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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 우나무노 생의 비극적 의미
미겔 데 우나무노, (Miguel de Unamuno, 1864년 9월 29일, 스페인 빌바오 출생, 1936년 12월 31일, 살라망카 사망)는 교육자, 철학자, 작가였으며, 그의 논문은 20세기 초 스페인과 유럽에서 큰 정신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그의 문학과 또 이를 반영하는 철학은 실존주의 발전에 선구적인 입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는 여기서 다룰 우나무노의 철학 저서 “생의 비극적 의미”는 실존주의적인 용모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뒤에서 이 책을 분석하겠습니다. 그의 인생은 정치적으로도 큰 소용돌이를 회전합니다.
그를 단순히 문학, 예술 그리고 철학으로만 한정하기에는 아쉽습니다. 문학, 종교, 철학, 정치 등이 얽힌 철저한 개인의 실존입니다.
우나무노는 바스크계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빌바오 비스카야 연구소를 졸업한 후 1880년 마드리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4년 만에 철학과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6년 후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
1901년에 우나무노는 대학 총장이 되었지만, 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후 1914년에 직위에서 해임되었습니다. 1924년 스페인에서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의 통치에 반대하여 카나리아 제도 로 강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프랑스로 도망쳤습니다. 프리모 데 리베라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 우나무노는 살라망카 대학으로 돌아와 1931년에 대학 총장으로 재선되었지만, 1936년 10월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팔랑헤당을 비난하여 다시 총장직에서 해임되었고, 가택 연금을 받았습니다 . 그는 두 달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스페인의 위대한 독재자 프랑코와 우나무노는 서로 갈 길이 달랐습니다.
우나무노는 초기 실존주의자였으며, 지성과 감정, 신앙과 이성 사이의 긴장에 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인생관의 핵심에는 불멸에 대한 개인적이고 강렬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우나무노에 따르면, 사후에도 계속 살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은 이성에 의해 끊임없이 거부당하고 오직 신앙으로만 충족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긴장은 끊임없는 고통을 초래합니다. 이런 부분이 그리스도 국가의 사람들이 가지는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원히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의식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도 누구나 자식을 낳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영생의 소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과 믿음의 갈등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의 기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양 철학의 진정한 아버지 플라톤은 인간이란 영원에 대한 욕망이 있고 자식을 통해서 반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의 철학에서 영원, 사랑, 자녀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사랑과 이데아 즉 (영원불변의 완전한 존재)를 통해 영원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관련이 깊습니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에로스, (사랑)를 통해 이데아에 접근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묘사하고, 자녀 출산은 이러한 사랑의 연장선상에서 영원성을 부분적으로나마 획득하려는 행위로 해석합니다.
그는 시와 희곡도 썼지만, 우나무노는 수필가이자 소설가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의 강렬하고 파괴적인 수필에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순응, 광신주의, 위선에 직면하여 개인의 정직성을 보존해야 할 필요성입니다. 우나무노의 성숙한 철학은 “생의 비극적인 의미”에서 나타나는데 여기서 그는 인간의 영적 불안이 도리어 인간을 최대한 충만한 삶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나무노의 소설은 고뇌하는 인물들을 강렬하게 심리적으로 묘사하며, 그 인물들은 그의 철학적 사상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소설은 1917년작 『아벨 산체스: 열정의 역사』입니다. 아벨 산체스,(Abel Sanchez)는 성경 속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작품으로, 카인을 대표하는 인물의 고통스럽고 갈등하는 충동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의 다른 소설로는 아버지가 아들을 과학적으로 키우려다 실패하고 아들을 파멸로 이끄는 이야기를 다룬 “사랑과 교육”그리고 신앙심이 없는 사제의 이야기를 담은 “착한 성인 마누엘”, (1933) 등이 있습니다.
우나무노의 소설 “안개”, (La Niebla), (1914) 안개는 우나무노의 걸작으로, 20세기 스페인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인 작가의 작품입니다. 주인공 아우구스토 페레즈는 사랑에 상처를 입고 죽고 싶어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죽을 수 없습니다. 아우구스토는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 작가와 투쟁하며, 소설가의 캐릭터들과의 빛나는 대화는 그와 논쟁을 벌입니다. 작가는 언어 구조 내에서 삶의 역동적인 시간성을 반영하기 위해 소설 형식을 혁신합니다. 독특한 구조, 어이없는 캐릭터, 예상치 못한 결말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문학적 충격을 선사합니다.
소설 “안개”는 지성과 감정, 신앙과 이성 사이의 갈등을 탐구한 철학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불멸에 대한 집착, 인간 자아에 대한 믿음, 변하지 않는 사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불멸에 대한 집착은 그의 철학의 중심 테마입니다.
# 체계의 부정과 전통으로의 복귀
우나무노의 철학적 사상은 체계적이기보다는 모든 체계에 대한 부정이자 "그 자체로" 신앙을 긍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철학 체계를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믿음을 긍정합니다. 쉽게 말하면 단순한 신앙입니다.
그는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와 경험과 증거를 신봉하는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젊은 시절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공감과 당시 스페인의 상황에 대한 깊은 관심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논문들을 썼습니다. 스페인 제국의 몰락과 국내적 분열, 좌절 그리고 분열이 우나무노의 문학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전통적인 신앙으로의 복귀입니다.
# 내적 역사, inside history
미겔 데 우나무노에게 중요한 개념은 “내적역사” 즉 inside history 였습니다. 그는 전쟁이나 정치 협정과 같은 주요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익명의 사람들의 작은 역사들을 살펴봄으로써 역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내적 역사' 개념은 공식적인 사건과 날짜로 구성된 표면적 역사 즉 (대역사)와 대비됩니다. 우나무노는 진정한 역사의 흐름과 민족의 정신은 오히려 이름 없이, 조용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일반 대중의 삶 속에 축적된 감정, 신앙, 관습 및 언어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치적 사건의 표면 아래에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침묵의 깊은 흐름입니다. 그의 이 개념은 생의 철학과 실존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며, 스페인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거대한 역사의 변화와 흐름을 역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소시민들의 의식에 반영되는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 형식적 신앙
우나무노는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에 열정이 없고, 불확실성이 없고, 의심이 없고, 때로는 절망도 없는 사람들은 신의 관념만을 믿고 신 자체는 믿지 않습니다." 여기서 불확실성이 없다는 것은 신앙이란 항상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동요하는 성질이 있는 데,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은
습관적인 종교 활동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종교 생활은 아마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의 삶의 행사로서의 종교 예를 들어 전통이나 가족 혹은 가문의 의식으로서의 종교, 예배, 미사 혹은 축제 등이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은 사랑이다” 라는 구절 혹은 관념이 있습니다. 많은 신도들은 이를 그냥 암송 구절로만 이해를 하고 학습으로만 상정을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지금 나의 삶 즉 아무한테도 말하기 어려운 나의 삶의 형편에서 그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어 볼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인데 지금 내가 마주한 이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물어 볼 것입니다.
# 종교와 실존주의
19세기 후반, 우나무노는 종교적 위기를 겪으며 실증주의 철학을 떠났습니다. 그 후 20세기 초, 그는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정신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독일 관념론 철학자 헤겔과 달리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골은 인간의 삶의 독자성, 개별성 그리고 우연성과 모순성, 아이러니한 운명 등을 실존주의라는 철학에 심었습니다. 우나무노 역시 이런 맥락을 느끼고 이를 자신의 지성적, 신앙적인 문화를 개척해 나갑니다.
우나무노에 따르면, 삶은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은 비극적이라고 합니다. 그는 인간 활동의 많은 부분을 죽음 이후 어떤 형태로든 생존하려는 시도로 설명합니다. 죽은 후의 생활 곧 천국에 간다든지 아니면 부활한다든지 하는 표상을 기족교인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천년이상 기독교를 믿어온 서양의 경우 이런 기독교적인 무의식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뿌리가 깊습니다.
우나무노는 자신의 신조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나의 종교는 삶에서 진실을 찾고, 진실에서 삶을 찾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것들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진실에서 삶을 찾는다는 말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아마 그 말은 진실 즉 예를 들어 성경이나 철학 서적 등에서 그대로 삶을 배우려는 입장을 말할 수 있습니다.
# 철학, 실존으로서의 학문
그는 진실에서 삶을 차는 사람들을 지혜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나무노는 지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살과 뼈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비극적 삶의 감각을 지닌 사람들의 전형적인 예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파스칼, 루소, 르네, 오버만, 톰슨, 레오파르디, 비니, 레 나우, 클라이스트, 아미엘, 켄탈, 키에르케고르를 떠올립니다. 이들은 지식보다는 지혜에 짓눌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철학의 체계보다도 자신의 삶 곧 실존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우나무노 역시 철학을 실존적으로 탐구하기를 원하는 학자입니다.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생의 비극적 의미”에서 신앙과 이성의 차이점에 대한 자극적인 논의를 제공합니다.
#, 슬픔과 종교, 솔론의 아들 이야기
우나무노는 인간의 슬픈 감정에 대해서 철학적인 의미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솔론이 아들 죽음을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솔론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의 격언집에서 솔론의 유명한 이야기를 통해서 슬픈 감정의 다의적인 의미를 말합니다.
"솔론이 아들의 죽음에 대해 울었을 때, 누군가 그에게 '울어도 소용없어요'라고 말하자, '아, 그래서 우는 거요, 울어도 소용없으니까.'"
이와 연결하여 우나무노의 “삶의 비극적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서술이 나옵니다.
솔론이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는 것을 본 한 교만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울고 있나요?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데?” 현자는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 때문입니다,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울기는 소용이 있습니다, 비록 그저 감정 배출일 뿐이지만, 솔론의 대답에 담긴 깊은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모두 거리로 나가 우리의 슬픔을 드러내면, 그 슬픔이 어쩌면 하나의 공통된 슬픔으로 드러날지 모르지만, 그 슬픔을 함께 울고 하늘에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부르짖는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비록 그가 우리를 듣지 않더라도, 그는 분명히 우리를 들을 것입니다. 가장 성스러운 것은 그것이 함께 울기 위해 가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운명에 맞서며 군중이 함께 부르는 '미세레레'는
철학만큼이나 가치가 있습니다. 역병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슬퍼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네, 슬퍼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솔론에게 물어보세요. 다른 이름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비극적 감정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최고의 지혜일 것입니다. 왜냐고요? 솔론에게 물어보세요.
다른 이름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비극적 삶'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것은 삶 자체와 우주에 대한 전체적인 관점을 포함하며, 더구나 더구나 의식적인 철학입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단순히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뿐 아니라 전체 민족이 가질 수 있으며, 실제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단순히 아이디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결정하며, 비록 나중에 이 아이디어들이 반작용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나무노, 생의 비극적 의미)
"미세레레"는 라틴어 단어 "Miserere"를 한국어로 표기한 것으로,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뜻입니다. 주로 종교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며, 특히 시편 51편의 첫 구절 "Miserere mei, Deus"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우나무노는 슬픈 감정의 의미를 알리고 있습니다. 즉 슬픔은 인간의 무능성을 표현하는 감정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대항할 수 없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그 때 우리는 웁니다. 그런데 우나무노는 이런 비극적인 감정 즉 아들의 죽음에 직면하여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울고만 있는 인간의 나약성을 오히려 종교를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 때, 전지 전능한 하나님은 이를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는 신앙적인 사상이 드러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슬퍼하는 감정을 배워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그는 “운명에 맞서며 군중이 함께 부르는 '미세레레'는 철학만큼이나 가치가 있습니다” 라고 주문합니다.
# 철학과 자아
우나무노는 철학의 출발점을 나 즉 자아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나는 데카르트나 루소 혹은 독일의 관념론이 말하는 자아가 아닙니다. 특히 그는 피히테의 자아의 철학을 지양합니다. 즉 피히테의 지식학의 기초는 바로 나 입니다. 그리고 피히테는 자아와 비아를 철학의 전개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우나무노의 “삶의 비극적 의미” 중 한 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철학자들은 자신의 인간적 작업, 즉 철학하는 것의 이론적 또는 이상적인 출발점을 찾지만,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출발점, 즉 목적을 찾는 것을 소홀히 합니다. 철학을 하고, 그것을 생각하고, 동료들에게 설명하는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철학자는 그 속에서 무엇을 찾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 것인가요? 진리 자체를 위한 진리인가요? 진리를 통해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고, 그에 따라 우리의 정신적 태도를 결정하기 위한 것인가요?
동료들에게 설명하는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철학자는 그 속에서 무엇을 찾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가? 진리 그 자체를 위해인가?
진리를 통해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고, 그에 따라 삶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태도를 결정하기 위해인가? (생의 비극적인 의미)
철학은 각 철학자의 인간적 산물이며, 각 철학자는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으로서, 자신과 같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다른 인간들에게
말하는 존재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는 이성만으로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감정으로, 살과 뼈로, 영혼 전체와 전체 몸으로 철학합니다. 인간은 철학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철학할 때 '나'가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철학한다고 말하기 위해, 이 구체적이고 제한된, 살과 뼈로 이루어진 '나'가 치통을 겪고 죽음 앞에서 삶을 견딜 수 없다고 느끼는 이 '나'가 다른 의미의 '나'와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죽음이 개인적 의식의 소멸이라면 삶을 견딜 수 없는 이 나'를,
그 다른 '나’즉 대문자로 쓴 ‘나’, 피히테가 철학에 도입한 이론적 나'와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한, 역시 이론적인 '나'와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라고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생의 비극적인 의미)
우나무노는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 이란 표현을 즐겨 씁니다. 이 말은 인간의 육체를 지시한다기 보다는 개별자로서의 인간, 단독자로서의 인간을 말합니다. 즉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인간을 말합니다. 뼈와 살은 결국 개별자의 개별성을 말합니다. 우나무노는 “사람은 이성만으로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감정으로, 살과 뼈로, 영혼 전체와 전체 몸으로 철학한다” 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철학적인 본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실존 철학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철학과 자아의 문제입니다. 철학에서 자아 혹은 나의 개념은 극히 소중합니다. 근세 철학의 시조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를 철학의 토대로 삼았습니다. 그 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피히테 역시 나와 내가 아닌 것 달리 말하면 자아와 비아를 그의 철학의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위의 문장에서 그 다른 '나’즉 대문자로 쓴 ‘나’, 피히테가 철학에 도입한 이론적 나란 것은 피히테의 자아의 철학을 말합니다. 피히테의 철학은 자아를 하나의 보편적인 원리로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 즉 “막스 슈티르너의 나 곧 유일한 나”는 독일의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의 철학을 암시합니다. 슈티르너는 1844년에 출판된 그의 작품 “유일자와 그 소유” 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종종 개인의 자기 이익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철학인 이기주의와 연관됩니다.
우나무노는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철학의 출발점도 인간의 순수한 지적인 욕구나 자연에 대한 경탄 등이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의식에 있다고 여러번 강조를 합니다. “삶의 비극적 의미” 중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철학의 출발점, 진정한 출발점, 실천적인 출발점, 이론적인 것이 아닌
출발점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철학자는 철학하기 위해 철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Primum vivere, deinde philosophari 라고 고대 라틴 속담이 말합니다. 이를 번역하면 먼저 살고나서 철학하라입니다. "선 생존, 후 철학"은 이론이나 철학을 추구하기 전에 기본적인 생존과 실용적인 삶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문구는 추상적인 생각에 시간을 할애하기 전에 기본적인 필요와 경험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하라는 의미입니다. (생의 비극적인 의미)
생존과 실천의 환경 속에서 시작하는 철학은 결국 종교 안에서 그 답을 찾는다는 것이 우나무노의 기본적인 체계입니다. 그래서 그는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것처럼 먼저 살고나서 철학하라 즉 Primum vivere, deinde philosophari 라고 고대 라틴 속담을 지시합니다.
그런데 필자의 입장에서 우나무노는 철학 혹은 형이상학 혹은 제1철학 등의 개념을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우나무노의 살과 뼈를 가진 인간 혹은 영생을 바라는 인간의 본능 혹은 시급한 실천적인 욕망을 가진 인간 등은 철학에서는 인간학에서 다루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론 즉 De Anima에서 인간의 여러 가지 본질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 등의 근본적인 철학의 영역은 굳이 말하면 물질을 넘어서, 인간을 넘어서 있으며 물질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근본적인 규정을 다시 물어 봅니다. 이런 영역을 우나무노는 순수한 지식 혹은 그 자체를 위한 지식 등으로 낮추어 봅니다. 예를 들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근본적인 범주인 실체와 속성, 가능성과 현실성 등은 인간과 영혼 실천 등 모든 존재의 뿌리를 구성하는 개념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나무노의 종교학적 인간학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나무노는 대표적인 합리주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무신론적인 사상을 비웃습니다. 아래 올립니다.
스피노자라는 사람을 보세요, 네덜란드에서 추방된 포르투갈계 유대인입니다. 그의 “윤리학”을 읽어보세요, 그 자체로, 절망적인 애가(哀歌)적인 시로, 그리고 그 아래에서, 간결하고 평온해 보이는 명제들이 더 기하학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 그건 절망의 철학이지, 순종의 철학이 아닙니다. (생의 비극적인 의미)
스피노자의 그 치열한 거의 수학적인 방법으로 명제들을 도출하고 있는 이성주의, 합리주의 체계의 완성을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순종의 철학이 아니라 절망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철학적인 진술이라기 하나의 문학적인 혹은 감정적인 진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나무노의 다소 감정적인 스피노자 비판에 관련해서 하나 추가하는 사실은 독일에서 스피노자의 합리주의 철학을 무신론으로 간주한 사상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는 특히 "스피노자 논쟁"의 맥락에서 바로크 스피노자의 철학에 관여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였습니다. 야코비는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데우스 시브 나투라' 즉 (신 즉 자연) 개념이 유물론의 한 형태를 나타내며 궁극적으로 무신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우나무노는 인생의 비극적인 문제를 가톨릭 신앙 안에서 해결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목적도 당시의 다양한 신학적, 철학적인 논쟁 때문에 간단히 풀리지는 않고 여러 명의 철학자, 신학자 등의 논쟁을 고찰을 합니다. 우선 우나무노는 영혼의 불멸과 최후의 심판 등 성경에 나오는 사례들을 보여줍니다. 영혼의 불멸설과 그리스도의 재림설 사이에는 갈등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역사에서 오리겐에 의해서 표현된 개인적 종말론과 유사합니다.
교부 시대, (3세기경)의 신학자인 오리겐은 세계의 종말이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개개인에 따라 달리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수정하는 단계를 거쳐 이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종말적인 성취의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완성의 단계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긴장을 경험할 뿐 아니라 성도 개개인의 구원과 몸 된 교회 전체의 구원간의 긴장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미 실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상을 우나무노는 비종말론 즉 anescatologico 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말하는 종말론은 개인적 종말론이 아니라 역사적 종말론입니다. 기독교 종말론은 기독교 신학에서 '마지막 것' 또는 세상의 종말과 인류와 창조 질서의 궁극적인 운명에 관한 연구입니다. 종말론은 그리스도의 재림, 부활, 심판, 천국, 지옥과 같은 성경의 예언과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의 미래적 현실성을 믿지 않는 기독교 신앙을 우나무노는 비종말론 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종말론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보거나 영적으로 보는 신학을 말합니다.
아래의 인용문을 보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알리고 있습니다. 즉 우나무노는 이렇게 말합니다,“그리스도는 강림하여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며 일부에게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다른 일부를 지옥으로 내쫓아 그곳에서 울부짖음과 이빨 갈음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불멸을 믿는 자들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혼의 불멸을 믿는 자들은 다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다시 심판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받는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한국에서 개신교의 기본적인 교리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재림할 때까지 무덤 속에 잠자다가 또 일어나 심판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구원과 영생 그리고 재림의 교리 사이에는 긴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나무노는 재림과 심판 그리고 영원한 천국 개념 사이에서 재림파에 속합니다. 이를 그는 종말론, eschatology 이라고도 합니다. 종말론과 영생론, 영혼의 불멸설 사이의 갈등입니다. 그는 다시 이렇게 씁니다.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믿음은, 그 조건이 아마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을지라도, 복음 전체에 내재된 암묵적인 전제나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믿음은 그 조건이 아마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지만, 복음 전체에 내재된 암묵적인 전제,
묵시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 복음을 읽는 많은 이들의 정신적 상황입니다. (생의 비극적 의미)
이 말은 오늘 날의 교인들은 모두 영혼의 불멸설을 전제 조건으로 성경을 읽고 있다는 것이며 묵시적인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재림과 최후 심판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초대의 교인들은 주께서 곧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강한 기대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된 종교로 된 다음부터는 이런 재림에 대한 기대가 약화됩니다. 그래서 우나무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이는 복음이 탄생한 기독교인들의 정신적 상황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모든 것은 오늘날 복음을 읽는 많은 이들의 정신적 상태입니다. 이는 복음이 탄생한 기독교인들 사이의 상황과 반대되며, 그들이 이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두 번째 강림에 관한 모든 것, 위엄으로 둘러싸여 구름 사이에서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오시며, 일부에게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다른 일부를 지옥으로 내쫓아 그곳에서 울부짖음과 이빨 갈음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주권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심지어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에게 말하게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31 to 46), (생의 비극적 의미)
이런 상황에서 우나무노는 당시 독일의 자유주의적인 신학자 하르나크를 인용합니다. 아돌프 폰 하르나크는 구원의 교리가 역사적으로 변화해왔고 특히 이 경우에 그리스 철학적인 영향이 작용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규범이 된 예수가 아니라 실제적인 예수 즉 역사적 예수 개념을 강조합니다. 하르나크는 기독교의 생명인 부활의 문제 역시 교리 신학적인 맥락이 아니라 종교 심리학적인 면에서 접근합니다. 즉 예수 시대에는 사람이나 동물을 죽여서 신께 바치는 종교적인 풍습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이런 종교적인 인간들의 욕구를 대표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보통 교회에서 믿는 것처럼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바로 영생을 누린다는 신학은 부정됩니다. 그런 면에서 하르나크는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하나의 상징으로 봅니다. 즉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우나무노는 쓰고 있습니다.
부활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영혼의 불멸이 아니었습니다. 참조, 하르나크, Dogmengeschichte. Prologomena, 5.4.
부활이 사실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영혼의 단순한 불멸성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생의 비극적인 의미)
자유주의 신학은 부활을 그냥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인간의 영적인 존재를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봅니다. 그들은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는 사람이 500명이나 되었다는 성경의 기록도 무시합니다. 이런 자유주의적인 혹은 인본주의적인 성경의 해석은 4세기 경 아리우스파와 아나타시우스파의 대립으로까지 전진합니다.
아타나시우스의 신학은 주로 아리우스 논쟁에서 그의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는 성부와 성자가 동일 본질이며,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라는 정통 신앙을 옹호했습니다. 이는 아리우스의 주장, 즉 성자는 피조물이며 하나님과 유사한 본질을 가졌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나무노는 다시 아나타시우스의 정통성을 복원합니다.
이 같은 하르나크, 프로테스탄트 합리주의자는 아리우스주의나
유일신론이 기독교를 우주론과 도덕으로 축소시켜 기독교의 죽음이었으며, 단지 학자들을 가톨릭으로 이끌기 위한 다리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즉,
이성에서 믿음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 교리 역사학자이자 학자는,
악랄한 상태의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아타나시우스라는 인물이 기독교를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의 종교로 구원한 사람이, 나사렛의 예수, 역사적인 예수를 지웠다는 것입니다 (생의 비극적 의미)
이런 기독교의 이단설을 격파한 우나무노는 이제는 또 다른 이단설인 가현설을 들고 나옵니다. 가현설 또는 도세티즘, (Docetism)은 그리스어로 "보이다"라는 뜻인 '도케오'(δοκέω)가 어원으로 예수의 몸은 환상일 뿐이고 그의 본질은 영이다 따라서 그의 신체는 환상이라는 영지주의 즉 gnosticism 교리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이원론을 강조한 영지주의 기독교의 주요한 교리였습니다. 영과 육을 합치면 거룩한 영이 더러워지므로 하나님 아들, 예수가 육으로 오지 않았으며, 오로지 눈에 보이는 영으로만 세상에 왔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우나무노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과 계시가 분리되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와 니케아의 그리스도, 즉 가톨릭의 그리스도는 우주론적 그리스도도 아니며, 엄밀히 말해 윤리적 그리스도도 아닙니다. 그는 영원하고 신성한 그리스도 즉
종교적 그리스도입니다. 하르나크는 이 그리스도, 즉 니케아 가톨릭의 그리스도에 대해, 그가 본질적으로 도케티스트적, 즉 외형적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신성화 과정은 종말론적 관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역사적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합리주의적 해석학의 그리스도인가? (생의 비극적 의미)
이 글에서 우나무노는 자유주의 신학자 하르나크의 인본주의적인 성경과 특히 예수에 대한 해석은 가현설과 결부됨을 드러냅니다. 가현설 즉 도세티즘 혹은 도케티즘은 자유주의 신학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믿지 않고 주로 그리스 철학 혹은 이성주의 입장에서 밝혀내는 자유주의는 드디어 영지주의를 모방합니다.
이렇게 성경 무오류 사상에 기초하여 가톨릭 교회와 그 교리를 옹호한 우나무노는 종교의 본질 즉 구원에 대하여 색다른 이론을 제시합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이 선의 추구가 아니라 악에 대한 공포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지옥에 대한 공포심이 중세 사람들을 수도원으로 끌여들였다고 합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열망보다는 가난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가난한 인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 인간을 수도원으로 끌어들인 것은 영광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지옥에 대한 공포였듯이, 돈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돈에 대한 공포가 인간을 돈에 얽매이게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찾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욕망이 아니라 지옥에 대한 공포가 중세 시대의 사람들을 수도원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우울증에 빠지게 만든 것과 같습니다. 이것도 자부심이 아니라 무에 대한 공포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되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우리가 무로 돌아가지 않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생의 비극적 의미)
다시금 철학에 대한 주제로 돌아 갑니다. 우선 그는 19세기 초의 위대한 독일 철학자, 관념론의 완성자인 헤겔에 대한 개인적인 적개심을 솔직히 표현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지식을 위한 지식 혹은 철학을 위한 철학의 관념을 부정적으로 보는 우나무노는 철학의 뿌리가 종교라고 주장합니다.
헤겔, 즉 합리주의의 원형에 대한 이 쓴 비난에는 얼마나 강렬한 열정이, 즉 진실이 담겨 있는가! 그는 우리에게 열병을 빼앗아 가며 생명을 빼앗고, 구체적인 불멸 대신 추상적인 불멸을 약속한다. 추상적인 불멸, 구체적인 것이 아닌! 그 불멸에 대한 갈망이 우리를 삼키고 있다!
철학과 종교는 서로 적대적이며, 적대적이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철학이 없는 종교도, 종교적 뿌리가 없는 철학도 없습니다. 각각은 서로의 반대에서 살아갑니다. 철학의 역사는 엄밀히 말해 종교의 역사입니다. (생의 비극적 의미)
그는 칸트의 철학 역시 순수한 이성이 아니라 종교 혹은 비이성적인 욕구가 철학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칸트의 비판철학에서 이성을 부정한 것 즉 이성은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오성 즉 understanding을 벗어난 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를 그는 이성을 회의주의로 해체한다고 합니다.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그 본능은 바로 이성 자체의 본능입니다. 칸트의 비판적 이상주의는
종교적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를 구원하기 위해 칸트는 이성
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이성을 회의주의로 해체한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헤겔이 절대적 이상주의를 구축한 대립, 모순, 반론의 체계는 칸트 자신에게 그 뿌리와 씨앗을 가지고 있으며, 그 뿌리는
비이성적인 뿌리입니다. (생의 비극적 의미)
어린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 힘겨운 시절까지 역사적으로 영향력 있는 종이접기 작가였던 우나무노는 여러 작품에서 플라톤주의, 스콜라주의, 실증주의, 그리고 " 과학 대 종교 " 문제에 대한 철학적 견해를 " 종이접기 " 인물, 특히 전통적인 스페인의 파하리타,(pajarita)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Pajarita"는 스페인어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가장 흔한 의미는 종이로 만든 새 모양의 접기, (오리가미) 또는 나비넥타이입니다. 또한, 스페인어에서는 "pajarita"가 작은 새를 뜻하는 "pajarito"의 여성형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대한 동정심이 사라지자 우나무노는 자유주의에 끌렸습니다. 1909년 『자유주의의 본질』, (La esencia del liberalismo) 과 같은 에세이에서 구체화된 우나무노의 자유주의 개념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깊은 존중과 더욱 개입적인 국가를 조화시키려 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사회 자유주의에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1932년 스페인 제2공화국 시대에 교회에 대해 글을 쓰면서 우나무노는 성직자들에게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대신 신앙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자유주의를 수용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우나무노의 '파자로 사비오'(현명한 새)
우나무노는 아마도 당대 최고의 포르투갈 문화, 문학, 역사 전문가였을 것입니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 카탈루냐 문학의 거장들만큼이나 포르투갈 문학의 거장들과 친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이 정신의 표현을 교환함으로써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어떤 형태의 이베리아 연방주의에도 공개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결국 우나무노, Unamuno의 중요성은 그가 야스퍼스, Karl Jaspers, 요한 하위징가, Johan Huizinga, 오르테가 이 가세트, Ortega y Gasset 등과 함께 서구 지식인 생활에 대한 이념의 침투에 저항한 많은 저명한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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