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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회원님 양이 좀 많으니 천천히 감상하세요.
인왕산에 처음 오르면서 눈에 들어오는것 구멍뚫린 바위..
이 바위가 1.21사태(김신조 일당 청와대 습격사건) 총을 맞은 자욱으로
그당시 얼마나 교전이 치열 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인왕산 성벽과 산정상 모습
인왕산 뒤쪽 방향
인왕산 중간에서 아래방향 풍경 모습
인왕산 정상에서 청와대(사진중앙) 방향 모습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 남산타워 모습
인왕산 정상에서 잠시 쉬는 모습들
인왕산에서 북악산 방향
인왕산에서 하산 하여 윤동주시인의 언덕에 정각쉼터
윤동주의 서시
윤동주 시인의 언덕
북악산 입구에 1.21사태때 교전중 순직한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 그 당시 종로서장 최규식 경무관도
간첩이 청와대쪽으로 넘어온다는 첩보를 접하고 경찰관들을 배치 시키고 검문검색을 하고 있을때
김신조 일당이 검문을 피할수 없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격전이 벌어져 최규식 경무관은 장에서 쓰러지며
청와대를 끝까지 고수(固守) 하라 명령하면서 순직하여 청와대 습격은 불발되고 김신조는 생포되고 28명 사살 1명은 도주하는 전과를 올려 근처에 동상이 있음.
북악산 입구에 창의문
1.21사태때 총탄을 15발 맞아 유명한 1.21사태 소나무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
북악산에서 남산 뱡향
이건물이 그 유명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연회장으로 사용했던 평창동 삼청각 이라고 합니다.
북악산에서 줌으로 촬영한것인데 지금은 일반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악산 4대문 중 북대문에 속하는 숙정문 이라고 합니다.
북악산 마지막 지점 말바위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읇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고 하여 말바위라고 불렀답니다.
청와대 정문으로 경복궁 북문 입구에 있어요.
101경비단 근무 모습. 하얀 복장이 아주 깨끗합니다.
경북궁내에서 본 북악산 모습
경복궁 향원정
국립민속 박물관 지붕 모습
경복궁 경회루 모습
경복궁 근정전 왕이 근무하던 자리
경복궁 근정전 앞 관광객 모습.
안평대군이 꿈꾸었던 이상향 (무릉도원)
아름다운 봄날에 느껴보는 무릉도원 인왕산 올라볼까합니다..
꿈길 거니는듯~~옛날 우리 선조님들의 흔적을 통해서 상상속이지만 잠깐이나마 만나뵐수 있는 시간 되었으면 해서랍니다.
인왕산 정상은 낙월봉이고 지금의 기차바위로 불리는 거대한 회색 바위 봉우리가 벽련봉이랍니다..
안평대군이 꿈 꾸었던 이상향의 세계 구경 한번 떠나봅니다..
한양땅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 인왕산 아래 벽련봉..
지금의 기차바위 아래 지금의 부암동이 내려다 보이는 무계정사 주변이란 사실 알고 계셨나요 ??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림과 같은 풍경 이곳이지요..지금부터 몽유도원도의 그 이상의 세계 무릉도원 찿아가 보겠습니다..
그옛날 그해 어느 봄날에~~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당대 최고 화가 안견에게 꿈속에서 보았던 풍경 무릉도원 .
복사꽃이 화사하게 아름답게 피어있는 산길을 거닐고 있었을테지요..
안견 그대여~~내 꿈 이야기 들어볼텐가 ?? 꿈속에서 박팽년과 더불어 홀연히 산길을 가고 있었네.
첩첩이 둘러선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 험준한 바위들이 널려 있고,
복사꽃나무와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끊어질 듯 하더니 드디어 길을 잃고 말았네.
갈 길을 몰라 막막해 하는데 홀연히 무명옷에 산관을 쓴 사람이 나타나서 절을 하고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를 몇 굽이 돌아가면 바로 그곳이 도원이라고 말하지 않겠나 ?
수십 구비를 돌고, 또 수십 개의 개울을 건너 높은 바위언덕을 기어 넘으니 홀연히 동중이 시원히 터지면서
나 스스로 여기구나 싶은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네. 그 넓이가 2, 3리는 될까,
사방의 산들은 병풍같이 우뚝 솟아있고 운무는 자욱한데 아침햇빛이 들면서 안개가 밑에서부터 개이더군~~~
마을에 가득한 복사나무 꽃이 드러나 보이고 동중에는 초옥들이 있어 사립문이 반쯤 열렸으나 개 짖는 소리도 닭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네.
앞의 강가에는 일엽편주가 물결에 일렁이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데, 이 모든 정경이 너무나 평화롭고 신비로워 마치 신선이 사는 마을 같았네~
어떠한가 ?? 꿈속에 본 풍경 그림으로 그려주게나~~내 두고두고 보고싶으이~~
몽유도원도 윗그림의 왼쪽부분 평평한 들판하며 산길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를 표현한것이겠지요..
몽유도원도의 중간부분으로 왼쪽 현실에 세계에서 드높은 이상 세계인 오른쪽 무릉도원으로 가는데
이처럼 헌준한 바위 암봉으로 막히니 어려운 고통과 고난이 우리네 인생살이와 딱 맞아떨어집니다..
몽유도원도의 오른쪽 복숭아 꽃밭~~
너무나 아름답고 몽롱하고 안개 자욱한 도원에 한줄기 아침햇살 비치니
이것을 꿈꾸는 예나 지금이나 드높은 이상세계 바로 꿈이요.소망이요..희망이 아닐런지요 ???
아주 먼 옛날 선조님들의 느낌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낄수만 있다면 행복하겠네요..
인왕산은 그 오랜 옛날부터 인왕산 호랑이 아시지요..호랑이가 나타날 정도로 무서운 산이었지요..
인왕산 오르면서 국사당 앞에 도착했어요..명성황후님께서 피신해 있었던곳 기도하며 눈물 많이 흘렸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네요..
태조 어진을 비롯한 소중한 우리 문화재가 이곳에 소중히 남아 있답니다..
인왕산은 그 옛날부터 선비와 학자 명사 시인 묵객 사대부들의 별장이 특히나 많이 있었으면서
계곡을 흐르는 맑은물 아름드리 노송 우거진 소나무들 그리고 바위와 복사꽃 너무 아름다운 무릉도원이었다고나할까요...
선바위 언제 바라보아도 마음이 포근해지네요..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림도 사실 한양땅 인왕산 아래 자하문 밖 지금의 부암동 석파정 일대가
꿈속에서 안평대군이 본 저멀리 북한산 높은 봉우리들 빙 둘러져 있고 복숭아나무 꽃밭에 맑은 계곡의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꿈속에서 본 그곳이 바로 인왕산 아래랍니다..
아래 그림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중에서 인왕산에 위치한 자기집을 그린 인곡유거라고하는데 그 옛날로 함께 가실까요~~~
자~~먼 옛날로의 슬프고 가엾은 고운님들의 사연 찿아갑니다~~~~
계곡에 흰구름 버드나무와 이엉을 얹어 만든 볏짚으로 지붕위를 마무리한 일각대문 만들고 조그마한 대문에 포도넝쿨 기어가는 그림에 어쩌면 풍부한 감성력 대단하고 오동나무 마당에 살아 숨쉬는듯한 한폭의 그림이지만 정겹고 조용한 인왕산 자락에 겸재 자기자신을 저 방안에 그려 놓고 있군요..자연미의 극치라고나할까요 ? 기억을 더듬어 찿아가니 옥인 파출소 뒤 군인 아파트 덩그러니 전혀 이느낌 흔적없이 사라졌네요...에고고~~님이시여~~흔적이라도 느껴 보려던 나 힘없이 발길 돌리게 되네요..그림속에서나 만나야겠네요...
사직단이라고하지요..사직공원입니다. 서울사람 중에서 사직공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사직단이라 쓰인 대문 뒤로 4각형 돌로 잘 정돈된 사직단이 보입니다.
사직단을 뒤돌아 오르니 운동장이 나오고 바로 조금 오르니 단군성전입니다.
안내판을 보니 단군성전 또는 백악전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할아버지를 모신 곳이로군요.
건물내 정면에 단군할아버지 모셔져 있네요.
스님 두분께서 나란히 서서 걸어가며 이야기 나누는듯한 바위 모습이네요..
무악재 고개 넘다보면 무악재 안산쪽에 박정희 대통령의 도로확장 기념비가 친필로 새겨져 있기도합니다
..좁고 가파른 험준한 고개를 넓고 완만하게 마들었던 지금의 무악재 고개지요..
무악재 고개 땅속으로는 지하철 3 호선이 달리고 있구요..너무나 많이 변해진 오늘날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요..
인왕산 계속 올라갑니다..
군데군데 기암 바위들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구름 몰려와 큰비 내린후 맑개 개인 인왕산 휘감고 돌아가는 구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느낌 상상이 갑니다..
무학대사의 사랑이 가득했던 선바위..
지금의 선바위 부근에는 무속인들이 많이 기도처로서 기도하며 개인적으로 찿아오는 가난한 우리 서민들로 붐비는 곳이지요..
인왕산 호랑이 ...2 가지 정도 인왕산 호랑이 전설이 내려오는데 하나는 북한산 효자리 박태성 효자비...
효자 박씨 이야기고 또 하나는 어떤 포수가 암컷 호랑이를 죽이니 숫놈 호랑이가 너무 슬퍼 이곳 범바위에 부딪쳐 죽었다는 ~~~~암튼 이곳 인왕산은 그 옛날부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무서운 산이었슴은 틀림없는가 봅니다..
요즈음 인왕산엔 토끼 한마리 구경하기도 힘드니 그 많던 동물들도 다 사라진지 오래랍니다..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며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풍수사상가며 이성계 정도전 태종 임금이신 이방원과 그의 책사 하륜 등
대원군 이하응도 이곳 인왕산에 올라 경복궁 내려다보며 눈물과 통곡소리 울음을 그치지 않았구요..
아픔의 역사가 너무 많아서랍니다.. 아아~~역사의 몇백년을 거슬러 시간 여행을 하고있는 이 시간~~~
누군가 금방이라도 나타날것 같은 장수들의 웃음소리며 성곽을 쌓기 위하여 몰려들었던
과거의 무수한 가난하고 가엾던 우리 민초들의 한의 소리 들려옵니다..
무학대사님과 정도전 같은 그시대 임금의 책사들이며 순찰 돌던 초병들~~
치마바위에 치마를 널어놓고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통곡했을 고운 왕의 여인 단경왕후 신씨~~힘없는 중종 임금 왕의 운명이었죠..
우측에 청와대가 보이고 북악의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선 곳에 녹색 청기와를 이고 있는 건물.
감히 그 곳을 내려다 볼 방법이 없었던 차에 인왕산길이 열리니 불과 십수년전만 하더라도 올수 없는 이곳에
문민 시대에 빗장이 풀려 오늘 이렇게 오르는것이죠.
아래 사진은 서울의 무릉도원 무계정사입니다
그 우측으로는 경복궁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즐비합니다.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던 화강암 건물은 철거되어 더 이상 보이질 않는군요. 청와대 앞길 경복궁 맨 뒤쪽 건청궁자리 옥호루~~
명성황후께서 비운의 마지막을 일본 낭인들의 무자비한 칼에 시해 당하셨던 그곳 옥호루도 제눈에는 보이는군요..
무계정사가 어떤곳인지 안내문 읽어봅니다..
이어지는 성벽 계속 이어지죠..성벽 쌓았을 옛 조상님들의 애환이 느껴지네요..
힘든 공사에 동원된 옛님 생각에 한동안 감회에 젖어봅니다..성돌 쓰다듬으니 느낌이 바로 전해져 오네요..옛님의 숨결이랍니다..
가까운 옛날 1968 년인가 김신조 일당 31 명이 중무장하여 북한산으로 몰래 산을 넘어와 청와대 습격하려고 인왕산 아래
자하문 창의문 바로 아래까지 침투해와 당시 종로 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의 순직하신 공적비가 있는 슬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무계정사의 마당에 잡초 가득하고 사람 살지않는 폐가가 되어 있다니...
한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의 집이었으니 통곡소리 들리는듯 묘한 느낌을 어찌하랴~~~
오성과 한음으로 더 잘 알려진 오성 이항복 선생의 생가터인 필운대..
지금의 배화 여자 고등학교 교실 건물 뒤쪽에 초라하게 필운대라는 암벽에 글씨만이 남아있지만 그분의 생활터전이기도하구요..
조선왕조 27 대왕에 1910 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이곳 인왕산은 말없이
그 모든 순간 순간들을 보고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어 마음속 저 깊은곳에서 뭉클해져오는 감정 헤아릴길 없습니다..
물론 더 오래전 역사까지도 알고 있을 인왕산입니다..
아아~~드디어 인왕산 정상입니다..
정상에서 바위 위에 서면 북한산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문수봉 등등 병풍 두른듯높은 봉우리 빙 둘러 지나고 저만치 한강이 흐르며
북악산과 남산 낙산 그리고 안산 멀리 관악산 보이고 북한산 백운대는 보이지 않지만 시야가 확 트이고
서울 도성안이 손에 잡힐듯 아래에 가깝게 보입니다..
저멀리 인왕산 치마바위 보이는군요..다들 잘 알고 계시지요 ?
지금으로부터 약 500 년전인 1506년에 연산군의 폭정으로 박원종이 주도한 반정으로 연산군 몰락하고 진성대군이 왕으로 등극하면서 중종 임금이시죠..
진성대군과 10 여년을 함께 부부 생활을 해온 부인 신씨는 반역으로 몰린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역적의 딸이 왕비가 되는것이 두려워 박원종이 수차례 중종에게 협박 비슷하게 하였던바 폐서인으로 만들어 강제로 쫓아버렸으니 정말 요즈음에 생각해보면 몸서리 쳐지는 일이 아닐수 없죠..
쫒겨간 신씨는 매일밤 울면서 낮에는 매일 이곳 치마바위에 올라 경복궁 근정전 침전 경회루가 잘 보이는 이곳 인왕산 바위에 다홍치마를 널어두어 경회루에서 중종 임금이 볼수 있도록 하였으니 참으로 애절한 사랑 이야기랍니다..
다홍치마를 널어둔 바위 이름하여 치마바위라고 지금까지도 불려오고 있지요...아아~~슬픈 사랑 이야기~~
경복궁 경회루에서 바라다본 인왕산 정말 한많은 산 서울 인왕산임에 틀림없네요..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지에 무계동 글씨가 옛흔적을 남겨 놓았네요..
오래된 고목나무와 옛 기와집에서 옛님의 숨결이 느껴 오네요..싸해지는 이곳이네요..
현진건 옛집터랍니다...아주 먼 옛날 원래는 안평대군 별장이었는데…척살당하고만 안평대군 비운의 현장이지요…
근대 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인 그의 작품은 자전적 소설과 민족적 현실 및 하층민에 대한 소설 역사소설이 주류를 다만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빈처 개벽등 학창시절에 배운 그의 소설 생각 나네요..
인왕의 무릉도원이며 실제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대단합니다..
석파정.. 규모는 작지만 조선조 별장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석파정 인왕산 자락 절개지 위에 서 있는데
사유재산이어서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도로에서 올려다보면 사랑채와 안채 우뚝 솟은 별채가 돌담 안으로 아주 조금 보이네요.
이 사진 한장 촬영하려고 고생좀 했네요..도무지 안이 잘 보이지 않는데요.. 개인 사유 재산이래요..
남의 집에 들어가 볼수 없고 담장은 높고 많이 아쉬웠죠..
북한산과 북악산, 멀리 남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무릉도원 석파(石坡)란 정자 앞산이 모두 바위여서 대원군이 붙인 말.
이로 인해 자신의 아호도 석파가 됐답니다..
안평대군이 꿈에 박팽년 등과 함께 노닐던 도원을 당대 최고 화가 안견에게 그리게 한 작품이 유명한 몽유도원도인데 안평대군이 그림에 나타난 장소를 찾아 이곳까지 왔다가 여기가 바로 무계정사 꿈 속에 본 무릉도원과 같다 하여 정자를 짓고 글을 읊은 것이 별장의 유래가 되었네요..
안동김씨 김흥근 철종임금때 영의정을 지낸 인물 김흥근의 소유였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대원군이 몰수하여
자신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그 석파정이 아무튼 최고의 명당임에 틀림없네요..
부침바위터..건물벽에 이렇게 흔적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설명이 자세하진않지만 간략하게 소개된 것처럼 많은 여인네들이 자기 나이만큼 부침바위에 돌을 비벼서 손을 떼면 돌이 붙으면 아들을 낳는다하여 유명했던 곳이고 지금의 부암동이란 명칭도 바로 이곳 부침바위를 부암으로 이름이 정해졌다네요..
그 부침바위 어디로 옮겨갔는지 부수어 버렸는지 비밀 알수 있을까요 ??
아름다운 무릉도원 옛님들의 꽃놀이 명소 이곳 인왕산 아래랍니다..
인왕산 자락 석파랑 주변의 2011 년 어느 봄날 풍경
인왕산 자락 석파랑 주변의 2011 년 어느 봄날 풍경이 그만이었습니다..
춘삼월 봄날에 꽃들이 만발한 몽유도원도의 아름다운 무릉도원 벽련봉 자락 잊을수없겠구요..
꿈속 꿈길에서도 이 길 걸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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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울의 지리를 잘 몰라...이해하는데 한계가 느껴졌어요..ㅎㅎ 그 뭐냐..인왕산의 성벽 김신조사건때 총에 맞은 소나무는 프로그램1박2일 보고 알았는데 그건 퍼뜩 눈에 들어왔습니다..이 인왕산을 개통한지는 불과 몇년 안된다죠.
맞습니다..
인왕산은 원래 등산객이 갈 수 있었는데.. 김신조 사건이후 성벽쪽으로는 통제되었고.
북악산이 청와대 뒷산인데. 김영삼 대통령님이 개통시켰다고 합니다.
- 언제 완월 산악회에서도 위 산을 둘러보고..
또 청와대 사랑채 구경을 하면 역대 대통령 영정과 기념품을 볼 수 있습니다요.
설에 의하면.. 무학대사(당시 고려 왕사)께서 전국 명당을 찾는데.. 북악산이 태백의 정기를 받은 영산이라 그 줄기를 이어받은 곳에 수창궁(현 청와대) 을 지어 이성계가 조선을 창건했다는 이바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