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같이 초등교사로 출발했다가 중등으로 옮긴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도 초등교사로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더 공부했다. 그런데 중등학교 근무하니 보충수업이다 자율학습지도다 얽매이는 시간이 더 많다보니, 어려운 절차를 다시 밟아 드물게 초등교단으로 회귀한 친구다. 그만큼 사고가 자유롭고 독특한 친구로 장가를 삼십대 중반에 들어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 하나가 있다.
이 친구를 비롯해 교육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 여덟 명이 지금도 가족끼리 여름과 겨울에 모인다. 올 여름엔 교감 자격연수를 받을 친구도 두 명 나오지 싶다. 대구에 한 명, 울산에 세 명, 경남에 네 명이다. 지난여름 통영에서 모였을 때 겨울에는 마산 어디 온천에서 모이자고 했다. 그리하여 울산 친구가 창원을 지나가면서 우리 가족을 태워 함께 떠난 길이었다. 내가 운전을 못하기에 이처럼 친구에게 가끔 신세를 입는 경우가 있다.
친구 차가 봉암 갯벌을 지날 즈음 약속한 장소까지 그렇게 멀지 않으니 마산의 해안가를 둘러 가자고 제안했다. 가포는 마창대교 건설과 매립공사로 예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곳 국군통합병원에서 RNTC 입대 신체검사를 받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모두 중년이 자나고 있다. 그 병원도 외곽으로 옮겨 나갔다. 내가 온천 가는 길에 에둘러 가려고 하는 곳은 저도연륙교이다.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는 곳이다.
행정구역은 마산이라도 한산한 갯마을이다. 폐교된 구복초등학교 자리는 예술촌이 들어섰고 조금 더 가면 저도를 잇는 철제다리가 나온다. 그 옆에 새로 놓인 갈매기가 나는 날렵한 모습의 다리가 하나 더 있다. 쪽빛 바다엔 점점이 뜬 양식장 부표가 떠 있었다. 처음 와 본 친구와 집사람은 신기해하며 약간 출렁이는 옛 다리를 얼마간 거닐었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횟집엔 다음에 한 번 더 오리라 마음 두었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는 일몰 기운이 서리고 있었다. 진동을 지나 양촌 온천 숙소에 닿으니 대구 친구를 비롯해 세 집이 먼저 와 있었다. 잠시 안부를 나누고 창포 바닷가 횟집으로 연락해 승합차를 보내라고 했다. 좀 늦다는 통영 친구를 빼고 아이들 네 명을 포함해 열여섯 명이었다. 날이 어두워 아쉽게도 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은 볼 수 없었지만 갯가의 신선한 회를 들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 온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소주를 곁들이며 못다 나눈 이야기를 하다가 일부는 찜질이나 온천욕을 했다. 그 사이 울산 친구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백발성성한 도인다운 기인을 한 명 만나 새벽 네 시까지 대작을 했다고 했다. 나는 새벽 다섯 시 일어나 새로 채운 온천수에 한 시간 정도 몸을 맡겼다. 온천 앞마당에 나오니 인근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아침에 만들어온 두부를 팔기 위해 전을 펴고 있어 내가 마수를 해주었다.
그 두부를 들고 아침을 먹기로 한 식당으로 갔더니 아직 준비가 덜 되어 김치만 한 접시 받아 숙소로 왔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은 두부였다. 간밤 남은 소주를 한 병 열어 친구와 같이 김치에 두부를 싸서 속을 풀었다. 온천에서 땀을 뺀 뒤 속이 허전했는데 시골두부 한 점이 좋았다. 이후 청국장으로 아침을 들고 인근의 적산에 오르려고 이동했다. 가족행사 등으로 바쁜 친구 세 집은 산행에서 빠졌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와 같이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산에 올랐는지 주차장엔 차들이 빽빽했다. 나는 아침 온천욕에다 산행으로 다시 땀을 흠뻑 흘려야 했다. 다른 건강보조식품이나 보약보다 더 좋은 시간이었다. 산정에 오르니 전망이 아주 탁 트였다. 아스라이 보이는 겹겹 산 너머 당항포는 잔잔한 호수 같았다. 발아래 겨울 들판에는 봄날 번져날 파란 싹들이 움츠려 있는 듯했다.
우리는 비탈이 좀 더 심한 쪽으로 하산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원점회귀는 아니었다. 일기예보대로 한두 방울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먼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온 친구들인지라 인근의 수목원으로 안내했다. 숲과 생태환경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교육 장소였다. 먼저 산림박물관을 살피고 식물원과 동물사육장을 둘러보았다. 가늘게 내리는 빗방울이었지만 드넓은 경내를 느긋하게 거닐고 나니 꽤 시간이 흘렀다.
헤어지기 아쉬운 속에 우리는 인근에 알려진 식당에 들어갔다. 양파를 잘라 섞은 양념돼지고기를 익혀 시래깃국과 같이 먹은 늦은 점심이 아주 좋았다. 벗어둔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있을 때 성근 빗방울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서로의 방향으로 각자 흩어지면서 아쉬워했다. 올 여름엔 함양 지리산 어느 계곡쯤에서 만날 때 까지 열심히 살자고 했다. 모두 몸도 성하고 마음도 성하게 잘 지내려무나.
첫댓글 양촌 온천 인근에 수목원이 있다고? 함 가 봐야겠네. 항상 주변 정보를 글로 써 주시는 주오돈 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