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우산악회 회원 11명은 지난 8월 18일부터 4박5일의 일정으로 중국 대련과 단동을 거쳐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등정하고 고구려 비사성, 광개토대왕의 능, 비,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 졸본성 등 역사 탐방을 하였다.
회원들의 행동 통일과 협력을 위하여 여행단장에는 봉종헌 전 기상청장이, 총무에는 이수웅 회원이 맡기로 했다.
8월 18일 고구려 천리장성 비사성
오후 1시 30분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제주도를 가는 시간과 비슷한 한 시간 남짓 만에 중국 대련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와 함께 여행하게 된 동행자는 우리회원 11명을 포함하여 모두 26명으로 대기하고 있던 전용 관광버스에 여유롭게 탈 수 있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대련시내를 지나 약 1시간을 달려 비사성(卑沙城)에 도착하였다. 비사성은 거대한 석성(石城)으로 고구려가 수(隋), 당(唐)과 전쟁을 할 때 적군의 침략을 막는 최전선 산성이자 고구려 천리장성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그러나 성의 일부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대련에서 단동까지 고속도로로 3시간여 이동하는 동안 휴게소는 단 한 곳뿐이고 차 왕래가 별로 없어 100km이상 달릴 수 있었으며 넓은 들판에는 벼와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었다.
석양 무렵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였다. 식사도 우리의 입에 맞고 고량주 한잔씩을 부어 건배를 외치니 기분이 그만이다.
식당과 가까운 호텔 프리마로 옮겨 여장을 풀었다.
8월 19일 광개토대왕의 능과 비석
다음날 아침 모닝콜에 간단히 샤워를 끝내고 호텔 식당으로 내려와 신의주를 바라 볼 수 있는 압록강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조그마한 유람선에 우리 일행 30여명이 타고 압록강 철교 밑으로 해서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를 옆으로 지나면서 북한 땅을 바라보니 우중충한 건물에 강변에는 사용 할 수 없는 폐선들만 늘어서 마치 죽은 도시처럼 보여 고층 빌딩숲으로 화려한 단동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손을 흔들어도 대답이 없는 500m 저쪽도 우리의 조국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유람선에 내려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의 수도 집안(集安)으로 이동하는 데는 4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이곳에서 광개토대왕의 무덤과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광개토대왕의 비를 둘러 볼 수 있었다.
대왕의 무덤 묘실은 그 넓이가 사방 5m이고 높이는 6m이며 5t 이나 되는 돌 1200개로 축조 되었다고 한다.
1974년에 발견된 광개토대왕의 비는414년에 세워졌고 비석의 무게는 17톤에 달하며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두고 일본은 상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 멀리 북한 땅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높은 산은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고 높은 굴뚝의 동제련소가 보이나 가동 되지 않는 것 같다.
요동성에서 통화(通化)로 가는 길에 길림성에 들어서니 우리의 산하와 비슷한 풍경의 산과 협곡이 나타난다. 도로변에는 코스모스 꽃이 곱게 피어있고 도로에는 차가 적어 한가롭다.
한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운봉호텔에 여장을 풀고 피로도 풀 겸 중국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사지를 단체로 받기로 하고 전문 마사지 집으로 갔다. 두 시간이나 소요되는 전신 마사지를 나이어린 아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는 것을 보고 우리끼리 약속한 것 보다 팁을 더 주지 않을 수 없었다.
8월20일 백두산 등정
지난밤도 푹 잘 잤다. 오늘은 백두산을 오르는 날이기에 긴 소매 옷과 우의도 준비하고 로비로 내려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다음 7시 30분 호텔을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향했다.
2시간이 조금 넘게 차가 달려 작은 휴게소에서 조선족이 경영하는 가게에 들여 아이스크림, 옥수수, 콜라 등 간식거리도 사며 잠깐 쉰 다음 얼마를 더 달려 장백산 입구라 쓰인 광장에 내렸다. 그리고 장백산 전용 버스로 옮겨 탔다.
일기에 대하여 걱정을 했으나 구름은 끼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산림이 빽빽한 포장도로를 꽤 빠른 속도로 달렸다. 고지로 오를수록 나무는 적고 큰 나무 사이에 야생화가 곱게 피어있고 또한 흰줄기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40여분 달려 해발 2000m가 넘는 주차장에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도보로 오르는 돌계단 길이다. 1236 돌계단을 오르는데 다소 힘들기는 해도 우리 일행 모두 잘 올라갔다. 우리 일행 중 최고령 83세의 할아버지도 두 사위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끝까지 잘 오르셨다.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내가 10년 후 저렇게 오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오르는 길 중간 중간에는 가마를 타라고 소리친다. 40분이 조금 더 걸려 목적지 정상에 도달하니 안개가 깔려있다. 1미터 높이의 비석 한쪽에는 “조선” 한쪽에는 “중국” 이라는 표시가 있다.
이곳이 국경인 것이다. 안개가 조금 걷히면서 천지(天池)가 어렴풋이 보인다. 등산객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오징어포에 고량주 한잔을 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천지를 못 본 사람이 천지라고 하여 천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가이드가 농담했다.
20여분 지나니 점점 안개가 짙어지고 추위를 느껴 하산을 하였다.
오는 길에는 장백산의 그랜드캐니언 이라고 불리는 대협곡을 감상하였다. 백두산 화산이 분출할 때 용암이 흘러내려 형성된 협곡은 100m가 훨씬 넘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 기암괴석 이 장관을 이룬다. 또 한 번 대자연의 신비를 맛보는 듯하다.
3시간 넘게 걸려 통화로 돌아오는 길에는 휴게소도 없고 차 막힘도 없었으며, 산에는 우리와 달리 묘를 거의 볼 수 없었다.
1976년 주은래(周恩來)가 죽음을 앞두고 10억의 중국인구가 죽은 다음 다 묘를 쓰게 되면 전 국토가 묘지로 될 것이라 하며 자기 자신도 화장하여 산에 뿌리고 묘를 만들지 말도록 유언을 함에 따라 그 후 법으로 금지하였다 한다.
8월 21일 졸본성을 찾아서
통화에서 호텔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와 환인(桓仁)으로 달리는 국도 변에는 끝없이 옥수수 밭이 펼쳐지고 길옆에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꽃이 곱게 피어있었다.
졸본성 주차장에 내려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첫 번째 수도 졸본성의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999개의 직선 돌계단과 경사가 완만한 계단도 있지만 여기도 다소 힘이 드는 코스이다. 해발826m의 정상에 오르니 주몽이 거처하던 황궁터의 주춧돌이 있고 태극정(太極亭)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천해의 요새에 자리 잡은 성터임을 느끼게 했다.
마지막 날 성해공원을 돌아보고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 하여 붙여진 성해공원(星海公園)은 대련시에서 서남쪽 발해만에 위치한 15만m2의 동북지역 최대의 해양테마파크이다. 공원 옆에는 아시아의 최대 원형 광장이 있어 각종 조형물과 유락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변에는 대련시내에서 가장 비싸다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성해고원을 마지막으로 보고 공항으로 나오는 길에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다.
4박5일 동안 회원 모두 건강하고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여행일정을 마칠 수 있었음을, 봉 단장님의 세심한 배려와 이수웅 총무님의 헌신적인 수고에 감사했다.
여행 기간 중 시종일관 정다운 눈빛으로 손을 잡으면서 담소하는 강민호 박사님 내외분도 무척 행복해 보였다.
당초 이 여행의 일정이 “과학사랑포럼”을 개최하는 바로 전날 입국하는 일정이기에 나는 포기하려 했으나 몇 분의 권유도 있었고 이런 기회에 백두산을 가보고 싶기도 하여 결정한 것이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다. 매우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2007년 8월 27일 김석권 씀
첫댓글 주은래는 역시 참된(?) 지도자다. 자신이 모범을 보였으니 말입니다. 우리나라 지도자는 오히려 자신들의 묘를 명당으로 또는 호화롭게 하고 국민들에게는 강요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행을 무사히 다녀오시니 다행입니다.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탐방기 따라서 백두산, 고구려 유적지 눈으로 본듯 잘 돌아 보았습니다 좋은 여행이었군요
기행문 쓰기가 쉬운일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