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왕가 [Habsburg Haus]
합스부르크왕가는 독일은 신성로마 제국으로 불리웠고, 300개가 넘는 작은 영주국가들로 나뉘어져있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도 이 제국의 한 영주가문에 불과했는데요, 오스트리아는 이 가문이 직접 다스리는 영지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수많은 영주국 중 가장 힘 센 영주 7명이 모여서 제국의 황제를 뽑았구요.
근데 1438년 이들 7명의 영주는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황제를 뽑습니다. 바로 프리드리히 3세인데요.
프리드리히 3세
그 아들이 1477년 굉장히 중요한 결혼을 하게됩니다. 아들 이름은 막시밀리안으로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을 합니다. 그녀는 부르고뉴 공국의 공주였는데, 아버지가 그녀 외에 다른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자, 마리는 아버지를 뒤이어 그 부르고뉴 공국을 물려받게 됩니다. 여기서 그녀의 지참금은 바로 자신이 상속받은 부르고뉴 공국이었죠.
근데 부르고뉴 공국이 어디냐면, 프랑스 왕가에서 갈라져나온 공작이 다스리는 곳으로 프랑스 내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곳으로 현재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의 지역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부르고뉴를 지참금으로 가져온 마리 덕분에 합스부르크가는 네덜란드 등을 얻었고
그녀의 아들인 필리프는 어머니를 뒤이어 네덜란드의 지배자가 된 거죠. (아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법이었기에 필리프가 어머니로 인해 네덜란드를 받았았어도 네덜란드 지배 가문은 합스부르크가 된 것.)
마리와 막시밀리안의 아들인 필리프도 결혼을 잘 합니다. 첨엔 그냥 스페인의 공주인 후아나와 결혼한 것이었는데, 결혼한지 얼마 안돼 후아나의 형제들이 차례로 죽음으로써 후아나가 스페인 왕가의 후계자가 되는 행운이 발생합니다.
근데 이 후아나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여자였고 필리프도 일찍 죽어버림으로써 후아나와 필리프의 아들인 카를이 부모를 뒤이어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왕이 됩니다. (이때부터 스페인 왕가 명칭은 합스부르크 가.)
그리고 카를은 할아버지 막시밀리안으로부터 오스트리아 영지를 물려받고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로 선출되게 됩니다. 그리고 스페인 왕으로선 카를로스 1세로 즉위하죠.
이렇게 해서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 스페인, 그리고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까지 이르게 됩니다. 또한 카를 5세의 동생 페르디난트가 헝가리 왕국의 후계자인 안나와 결혼함으로써 헝가리 왕국도 추가되지요.
이런 놀랄만한 합스부르크가의 팽창에 프랑스는 위험을 느끼고 합스부르크를 저지하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왕이던 프랑수아 1세는 카를 5세와 서로 아주 미워하는 사이였고 결투까지 갈 뻔했다고도 하네요.
프랑스 자체로선 합스부르크에 대항해 승리를 했다고 볼 순 없지만 끈질긴 프랑스의 도발에, 그리고 제국 내에서 루터교로 인한 제국내의 분열로 인해 카를 5세는 한 사람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다스리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아들 펠리페 2세에겐 스페인과 아메리카, 네덜란드를, 동생 페르디난트에겐 오스트리아를 물려줍니다. 그렇기에 16세기 후반에 합스부르크는 스페인 계통과 오스트리아 계통으로 나뉘어집니다.
이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가문이었기에 계속 서로 결혼을 하며(사촌끼린 다반사였고 삼촌과 조카끼리도 결혼을 함.스페인 왕가 계보를 보면 왕비들 거의 모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출신입니다.) 어느 한 쪽이 전쟁을 할 땐 도와주는 등 17세기 내내 계속 교류를 하였는데 18세기 들어와서 그만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대가 끊기게 됩니다.
[루이 14세]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왕이 자손 없이 죽자 그 후계자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카를 대공과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 공작 필리프가 물망에 오릅니다.
왜 루이 14세가 끼어들었냐면 루이 14세는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딸이었던 마리 테레즈와 결혼했고 그 마리 테레즈의 혈통으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것이었죠.
스페인 왕위는 루이 14세의 뜻대로 손자 필리프가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로 즉위하는데요, 여기에 오스트리아, 영국, 네덜란드가 반발을 하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은 10년 넘게 이어지는데 결국 스페인의 부르봉 왕조가 허락이 되어 스페인에서 합스부르크는 물러나고 부르봉 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오스트리아계의 합스부르크는 독일 제위를 보유하고 오스트리아와 그밖의 본령외에 헝가리 ·뵈멘 등을 영유하고, 프랑스의 부르봉왕가와 대항하는 동방의 국제적 세력이였습ㄴ디ㅏ. 프랑스와의 대립은 나폴레옹 시대까지 계속되어 나폴레옹과도 시종 적대관계에 있었으나, 결국 패하여 라인동맹 성립을 계기로 신성로마제국의 칭호를 버리고, 1804년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황제라 칭하게됩니다.
19세기에 와서는 프로이센과의 대항에서 패하여 독일 통일의 지도권을 빼앗기고 독일제국의 세력권 밖으로 밀려납니다. 그 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함으로써 1918년 카를 1세가 퇴위하여 500년에 가까운 황제가로서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네이버 검색.
첫댓글 사진이 안나오네여~ ^^:; 사진 까지 같이보면 좋을텐데~;;
이제보일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