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한창 일하며 미래를 계획하고 뛸 나이다. 하지만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박순애(크리스티나, 28, 서울 수서본당)씨는 최근 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다. 21세부터 시작된 고통과 질병이 7년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백남춘(52)씨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절망하는 딸에게 뭐라 할 말을 잃었다. 7년전만 해도 직장을 다니던 건강했던 딸이다. 하지만 말기 간암 선고를 받은 남편이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불행이 찾아왔다.
박씨는 갑작스럽게 구토와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내로라하는 큰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처음에는 병명도 모른 채 치료를 받다가 뒤늦게 '혈관이형성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계속되는 고열과 장내 출혈, 전신근육통으로 박씨는 위와 장 절제술도 받았고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
치료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넉넉지 않은 가세도 완전히 기울 수밖에 없었다. 2800만원 전셋집은 300만원 월셋집으로 바뀌었고, 2년전 150만원 보증금에 영구임대아파트로 옮겼다. 백씨는 딸 간병으로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둘째 딸이 일하고 있지만 엄청난 수술비를 대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박씨에게도 희망의 빛이 들기 시작했다. 의료진이 뇌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했다. 지난해 12월 임시로 수술을 받았는데 열도 내리고 모든 신체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호전된 것이다. 의료진도 회복이 빠르면 정상적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또다시 벽에 부딪쳤다. 자극 치료를 받으려면 반영구적 배터리를 머리에 이식해야 하는데 수술비만 1200만원이 넘기 때문이다. 이미 7년째 계속된 투병생활로 어머니 백씨가 진 빚만 4000여만원이 넘는 상황에서 수술비를 마련할 길은 막막할 따름이다.
새로운 빛을 발견하고도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손도 쓸 수 없게 된 어머니 백씨는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다"면서 "오직 하늘에 계신 분께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한숨지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딸을 보며 "8년전 상냥하고 발랄한 그 모습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하고 백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