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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에 나오는 시온 수도회의 진실 역사잡글들
지금도 시온 수도회가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 이 조직에 대해 디벼보기로 했다.
낙서장에다 써도 될것같은데 왜 역사잡글에다 쓰느냐라고 묻는다면 환단고기같은 위서들에
관한 글도 일단 역사글로 분류되는데 시온 수도회를 다루는 글이 왜 역사관련글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되묻겠다.
일단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온 수도회에 대해 나열해보자.
시온 수도회는 십자군 전쟁 때 초대 예루살렘 왕이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에 의해 창설
되었다. 이 조직은 원래 템플러(스타크래프트 말고~)들과 일심동체로 템플러들은 바로 수도회
의 군사조직이었다. 하지만 수도회와 기사단은 1188년 별개의 조직으로 분열되어 버린다.
이 분열 이후의 수도회장들은 다음과 같다.
1.Jean de Gisors (1188-1220)
2.Marie de Saint-Clair (1220-1266)
3.Guillaume de Gisors (1266-1307)
4.Edouard de Bar (1307-1336)
5.Jeanne de Bar (1336-1351)
6.Jean de Saint-Clair (1351-1366)
7.Blanche d'Evreux (1366-1398)
8.Nicolas Flamel (1398-1418)
9.Rene d'Anjou (1418-1480)
10.Yolande de Bar (1480-1483)
11.Sandro Botticelli (1483-1510)
12.Leonardo da Vinci (1510-1519)
13.Connetable de Bourbon (1519-1527)
14.Ferdinand de Gonzague (1527-1575)
15.Louis Gonzaga, Duke of Nevers (1575-1595)
16.Robert Fludd (1595-1637)
17.Johann Valentin Andrea (1637-1654)
18.Robert Boyle (1654-1691)
19.Isaac Newton (1691-1727)
20.Charles Radclyffe (1727-1746)
21.Prince Charles Alexander of Lorraine (1746-1780)
22.Archduke Maximilian Franz of Austria (1780-1801)
23.Charles Nodier (1801-1844)
24.Victor Hugo (1844-1885)
25.Claude Debussy (1885-1918)
26.Jean Cocteau (1918-1963)
처음에는 이 많은 리스트를 언제 다 쓰나 했는데 다행히 위키를 보니 리스트가 있길래
그대로 복사해왔다. 손가락노동 안해서 다행이다.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참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다. 보티첼리에 다 빈치, 뉴턴, 위고,
콕토까지... 정겨운 이름도 있다. 9번의 르네 당주... 장미전쟁을 연재할 때도 나왔는데
다름 아닌 헨리6세의 아내이자 랭커스터파의 우상 앙주의 마거릿의 아버지다.
이 수도회의 궁극적인 묵표는 바로 메로빙 왕조의 복위이다. 프랑스사에 대해 잘 모르면
아마 단순한 왕정복고파가 아닐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메로빙 왕조는 머나먼 7세기에 이미
대가 끈겨 카롤링 왕조로 대체되어버린 프랑스의 전신 프랑크 왕국의 왕조이다.
여기서 골때리는게 나오는데 수도회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않고 살아남아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란느-르-샤토라는 곳에 묻혔으며 19세기
의 사제였던 소니에르가 이들의 무덤을 발굴했다고 전해진다.
예수는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손을 남겼는데 메로빙 왕가는 바로 예수의 후손이며 또한 메로빙
의 피를이어받은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그런 이유 때문에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것은 뭐 알아서들 찾아보고 그렇다면 이 수도회에 관한 진실은 무엇일까?
1963년까지 수도회장을 지낸 장 콕토의 뒤를 이어 회장이 된 사람은 피에르 플랑타르이다.
그는 1920년 생으로 8년 전인 2000년에 숨졌다. 나이 50에 얻은 아들이 있는데 이 아들은
되도록이면 언론과 대중들로부터 관심이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극도로 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플랑타르는 누구인가? 그는 젊은 시절 반유대주의자로 활동했으며 이차대전 중에는
비시정부의 지지자였다. 그는 우익단체를 조직하려고도 했으며 정부의 허가를 얻어
The Renewal of France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1942년에는 알파 갈라테스라는 기사단을
창설하고 Vaincre라는 책자를 배포하기도 했지만 이 조직을 정부에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포되어 4개월간 옥살이를 하게된다. 1953년 그는 다시 사기죄로 6개월간 복역했다.
문제의 시온 수도회는 3년 후인 1956년 플랑타르를 비롯한 다른 세명의 동료들을 회원으로
정부에 등록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천년간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온다던 수도회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때였다.
초기 수도회는 별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노엘 코르뷔와 필립 드 셰리제 이 두명이 플랑타르와
연결되면서 본격적으로 수도회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코르뷔는 소니에르가 죽을 당시
남긴 토지를 인수한 사람인데 레스토랑의 지배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잘되게 하기위해
소니에르가 남겼다는 미스테리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아마 플랑타르에게 소재를 제공한
듯 하다.
수도회가 등록된지 10년 후 1967년 제라르 드 세드라는 작가는 플랑타르와 드 셰리제로부터
자료를 얻어 시온수도회의 존재와 소니에르의 미스테리 등을 엮은 두권의 책을 출판하는데
이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작가는 많은 돈을 벌었다. 드 세드는 자기만 돈을 벌어 미안한
모양인지(?) 책의 판매수익을 플랑타르와 드 셰리제와 함께 나누었다.
드 세드의 책이 참고한 자료들은 다름아닌 수도회문서들과 소니에르가 남긴(혹은 발견한)
양피지였는데 이 자료들은 지금까지 파리 기록보관소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남아있다.
그런데 수익분배에 관해 다툼이 일어나 이 셋은 결국 갈라졌는데 이때 플랑타르는 소니에르의
양피지가 사실 셰리제가 조작해 만든 것이라는 고백을 하였다. 그외의 자료들도 조사결과
그 연혁이 60년대를 넘어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플랑타르는 원본을 필사한 것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물론 그는 그원본이 어디있는지 "절대" 밝히지 않았다. 역시 천년을
전해 내려온 비밀조직의 회장답다.
한편 드 세드의 책들은 크게 알려져 BBC에도 소개되었고 플랑타르는 어느덧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즈음 장-뤽 쇼멜이라는 사람이 수도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했는데 그
결과는 모든 것이 플랑타르의 사기라는 것이었다.
쇼멜은 플랑타르의 사기행각들을 책으로까지 냈지만 이때 BBC의 프로듀서인 헨리 링컨이란
사람은 시온 수도회와 관련하여 짭짤한 돈냄세를 맡았다. 비록 쇼멜이 암만 사기라고 주장해본
들 수도회의 역사와 소니에르에 얽힌 신비 등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 소재였고
이렇게 해서 The Holy Blood and Holy Grails라는 책을 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 수
있었다.
쇼멜의 만행(?)으로 플랑타르는 사기꾼으로 매도(?)당했지만 그는 수도회의 역사를 새로 써서
1989년에 냈고 어느정도 관심은 받았지만 그것마저 사기로 밝혀져 그뒤 조용히 지내다
2000년에 죽게 된다.
시온 수도회는 사기로 밝혀졌지만 일단 헨리 링컨 덕분에 많은 떡밥을 전세계에 뿌려놓았고
더군다나 댄 브라운이 다 빈치 코드라는 소설에서 이 수도회를 등장시킴으로서 더 유명해졌다.
이 수도회떡밥은 승리제단(영생교)에서도 이용해 먹었는데 현재 많은 기독까들이 이글의
출처가 승리제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많이들 써먹는 다음의 글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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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聖堂騎士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 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
일보등)에서 보도(사진3 :1982.2.20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
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
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
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 (알로
에추출물)(요한복음19:40)과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
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
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기에 만들어 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1997년
9월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
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쌓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않았음
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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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덕분에 이 수도회떡밥은 더욱 널리 퍼졌는데 덕분에 인터넷에서 시온 수도회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플랑타르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남긴 떡밥들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글들을 다수 찾아보게 될 것이다.
뭐 환단고기를 소설에 사용한다고 욕먹을건 없듯이 시온 수도회를 소설적 장치로 사용한 것
역시 하등의 잘못은 없을지 모르나 댄 브라운의 짜집기실력이 워낙에 출중하여 일부 무뇌아들
은 그 소설내용이 사실인줄 알고 이를 기독까활동에 이용해먹는 경우를 많이 봤다.
솔직히 이런 놈들 상대하기가 제일 어렵다.
그나저나 브라운 이 냥반, 캐릭터이름은 좀 개성있게 창조하지 소니에르나 베쥐같은건
수도회떡밥에서 재탕하고 그래?ㅋㅋㅋ
ps 쓰고보니 생각난건데 플랑타르 저인간 왠지 누군가의 행적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일단
그렇게 상관관계를 계산해보면 드 세드는 가지마 노보루, 헨리 링컨은 임승국 정도 되려나?
the other ps 아직까지 시온 수도회가 실존한다고 믿는 인간들은 플랑타르가 오히려 수도회의
실체를 숨기고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그런 짓을 벌였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그는 천년을 이어온 진정한 수도회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
믿는 사람드르으은 군병같으니~ 앞에 계신 그분을~ 따라갑시다~
[출처] 다 빈치 코드에 나오는 시온 수도회의 진실|작성자 스티븐리
<빙혼>
지금까지 인터넷 글을 복사하여 정리하면서 오타나 띄어쓰기 등을 수정하여 올렸는데
향후 가급적이면 작성자들의 글 솜씨를 존중하기 위하여 한글이 개판으로 춤을 추고 있어도
그냥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들고서 방관하기로 하였다.
하여간 한글 맞춤법과 한국 역사를 이렇게 무시하는 사람들도 한국인이라서
어차피 망할 나라, 망할 민족이기에 그냥 한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다.
50년 후 아니 20년 후면 한국은 미국 또는 이스라엘 극동지부로 전락됨을 피할 수 없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더 이상 서로 같은 민족끼리 다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스라엘도 각 12지파들끼리 2,000년 이상 아직도 싸우는 것을 보면
예수는 정말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원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오로지 피와 주검을 주러 온 것이 확증되었는데
왜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예수 때문에 난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