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송광사와 봉서사 를 품은
전주 근교의 종남산~서방산 으로 갑니다
☞출발일시와장소:3월12일(금요일) 08:00 광주역앞(송광관광)
(양동시장. 서방시장. 동신고. 홈푸러스 경유)
☞회 비 : 15,000원(남), 13,000원(여)
☞준비물 : 도시락과 식수, 간식, 등산복장( 방한의류,여벌옷 포함), 구급약
기타 본인이 필요한것
☞목적지 : 전북 완주의 종남산~서방산
☞등반코스: 송광사-보이스카웃야영장-북서능-남봉-종남산정상-북능-사거리안부-561봉- 서방산정상-봉서사 (약4시간)
☞ 연락처:회 장 :정대진(010-6397-4794) 산행이사:김등부(010-7620-7566)
부회장 :김대성(010-4028-7734) 〃 :김소웅(011-9615-0147)
총 무 :이정례(010-2434-5892) 관광기사:최 병남(011-609-0371)
광 주 금 광 산 악 회
송광사와 뒷산 종남산
종남산-서방산(終南山.西方山) 604-612m 전북 완주군 소양면,용진면
전북 완주에 자리잡은 종남산(608,4m)과 서방산(612m) 줄기는 전주에서 동북쪽 1.5km쯤 되는 송광사 뒷산이다. 특히 뛰어난 것은 조망이 좋다는 것. 드넓은 김제 만경평야와 산지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숲이 울창하고 암벽과 암릉이 제법 발달돼 있다. 울창한 숲 속을 흘러내리는 봉서사 골짜기의 개울도 맑고 수려해 평야에 가까우면서도 깊은 산중의 맛이 느껴져 이 지역 산꾼들로부터 사랑받는 산이다.
넓은 김제 만경들을 넘어 서해 바다를 볼 수 있고 오도재, 오성리 너머로 위봉산성과 되실봉의 암봉이 조망되고 서남쪽으로 용진평야와 전주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등 수많은 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이 산의 바로 아래 서남쪽 기슭에는 마치 서부활극에나 나오는 서부평원과도 같은 광활한 평원이 펼쳐져 시야가 확트인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여기에는 전라북도 예비군 동원훈련장을 비롯 학생야영장, 한국 보이스카우트 전북연맹 훈련장, 신원사, 송광사가 자리잡고 있어 전주와 진안간 국도에서 송광사까지의 2.6km의 봄철 벚꽃 상춘객과 함께 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그치지를 않는다.
또한 송광사나 봉서사 등 유서깊은 사찰을 산행들머리로 하는 덕분에 산자락의 문화재를 감상하기도 좋다.
종남산은 송광사와 인연이 깊다. 옛날 구산선문 중 제3대조이자 송광사를 창건한 보조체징국사가 송광사터(넓이 약 35,000평)를 '구식감원', 즉 거북이가 북방 언덕을 먹고 있는 형국이라 했는데, 그 북방 언덕이 종남산이다. 종남(終南)이라는 뜻도 남쪽에 있는 거북이에게 먹히고 있으니 즉 남쪽에서 끝난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송광사 일주문 현판에는 '종남산 송광사'로 되어 있다
' 남쪽의 끝에 있는 명산' 이란 뜻의 종남산은 가지산파의 시조인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귀국여 북으로부터 절터를 찾아 내려오다 종남산에서 영천수가 셈솟는 것을 발견하고 더는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터를 잡았으니 이곳이 바로 송광사터이다. 중국에서 수행한 종남산과 모습이 비슷하여 그리 붙였다는 설이 있다. 지금도 보이스카우트 제1야영장과 본관이 있는 곳에선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영천수가 나와 훈련장의 음료수와 풀장 용수로 쓰고 있다
서방산은 불가에서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세계라는 뜻인 서방정토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서방산 서쪽 고을 삼례는 임진왜란 때 왜장 가등청정이 이 산을 바라보고 세번이나 예를 갖추고 절을 했다하여 생긴 지명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등산코스 : 송광사-보이스카웃야영장-북서능-남봉-종남산정상-북능-사거리안부-561봉-서방산정상-봉서사-봉서제-밀양박씨묘역-봉서제 (약4시간)
송광사(松廣寺)
송광사는 신라 경문왕 7년(867년) 보조체징선사가 창건한 선종의 대표적 사찰이다. 옛 이름은 백련사였다. 가람의 규모가 방대하여 본래 일주문이 현 위치에서 3km 아래 있었다가 현 일주문은 1944년에 옮긴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폐찰이 되었다가 광해군 14년(1622년)에 중창을 시작하여 승주 송광사의 보조국사 제자들인 덕림스님의 주도 아래 승명(勝明), 운정(雲淨), 응호(應浩) 등의 스님들이 절을 복원, 중창하면서 절 이름도 송광사로 바뀌게 되었고 인조 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인조는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나중에 효종으로 등극)인 봉림대군의 무사환국과 국난의 아픔을 불력으로 치유하고자 호국원찰로 삼아 당대 최고 승병대장인 벽암각성 대사와 160여 명의 승려를 머물도록 하여 거국적인 불사를 하게 되었다.
석가화현이라 불리는 진묵 대선사가 오래 거처하면서 많은 이적을 보인 곳이며, 국가위난이나 기도감응 시에는 대웅전, 나한전, 지장전 불상이 땀을 흘린다고 전해진다. 또한 좌불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삼세불(석가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과 대웅전(보물 제1243호), 국내 유일의 아자형(亞字形) 종각(보물 제1244호), 영산정(오백나한정), 사천왕전 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신라 천년 고찰이다.
봉서사(鳳棲寺)
봉서사는 신라 성덕왕 26년(727년) 해철선사가 창건하고, 고랴말 나옹대사가 중창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조에는 기행으로 유명했고 석가회현 전국승려대조사(大祖師)라 추앙받은 진묵대사(1562~1633)가 중생을 교화했던 호남의 명찰이며 진묵대사의 어혼환생(漁魂還生)이라는 이적에 관한 기록도 전해진다. 봉서사 대웅전 서쪽 계류 건너편에 자리한 진묵대사부도(전북 유형문화재 제108호)는 36년 전부터 1년에 5mm씩 커지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건물이 17동 사답 500두락이나 되는 큰 절이었으나 6.25 때 전투로 옛날의 건물들은 불타고 지금의 건물들은 50년 전부터 하나씩 새로 지은 건물들이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칠성각, 관음전, 범종각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일붕서경보(一鵬 徐京保)스님의 선시비도 새워저있다
송광사 일주문
송광사 아(亞)자형 종각(보물1244호)
봉서사 전경
봉서사 진묵전
종남산 정상표지판
종남산
서방산정상(넓은 핼기장) 표지판
종남산~서방산 등산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