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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5회 신라문화제 한글백일장 대상, 장원 수상작품(2017. 10. 14)
◼ 대상(경주시장상) : 운문부문. 대학,일반부. 이 종 훈 (경주시 황성동)
눈물
아내는 커다란 물 부대(負袋)였다.
한 번도 부대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마르지 않는 샘이
틀림없이 있으리라고 그러니
끊임없이 물이 새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렸다.
갓 스물을 넘었을 때
그 부대에서 새어나온 물을
처음 보았다.
보송하기만 하리라고 믿었던
사랑한다는 고백이
젖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고개를 갸웃거린 적도 있었다.
부대 안에서 새어나오는 물은
어느 때는 달콤하다가
또 어느 때는 쓰디쓰다가
또 어느 때는 그저 짜기도 했지만
분명 조금씩 맛이 묽어져 갔다.
그래도 아내는 언제나 커다란 물 부대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편안히 잠든 딸아이 옆에서
희극배우처럼
안경을 삐뚤게 걸치고
얼굴은 잔뜩 찌푸린 채
마른 나뭇가지처럼 쓰러져
아내는,
죽음 같은 잠을 자고 있었다.
아내는 커다란 물 부대였다.
그러나 그 부대 안에는 이제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한 방울의 물까지 다 쥐어짜
다만 바싹 마른 부대로 구겨져 있었다.
깨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내의 앙상한 손을 꼭 잡고
그 밤에, 처음으로
내 몸에서도 물이 새어나왔다.
아, 나도 부대였다.
커다랗고 텅 빈
내 부대를 채워주느라
불쌍한 여자는,
그렇게 많은 물을 흘렸었구나.
그렇게 말라만 가고 있었구나.
l. 운문부문 초등, 저학년 장원 : 서 빈 (용황초등 2/6)
무지개
소나기 내리다 그쳐
딱 마주친 무지개
손이 닿을락 말락 한다.
달려가서 잡아도 뛰어서 잡아도
무지개는 나를 놀릴 뿐
영 잡히지 않는다.
“무지개 한 번 잡아보고 싶은데...?”
난 한숨만 내쉴 뿐
또 달려서 잡고 뛰어서 잡아도
날 약 올리는 무지개
정말 무지개는 심술쟁이다.
l. 운문부문 초등, 고학년 장원 : 김소연 (동천초등 6/5)
강아지
꺼뭉이의 까맣고
깊은 눈 속엔 거울이 있다.
내가 즐거울 때
꺼뭉이의 눈을 보면
장난기 가득한
동글동글한 내 얼굴이
울고 있는데
조용히 옆에 앉은
꺼뭉이의 눈을 보면
슬픈 눈을 한
사춘기 소녀의 내 얼굴이
심심해서 디굴거리다가
옆에 누운
꺼뭉이의 눈을 보면
재미없는 뚱한 내 얼굴이
꺼뭉이의 맑고
동그란 눈 속엔
여러 명의 내가 들어있다.
l. 운문부문 중등 장원 : 이소영 (선덕여중 1/4)
달밤
뜰 가득
맑은 마음 담아 놓고
달님이
담 벽에다 그림을 그린다.
잠이 든 나무도 그려놓고
꿈꾸는 꽃들도 그려놓고
길 가던 바람이 구경하면
그림 속 나무들이 깨어난다.
그림 속 꽃들이 춤을 춘다.
크레파스 없어 색칠 못 하던
달님이 환히 웃는다.
l. 운문부문 고등 장원 : 손보경 (경북외국어고 2/3)
까치집
팔우정 로타리 안전열쇠
스무 해 넘게 그 자리
젊은 부부의 두 평 남짓
자그마한 희망의 까치집
귀를 찢는 소리와
악을 쓰며 우는 아기
앳된 새댁은 울면서 어르고
키 큰 남편은 묵묵히 기계만 돌린다.
새댁이 흘린 눈물만큼
남편의 굳은살만큼
아기는 도담도담 자라나
살포시 둥지를 떠났다.
안전열쇠는 세월의 옷을 입고
부부의 얼굴에도 주름이 졌다.
소녀가 떠난 자리
부부는 옛 추억을 먹고산다.
비바람을 만난 소녀는
까치집이 그리워 운다.
l. 운문부문 대학, 일반부 장원 : 서정림 (경주시 용담로)
눈물
해녀는 젖은 몸으로
자작한 물길을 따라
해변에서 걸어 나왔다.
햇살만 잠깐 받고
도로 물질에 들어가는 모습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리는
한 사람 분의 물장구질과
숨비소리가 부러워 말을 붙였나보다.
물에 잠겨 있다.
숨을 뱉으려 나오면
물을 흘리며
자갈과 모래 위를 걸으면
길이 생기더라고
그 길이 내 길이라고
잔뜩 마른 도시 청년이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오는 물을 맞는다.
한 가득 물을 먹어
질퍽하니 진흙이 묻었을 텐데
걸어가며 만드는 길 자국이
어찌
그리도 맑던지.
l. 산문부문 초등, 저학년 장원 : 임현정 (나원초등 3/1)
별
한 밤중에 쿵쿵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 아빠 동생은 다 잠들고 나는 무서워서 이불을 덮어쓰고 조심조심 나섰다. 또 다시 쿵쿵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작은 별 하나가 울고 있었다. 나는 아기별에게 “여기서 뭐 하니? 너는 누구니?” 하고 물어 보았다. 작은 별은 하늘의 은하수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발을 헛디뎌 땅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작은 별이 불쌍해서 내 방으로 몰래 데리고 들어왔다. 별빛이 너무 밝아 문을 꼭꼭 잠그고 작은 별이랑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작은 별의 이름은 초롱이라고 했다. 초롱이는 밤만 되면 은하수에 와서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 새벽별이 사라지면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울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초롱이가 걱정되어 데리고 나와서 하늘로 띄어보고 던져보고 했지만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돌아가지 못하자 초롱이와 나는 같이 울어버렸다. 시간은 지나 이제 날이 밝으려고 하는데 초롱이 몸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와! 초롱아 새벽별이 사라지면 은하수가 없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초롱이는 얼른 내 뺨에 뽀뽀를 하고 활짝 웃으며 떠올랐다. 점점 더 높이높이 오르다 눈에서 사라질 때쯤 “고마워 다시 또 널 만나러 올게” 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초롱아 네가 너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나는 너무 기뻐, 신나게 놀더라도 나 잊으면 않되, 꼭 다시 만나자.
l. 산문부문 초등, 고학년 장원 : 권태율 (유림초등 5/5)
할머니 생각
“아이고 사부인, 만다고 이마이 보내 셨는교?” 아빠 따라서 할머니 댁과 외할머니 댁을 왔다 갔다 할 때면 늘 이런 전화 통화가 들린다. 할머니가 외가에 무언가 한 보따리 챙겨 보내시면 외할머니도 무엇인가를 한보따리 전해 달라 하신다. 아빠는 그럴 때 마다 “배달하다가 날 새겠니더.” 하시지만 표정은 즐거우신 듯하다. 얼마 전 추석 연휴에는 우리 가족과 양가 조부모님들을 모시고 중국 북경여행을 다녀왔다. 패키지 여행이여서 우리가족외의 사람들도 많았는데 모두 하나같이 사돈끼리 여행 다니시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보기 좋다고들 하였다.
우리 엄마는 나를 임신하였을 때, 유산기가 심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고 했다. 누워서 밥 먹고 누워서 대 소변을 받아야만 했는데 우리 할머니는 인상 한 번 안 쓰시고 엄마를 간병해 주셨단다. 할머니가 그렇게 엄마를 보살펴 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나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다.
엄마가 일을 하셔서 나는 거의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우리 외할머니는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만 으로도 감사하다고 하신다. 맛있는 음식을 하시면 꼭 전화하셔서 “된장 찌져 놨다 여 와가 밥 물래 ?”
소풍을 갈 때면 엄마가 메추리알을 토끼로 바꾸고 유부초밥을 곰도리 모양으로 꾸며서 예쁘게 사주시는 도시락은 뚜껑을 열자마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였다.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나는 맛도 못 본체 사라진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가끔씩 외할머니가 김밥을 싸 주시기도 하신다. 엄마가 사주시는 것 만 큼 화려하고 예쁜 도시락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아 만들어 주셔서 그런지 이 세상 그 어떤 김밥보다 꿀맛이다.
할머니의 정성으로 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외할머니의 사랑으로 내가 건강하게 자랐다. 이제는 할머니들 보다 내 키가 더 크다. 할머니들은 내가 작게 태어나서 크게 잘 컸다며 아주 좋아하신다.
오릉할머니!, 외할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제가 조금 더 커서 어른이 되면 경치 좋은 곳으로 모시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많이 싸 드릴게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l. 산문부문 중등 장원 : 선다윗 (신라중 3/4)
비 오는 날
많은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비 오는 날에는 날씨도 어둡고, 습도도 올라가서 온 세상이 눅눅해 지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또, 비 오는 날에는 옷도 젖고, 우산도 들어야 하며, 차를 타고 내릴 때 너무 불편하다. 아침에 비가 오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다운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많다.
나는 이상하게도 비가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늦잠을 잔다. 다행이 지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늦잠을 자면 아침에 바빠지기 마련이다. 또, 나는 자전거로 등교하는데, 비가 오면 자전거로 등교를 할 수 없다. 등교하기 전부터 자전거를 안타고 가면 다행이지만 이미 등교 했는데 비가 온다면! 최악이다.
그러나 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비가 오는 날은 농작물이 수분을 섭취하는 날이고, 여름에 비가 오는 날은 더위가 씻겨나가기도 한다. 또, 봄에 비가 오는 날에는 송화 가루가 씻겨나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비를 불편하게 생각하지만, 비는 우리들에게 농부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비에 대한 기호도 엇갈린다. 우리 집에서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만 우리 엄마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신다.
비 오는 날에 책상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하신다. 내 친구도 비 오는 날이 개운한 느낌이 든다며 좋아한다. 이렇듯,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두 부류는 서로 잘 이해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세상에 필요하지 않는 것은 만들지 않으셨다. 창조주가 우리에게 비 오는 날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꿈은 정치가이다. 4년 전에 나는 한 대통령의 모습과 삶에 감동하여 그때부터 정치에 마음을 두고 정치가의 꿈을 꾸어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 오는 날과 정치가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특정 정치가에 대한 기호의 선호도가 국민들 사이에 엇갈리며, 정치가를 불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국회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이자는 위헌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정치가는 꼭 필요한 존재다. 정치가 없으면 나라는 누가 이끌 것이며 누가 국민을 대신하여 권력을 견제하고 국가의 예산을 심의할 것인가. 얼마 전, 인터넷을 하다가 우리나라 국회의원 평균 법안 발의 율이 미국이나 영국보다 높다는 통계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보니 비 오는 날과 정치가는 꼭 닮아 보인다. 나도 정치가가 되어 비 오는 날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농작물에게 물을 주는 것처럼, 더위를 씻어내는 것처럼, 송화 가루를 씻어내는 것처럼, 잔잔히 빗소리를 들려주는 것처럼 나라와 국민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 그러나 상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 것이다. 그리고 꼭 나를 싫어하지 않더라도 정치가라는 존재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여겨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농작물에 비 내리는 날과 같이 국민들의 삶에 꼭 필요한 복지혜택이 주어지도록 노력하고, 더운 여름에 비 오는 날처럼 더위를 몰아내고 시원함을 주듯 우리 사회의 적패를 몰아내고, 봄에 내리는 비 오는 날처럼 온 세상에 노랗게 내려앉은 송화 가루를 씻어내듯 부패를 씻어 내리는 그런 정치가가 되고 싶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내리는 비 오는 날과 같은, 그러한 정치가가 되고 싶다.
l. 산문부문 고등 장원 : 임현범 (안동 안동고 1/5)
가을에는
막 이르게 강물을 단풍으로 담근 가을, 그것은 새물내가 난다. 잎 하나하나가 가지마다 열리며, 그것이 풍기는 아찔하면서도 알싸한 냄새. 우리는 그것을 가을이라고 부른다. 시나브로 쌓이는 낙엽 위로 천천히 발걸음을 떼며, 하늘을 바라보면, 햇볕은 삭정이를 태우고 있다. 바짝 마르도록 태우는 것이 아닌, 누르스름하도록 알맞게 태우는 것이다.
무언가를 태우다. 그렇다. 가을은 나를 태우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 서서히 가을바람에 풍화되며 형체를 잃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육체의 무료함은 의지를 곰피게 하고, 마음의 공허함은 정열을 썩게 만든다. 이번 가을은 기필코 스스로에게 꽃을 피우겠다. 하며 덜퍽지게 야망을 가지던 다짐은 그저 건다짐에 불구했으며, 허망하게, 그리고 쓸쓸하게 고요히 가을나무의 그림자 밑으로 사라진 나는, 그저 넋두리만 떨던 삭정이에 불구했던 것이다.
어느새 바깥은 추워지고, 공기를 메우던 바람은 그저 책상 위를 드나들던 더넘바람이었지만 삭정이는 당연히 책을 읽을 뿐이다. 삭정이는 말라붙은 나뭇가지, 그 이름에 걸맞게 짜증 바닥에 딱 붙어서, 차가운 대지의 기운과 따뜻한 독서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떠듬떠듬하게 검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며 하얀 종이 위를 타고 내려갔다. 삭정이는 마지막 보람줄을 읽고 책장을 덮게 되는 때에, 섬뻑 자리에서 일어나 가을나무의 기둥을 타고 올라가 햇빛을 맞는다. 가을 햇볕, 가을 햇빛은 고수련하게도 삭정이의 마음을 아는지, 삭정이를 제 무릎에 배어, 천천히 책을 다시 읽어준다. 삭정이는 햇빛의 자장가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스르르 눈꺼풀이 감기고는, 그대로 낭독의 심연에 이끌려 잠이 들고 만다.
가을이 오기 전의 나는, 삭정이였다. 지금도 삭정이지만 삭정이만큼 살아왔던 삶을 어느 정도 청산했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나는 가을을 갈망한다. 우리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비유를 하지만, 실제로는 독서가 가을의 계절이다. 이미 가을은 잉크 색으로 번지고 있다. 그럼에 사람들은 글을 쓰고 책을 읽어줌으로써 삭정이들을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가을은 삭정이를, 아니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매개체이기에.
우리들이, 사람들이 스스로 책장을 펼치거나 책장을 덮거나 쪽에 갈피끈을 끼우는 행동 그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다. 나풀나풀 불어오는 책의 향기는 우리를 중독시켜, 간잔지런하게 우리의 감정을 간질인다. 또한 그것은 감정이 울긋불긋 색색이 변할 때마다 입술을 달막달막 움찔이게 만들고,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감돌게 해준다. 책의 향기,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냄새, 그것은 삭정이에게 햇빛이 되어주며, 햇볕이 되어주는 하나의 은총이다. 곧 책의 계절이, 독서의 계절이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언한다. 삭정이들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또 하나의 가을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l. 산문부문 대학, 일반부 장원 : 조수영 (경주 황성동)
바닷가에서
경주에 살면서도 감포 바다에 몸을 담그기는 처음이었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주기 위해 큰 마음먹고 감행한 나들이였다. 바다에 가면서 굳이 누벅구두를 신고 온 남편에게서 운전은 해주지만 결코 바다에 들어가진 않으리라는 단단한 결의가 느껴졌다. 이제 기저귀를 뗀 딸아이와 함께 그늘 막에서 느긋하게 닭다리를 뜯기 시작하는 남편에게 찌릿 눈 레이저를 한 번 발사하고 튜브를 밀며 바다로 들어갔다. 튜브에 탄 아들은 한껏 흥에 겨워 손과 발을 동동거렸고 나는 튜브만 믿고 해안선과 수직으로 스무 발짝이나 떼였을까? 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음을 느낀 순간 쓰나미 급의 공포가 몰려왔다. 남편과 딸이 있는 저 평화로운 바닷가로 가고픈 마음과 반대로 바람과 파도가 우리를 바다로, 바다로 밀어 넣고만 있었다.
내게는 일탈이었다. 모험이었다. 오십 가까이 살면서 기억나는 일탈이라고는 고등학생 때 야간자습 빼먹고 ‘천녀유혼‘이라는 영화를 보러 간 일, 서울에서 회사에 다닐 적에 간만에 오신 엄마가 오빠에게만 갈비찜을 주어 섭한 마음에 토요일 오후에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혼자서 ’이 상‘ 이라는 연극을 보러 간 정도이다. 내가 돌아왔을 때도 갈비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찼건만 내 접시에는 무와 감자 뿐 이었다. 지금에서야 아! 내가 갔을 때는 고기가 아직 덜 물러 질겼구나. 이해하지만 그 때야 오로지 섭섭한 마음 뿐 이었다. 엄마에게 섭섭하단 말 한 마디 못해보고 평생을 내 고집 한 번 안 부리고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아이를 핑계로 처음으로 고집을 피워 감행한 바다나들이였는데... 역시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드디어 저 남자가 일어서는구나. 저 망할 놈의 누벅구두를 벗고 달려오는구나 하는 순간 싱겁게도 파도가 우리를 바닷가로 패대기쳤다. 잘 익은 복숭아를 자르듯 여섯 살 어린 피부에 과즙이 맺히듯 핏방울이 자꾸만 맺혀 올랐다. 복숭아 뼈 위에서 무릎 아래까지 길게 난 상처에 차에 있던 구급함으로 간단히 소독만 하고 서둘러 시내로 돌아왔던 것이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해수욕이었다. 벌써 팔 년 전의 일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외치던 ‘다시는 바다엔 안 올 거야! 바다에 와도 수영은 안 할 거야!’ 다짐을 기억하는지 아들이 올해 여름 수련회에서 바닷가를 갔어도 물에는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에 연기처럼 시커먼 근심이 스물 스물 올라왔다. 저 아이도 나같이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바담 풍’ 하드라도 너는 ‘바람 풍’ 하라고 하듯 자식은 나같이 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비록 나는 평생을 안전하고 익숙한 바닷가에 머물며 찰싹이는 작은 파도에 맘이 졸여 저 바다로 못 들어가고 바라만 보고 살았지만 나의 아이는 먼 바다를 누비며 상어도 잡고 참치도 잡고 저 바다너머 이방인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가는 길에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거센 풍랑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 때에도 고개를 들어 광명한 새벽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인간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는 절대자의 보호하심을 믿고 잠시 키를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바닷가에서 아이가 돌아오는 길을 환히 밝혀주는 등대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제45회 신라문화제 한글백일장 대상, 장원 수상작품(2017. 10. 14).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