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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 벨린스끼의 문학비평에서 셸링 미학의 위치(1834-1836) Li ben khun 글
비사리온 벨린스키 [Belinskii, Vissarion Grigor'Evich]/러시아의 탁월한 문학비평가-벨린스끼(1811. 6. 11(구력 5. 30) 러시아 비아포리~ 1848. 6. 7(구력 5. 26) 상트페테르부르크.) /<벨린쓰끼선집> 1~4권{뿌쉬낀 서정시 評, 예브게니 오네낀 評, 레르몬또브 評, 고골리 評]
1829-1832년간 벨린스끼는 모스끄바 대학의 철학부 언어 분과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당시 벨린스끼는 N. I. 나제쥐진Nadezhdin의 강의를 통해 셸링의 철학관을 접하게 된다. 쁴삔은 벨린스끼에 대한 나제쥐진의 영향을 잘 지적하고 있다: "<세평Molva>에 실린 논문(<문학적 공상Literaturnye Mechtanija>)을 접할 때, 벨린스끼의 대다수 동료들이 받은 첫 인상은 그것이 나제쥐진 자신에 의해 쓰여진 글 같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제쥐진의 논문과 강의에서 익숙해졌던 많은 사상을 그 논문에서도 마주쳤던 것이다." 더 나아가 쁴삔은 G. 쁘로조로프Prozorov의 회상을 덧붙인다: "쁘로조로프는 벨린스끼에게 자신의 논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거기엔 나제쥐진으로부터 쁘로조로프가 수강했었고 셸링의 철학으로부터 도출된 창조적 이념의 개현으로서의 자연 개념이 진술되어 있었다. 벨린스끼는 화급히 그를 제지했다."[2] 쁘로조로프는 자신의 회상기에서 이런 사상이 벨린스끼의 첫 번째 논문에서 진술된 바 있다고 말한다: "제발 읽지 말아주게. 나 자신에게도 마음 속에 창조적 자연에 관한 유사한 사상이 있다네. 나는 아직 그것에 형식을 부여하진 못했지만, 누군가가 내가 그것을 다른 이로부터 취해서 내 것처럼 내놓았다고 생각하길 원치 않아."[3]
셸링의 미학적 견해는 스딴께비치 서클의 참여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이 밝혀졌다. N. V. 스딴께비치Stankevich는 1835년 1월부터 모스끄바에 살면서, 셸링의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Sistema transtsendental'nogo idealizma>>(1800)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벨린스끼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G. A. 솔로비요프Solov'ev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이 어떤 한계와 형식으로 발생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은 독일 철학자의 체계에 대한 생동적인 사상적 변용이며, 그 탐구는 우선적으로 예술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다."[4] 독일의 고전 미학, 부분적으로, 셸링의 미학 체계는 벨린스끼에 의해 수용되었고, 그래서 청년 비평가였던 그는 지속적으로 그것의 자기화와 고유한 해석으로 이행해 나가게 된다. 셸링은 예술을 세계 정신의 완결로 보았으며, 유한한 것(예술)의 형식에서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정신과 자연,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필연과 자유의 통일을 보았다. 셸링 미학의 주요 이념은 예술이 그 본질상 합리적인 것의 영역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셸링에 따르면, 예술은 본성적으로 무의식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요한 철학적 저작인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에서 셸링은 다음과 같이 썼다: "예술 작품에서 의식적인 활동과 무의식적인 활동의 동일성이 표현된다. 그러나 그것들의 대립성은 무한하며, 그 대립성은 어떠한 자유의 개입도 없이 지양된다. 예술작품의 그러한 특수성은 따라서 무의식적인 무한성bessoznatel'naja beskonechnost'(자연과 자유의 종합)이다. 예술가는 본능과도 같이 자신의 작품 속으로, 분명한 의도를 갖고 표현된 바를 통해서, 단일하고 제한된 이성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전체성으로써 어떠한 무한성을 이끌어 들인다."[5] 셸링에 따르면 어떤 절대 정신이란 자신의 유한한 표현을 무엇보다도 예술에서 찾는다. 거기에는, 이 순수한 무관심에는 물질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의 차이가 없으며,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예술에서 이러한 차이는 어떤 유한한 형식을 취한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삶에서 갖는 예술 또는 미의 일반 개념이다. <문학적 공상>(1834)에서 셸링 미학과 벨린스끼의 진술을 관련시키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현실에 대한 벨린스끼의 견해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모든 현존하는 것을 절대 정신의 현현으로 간주했다. 다음은 <문학적 공상>의 한 부분이다: "모든 비분할적인, 미적인 신의 세계는 단일하고 영원한 이념(단일하고 영원한 신의 사상)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무수한 형식 가운데 무한한 다양성에서 절대적 유일성의 위대한 광경으로서 현현한다."[6] 같은 논문에서 그는 셸링 미학의 영향 아래 예술을 규정한다: "예술은 무한하도록 다양한 현상 중에서 만유의 위대한 이념의 표현이다!"(I, 34) 셸링에 따르면, 만일 예술가의 작품이 고양된 정신과 "무한한" 감정의 열매이며 작품이 그의 영혼으로부터 자유롭고 무의식 상태로부터 솟아난 것이라면, 예술가는 언제나 위대한 이념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벨린스끼의 문학-비평적 혁신은 완전하고도 명백하게 이 논문에서 드러난다. 셸링과 달리 벨린스끼는 시인이란 그의 시대의 아들이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 미학에 대항하여 벨린스끼는, 시인은 자신의 내면 세계의 관조에로 도피해서는 안되며 모든 면에서 객관성을 가지고 그를 둘러싼 현실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나타나는 주요 용어들은 벨린스끼 개인의 산물은 아니다. "현실적 시문학"이나 "이상적 시문학"의 용어들은 셸링 미학에는 이미 알려져 있었고 폭넓게 사용되어졌던 것들이다. 셸링의 철학 체계는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두 개념에 기반하는데, 여기에서 절대자가 구체화된다. 그는 자신의 철학 체계를 예술의 영역에 적용한다. "미는 세계와 실체,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 접촉하는 모든 곳에서 주어진다. 미는 다만 보편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진리istina)만이 아니요, 오직 현실적인 것(이는 행위 가운데 나타난다)만도 아니이로써 현실적인 것―여기서 개념이 나타나는데―은 실제로 본래 형상과 유사하며 동등하게 될 수 있고, 그 본래 형상 즉 이념은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이 절대적 동일성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장소라 하겠다. 합리적인 것 가운데서도 합리적인 것은 동시에 현상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된다."[7]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셸링은 두 평행적 계열, 곧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으로 상정된 예술의 체계를 개진해 나간다. 이는 1802-1803년간 A. 슐레겔과 교환한 그의 서신에 잘 나타난다: "형식에 관해서라면, 여기서 나는 대단히 복잡한 다. 그리하여, 미는 오로지 이것과 저것의 완결적인 상호 침투이거나 고양된 통일이다. 미는 특수한 것(현실적인 것)이 그것의 개념에 상응하는 만큼 존재하고, 그 개념은 무한한 것으로서 유한한 것에 진입하며 또 구체적으로in concreto 관조된다. 문제에 처한 보편적 사변 철학의 단서가 되고 있는 도식을 따르겠네. 이 도식은 전체를 전체 중에 나타내 보이는데 더욱 쓸모가 있는 것 같군. 이제 나는 언어 예술과 조형 예술의 실제적인peal'naja 대립이라는 두 가지 관점과는 별개로 최초의 절대적인 통일성을 생각해보네(그 중에서 전자는 현실적 원리에, 후자는 이상적 원리에 상응하네); 각각의 통일성마다 고대와 근대 예술의 이상적 대립을 분석하겠네. 이러한 대립은 반대로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의 대립이기도 하지. 그런 방식으로 나는 모든 것을 대조하고, 각각의 개별 예술의 이념을, 그 본질 중에서, 어떤 절대적인 것으로서 관찰하고 싶네."[8] 셸링은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을 조형 예술과 언어 예술로 구분하였다. 현실적인 것, 그것은 조형적이며 구상적인 예술이며, 회화, 건축, 조각이 그 사례들이다. 반면 언어가 질료로 사용되는 언어 예술은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만일 조형 예술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에서 절대적인 것을 재현해낸다면, 시문학은 이것을 보편적인 것에서(이성의 이념 형식에 있어서) 실현한다. 그러므로 셸링은 시문학을 대개 예술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자기 이념의 이러한 체계에서 그는 모든 고대 예술은 현실적인 것으로, 모든 기독교 예술은 이상적인 것으로 관찰했다는 말이다. 벨린스끼에게서는 시문학에 관한 전적으로 다른 접근을 볼 수 있다. 그는 근대의 예술에 나타난 현실적 시문학과 이상적 시문학의 법칙성을 인정했다. 벨린스끼는 이러한 용어들을 현실적 시문학과 이상적 시문학의 이념을 개진하는데 사용했다. 그는 두 시문학이 존재 정당성을 갖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시문학만을, 즉 언어 예술만을 고찰하였다는데 있다: "시문학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해 삶의 현상을 포함하고 재현해낸다. 이 방법들은 한 가지 목적으로 이끌리지만 서로 대립된다. 시인은 삶을, 그가 사는 세계와 시대, 민중과의 관계에 따른 이상(理想), 사물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에 따른 이상을 통해 만들어 내든지, 혹은 온전히 적나라한 진실에 있어, 현실의 세밀함과 색조 및 뉘앙스에 충실한 상태로 삶을 재현해 낸다. 시인은 시문학을 두 부분으로 ―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I, 262) 이는 셸링과 벨린스끼의 개념적 차이에 분명하다. 논문 <<모스끄바 관찰자>의 문학적 견해와 비평에 대하여O kritike i literaturnykh mnenijakh <Moskovskogo nabljudatelja>>(1836)에서 벨린스끼는 최초로 예술성의 정의를 내리는데, 그것은 그의 문학 비평 전체와 미학에서 중심적으로 나타난다 ― "예술성은 창조이다khudozhestvennost' est' tvorchestvo". "예술성"과 "세속성"을 대립시키면서, 벨린스끼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예술성은 창조이고, 창조는 인간을 그의 선과 악, 기쁨과 노력에의 충동으로 묘사한다. 반면 세속성은 정열과 충동, 기쁨과 슬픔을 파괴시키며 또 이 모든 것을 직접성과 무관심, 미소함 및 권태로 끌어간다."(II, 172) 벨린스끼는 "세속성"을 정치적 보수주의나 문학적 반동으로 이해했다. "예술성은 모든 계급, 모든 신분의 사람들에게 ― 만일 그들에게 지성과 감정이 있다면 ―이해될 수 있다: 세속성은 카스트 제도의 속성과도 같다."(II, 172) 벨린스끼에게 "세속성"은 테마와 묘사 대상 및 예술가의 시각에 대한 금제를 의미했다. 그러나 "예술성"은 다른 것,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관해 벨린스끼는 다음과 같이 쓴다: "소설은 인간 삶의 묘사가 되어야지, 범속한 잡소리가 되어선 안되며, 오직 인간 삶의 이념만이 ― 범속한 잡소리의 이념이 아니라 ―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고상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II, 172) 벨린스끼가 사용한 "창조"의 개념이 셸링의 우주에 대한 관념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셸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로운 행위 가운데서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사이의 모순만이 예술가의 창조적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또 예술로 하여금 우리의 측량할 수 없는 단절을 완화시키게 하고 우리의 최후의 심원한 모순을 해결하도록 만들어 준다. 만일 예술적 창조가 모순의 가시성에 대해 해결할 수 없다는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무한한 조화의 감정으로써 완결되어 질 일이다. 창조를 완결함에 있어 제기되는 이러한 감정은 감동이 따르는 일이며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본 모순을 완전히 해결한다는 증거이다."[9] 벨린스끼에 의하면, 이런 보편적인 철학적 전제로부터 도출된 창조의 과정은 예술가가 만유의 영원한 이념, 곧 우주를 자신의 감정으로써 인식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술가의 감정은 이 절대적인 이념에 의해서 일깨워진다. 그러나 벨린스끼는 감정을 상실한 채 논리적으로만 표현된 사상을 예술 작품의 사상과 비교하고 있다. "당신들에게 말하건대 만유는 영원한 것이다. 이 사상은 위대하고 지고하지만, 내가 이에 대해 열 페이지를 더 쓴다고 할지라도, 말로써 예술 작품이 완성되는게 아니고 또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쉴러의 시 <세계의 거대함 Die grosse der Welt>에는 바로 그 사상이 시적 형식으로 채워넣어져 있다... 심원한 시문학에 의해 호흡하고, 사상은 감정 속에서 소멸하고 또 감정은 사상 속에서 소멸한다. 이러한 상호 소멸로부터 지고한 예술성이 태어나는 것이다. 어째서? 왜냐하면 시인의 머릿속에서 자라난 이 사상은 그의 유기체에 자극을 주고, 그의 피를 흥분시켜 들끓게 하며, 감정을 일으키는 까닭이다."(I, 365-366) "창조의 자유"가 갖는 큰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벨린스끼는 예술가의 제한없는 주관성의 전횡이라는 점 때문에 낭만주의의 자유를 거부한다. 셸링에게 있어 창조의 자유란 주관(=천재)의 제한없는 활동에 다름아니었다면, 벨린스끼에게 창조의 자유는 어떤 대립적인 것이라 이해되었다. 벨린스끼에게 창조의 자유는 ― 예술가의 전횡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했던 것이다. 논문 <다가오는 해의 문학적 위험들 Literaturnye opasanija za budushchij god>(1828)에서 N. I. 나제쥐진은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IV장, 1절)에 나타난 셸링의 천재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나제쥐진이 논문에서 천재성에 관해 말하면서 셸링적 의미의 "창조의 자유"에로 관심을 돌린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천재의 본질적 성격은... 세계를 전유하는 법칙 부여자인 자연의 영원한 질서인 필연성을 인간 정신의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지고한 힘과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짐에 분명하다" 다시 말해 나제쥐진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 정신이 지닌 창조의 자유는 천재에 달린 것이나, 벨린스끼는 그와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예술가는 창조의 요구를 느낀다. 이 요구는 그에게 갑자기, 예기치 않게 생겨나며, 논쟁의 여지없이 완전히 그의 의지에 무관한데,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창조 활동을 위한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떠한 순간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창조의 자유이며, 이것이 조물주로부터의 그의 독립이라 할 수 있다! 창조의 요구는 이념을 예술가의 영혼에로 이끌며 영혼을 지배하고 괴롭힌다. 이러한 이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어져 있던 보편적인 인간 이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것을 선택적으로 취할 수 없고 수동적으로만 취하며, 관조적 지성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 심오하고 비밀스런 의미에 대한 두근거리는 예감 중에 지각한다. 이러한 활동은 번역될 수 없는 프랑스어 "concevoir"로써 완벽히 표현된다. 예술가는 그가 지각한 concue 이념의 존재를 느끼지만, 그것을 분명히 볼 수는 없고, 그것을 자신과 타인들에게 감촉할 수 있게 하고픈 욕망으로 괴로워한다. 이것이 창조의 첫 번째 행위이다."(I, 286) 벨린스끼는 창조의 자유가 객관적으로 제한된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는 결코 자의적으로 창조할 수 없으며, 창조적 정신의 객관적 법칙에 알맞게 창조하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창조적 자유의 변증법으로의 그러한 접근은 저명한 철학자들(셸링과 칸트 ― 필자)의 접근보다 더 심오하다. 그들은 주체(창조자)로부터 온전히 객체(작품)의 도출을 위해 경주했으며, 창조적 재능을 특별하게 부여받은 주체(천재)가 발휘하는 기적에 미심쩍어했다." 그러나 벨린스끼는 곧장 객관적 측면에서 자기 사유를 시작한다. "창조자의 행위가 갖는 자유는 창조의 자유로운 과정에 달려있으며, 주체로부터 독립적인, 모든 주관적 방해나 호응받지 않을지라도 실현되고마는 독립적인 법칙에 달려있다." 창조 행위의 다음 단계는 이념의 개별적인 형상적 형식에로의 변화에 있다. "시인은, 마치 어머니가 태내에 아이를 품고 있듯, 이념을 자기 감정의 내밀한 성소에 지닌다. 그 이념은 점차 그의 목전에 현현하여, 살아있는 형상으로 나타나고, 이상 ideal으로 이행한다... 이러한 형상들(오델로, 데스데모나 ― 필자), 이러한 이상들은 이제 무르익어 성숙해지고, 점차적으로 발현된다. 마침내 예술의 理想은 어떤 감각적인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형상이다. 셸링에게 이것은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동일성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은 언제나 자체 무한적인 두 가지 활동(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 필자)의 분열적 소산인데, 그 두 활동은 각자 자유롭게 생산하며 상호 고립된 상태에 있다. 예술 작품에서 이것들이 통일된 것으로 상정되는 한, 예술 작품에는 유한한 것 속에 무한한 것이 표현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유한한 것 속에 표현된 무한한 것은 美이다. 따라서 두 가지 활동에 자체적으로 내재해 있는, 개개 예술 작품의 근본적인 특수성은 미이며, 미가 없는 곳에는 예술 작품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사상을 논문 <러시아의 중편 소설과 고골씨의 중편 소설에 관하여 O russkoj povesti i povestjakh g. Gogolja>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벨린스끼는 고골 작품의 특징적 징후에 대해 말하는데, 예술 작품의 그 분명한 징후는 예술성이다. 이 시기, 예술성에 관한 벨린스끼의 입장은 예술적 理想으로서의 예술적 형상에 관한 논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이 논문에서 벨린스끼는 그 징후로 네 가지를 언급하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시인은 그들을 볼 수 있게 되며,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말, 움직임, 행동거지, 걸음걸이, 용모를 알게 되고, 모든 측면에서 그들의 전체를 보게 되는데, 이는 두 눈으로 마치 실제 현실에서와같이 분명히 알아볼 수 있게 된다..."(I, 286) 네 번째 징후는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창조적 독창성, 다시 말해 창조 자체의 가장 뛰어난 징후 중의 하나는 전형의 창조 tipizm에 있으며, 쉽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작가의 落款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재능을 지닌 작가는 개개의 인물을 전형화하고, 곧 개개의 전형은 독자에게 잘 알고 있는 미지의 인물 znakomyj neznakomets이라 하겠다."(I, 295-296) 이는 각각의 인물이 전형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며, 그 인물에게는 개별적인 것과 동시에 무언가 보편적인 것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인물은 理想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 결과 우리가 형상이라고 부르는 것, 이 시기에 벨린스끼가 이상이라고 불렀던 것의 문제가 제기된다. 벨린스끼는 창조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이상의 형식에 있어 감각적 이념으로서 나타나는 것을 이상이라고 이해했다. 따라서 벨린스끼에게 이상의 개념은 일정 단계에서 전형의 개념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는 이상의 형식 가운데 표현된 어떠한 보편적인 것, 즉 모든 부분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롭게된,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진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벨린스끼의 첫 번째 활동 시기를 특징짓는다. 이 문제는 우리를 예술이 갖는 객관성의 문제로 끌어들이며, 벨린스끼가 아직 "리얼리즘"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리얼리즘적 경향 문제로 잡아당긴다. 이 시기에, 예술 작품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理想으로서의 예술적 형상에 관한 벨린스끼의 논의는 창조 혹은 예술에 관한 입장에 있어서 독창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오히려 예술의 이데올로기적 층위에서 전개된다. 벨린스끼에 있어 이상은 영원한 이념의 구현이지, 현실적 삶을 이상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아닌 탓이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래서, 창조의 주요하고 탁월한 징후는 비밀스런 통찰력과 시적인 몽환에 있다... 예술가가 이런 면모를 발견하고 이런 사태에 대해 듣게되는 장소에서 그의 창조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래되고 다방면에 걸친 경험, 섬세한 관찰 및 유사성을 파악하고 그것들의 희귀한 특성을 지적하는 심오한 능력인가? 예술가의 이상이란 무엇인가? 과연 이것은 자연 속에 산재해 있고 잘 알려져있는 전형 ― 마치 과거의 선하고 존경스러운 미학이 간주하고 진술하였던 바와 같은 종래의 기준에 맞추어진 그런 전형의 형성을 위해 하나로 집결된 다양한 성질이란 말인가... 오, 이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예술가가 어디에서도 그가 창조해낸 인물을 찾을 수 없고, 현실을 복제할 수 없다면, 그는 이 모든 것을 사물들에서, 예언적 꿈에서, 시적 개현의 빛나는 순간에서, 재능있는 자에게 알려져 있는 그 순간에서 보게 된다. 그는 이들을 자기 감정의 형안을 통해 보는 것이다."(I, 186-187) 즉, 그 당시 벨린스끼는 예술적 창조가 주체에 의지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리어 그는 셸링 철학적 의미에서 예술적 창조가 절대적 객체에 의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창조적 행위, 예술 작품의 창조는 미학적 가치 창조의 행위이며, 예술적으로 의미 부여된 객체 창조의 행위이기도 하다. 이 점에 관해 벨린스끼는 이미 규정했던 바 있다. "예술성은 창조이다." 벨린스끼의 이 규정에는 이미 예술성으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는 인식론적이고 가치론적인 전제가 깔려 있음을 주의하자. 이를 입증하기 위해 벨린스끼는 고골을 현실의 시인으로 언급하면서 동시에 그의 "높은" 재능에 대해서도, 즉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창조하는 재능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주 * [1] 이 논문은 1998년 5월 27일 모스끄바 국립대학 어문학부의 19세기 러시아 문학사 분과에서 개최한 "벨린스끼 사망 150주년 기념 학술 대회"에서 발표되었던 것이다. [2] A. N. 쁴삔, <<벨린스끼 ― 생애와 서신 교환>>, 상뜨-뻬쩨르부르그, 1908. 79쪽. [3] <<V. G. 벨린스끼 ― 동시대인들의 회상>>, 모스끄바, 1977. 115쪽. [4] G. A. 솔로비요프, <<청년 벨린스끼의 미학적 이념>>, 모스끄바, 1986. 123쪽. [5] F. W. J. 셸링, <<선집>>, 제1권, 모스끄바, 1987. 478쪽. [6] V. G. 벨린스끼, <<전집>>, 제1권, 모스끄바, 소비에트 연방 과학 아카데미, 1953-1959. 30쪽. 이하 인용은 모두 이 판본에 의거한다.(권, 쪽수) [7] F. W. J. 셸링, <<예술 철학>>, 모스끄바, 1966. 81-82쪽. [8] P. S. 뽀뽀바의 다음 논문에서 재인용: <셸링 <<예술 철학>>의 구성 요소와 탄생>, <<예술 철학>>, 모스끄바, 1966. 12-13쪽. [9] 셸링, <<선집>>, 제1권, 모스끄바, 1987. 475-476쪽. [10] N. I. 나제쥐진, <<문학 비평과 미학>>, 모스끄바, 1972. 63쪽. [11] G. A. 솔로비요프, 상게서, 146쪽. [12] 셸링, 상게서, 478-479쪽. 이에 대해 셸링은 <<예술 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절대적 비분리성을 특수자 가운데서 표현한다면 그것은 오직 상징적 형식에 의해서만 그럴 수 있다. 풀어 설명하자면,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절대적 비분리성을 보편자 가운데서 표현하는 일은 철학과 이념에서 가능한 반면,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절대적 비분리성을 특수자 가운데서 표현하는 일은 예술에서 가능하다는 뜻이다."(셸링, <<예술 철학>>, 모스끄바, 1966. 106쪽) [13] N. K. 게이, <<문학의 예술성 ― 시학과 문체>>, 모스끄바, 1975. 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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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벨린스끼선집>(조쏘출판사)---
제1권; 뿌쉬낀의 "예브게니 오네낀" 評.
제2권; 뿌쉬낀의 전반 詩評.
제3권; 레르몬또브 문학 評.
제4권; 고골리 문학 評.
어릴 적에 멋 모르고 읽었던, 그 서정詩的이고 격조높은 비평문체의 빠뽀스와
강렬한 여운은 지금도 가슴속에 서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