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산장의 외곽에는 사당과 중국내 소수민족의 종교시설이 청대에 같이
건축되었다..
먼저 도교와 라마불교 그리고 대승불교가
공존하는 행궁 관람..
피서산장 외팔묘 지역을 모두 별도로
입장료를 징수하네..ㅠㅠ
피서산장과 더불어 청더의 대표적인 관광지 외팔묘(外八庙 )..
피서산장과 더불어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
가장 먼저 행궁으로 이동합니다!!
모든 장소에서 입장료를 징수..
너무 방대하고 또 많이 걸어야 하는 지역으로 행궁과 포탈라궁만 친견하기로..
행궁의 유리 패방..
외팔묘에 대한 네이버 소개..
허베이성(河北省) 청더시(承德市, 승덕시)에 위치한 피서산장(避暑山庄) 동북부의 부인사(溥仁寺, No. 5-214),
보영사(普宁寺, No 1-115), 안원묘(安远庙, No. 3-122),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庙, No. 1-117),
수상사(殊像寺, No. 3-121), 수미복수지묘(须弥福寿之庙, No. 1-118), 광연사(广缘寺) 및 현재에는 없는
부선사(溥善寺) 등 8개소 장전불교(藏传佛教) 사묘(寺庙)의 총칭으로 청 강희(康熙) 52년(1713)에서 건륭(乾隆) 45년(1780) 기간
건립되었으며 웅장하고 규모가 방대한 청대 전기 건축기술과 건축예술의 정화로
1982년 청더 피서산장외팔묘풍경명승구(承德避暑山庄外八庙风景名胜区)의 구성부분으로 제1차 국가급풍경명승구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 피서산당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당시 몽고족, 후이족(回族, 회족), 좡족 등 소수민족사무를 관리하던 중앙기구인 이번원(理藩院) 직속의 묘우(庙宇)가
베이징에 32개소, 청더(承德)에 8개소가 있었으며 청더(承德)가 베이징과 장성 이외의 지역에 위치하였기에
외팔묘(外八庙)라고 칭하였다.
청 초기 장전불교는 몽고와 시짱지구에 그 세력이 매우 강하였고 신도들도 매우 독실하여 불경과 교의(教义)는 몽고 및
시짱의 정신적 지주였다.
라마교(喇嘛教)의 상부 계층은 정치적으로는 지방 권력을 장악하였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부를 축적하였으며 문화적으로도
학문과 종교를 장악한 상태였다.
청 정부는 이들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고 국가의 통일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들 변경 소수민족에 대한 회유 정책을 채택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그들의 종교와 습속을 바꾸려 하지 않으며 풍속을 통해 통치하는 정책이었다.
이는 청 통치자가 소수민족의 풍속에 순응하고 몽고와 시짱 상류층의 종교 신앙을 인정함으로써 지방과 중앙정권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고 국가 통일을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적 고려였다.
피서산장은 강희 47년(1708) 잠시 머문 이후 황제가 매년 이곳에 장기간 머물며 여름철 피서와 함께 군정업무를 처리하면서
이로 인해 많은 몽고와 시짱의 소수민족 수령과 외국의 사신이 매년 이곳에서 황제를 알현하고 축전에 참가하였다.
이를 계기로 청 조정은 이곳 청더(承德)에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실시하여 사묘(寺庙)를 건립함으로써 왕래하는 상층 인물들로
하여금 예배 등 불사활동(佛事活动)의 장소로 활용케 하여 피서산장과 상호 보완기능을 두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청은 강희 50년(1711)부터 도광(道光) 8년(1828) 청 조정은 지금의 청더(承德) 시내 및 란하진(滦河镇) 일대에
사묘 43개소를 건립하였다.
이 중 조정이 직접 관할하는 것은 모두 30개소로 피서산장 내의 주원사(珠源寺), 매단림(梅檀林), 회만총춘지묘(汇万总春之庙),
수월엄(水月奄), 벽봉사(碧峰寺), 취운사(鹫云寺), 두모각(斗姥阁), 광원궁(广元宫), 영우사(永佑寺), 동복사(同福寺),
선원소령(仙苑昭灵), 법림사(法林寺), 영택룡왕법(灵泽龙王法), 서욕용왕묘(西峪龙王庙), 용취암(涌翠岩), 상제각(上帝阁)의
16개소와 지금의 란하진(滦河镇)인 산장(山庄) 서부에 궁람사(穹览寺), 림소관(琳霄观)의 2개소,
산장(山庄) 동북부의 부인사(溥仁寺), 부선사(溥善寺), 보영사(普宁寺), 보우사(普佑寺, No. 6-353), 안원묘(安远庙),
보악사(普乐寺, No. 1-116),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庙), 광안사(广安寺), 수상사(殊像寺), 나한당(罗汉堂),
수미복수지묘(须弥福寿之庙), 광연사(广缘寺)의 12개소가 있으며 이 중 나한당(罗汉堂), 광안사(广安寺), 보악사의 3개소는
조정에서 라마(喇嘛)를 설치하지 않아 내무부(内务府)에서 관리하며
부인사, 부선사. 안원묘. 광연사, 보우사(보영사 부속), 보영사, 수미복수지묘, 보타종승지묘, 수상사의 9개 사묘는
8개 관리기구를 두어 조정에서 라마를 파견하여 상주시켰으며 베이징의 이번원(理藩院) 관리와 매달 사람 수에 따라
이번원에서 급여 등을 제공하였고 청의 정사(正史) 문헌에서도 이 9개의 사묘(寺庙)를 외묘(外庙)라고 칭하여 일반에서는
이를 외팔묘 혹은 열하라마묘(热河喇嘛庙)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청대와 민국 시기에 사람들은 외팔묘가 실제상 피서산장 밖의 조정에서 직접 관리하는 묘우(庙宇)
즉 동북부의 12개소와 란하(滦河)의 궁람사(穹览寺), 림소관(琳霄观)의 모두 14개를 지칭하게 되었다.
또한 궁림사와 림소관이 도심에서 비교적 멀어 현재 말하는 외팔묘 범위 또한 변하여 피서산장 동북부의 보인사, 보영사 등
12개 사묘를 지칭하게 되었다.
황제는 또한 칙령으로 사묘(寺庙)를 건립토록 하여 피서산장 밖 동부와 남부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사직단(社稷坛),
선농단(先农坛), 개인사(开仁寺), 관악묘(关岳庙, 武庙), 화신묘(火神庙), 존경각(尊经阁), 문묘(文庙),
성황묘(城隍庙, No. 6-352)의 8개소, 사자원(狮子园)에 산신묘(山神庙)와 법림사(法林寺) 2개소,
사자구(狮子沟), 상이도하자(上二道河子) 및 하동(河东)에 각 1개의 관제묘(关帝庙) 등 모두 13개소의 건립이 황제에게 주청되어
허락을 받아 지방정부에서 건설하여 관리하게 되었다.
최근의 문물고고학자들은 피서산장 내외에 황제가 칙령으로 건립토록 한 43개소의 사묘(寺庙) 즉 외팔묘 12개소,
산장 내 16개소, 사자원 2개소, 란하진 2개소, 산장 외부 동쪽과 남쪽의 8개소, 사자구, 상이도하자, 하동의 각 1개소를
외팔묘사묘군(外八庙寺庙群)으로 칭하고 있다.
이 사묘군 중 가장 먼저 건립된 부인사(溥仁寺)와 이미 훼손되어 없는 부선사(溥善寺)는
강희 52년(1713) 몽고 여러 부족의 왕공(王公) 들이 강희제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을 주청하여 건조된 것이며
보영사(普宁寺)는 건륭 20년(1755) 액로특(厄鲁特) 몽고 준갈이(准噶尔) 부족 수령 갈이단(噶尔丹)이 일으킨 반란의 평정을
기념하여 건립된 것으로 앞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부분은 일반적인 한족 사묘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뒷부분은 대승각(大乘阁)을 중심으로 한 건축군이다.
대승각 내에는 톈수이천안관음(千手千眼观音) 입상이 모셔져 있으며 높이가 20여 m로 중국 현존 최대의 목조 불상이다.
건륭 25년에는 보영사 옆에 보우사(普佑寺)가 추가로 건립되었다.
건륭 29년에는 속칭 이리묘(伊犁庙)라고 불리는 안원묘(安远庙)가 건립되었으며 이는 신장의 달십달와부(达什达瓦部)
부족 2,000여 명이 러허(热河, 열하)로 이주한 뒤 이들에게 참배의 장소로 건립한 것이다.
건륭 31년에는 토이호특(土尔扈特), 좌우 카자흐(哈萨克), 포로특(布鲁特) 등의 종족이 청에 귀순한 것을 기념하여 건립되었고
건륭 32년 건립된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庙)는 건륭제의 환갑 경축 시 몽고와 토이호특(土尔扈特) 왕공(王公)이 진상품을
바치며 축하하던 장소로 작은 포탈라궁(小布达拉宫)으로 불리며 시짱의 달라이라마(达赖喇嘛)가 열하(热河)에서
알현 시 이곳에 거주하곤 하였다.
보타종승지묘는 시짱식 건축 구조를 모방하여 건립되었으며 산세를 따라 기세가 드높으며 많은 홍백대(红白台)와
탑문(塔门)을 설치하고 가장 뒤편에는 높이 25m의 대홍대(大红台)를 두었다.
지금은 훼손되어 없는 광안사는 건륭 37년 건립되었으며 건륭 39년에는 수상사(殊像寺)가 건립되었고
그 배치는 우타이산(五台山, 오태산) 수상사를 모방하였다.
같은 해 저장 해영(海宁) 안국사(安国寺)의 형태를 모방한 나한당(罗汉堂)이 건립되었으나 지금은 훼손되어 없으며
마지막으로 건륭 45년의 수미복수지묘(须弥福寿之庙)는 시짱의 반선라마(班禅喇嘛)가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열하(热河)에 오며 특별히 반선(班禅)의 행궁(行宫)으로 건립된 것이다.
사원 내에는 대홍대(大红台)가 중부의 산상에 만들어져 있고 북부에는 한족의 건축 형식인 팔각유리만수탑(八角琉璃万寿塔)에
세워져 있다.
외형상으로 피서산장 내의 건축은 장엄하고 엄숙한 황가 궁전으로 정(亭), 헌(轩), 사(榭), 각(阁)은 모두 내화벽돌과 기와를
사용하여 일종의 순박하여 자연적인 풍격을 보이고 있는 반면 그 주변에 세워진 외팔묘는 채색의 유리기와를 사용하였으며
심지어는 도금된 어린와(鱼鳞瓦) 기와로 지붕을 덮어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장관이며 금색이 휘황하여
순박하고 전아한 피서산장과 선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다.
또한 많은 사원건축은 산에 기대어 건립되었으며 건물의 배치에는 가운데 축선(轴线)에 대칭식과 자유식 배치를 함께 결합하여
지형상 고도 차이문제를 해결하고 인공적으로 산을 쌓는 등 특수한 수법을 채택하였다.
또한 보영사 대승각(大乘阁), 안원묘 보도전(普渡殿), 수미복수지묘의 묘고장엄전(妙高庄严殿), 보악사 욱광각(旭光阁) 등과 같은
외팔묘의 주전(主殿)은 다층(多层) 누각(楼阁) 건축양식을 채용하였으며 형태가 매우 커다란 중공식(中空式) 건축으로
가장 높은 대승각은 높이가 39.16m이며 이는 고대 고층 목조가옥 건설 기술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 다른 특성의 하나는 이러한 사묘의 건축에 있어 몽구와 좡족 등 소수민족이 신봉하는 라마교의 습속에 순응하여 건립된 것으로
이는 국가적 통일을 기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배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보영사는 시짱의 찰낭(扎囊) 상연사(桑鸢寺), 안원묘는 신장 이리(伊犁) 고이찰묘(固尔扎庙),
보타종승지묘는 라싸(拉萨)의 포탈라궁(布达拉宫), 수미복수지묘는 르카쩌(日喀则)의 찰십륜포사(扎什伦布寺)를 모방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묘의 건축 형태는 유리 기와와 지붕, 방정(方亭), 패루(牌楼), 채화(彩画) 등 한족 건축의 전통수법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홍백고태(红白高台), 군루(群楼), 제형창(梯形窗), 라마탑(喇嘛塔), 도금동화(镏金铜瓦) 등 좡족(藏族),
몽구족(蒙古族) 등의 건축 수법을 응용하여 독특한 풍격을 나타내고 있다.
문헌의 설명과도 같이 단아한 피서산장보다 더 화려한 사묘군입니다!!
설명을 음미하면서 찬찬히 구경..
대단히 아름다운 유리구운벽돌을 사용한 행궁의 패방..
행궁의 본당도 라마풍입니다..
봄이 중심을 지나고 있는 본당의 옥상 부위..
라마풍에 청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형식입니다!!
처마끝이 만주족의 특색을 느끼게 하네요!!
멀리 청더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봉우리가 보입니다..
칭추이펑(磬錐峰)
아래에도 외팔묘에 속하는 사묘군이 있으나 시간관계와 너무 많이 걸은 관계로 생략..
행궁 상층부 구경합시당!!
행궁의 유리탑이 최상층부에 위치합니다..
청더 외팔묘 행궁 구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