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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심예랑(淸心藝廊) 원문보기 글쓴이: 청심
구 랑 리, 점 촌 (2013.10.19) 영흥도(십리포) (2013.10.20) 탐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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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랑리, 점촌 (2013.10.19) 탐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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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
흔히 ‘미쳤다’는 말은 나쁘게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렇지만 좋은 의미로 표현한다면 무엇인가에 열정을 쏟는다는 표현이겠다. “일에 미치고 취미에 미치다”가 바로 후자의 경우이겠다.
미쳤다. 즉, 몰입하거나 특정 대상에 대하여 최고의 몰입과 집중을 한다는 것을 좀 과하게 표현한 것이다. 나쁜 것에 미치면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족과 주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지만 반대로 좋은 의미로는 무엇인가에 관심을 집중하는 열정이 때로는 필요할 일이다.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데 그에 대한 열정과 용기가 부족하여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 광적이라는 것은 좀 부정적이지만 적극적인 관심은 삶의 활력이 되므로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소견이다.
지금까지 나는 십 수 년 간 1개월에 2회 정도의 횟수로 탐석 여행을 다녔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1주에 2회 정도 탐석을 다니는 나를 돌아보면서 오히려 나쁜 의미로 특정 취미 생활에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1개월에 2회 정도의 수준으로 탐석을 다니던 때에도 아내와 어머니로부터 집 무너지겠다, 다 갖다 버리라는 잔소리 및 핀잔도 많이 들었었는데 요즘 나의 행태[行態]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지만 어쩌겠는가? 패가망신의 원인을 제공하는 나쁜 일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니 가족의 입장에서는 나쁘게 표현하면 이젠 포기했고, 좋게 표현하면 그렇게라도 업무 스트레스를 푸는 고육책으로 치부하는 것이 속 편한 조치일 것이다.
우리 애석인[愛石人]은 왜 수석에 미치는 것인가? 자연의 형상에 가까운 돌이 바로 수석[壽石]으로 산수경석[山水景石]이다. 사전적 의미와 같이 산, 골짜기, 폭포수 등 자연의 경치가 축소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갖춘 것으로 산과 호수 큰 산을 실내에 들여 놓고 그 자연을 쏙 빼닮은 산세를 감상하는 취미가 바로 수석 취미 생활인 것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수석의 역사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화가, 고증학자인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비롯하여 선비들이 즐겼다는 고고한 취미 생활의 상징인 수석문화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격동기를 거치며 그 많던 좋은 수석들이 강탈 형식으로 현해탄을 넘어갔으며 해방 후에도 일부 자의적인 호구책으로 일본으로 수도 없이 넘어갔다는 일화를 접하고 자의이건 타의이건 애석인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석수만년[石壽萬年]이란 사자성어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수를 목숨 수[壽]자를 쓴다. 돌의 생명이 만년을 간다는 뜻 이고 돌 하나를 놓고 의견을 나누다 보면 밤을 꼬박 새도 모자람이 없다. 그만큼 돌 하나에 유구한 세월과 의미와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자연의 철학인 것이다. 왜냐하면 돌 자체가 자연이고 유구한 세월 동안 자연이 만든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내가 애석인이 아닌 사람으로 취미에 미친, 아니 돌에 미친 사람을 객관적으로 상상해 보았다. 그저 웃음이 나온다. 등에 짊어진 배낭에는 돌이 가득하고 대부분의 수석 산지가 다 그렇듯이 주변의 수려한 경관은 관심에도 없고 오로지 하루 종일 땅만 쳐다보고 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고 이해가 되지 않을 행동이겠는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탐석이 예정된 전 날은 잠을 설친다. 그래서 내가 운전을 해야 되는 일정이라면 전 날 무조건 먹지도 못하는 술 한 잔을 먹는다, 왜냐하면 술 힘을 빌어 숙면을 취하기 위한 고육책인 것이다. 그리고 수석 산지에 가면 하루 종일 바닥만을 보며 걷다 돌아와서 탐석의 여흥에 취해 석우[石友]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두들 그 여흥의 여운이 남아 밤을 샐 기세다. 무엇인가에 미치지 않으면 이런 행태를 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취미에 미쳤다고 하는 것이다.
2013.10.03[木] 부초님과 함께 문경·괴산 탐석을 다녀왔었다. 그런데 문경 ‘구랑리’에서 부초님께서 물 탐석하던 중에 마음에 드는 크기도 상당한 작품을 들고 나오시던 중에 이끼에 미끄러져 쓰러지며 들고 있던 돌이 발등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시어 종일 충격 부위에 대하여 통증을 호소하시면서도 평소와는 다르게 괴산까지 돌아보는 강행군이 하루종일 이어졌었지만 부초님과 나는 충격 부위가 설마 그렇게 심각한지 몰랐었는데 다음날 병원 진단 결과 뼈에 금이 가서 진단 4주 깁스를 해야 될 상황이라는 의사의 소견인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2주 뒤 내가 구랑리 탐석을 간다는 소식을 접하신 부초님께서 함께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깁스를 한 그 몸으로 탐석을 가신다고요?’ 하였더니 “며칠 탐석을 못 간다는 생각을 하니 인생의 낙이 없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어찌 보면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19일[土] 문경과 20일[日] 영흥도 탐석을 그야말로 돌에 미친(?) 사람과 함께 다녀왔다.
19일[土]은 당직을 마치고 07:30에 퇴근하는 날이지만 부초님의 희망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피곤한 몸으로 운전대를 잡아 늦은 시간인 08:00경 1호선 석수역에서 직장 동료 홍건표님과 위대복님을 만나 서울을 출발하여 문경 구랑리 입구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산지에 도착하니 12:00경으로 토요일 늦게 출발한 것을 생각하면 만족스런 시간이다.
산지에 도착하니 이렇게 물이 많이 빠져있어 산지 그림은 상당히 좋았다.
지난 12일[土]에 고민하다 놓고와서 후회했던 작품인데 다른 수석인에 의하여 자리는 좀 이동했지만 다행히 나와 다시 인연이 될 수 있었다.
자연 석부작을 담았다. 오늘의 목적은 이미 달성을 했더니 주변 자연 경관도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영양제 까지 뿌리며 인위적으로 키우는 석부작은 잘 안되던데 척박한 환경에서 이렇게 흙도 없는 돌에 기생하며 습기로만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취미에 미친(?) 사람이
바로 여기 부초님이시다.
좌로 부터: 부초(심용기)님, 명가(홍건표)님, 유정(위대복)님
구랑리 탐석을 마치고 홍건표님의 제안에 따라 점촌 '영순교' 아래 산지를 찾았더니 돌은 없고 황량하기만 하여 인증사진만 남겼다.
위대복님과 자리를 바꾸어... 좌: 본인(청심)
부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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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포 (2013.10. 20 日) 탐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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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20일[日] 또 부초님과 함께 영흥도 '십리포' 산지를 다녀왔다. 나 혼자 다녀오겠으니 몸도 불편하신 분은 집에서 안정을 취하시라고 하였더니 부득부득 함께 가시겠단다.
당일 08:00 서울 조원동 부초님의 댁 앞에서 헤르메스님을 만나 서울을 출발하여 영흥도 십리포 산지에 도착하니 09:30경으로 물이 서서히 빠지며 광활한 갯벌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물이 빠지면서 애석인의 보석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초님은 다리의 통증으로
이렇게 갯벌에 앉아
탐석 삼매경에 빠지셨다.
물 씻김도 좋고 단봉 경이 좋아 챙겼다.
평[平)이 좋아 담았다. 굴 껍데기를 빙초산에 녹이고 나면 한 인물 하겠다.
가을은... / 청심
가을은 모든 것이 다 슬퍼지는 계절이다. 심영[心影]을 울리는 풀벌레 소리는 지금 나의 마음과 같이 슬프게만 들리고 어느 가을날 밤 잠들지 못하는 여린 가슴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같이 무너져 내린다.
가을은 모든 것이 다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고향 입구의 느티나무를 그리워하듯 첫사랑의 몸짓에서 느꼈던 순결함을 그리워하듯 늦가을 뜨락에서 바스락 거리는 낙엽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이젠 전설이 될 추억들과의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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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심예랑(淸心藝廊) 원문보기 글쓴이: 청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