석,신현주, 송준호의 케른이라도 있어야지만 그 격에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을건데,
어두워져 오른 토왕의 정수리는 칠성골에서 내려오는 조그만 계곡만이 존재하고 있었음에 감동이 덜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항상 모험 뒤에는 허망함이 따르는 법, 하지만 우리에겐 말로 다하지 못하는 산쟁이의 의리가 그 위에 우뚝 서있음을 안다.
# 토왕을 향한 떨림.
지난해 마지막 날 계획되었던 설악산 등반계획이 결빙상태 불량으로 무산되면서,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재현이의 제안을
자연스레 수용하게된 나로서는 이번 등반에 많은 것을 계획했었다. 올해 같은 추위는 좀해 만나기 어렵고 설악의 골골마다 얼음 빙폭이 우뚝 서있을 것이기에 설악산 4대빙폭 중 적어도 2개는 등정을 하리라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물론 이를위해 12월부터 얼음을 위한 몸 만들기가 시작되었고, 밀양얼음골의 선녀폭을 삼일, 신불산 금강폭,
청송 얼음골 인공빙장에서 이틀해서 지난해와는 달리 자연빙장과 인공빙장을 오가면서 6일을 리딩과 벽상에서
스크류 작업에 익숙하게 몸을 적응시켰다.
이후 출발 전주 영동송천인공빙장에서 이틀을 보내면서 첫날 사과봉에서 감각을 다듬고 다음날 포도봉 긴루트를 오르며,
체력적인 점을 최종점검하고, 이정도면 지지난해 올랐던 벽정도의 어려움이라면 무난할 것이라고 자족했다.
등반을 떠나는 주 월, 화요일 턱걸이와 지구력 훈련으로 몸을 마지막으로 만들고 휴식에 들어갔다.
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문제와 재현이로부터 분주히 연락이 오가고, 재현이의 푸짐한 식단까지 준비되었다.
이제 출발만 남았다. 목요일 오후 5시 일찌감치 퇴근을 하고 한시간여 장비를 챙기고 저녁을 간단히 먹고 6시가 30분이
다되어 출발을 했다.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벽상에서의 어려움을 자꾸 기억나게 한다.
현풍에서 문제의 차로 장비를 옮기고, 잠시 주유소를 들렀다. 가산 I.C에서 재현이와 제수씨를 만났고 재현이의
원정용 부식카고빽을 차로 옮기니 이제 본격적인 설악원정을 실감케한다. 안전하고 멋진등반을 마치고 내려와야 할텐데~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이번 등반에 대한 이야기랑 이래저래 묵었던 이야기들로 차안에 시끌벅쩍~
죽령터널을 지나 단양쯤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재수, 종태로부터 등반 출정에 대한 안부전화가 오고, 굵어지는 눈발을 걱정하면서 원주휴게소에 들러 음료수한잔을 마시고,
다시 차에 올랐다. 홍천에 도착할 무렵 다행히도 눈이 그치고 졸다 말았다를 반복하면서 미시령을 넘어 설악동에 금요일 00:30분에 도착을 했다. 탐방관리소에 들러 등반허가서를 찾아들고 모텔을 잡아 들어가서 내일 등반할 장비를 셋팅을 마무리하고 재현이의 바일도 다시 튜닝을 해주고, 셋이서 둘러앉아 빵 몇조각에 핏쳐 한병을 나눠 마시고, 3시간뒤인 6시에 기상하기로 하고 3시가되어 잠을 청했다.
# 어프로치~
등반 전의 긴장때문인지 시계를 보니 5시30분에 잠이 절로 깨었다.
다시 잠을 청하다. 6시가 되어 모닝콜이 울리자 재현이가 재빨리 알람을 끄고 이내 잠이든다.
피곤한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게으름을 피우면서 이불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늘 우리랑 등반할 팀은 1팀만 있다니 낙빙도 없을 것 같고 조금 늦게 시작해도 그닥 무리가 없을 것 같은 생각에
한시간이 지나서야 화장실을 다녀오고 모두 깨웠다. 물론 문젠 아직 꼼짝하지 않고 이불을 덮어쓰고 있다.
재현이 왈~
형님시계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비몽사몽과 피곤함을 대신이야기 한다.
오늘의 아침 메뉴 전복죽 재현이가 분주히 준비하고,스푸를 만들면서 물량이 맞네 안맞네 스푸가 준비되어 보온병에 수푸를 담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면서 빙벽화 끈을 묶었다.
설악동 B지구를 지나 A지구로 가는 토왕전망대가 있는 길에서 토왕을 보니 그 얼음기둥의 폭이 엄청나게 넓고 크다 예년같지가 않다.
혹~ 어떤 변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내심 걱정도된다.
- 캔싱턴호텔 앞 08:30분에 주차를 하고 언제 이자리로 돌아올지 기약없는 토왕을 향해 배낭을 짊어진다.
이때만 해도 오후 6시 늦어도 8시까지는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캔싱턴 호텔앞 설악골 건너 지름길을 통해 미리네집을 지나지만 이른 아침이 아님에도 겨울이라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토왕골로 접어들면서 추위에 비해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비룡폭포와 토왕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잠시 휴식을 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뗑겨볼 요량으로 좀더 쉬었다 갔으면 하는
문제의 바램을 뒤로하고 이내 오른다.
비룡폭포 우회길에서 올려다본 토왕의 상단은 그 동안 보았던 모습과는 얼음의 폭과 두께가 판이하게 달랐다.
최근 수년간에 보았던 얼음의 폭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고 한눈에 봐도 적어도 두배정도는 더 넓어져 있었고 그 위용 또한 대단했다.
비룡폭 위 토왕골 또한 눈이 많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러셀이 되어 있어서 어프로치에 어려움은 없었다.
Y계곡 진입직전 토왕 상,하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오늘 저기를 우리가 오른다.
Y계곡에서 본 토왕하단에서도 아직 오늘은 먼저 오른 사람이 없음을 알았다.
오늘 등반허가를 받은 팀이 우리와 한팀이 더 있다고 했는데~
등반을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Y계곡이 끝나고 토왕좌골과 토왕골이 합수되는 지점 초입부터 얼음이 붙어있다.
예전엔 눈이 많이 쌓여있어 토왕하단까지는 워킹으로 올랐지만 오늘은 여기서부터 등반을 시작해야지만 되었다.
장비를 차고 빙벽화 끈을 다시 바짝 조여매고 하단까지 무확보 등반과 몸빌레이로 하단으로 진입했다.
(여기서 부터 변수가 발생 : 등반시간이 조금은 지체되었다)
고뇌에 찬듯한 재현이의 모습이 멋지다. 오늘 등반에 대해서 잠시 묵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Y계곡 진입직전에 노적봉을 앞에두고 토왕폭 상하단을 배경으로 담았다.
토왕상단의 얼음폭과 두께가 등반에 있어 예상외의 변수로 작용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Y계곡 끝나는 지점에서 토왕폭 하단으로 진입하는 지점에도 눈이 없고 얼음 사면으로
이루어져있어 여기서부터 등반이 시작되어 예상하지 않았던 등반시간이 소요되기 시작했다.
# 토왕폭 하단 등반 (10:30)
하단 오른쪽은 고드름이 아직 아래로 향해 키를 키우고 있고 중단은 물기에 번들번들하고 인공빙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버섯들로
무수히 이루어져 있다. 수량이 많은데다 날씨가 추웠던 관계로 물이 떨어지면서 물보라와 함게 빙폭이 결빙되었음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하단이 이 정도라면 오늘 등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를 것 같았으면 조금 서둘러 올라오는
것인데 서둘러 기어랙을 차고, 재현이에게 기록을 맡기고 문제의 확보로 출발지점 스크류를 하나 꽂고 벽상으로 붙었다.
이제부터 나자신은 온전히 나만이 보호할 수 있다.
집중하고, 침착하게, 서두르지 말고, 과감하자, 조그만 버섯얼음이라 타격포인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버섯이 스탠스를 제공해 밟
고 올랐다. 스크류 네개를 돌려심고 반정도를 올랐을 때, 바일이 회수되지 않아 재현이가 준 빨간색 짧은 스크류를 하나 더 심고 바일
을 회수하고 나머지 30여미터를 올라 하단 80미터를 종료했다.
강빙이라 스크류 2개로 확보지점을 만들고, 상단을 쳐다보니 얼음이 무지 겁나게 바딱 서있다.
예전에 그 얼음이 아니다. 동대테라스 윗부분 조차도 어렵게 결빙되어있다.
저절로 서둘러야 겠다~ 그렇지 않는다면 밤늦게까지 고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든다.
무전을 보냈다. 세컨 문제출발, 재현이를 달 로프를 매달고 스크류 회수를 하면서 올라온다.
마음이 급해지는 나에 비해서 아직 둘이는 태평인 것 같다. 세컨과 쓰드는 푹덕푹덕 찍으면서 시간을
최대한 세이브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운동을 게을리한 것을 벽은 알고 있다. ㅎㅎ
세컨으로 토왕하단 진입한 문제 난 하단 초입바위위에 대기하고 있는 중이다.
하단등반을 위해 장비를 세팅하고 오늘 토왕정상까지 한번도 풀지 못할 자일을 벨트에 묶는다.
하단 출발과 동시에 추락에 대비해 첫 스크류를 얼음의 밑뿌리에 하나 돌려 넣고 있다.
# 토왕폭 중단 등반
문제가 올라오자 얼었던 발을 좀 풀고, 재현이 확보를 맡기고 설사면을 타고 상단 진입부분을
무확보로 100미터 자일 끝까지 올랐지만 상단 스타트확보지점까지 턱없이 모자라다.
올해는 수량이 많아 예년과 다르게 상단 스타트지점 한참 아랫부분까지 결빙이 되어있어 50여미터 등반을 다시 해야지
상단 출발부분까지 전진이 가능하게 되어있었다.
할 수 없이 짧은 스크류를 하나 꽂고 로프를 고정해두고 다시 내려오니 재현이가 하단을 마치고 올라와 설사면을
올라온다. 조금 지쳐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마지막으로 확보를 보던 문제를 끌어올리고, 서두르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 모여서 설사면에 끝나는 지점에 모두 다시 모여, 따스한 스푸로 긴장을 푼다.
어두워 지기전에 상단을 마무리 해야되는데, 적어도 동대테라스에 5시까지 모두다 올라야 하고 내가 어두워 지기전에
정상을 올라야 한다는 시간적인 계산이 머릿속을 맴돈다. 스푸잔을 전하고 이내 설사면을 걸어올라 상단 스타트지점을 향해
다시 한피치를 끊기 위해 빙사면을 올라붙었다. 이런 마음을 알았던지 문제가 자일 한동을 따로 묶고 왼쪽 사면으로 올라붙었고
시간을 벌수 있다는 생각에 난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양쪽 벽과 설사면으로 인한 착시였음을 이내 알고 상단스타트지점까지 얼음의 길이와 위험성을 확인하고 멈추게 하고 ,
오른쪽 얼음을 통해 스타트지점까지 50미터의 등반과 트레버스를 하여 출발지점에 도착 로프를 고정하고,
재현이에게 베이직등반을 콜싸인으로 날리고, 문제가 대기하는 지점까지 등반을 한후 남아있는 로프를 문제에게 던지고,
둘다 베이직으로 등반으로 상단 스타트지점에 모였다.
(중단에서 상단 진입부분 의외의 결빙으로 상단 스타트지점까지 등반을 하게 됨으로 2시간 정도의 가외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토왕하단을 마치고 중단에서 상단 스타트 지점으로 이동하는 지점 예년엔 여긴 눈사면으로 걸어올라와 불과 5미터 정도만
얼음으로 올라서면 되었으나 보시다시피 수량이 많고 눈이 많이 없는 관계로 50미터 가량을 등반해야지 상단 스타트지점에
도착 할 수있었다.
# 토왕폭 상단 등반(pm:02:01)
좁다란 확보지점을 벗어나 12개의 아이스스크류를 차고 등반을 시작한다.
무수한 버섯으로 이루어져 있는 얼음이라 실제 붙어보니 90˚이상의 경사를 느끼게 한다.
바일의 타격포인트를 찾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마치 인공빙장의 버섯얼음 투성이를 오르는 기분이다.
그래도 아래는 문제와 재현이 둘이있으니 적적하지는 않을게다.
둘이서 쉴새 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문제에게 빌레이 집중 콜싸인을 보낸다.
아직 빌레이어와 의사소통이 되는 거리에서는 크럭스를 만나게 되면 빌레이어와 콜싸인이라도 되지만
높이가 높아질 수록 크럭스를 만난다 하더라도 모든걸 나에게 맡기고 마음을 비운다.
이 두바일에 내 모든게 걸려있다. 나를 믿고, 바일을 믿자 바일만 터지지 않는 다면 힘은 충분하다.
침착하게 한 크럭스, 크럭스를 넘어가자~
할 수있다!!! 할 수 있다!!!
벽상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낄때 버릇처럼 되네이던 주문을 외운다.
스크류 2개를 심고 15미터 이상의 거리를 올랐다.
얼음은 나를 괴롭히기나 하려는 듯 직상의 버섯얼음 지대에서 다시 들쑥날쑥한 침니로 내몰고, 타격지점을 찾기 위해
오른쪽 바일에 왼손 바꾸기를 한 후 오른쪽 어깨에 걸었던 바일로 먼거리의 타격을 하는 순간 낙빙이 내 가슴을 치고 아래로 흐른다.
급히 낙~빙!!을 외치지만 밑에 있는 둘에게 피해가 있었음을 아래로 쳐다보면서 고함을 쳐보니 무심한 낙빙은 눈이 달렸는지 그들을
피해가지는 않았나 보다. 낙빙에 어깨, 팔 언저리에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일단은 등반에 지장이 없을 정도라는 것을 판단하고,
등반에 몰입한다. 오른쪽 얼음지대 표면으로 흘러 내리는 물줄기들이 바람을 타고 마치 굵은 스프레이가 되어서 잔고드름 사이로 흩날
리면서 내게로 날아온다.
이제 나머지 55미터 모든걸 쏟아 붓는다.
차근차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스크류를 돌려 넣고 40여미터를 오르니 이제 문제와 재현이는 보이지 않는다.
확보용 스크류 3개를 제외하곤 이제 나머지 스크류는 4개 남았다. 지지난해 종태와 오를때면 이제 동대테라스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보여야 하는데, 아직도 벽은 꼿꼿히 등허리를 낮추지 않는다. 처음으로 길다라는 말이 나도모르게 튀어나온다.
예전에 분명 이렇게 길지 않았는데~ 얼음이 곳추서는 바람에 어디쯤이 동대테라스인지 알수가 없다.
오른쪽 빙면은 물이흐르고 아직도 빙표면으로 결빙이 계속되고있는 터라 테라스가 사라진 것 같았다.
계속된 버섯지대를 오르면서 3개의 스크류를 더 심어넣고 이제 빌레이앵커로 사용해야할 스크류 3개를 남기고 8개의 스크류를 사용했
다. 이제 남은건 단 하나 크럭스를 만날경우 사용해야할 스크류 한개를 가슴에 있는 아이스플룻에 남겨두고 7-8미터를 전진하니
중단에서 바라보았던 동국대테라스 아래 얼음동굴이 보였다.
앞으로 15미터 이내 끝난다.
마지막으로 남은 스크류 한개를 돌려넣고, 차분히 오르니 서서히 곳추서있던 얼음기둥이 테라주위로 오면서 조금 완만해졌으나
왼쪽으로 트레버스이다. 테라스 직전의 오버행 얼음을 넘어서 더디어 동대테라스에 도착 길게 숨을골랐다.
그리고 눈위로 뜬얼음의 크랙위에 얼음이 치밀한 곳에 스크류를 하나 꽂고 확보를 한 후 등반이 완료되었음을 무전을 통해 전했다.
(about 3:20)
스크류 3개로 적당한 지점을 찾아 빌레이앵커를 만들고 문제에게 속공등반을 해줄 것을 주문한다. (아마 이때가 03:35)
이내 문제의 등반콜싸인이 재현이의 무전을 타고 흐르고 불안한 자세에서 발에 감각이 둔해짐을 느끼며 한시간여를 당기니
동대 테라스 직전에서 바일의 타격소리가 들리고 노믹바일의 둔탁한 소리를 타고 거친숨소리를 내며 올라왔다.(4:30)
확보지점의 자리를 내어주고 저렸던 다리를 풀고 우모복을 꺼내 입었다.
예전과 달리 등반길이가 길어졌다면서 힘들었다는 말을 연신한다.
재현이 차례다.
어두워지기 전에 정상에 리딩자가 올라야 하는데, 맘이 급하다고 등반이 속도가 붙는 것은 아니기에~
일단은 마음을 놓고 재현이의 투지에 기대를 해본다. 오늘 어렵게 결빙된 토왕에 붙어 다들 고생한다.
하지만 이제 정상이 눈 앞이다. 조금만 힘을 내자...
첫얼음 임에도 스크류회수시간을 감안할 때 문제와 같은 속도로 나름 열심히 올라온다.
동대테라스 전 안도가 되었는지 힘이 부쳤는지 조금 쉰다.
올라오자 서로에게 수고를 전한다.
# 동대테라스에서 정상까지
지지난해라면 이제 정상까지 50미터다 실제 직상거리는 30여미터 그런데 벽이 수직으로 버티고 서있다.
한눈에 봐도 쉬운 벽이 아님을 직감한다. 그렇게 스크류가 많이 들어가는 거리가 아니라 4개정도의 스크류를 챙겼다가
문제의 권유로 여유있게 7개를 챙기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금방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헤드랜턴을 헬멧에 장착하지 않았다.
이것이 얼마나 큰실수였는지 두개의 스크류를 돌려넣고 이내 어두워졌고, 밑에서 비추어주는 헤드랜턴의 도움을 받아 올랐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10미터 이후 남은 직상벽에서 오직 본능적인 감각에 의존하여 등반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 2분의 투자를
그리고 단 10분뒤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어 엄습해오는 추락의 공포를 고스란히 견뎌내면서 숱한 타격을 했어야 했으니, 이번 등반 중
가장 힘들고 지루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상단의 벽이 난이도가 더 쎄어졌고 길이도 길어졌다고 하지만 이로인해 30분이면 충분히 오르고도 남을 벽을 오직 감각에만
의존해 장장 1시간여의 사투를 벌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10미터 가량 올랐을 때 왼쪽 손이 얼어 감각이 없어져 한참을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녹이다 다시 등반이 시작되고, 불빛이 나를 비추지 못하는 거리에 도달하자 발 또한 감각이 없어진다.
이후 나머지 직상벽은 생존을 위한 사투에 가까웠다. 오직 손에 전해지는 바일의 느낌만으로 나머지 벽을 올랐다.
직벽을 넘어 슬랩에 조차 어렵게 마무리하고 토왕정상을 상징하는 전나무에다 로프를 걸고 평안한 자세로 등반완료를 무전으로 날리고,
가장 타이트하게 확보를 보니 심리적으로 편안했던지 자일을 통해서도 잘 올라 온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문제의 헤드랜턴 불빛이 토왕정상을 향해 솟구친다.
이제 불빛을 만나는 구나... 그리고 9시간가량 묶여져 있던 로프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빙벽화 끈을 너슨히 풀자 발에 피가 돌면서 얼었던 발도 풀려진다. 우모복 위로 쟈켓을 덧입고 전나무가 아닌 확보용 스크류를 꽂아
후등자가 텐드럼 당하지 않도록 확보할 것을 주문하고, 천천히 장비 정리에 들어갔다.
튼튼한 확보 탓인지 재현이도 장비정리가 끝날즈음 재현이의 헤드랜턴 불빛이 허공을 젓는다.
홀로 남겨진 동대테라스에서 얼마나 적적했을꼬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생각이 지나갔으리라는 것은 난 안다.
거대한 벽과 빙폭이 주는 침묵과 공포, 단지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건 거대벽에 딸랑 걸려있는 실오라기 같은 로프가 아니라
자일의 정임을~
정상을 넘어오는 재현이의 헤드랜턴과 다 올랐다는 자족이 섞인 미소로 형님 수고하셨습니단 말을 잊지 않는다.
다들 수고했다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고, 정상을 오른자만의 만찬으로 배낭에 있던 스푸를 꺼내고 몇조각의 빵으로 허기를 달랜다.
재현이에게 낮에 바라 볼 수 있는 토왕정상에서의 진경을 못 보여줘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적어도 동대테라스에서 토왕의 위용과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을 충분히 맛 보았을 것이다.
연전에 내가 기록했던 후기에도 있듯 왜 다들 토왕,토왕하는지를 재현이는 이제 몸으로 알았을 것이다.
벽상에서 최소 10시간 이상을 제대로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는 알파인 등반의 극기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서둘러 장비 정리를 마치고 토왕정상에 오른 재현이가 회기를 끄내 포토타임을 가진다.
토왕정상에도 더디어 뫼오름의 회기가 오르고 그 감개무량함을 재현이는 남다른 감정으로 느꼈을 것이다.
# 길고 힘들었던 6시간의 하산길
이제 정상에 섰으니 굴러 내려가도 설악동 까진 3시간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서두르지 않고 포토시간을 가지고 21:00경에 하산을 시작했
다. 예년에 올랐던 하산길로 계곡을 따라 오르다 발자욱이 없어 다시 빽하여 전나무뒤로 난 발자욱을 따라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었
다. 벽상에서의 위험은 없으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가기만 하면된다.
30여분 이상을 내려왔을까 눈이 없어 예전과 같지 않은 길의 느낌, 연전엔 2번에서 3번 정도의 하강과 글리세이딩으로 토왕폭과
토왕좌골의 합수지점까지 1시간이내 도착이 가능했는데 예전과 다른 장소에서 첫하강을 해야했지만 이것이 앞으로 남아있을
8번의 하강의 처음에 지나지 않는 하강임을 우린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내려 올 수록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빙폭이 나타나고 50자 하강이 턱없이 모자라 목이 터져라 콜싸인으로 로프의 거리를 조절하여 몇번
의 하강이 거듭되었다. 처음에는 길을 잘 못들었는 것으로 착각까지 하였으나 적설량의 부족으로 예년에 눈으로 덥혀있었던 계곡이 말
라 계곡이 온전히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하강과 이동 하강의 연속적인 행위가 반복된다.
연전에 있었던 하강포인트~ 이것을 보고 이길이 원래의 길인줄 알 수 있었다.
몇개의 슬링과 오래된 비너를 토왕좌골에 헌납을 했다.
이 그루터기 하강을 끝으로 장장 4시간 30분간의 하산으로 토왕좌골과 토왕골의 합수지점으로 내려오게 된다.
라스트 하강자인 문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토왕폭 하단접근로 빙사면을 타고 올라 데포되어있던 배낭 하나를 찾아서
내려왔다. 이후 장비를 다 챙겨 넣고 토왕폭에 대한 미련이라도 털어내려는 듯 Y계곡과 비룡폭포를 거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다 토왕좌골릿지와 별을따는 소년릿지 사이의 계곡 얼음을 깨고 목마른 문제가 먼저 물을 조금 마시고
다들 겨우 목만 축이고 비룡폭 상단에서 문제가 멀리서 물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계곡은 꽝꽝얼어있고 눈이 덮여 있어 계속하산을
할수 밖에 없었다.
토왕골의 들머리 가게 마지막 끝집인 미리네 집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다음날 02:35분 헐~
많이 되어야 12시나 되었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등반을 시작한 다음날이 되었다.
조금 기다리니 문제 재현이가 도착하고 미리네 집에서 끌어다 놓은 물로 18시간 이상 참아왔던 갈증을 충분히 달랠수 있었다.
한잔의 물로 원기를 회복한 대원들 설악골을 건너고 종일 매달려 있던 배낭과 빙벽화의 끈을 풀고 운동화로 갈아신고 차에 올라
시계를 보니 AM 03:17분이다.
장장 18시간 47분간의 등반이었다 .
겨울등반으로서 이 기록은 좀해서 깨어지진 않을 것이다. 물론 깨고싶지도 않을 뿐더러~
다들 차에서 하루종일 굶주린 배에 뭘 집어넣을지 말들이 많다.
이제 다들 살만한 것이다.
일단 콜라한잔과 2%를 24시 편의점에서 사서 마시니 숨이 턱막힌다.
할매감자탕집으로 들어가 감자탕 大자와 맥주 1병으로 주린배를 채운다..
일단 이번 등반을 자축하는 맥주 건배가 있었으니 이번에도 무사히 토왕폭 등정을 마친 것이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맥주 맛에 살아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느끼게 한다.
근데 둘다 한잔도 하지 않는다 이넘들이 토왕을 오르더니 맘이 변했나.ㅋㅋ
이 감동이 얼마나 오래 남아있을 것인지 지금은 모른다,
또 이 고생이 그리워 지는날 토왕을 다시찾겠지~
그리운 토~왕아!!! 그러면 그때까지 안녕^^*~
- The End-
첫댓글 좋은 등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 만으로로 그 감동과 여운이 계속 남는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진한 추억이 생각납니다. 술이 생각나네,,,
한잔사주십시요...형님 다음에 주간할때요. 요즘 술이 고픈데..... 잘지내시죠...?
언제 기회가 된다면 진한 추억을 안주삼아 그리움의 술잔을 들어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문형형님 고맙구요. 우리가 버리고 온 내 잠금비너 2개 그리고 문제형의 슬링...뒷팀에게는 많은 수고를 들었겠지요.
너무 수고했고 이번 등반을 통해 뭔가 또 다른 남음이 있었을 테고, 네가 평생 추억할 수 있는 등반을 같이 하였음에 행복했었다. 우리가 남의 덕을 입었듯 우리도 적선(積善)을 한 것이지... 그로인해 우리의 산친구들의 노고를 덜 수 있었다면 즐거운 일이고...^^*~
다음엔 더 많은 동생들이랑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첫등반 축하하고 고생 많았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