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청 공식블로그에서
활동하시는"화성시민홍보단"이
화성시 이곳.저곳을 탐방 후
쓴 기사를 접하고~~~
아~~이런곳도 있었구나~~
느끼며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고향 남양으로~~~~
윤계 선생 순절비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에 포로가 되어
청병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저항하다 순절한
남양부사(지금의 화성시장)
윤계 선생(1585~1636)의 충절을 기리는
추모비입니다.
윤계 선생은 1627(인조5)문과에 급제하고
여러관직을 거쳐 1636(인조14) 2월
남양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순절비의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이 썼으며
전액(전서채로비석의이름을새긴부분)
은 인현왕후의 아버지 둔촌 '민유중'이
썼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세히보면 글씨가 잘 보임니다)
윤계 선생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비석은
남양청년농업회장 "홍공익선기념비"로
비 가 왜 여기에 세워졌는지는 기록이
없네요.
.남양성지로.북양천다리 건너면...
올해 졸업생은 몇회졸업생인지 (111)?
우리가다닐때보다 건물 층수는
올라갔는데 운동장은 작아보이네요~
남양 풍화당 ( 옛 기로소)
조선 시대는 은퇴한 관리들이 쉬는 곳이
따로 있었는데, 기로소 라고
들어보셨나요?
여기서 (기로)란 나이 70세 이상의
벼슬에서 물러난 노인(태종실록),
조선조때 70살이 넘은 정 2품이상
문무관(단종실록), 나이 많고 덕이
높은 사람(성종실록),을 말합니다.
기로소에서는 늙은 신하를 접대하는
잔치 기로연 도 열렸다고 합니다.
지금의 경로잔치 같은 것이죠.
이런 전통 때문인지 화성시
기로소(남양 풍화당)는 현재도
경로당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양초등학교 정문에서 왼쪽골목에~~
광화문 KT 건물 앞에있는
.기로소.터 표지석 (몆년전에찍은것)
풍화당 가는길에 벽화골목길~~
옛 남양도 호부 관아 터
여기쯤인가 울아버지, 친구 작은 오라버님이 근무하셨던 곳 갔기도?
언제 보훈회관 건물도~^^
우리사진관.
초등학교다닐때도 있었던거같은데..
어릴때 물장구치고 놀던 천~~
남양성지 도~~
신빈 김씨묘역
노비 출신이면서도 세종대왕의 총애를
입어 후궁으로서 최고의 위치인
빈 (정1품 )의 자리까지 오르고
소헌왕후와 사이좋게 지내며 일생을
행복하게 살았던 조선시대
신데렐라라고 불리는 신빈김씨의 묘역
.화성시청 근처 .
**4.17일에 남양 송림동으로~~
4.3일에 송림동까지 다녀오기로
했었는데 너무늦어 못가고 오늘..
원천리가 친정인 친구차타고
편안히~~
# 정 원 채 고가
정원채 고가는 1985년 6月28日
경기도 민속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후기에 지어진 살림집으로
원래 행랑채 등 부속 건물이 많아
규모가 큰 집이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채만
남아있다.
대문간의 상량문에는
조선 고종41년(1904)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안채는 이보다 이른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송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