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겠습니다
초등학교 64
책을 들고 다녔다 이강윤 기사
학교 기능직 스쿨버스 기사 치고 책 보는 사람 드문데
쉬는 시간 교무실 가면 책을 보는 그를 자주 보았다
대견해서 책 이야기를 나누고 몇 권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 주었다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빌려 주었더니
다음날 어색한 표정으로 책을 돌려주었다
며칠 지나자 책 보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집에서 보겠지
젊은 사람이라 아직 사회에서 해볼 일이 많은데도
기능직이 되어 불만인지 가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힘주어 말했다
도산길 다니는 선배 이 기사하고 해 먹던 차 수리비가 횡령으로 들통 나자
어마 뜨거워라 밥통 떨어질라 청구서 조작을 다시는 안 했다
선생들과 어울려 고스톱을 치는 밤
전번에 중학교 운동장에서 논 외상 화대 왜 여태 안 줘요
커피 배달 온 다방 아가씨가 우리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쓰리고에 피박에 광박에 거금이 나가자 에이 씨팔 한 마디 남기고
오늘 밤 숙직이면서도 자기 사는 사택으로 휙 가버리고
꼭두새벽에 쎄이콤이 안 됐다는 전화를 경비회사에서 받고 최 교장이 들어왔다
허참 놀아도 그리 오래 놀면 되나 야근한다 신고도 안하고 말이야 쯧쯧
교장실에 불려간 선생들은 뒷머리 긁적긁적 고개를 숙였다
마누라가 선생들과 고스톱 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며
다시는 선생들이 노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사택에 공짜로 살다보니 맡아야 하는 아침 빈틈 시간 숙직과 일직 사이
아침 일찍 교무실에 뱀이 들어온 걸 보았다는 이 기사의 말 때문에
아이들 깨물리면 큰 일 나지 다음날부터 일직 담당 선생이 30분 일찍 출근하였다
어제 오후 사택에서 교장 선생님 모시고 기능직들 모여 놀며 다방 커피 시켜먹다가
겪어보니 소문대로 원리원칙 잘 따지는 박 선생이
오늘 아침 직원회의 때 한 문단 하는 바람에 간이 덜컹했으나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운동회 연습 한창 하는데 고스톱이나 치고
다방 아가씨가 커피 잔 들고 교문에 들어서서야 되겠습니까
박 선생이 오후에 기능직들 셋 불러놓고
교육청에 고발 안 하고 직원회의 발언으로 끝내니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말에
하루 종일 간당간당 떨어지려던 던 간이 겨우 숨을 쉬었다
소문이 백리 안동 길 금방 달려 이듬해 인사 때
교장이 놀자 하고 커피 먼저 불렀지 명령 따른 기능직들이야 죄 있나
정년을 반 년 앞두고 김 교장은 멀리 남쪽으로 좌천되었다
송별회 날 전근 가는 인사말 하러 일어서서 이제부터
착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