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80-2-1.zip
육조:수보리가 말하되 “얻고자하는 마음이 모두 없어짐이 곧 보리라”고 하니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그렇다. 그렇다” 하시고 “내가 菩提를 실로 바라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希求心)이 없었으며 또한 얻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으니 이와 같으므로써 무상정등정각을 얻었다 이름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傅大士:諸佛智明覺은 覺性本無涯라 佛因有何得인가 所得爲無耶로다 妙性難量比라 得理則無差거늘 執迷不悟者하여 路錯幾河沙이던가
부대사:모든 부처님이 지혜를 밝게 깨달으신
覺의 성품은 본래 끝이 없어라.
부처님은 무엇으로 인하여 얻으셨나?
얻을 바가 없음으로써다
묘한 성품은 헤아리기 어려운지라.
이치를 얻으면 곧 차별이 없거늘
어리석음으로 집착하여 깨닫지 못하여
길을 잘못 듦이 얼마나 많았던가?
冶父:求人이 不如求自己니라
說誼:(求自는 一作自求라) 旣是平等인데 何以遠推諸聖이며 旣是本有인데 何須向外馳求인가 若能反求諸己하여 驀然觸着鼻孔하면 坐斷報化의 佛頭去在리니 所以로 求人이 不如求自己라하다
야부:남에게 구하는 것이 자기에게 구함만 같지 않느니라.
설의:(求自는 어떤 책에는 自求라고도 했다)
이미 평등한데 어찌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어 구할 것이며 이미 본래 지니고 있는데 어찌 모름지기 밖을 향해 구하려고 달릴 것인가? 만약 능히 돌이켜 자기로부터 구하여 문득 콧구멍(根本)을 만지게 되면 보신, 화신 부처의 머리를 앉아서 끊어 가리니, 그런 까닭으로 남에게 구하는 것이 자기에게 구하는 것만 같지 않다 하느니라.
청봉착어:보리는 한 법도 없음을 깨달아 증득하니
얻을 것이 없음이 보리로다
일체 평등하여 본래 나와 둘 아니니
어찌 보리가 보리를 찾으리오?
冶父:滴水成氷은 信有之하나 緣楊芳草色依依하니 秋月春花無限意여 不妨閑聽??啼로다
說誼:此事는 寒威威冷湫湫라 滴水滴凍하여 江河絶流하고 纖塵不立하며 寸草不生이로다 雖然如是이나 寒暄不常이라 日煖風和하여 山川競秀하니 玄黃可判이며 黑白分明이로다 伊?則秋月春花無限事가 各各自有無限意하여 事事마다 一一天眞하며 着着에 可以明宗하도다 可以向翠竹黃花邊이여 明得此事하며 可以向鶯吟燕語邊하여 明得此事이니 以至一見一聞이 一一皆是發機的時節이요 一色一香이 一一開我活眼的物事이니 須信道하라 山僧이 未陞坐에 風鐸已搖舌이니라
야부:물방울이 얼음이 됨은 믿을 수 있으나
푸른 버들과 꽃다운 빛이 무성하니
밝은 가을달과 봄꽃의 한량없는 뜻이여,
한가롭게 자고새의 울음을 듣는데 방해롭지 않도다.
설의:이 일은 서늘하기는 지극히 위엄(威威)이 있고 차기로는 지극히 서늘(湫湫)한지라 방울진 물이 방울방울 얼어서 황하강의 큰 흐름도 끊어지고 가는 티끌도 서지 못하며 작은 풀도 나지 못하도다. 비록 이와 같으나 차고 따뜻함은 항상하지 않음이니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온화하여 산천이 빼어남을 다투니 검고 누런 것을 판단할 수 있으며 흑백이 분명하도다.
이러한즉 밝은 가을달과 봄꽃들의 한량없는 일들이 각각 스스로 한량없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일마다 낱낱이 천진하며 만나는 것마다 가히 근본 뜻(宗旨)을 밝히도다. 가히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잎 끝에서 이 일을 밝히며 가히 꾀꼬리 울음과 제비의 지저귐에서 이 일을 밝히는 지라. 그래서 한 번 보고 한 번 듣는 것이 낱낱이 모든 이 기틀(機)의 목적을 일으키는 시절이요, 한가지 사물과 하나의 향기가 낱낱이 내게 밝은 눈을 뜨게 하는 상황에 이르니 모름지기 믿을지니라. 山僧이 아직 법상에 오르기 전에 풍경이 이미 다 설법해 마쳤느니라.
청봉착어:비록 이 같이 덧없는 현상은 끝없이 생멸하니
그 생멸하는 낱낱의 것들이 모두 부처의 나툼이요
생각이 멸하면 법이 멸하여
청정한 마음밭 같이 일체가 끊어짐이로다
宗鏡:法無可得이니 是名阿?菩提요 道無可傳으로 直指涅槃正眼이니 只如得而不得이요 傳而不傳이니 畢竟是何宗旨인가 三賢도 尙未明斯旨거늘 十聖이 那能達此宗이리오 從來無說亦無傳하여 ?涉思惟便隔關이니 語?離微를 俱掃盡하고 寥寥獨坐古靈山이로다
說誼:此宗은 本無生하니 生心卽差違이니 有心無心을 俱蕩盡하고 空空唯有一靈臺로다
종경:법은 가히 얻을 것이 없음이니, 그 이름이 무상보리이고, 도는 가히 전할 것이 없는 것으로 바로 열반의 바른 눈(正眼)을 가리켰으니, 다만 얻어도 얻지 못하는 것이요, 전하되 전하지 못하는 것이니 결국에는 이 무슨 근본의 뜻(宗旨)인가?
三賢(10주, 10행, 10회향의 지위에 오른 보살)도 오히려 이 뜻을 밝히지 못했다는데 10지위(보살 52위 중 41위에서 50위까지)에 오른 보살들(十聖)이 어찌 능히 이 宗智를 통달했다 하겠는가? (밝혀 통달했다하면 어긋나니라)
본래 설할 것도 없고 또한 전할 것도 없으니
잠시라도 생각하려 하면 곧 관문에 막히니
말과 침묵과 離微(無有)를 모두 함께 쓸어버리고
고요히 홀로 옛 영축산에 앉았도다.
설의:이 근본(宗)은 본래 남이 없으니 마음을 내면 곧 어긋나니 有心과 無心을 모두 쓸어 없애니 비고(空) 비어서 오직 신령스러운 마음(靈臺)이 있을 뿐이로다.
청봉착어:얻을 것이 없고 전할 것 없음이
무상보리요 해탈의 종지이니
그러므로 얻어도 얻을 것이 없고
전해도 전할 것이 없음이로다
한 생각 일으키면 벌써 문 밖이라
말과 침묵과, 있고 없음을 여의어야 오직 청정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