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도 참여하는 모임인 중국자본시장연구회 정유신 회장이 책을 냈다. <중국이 이긴다>는 도발적인 제목이다. 필자도 이 공간에 쓴 칼럼에서 중국이 패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으니, 필자의 시선과 비슷하다. 내 생각에 동조하는 책이 나왔으니 반가워야겠지만, 마음은 씁쓸하다.
중국은 물론이고 국제 금융시장에 관한 탁월한 식견과 지식을 가진 정 회장의 책을 보면서 못내 안타까웠다. 하필이면 막 출간된 쑤퉁의 소설 ‘나 제왕의 생애’를 같이 읽어서 그 비통함이 생겼을지 모른다. 소설은 몰락한 어느 황제의 인생 역정을 그리고 있다. 황제에서 줄 타는 곡예사로 변해가는 삶을 지켜보는 것은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또한 그 마음은 춘망(春望)이란 시에서 보여준 시성 두보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나라는 망가져도 산하는 그냥 있어, 성 안에 봄이 와 초목만이 우거졌구나. 시절이 어수선하니 꽃을 보아도 눈물이요, 서로 헤어졌음을 한탄하니 새 소리도 안타깝네(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안록산의 난 등 혼란한 정치 속에서 두보는 청두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한 채 중국을 주유하다가 슬프게 세상을 등졌다.
전쟁은 일어나면 그 자체가 비극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막는 게 정상이다. 미중 무역전쟁도 그런 측면에서 읽어야 한다. 우리는 남의 싸움이라고 훈수 둘 처지가 아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외풍 속에 속이 곪아 썪어가고,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체 국권을 잃은 경술국치가 지난 지 100년이 막 지났다.
그럼 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남의 싸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최대한 입장을 갖고 대응하는 게 맞다. 다시 정유신 회장의 <중국이 이긴다>는 책으로 가보자. ‘디지털 G1을 향한 중국의 전략’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말 그대로 미래 산업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2017년 이후 미국을 넘은 소비시장, 7억 명의 모바일 이용자, 5억 명의 공유경제 이용자, 2020년이면 6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내수시장 등 중국의 시장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에 더 중요한 것은 부제에 담긴 ‘디지털’이다.
미국이나 한국 등 선진국 등이 A에서 B단계를 거쳐서 C단계를 바라보는 반면에 중국은 B를 거치지 않고 C로 바로 직진 중이다. B 단계를 거친 국가들은 이미 국가의 제도나 틀을 B로 맞추어놓았기 때문에 C로 가는데 적지 않은 저항이나 시간이 걸리지만, 중국은 곧바로 C로 가고 있다.신용카드 대신에 모바일결제가 도입되고, 복잡한 비디오테이프를 빠르게 경유하고, 스트리밍으로 성장한 것이 한 예다.
이 C는 곧바로 ‘4차산업혁명’의 다른 표현이다. BAT로 불리는 바이두, 알리바바, 탄센트 등 트로이카가 선도하는 신산업 생태계는 세계 어느 나라도 쫓아오지 못할 속도다. 이들은 ABCD산업(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드론)을 바탕으로 세계를 리드하는 상황이 됐다. 저자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호랑이 등을 탄 중국의 기세를 쉽사리 저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럼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중국 내에 있는 매파와 비둘기파의 논리를 전달한다. 중국이 승리한다는 매파를 대표하는 인물은 진찬룽 인민대 국제관계대학원 부원장이다. 이들은 효율적인 지도력을 가진 공산당의 지도력을 이유로 꼽는다. 선거에 따라 순식간에 정책이 바뀌는 미국과 달리 안정적인 통치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장점으로 본다. 이밖에도 중국인의 애국심, 모든 것을 생산하는 풀세트형 산업구조, 폭발적인 잠재력을 가진 내수시장 등이 중국이 유리한 요소로 본다.
반면에 상하이 재경대학 위즈 교수로 대표되는 비둘기파는 무역전쟁이 주는 경제충격에서 중국의 양이 크다는 이유로 싸움을 피하는 쪽으로 가자는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확실히 이 싸움은 지금 당장 끝나는 게 아니라 미래를 두고, 영원히 커질 수밖에 없는 미래 패권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한다.
저자는 우리가 그들 걱정을 하기보다 이 전쟁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4차산업혁명에서 중국에 밀리는 상황에서 사드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본다. 더 큰 문제로 우리의 열악한 창업생태계도 꼽는다. 우리나라 사람의 창업 의지는 중국인의 1/6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우리 청년들은 공무원을 꿈꾸고, 중국 청년들은 창업을 꿈꾼다. 국력 차이가 큰 상황에서 10년 후의 모습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규제다. 실제로 2016년 세계경제포럼 평가에서 우리 국가 경쟁력은 26위인 반면에 ‘정부규제 부담’은 105위로 하위권이었다. 다른 곳에서 얻은 점수를 규제가 모두 깎아먹은 셈이다. 지난달 중국자본시장연구회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규제 문제를 이야기하던 외국계 애널리스트가 조롱에 가까울 만큼 많은 한국의 규제를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결국 이런 규제들이 발목을 잡으면 창업 생태계는 탄생 자체가 불가능하고, 어떤 처방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 그물에 걸려서 더 큰 물고기로 자랄 수 없게 된다.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미중 무역전쟁의 초반기는 중국이 불리해보일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불안한 미국 증시나 정치권은 이런 예고를 현실로 보여주는 시발점일 수 있다.
반면에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미국을 처음 방문했던 고은 선생이 했던 말도 상기된다. “이 정신을 보면 곧 무너질 것 같은데, 이 땅덩어리를 보면 앞으로도 백년은 끄떡없겠네”라는 말이다. 미국은 국방력, 기축통화에서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강대국이다. 거기에 석유 매장량도 많은데, 셰일가스를 발굴해 스스로 고민할 것이 없는 나라다. 거기에 아직도 세계 대부분의 시민들이 갖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다. 반면에 ‘차이나 드림’으로 말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는 아직 말할 수 있는 단계도 되지 못한다.
이런 거대한 두 나라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공간을 통해서도 중국에 대한 미래 먹을거리를 많이 이야기했지만, 필자는 백범 선생이 말한 ‘문화의 힘’에 공감이 더 간다. 과거 필자 세대만 해도 세계는 서구권이 만들어내는 대중문화를 향수하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세계는 동방에 있는 작은 나라인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한다.
그 정신은 ‘노마디즘’에 있다고 생각한다. JYP와 SM의 포위 속에서 BTS는 세계를 주유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처음에 획일적인 군무를 자랑하는 로봇 같은 젊은이들이 이제 질서 속에 개성이 있는 춤을 추고 있다. 또 약자의 괴로움을 녹여낸 가사를 통해 자신들의 마음을 의탁하고 있다. 여전히 연말 가요대전에서 BTS는 마지막 무대가 아닌 마지막 전 무대에 선다. 거대 연예기획사의 힘은 세계 최고의 그룹에게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을 뽐낸다. 한국의 미래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창완
서남해안도시개발 투자유치본부 상무. ㈜한양 등이 추진하는 솔라시도 프로젝트의 홍보, 스마트시티 저널, 투자유치를 담당하고 있다. 중국, 관광 투자유치,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문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중국여행지 5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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