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달러 짜리의 "나이키" 로고
세계 최대의 스포츠 메이커 브랜드로서 누구도 알고 있는 "나이키"지만
"Swoosh"라고 불리는 "로고"는 간단하고 더욱이 보기 좋은 스타일로
시대와 관계없이 인기는 끊임이 없다.
이 "로고"
놀랍게도 단돈 us$35.00-로 디자인된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싼 비용으로 가능했을까?
1971년에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Philip Hampson Knight,1983- )는 강사로 있던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여대생 캐롤라인 데빗슨(Carolyn Davidson)에게 로고의 디자인을 의뢰했다고 한다.
필 나이트는 몇 개인가 완성된 그녀의 디자인에 만족해 하지 않고 하는 수없이 이 "로고"를 채용했다.
필 나이트는 인쇄 관계로 급히 로고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게 최고의 디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질게 틀림없다"라고 그녀에게 말하고 타협 끝에 선택했다. 디자인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캐롤라인 데빗슨은 us$35.00-의 청구서를 나이키에 제출했다.
누구나 있는 나이키, 우리 집에도 있는 나이키. 또 있어요!
1971년 경의 기업 로고라고 하면 사치스러운 예술적인 디자인이 유행했었으므로 현대의 감각으로서 지나치게 단순한 뭔가 부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이 디자인은 "NIKE"의 회사명의 유래이기도 한, 여신 NIKE의 날개를 이미지로 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의 "니케(NIKE)"라고 하면 목이 없는 상으로 유명한 사모쓰라스의 니케 (Victoire de Samothrace,승리의 여신)가 유명하다.
그러한 경위와 수익이 낮았던 때였다 라고는 하나, 역시 단 돈 us$35.00-이란 뭔가 구두쇠 냄새 나는 경영자라고 생각할 것 같으나, 그러나 생각과 달리 사실은 제대로 대접을 했다고 한다.
Victoire de Samothrace
불어 Victoire de Samothrace, 영어 Winged Victory
그러고 12년이 지난 1983년
캐롤라인 데빗슨은 필 나이트로부터 점심 식사에 초대받았다.
거기서 당시의 나이키의 멤버들과 함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다이아몬드(Click!)와 금으로 된 "Swoosh"(나이키의 로고)의 반지였다.
그 위에 그녀에게는 나이키의 주식도 주어졌다.
그리고 다음 해의 1984년에는,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Click!)과 계약해 바스켓 슈즈의 "에어 조던"으로 공전의 대히트를 치기에 이르렀다. 나이키의 성공에는 이 "Swoosh"라고 하는 로고가 운을 불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
선물한 다이아몬드 반지란 도데체 어떤 반지인지 궁금하다. "뭔가 구두쇠 냄새 나는 경영자"라고 표현했듯이, 다이야몬드에도 "4C"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경영자"가, 집 문틀에다 "생선 자반"을 달아 매 놓은 장본인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기우일까? 기우길 바란다!
NIKE Inc.,
나이키사는 1972년 설립되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우고 있던 필 나이트(Philip Hampson Knight,1983- )와 오래곤 대학 육상 코치인 빌 바우만(William J. "Bill" Bowerman, 1911-1999)이 전신인 "BRS"사를 설립. 동사는 일본의 "아식스"사로부터 운동화를 수입해, 미국내에 판매하고 있었다.
보다 높은 이익을 위해, 아식스사의 기술자를 "헤드헌팅"으로 빼돌려 아식스의 경쟁사인 후쿠오카(福岡)의 "아사히 코포레이숀"에서 스니커를 생산, 나이키의 브랜드로 판매했다. 1978년 "에어"를 발표, 1982년 "에어 포스 1", 1985년 "Air Jordan", 1987년 "Air max" 등 힛트 상품 연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