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25 - 서영남
도로시 데이는 1931년 가톨릭 일꾼 운동을 시작했다. '환대의 집'을 통해 일상적으로 운동한다. '환대의 집'은 노숙자나 실업자가 24시간 언제든 들러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옷 빨고 책을 읽고 잠잘 수 있는 곳이다. 며칠 자든 상관없고 계속 머물러도 된다. 당장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찾아가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을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 장애인을 위해서는 농경공동체를 운영한다. 시골에서는 농사도 짓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환대의 집'이 미국 전역에 생겼으나 '환대의 집'끼리 서로 지원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후원이 안 되면 문을 닫는다. 그렇지만 문을 닫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환대의 집은 독특하게 시작했다.
193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도교 평화주의 입장에서 무기를 들지 말자고 했다. 도로시 데이는 피터 모린과 함께 “가톨릭 워커”라는 신문을 내서 노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업 문제에 대해 교회가 무엇이라 말할지 썼다. 이 신문에 초기 교회 때 교구마다 있던 불청객들과 순례자들을 위한 '환대의 집'을 소개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환대의 기풍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가 나가자, 많은 행려자들이 '환대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언론사에 물어왔다. 그때 도로시 데이는 신문사로 쓰던 자신의 집을 노숙인들에게 환대의 집으로 내주어, 식사를 제공하고 쉴 곳을 마련해 주었다.(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편집장 한상봉님의 글에서 퍼옴)
민들레국수집은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모델로 2003년 4월 1일에 인천 동구 화수동에 겨우 3평 정도의 가게로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매주 토, 일, 월, 화, 수 닷새 동안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5시에 문을 닫습니다. 배고픈 손님들이 두세 번 오셔도 괜찮습니다. 식사도 간단한 뷔페식으로 자유롭게 맘껏 드실 수 있습니다.
2003년 5월부터는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VIP 손님 중에서 자립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민들레국수집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민들레국수집 근처 동네에 단칸방을 하나 얻어서 한 분씩 민들레 식구가 되어 사실 수 있게 했습니다.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는 선호 씨, 석원 씨, 태영 씨가 지내고 있고요.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는 사무엘 형제님, 주헌 씨, 성욱 씨, 교열 씨, 정근 씨, 재유 씨, 기성 씨, 병국 씨 가족, 원식 씨 가족과 혜영 씨 가족이 있고요. 느슨하게 다니엘 씨 가족과 성일이네 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드레아 형제와 자원봉사자가 있습니다. 떠났다가 다시 올 수도 있고요. 자립해서 떠나면 제일 좋습니다. 민들레의 집의 첫식구인 대성 씨는 완전 자립을 했습니다. 민들레의 집에는 자립할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일 하라고 잔소리 하지도 않습니다. 필요하면 수도원 수준의 용돈도 드립니다. 자취할 수도 있고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식사할 수도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날인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감옥에 있는 형제들을 찾아보는 일을 합니다. 청송교도소의 15명의 재소자들과 청송3교도소에 있는 15명의 재소자들과는 매달 한번 씩 만납니다. 만나서 기도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나눕니다. 음식도 나눕니다. 그리고 매달 영치금도 넣어드립니다. 그리고 사형수와 무기수 및 장기수 형제들 13명과는 베로니카를 통해서 편지와 나눔을 하면서 가족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휴가 때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을 면회하면서 보냅니다.
2008년 4월에는 민들레국수집 근처 동네에 있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민들레 꿈’공부방을 마련했습니다. 간식과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도와주고 문화 체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방학 때는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함께 합니다.
2009년 7월에는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를 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무상으로 차 마시고, 옷 빨고, 책을 읽고, 영화도 볼 수 있고, 컴퓨터도 사용 할 수 있고, 낮잠도 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노숙하러 나갑니다. 상담도 하고요, 인문학 강의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직업 상담과 취업을 위한 연락처도 되어줄 예정입니다. 손님들 중에 이제는 노숙하기 싫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시면 현재의 민들레의 집 식구들처럼 도와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볼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과 민들레의 집 그리고 민들레 꿈 공부방과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그리고 감옥에 있는 형제들을 도와주는 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선한 분들의 자발적인 나눔에 의존합니다. 그리고 민들레국수집에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할 수 있는 한 나눌 것입니다. 많은 고마운 분들이 민들레국수집에 쌀과 물품들을 보내주십니다. 여유가 있으면 쌓아두지 않고 더 필요한 곳으로 나누도록 애쓸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시설은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나눔에 의존합니다. 그리고 민들레국수집 홈페이지와 민들레국수집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하여 민들레국수집의 일상을 공개합니다. 최대한 투명하게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일반적인 요건에 맞추는 것은 어렵습니다. 자발적인 나눔이 없다면 문을 닫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2009년 7월 25일(토)
토요일입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전 8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고맙게도 대식 씨가 아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국이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서 미역냉국을 끓일까 하고 준비하는데 9시쯤 골롬바 자매님이 국을 가져오신다고 합니다. 반찬 준비를 하고 상을 차리고 금방 시간이 지나갑니다.
골롬바 자매님이 육개장과 감자탕을 가져오셨습니다. 참 맛있고 진하게 몸보신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차림은 육개장에 열무김치, 미역줄기볶음, 근대무침, 콩나물, 부추 겉절이, 황석어젓, 옥수수 등.
인천대학교 학생 두 명이 설거지 봉사를 오셨고요. 용인에서 어르신께서 오시는데 만 두 시간 반이나 걸려서 봉사하러 오셨습니다.
7월 24일(금)
오후에 소나기가 억수처럼 내렸습니다.
7월 23일(목)
고마운 분께서 우리 손님들께 삼계탕을 대접할 수 있도록 귀한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7월 22일(수)
오후에 쌀 나눔이 있었습니다. 쌀 430Kg을 스물 두 가구에 나눠드렸습니다.
민들레 꿈 공부방에 비가 너무 많이 샙니다. 전기 누전이 걱정이 됩니다. 아무래도 공부방을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첫댓글 저는 민들레 일기를 읽으면서 진정한 나의 이웃은 누구인지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