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짝지근한 가리맛조개로 여름철 입맛을
김준의 포구 이야기 – 279. 순천 별량 용두포구2021.06.21
▲갯골을 건너 가리맛조개를 채취하러 가는 주민들 |
“이 언니는 놀면서 50키로야.”
올해 71살 된 어머니가 72살 먹은 다른 어머니를 가리키며 박장대소를 한다. 배에 10여 개의 뻘배를 실어 두고 물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평소에는 뻘배를 타고 나가는데, 오늘은 마음씨 좋은 분이 강까지 데려다준다고 해서 평소보다 일찍 일터로 나갈 수 있게 됐다.
‘강’은 썰물에도 물이 다 빠지지 않는, 수심이 있는 갯골을 말한다. 용두마을 어장은 강을 건너 거차리까지 펼쳐져 있다. 물이 많이 빠져야, 뻘배를 타고 강을 건널 수 있다. 오늘처럼 배로 이동하면, 건너편 일찍 물이 빠진 곳에서 일을 더 할 수 있어 가리맛조개를 많이 잡을 수 있다.
용두는 순천시 별량면 구룡리에 속하는 마을이다. 동쪽으로 거차리, 서쪽으로는 벌교 호동리가 자리했다. 순천시와 벌교읍 사이 여자만 서쪽에 있는 바닷마을로 큰마을, 아랫마을, 중촌, 안터, 봉낙 등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해방 후 귀환동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기도 했다. 가리맛조개로 유명한 어촌이다.
승주군 <향리지>(1986) 지명유래에 ‘용이 바다를 향하여 한가로이 구슬을 가지고 노는 형국’으로 용머리라 했다. 산 능선이 마을을 지나 바다로 뻗어가는 모습이다. 그 마을 사이로 경전선이 가로질러 주민들은 용머리가 끊어졌다며 아쉬워했다.
헛손질 몇 번 하면 숨이 턱 막혀
배가 출발하자 뻘물이 일었다. 조심스럽게 포구 앞 갯골까지 이동했다. 강을 건너자 어머니들이 뻘배를 가지고 익숙하게 갯골에 내려섰다. 허리춤까지 빠진다. 강을 건너고서야 익숙하게 뻘배를 타고 펄로 올랐다. 용두마을 갯벌 여름살이는 가리맛조개를 뽑는 일이다.
가리맛조개는 작두콩가리맛조개과에 속하는 연체동물로 펄갯벌이 발달한 곳에서 서식한다. 이 조개를 잡으려면 작은 구멍을 보고 뺨이 갯벌에 닿을 만큼 손과 팔을 집어넣어 뽑아낸다. 그래서 손에다 비닐장갑과 특수장갑을 덧낀다. 빨리 뽑아내지 않으면 가리맛조개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리기에 순간적으로 팔을 갯벌 속으로 넣어 잡아야 한다.
헛손질 몇 번 하고 나면 숨이 턱 막힌다. 발목에 붙는 신발을 싣고 얼굴은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쓴다.
가리맛조개를 채취하려면 우선 뻘배를 탈 수 있어야 한다. 용두마을 어머니들은 시집을 오면서부터 타기 시작했다. 평균 30∼40년은 뻘배를 탄 셈이다. 가장 젊은 50대 초반 여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60대 후반 70대 중반이다. 뒤를 이어 뻘배를 타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이 세대가 지나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가리맛조개는 4월부터 7월까지 잡는다. 10여 년 전만해도 30여 명이 뻘배를 타고 맛조개를 뽑았다. 지금은 반으로 줄었다. 용두리 여성들은 겨울에 꼬막을 잡고, 여름에는 가리맛조개를 잡는다. 그물을 놓아 칠게나 짱뚱어나 대갱이를 잡는 집도 있다.
생물다양성과 가치 높은 보호습지
어머니들은 갯벌에 기대어 일 년이면 2000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주문량이 적고 국내 소비도 줄었다. 벌교시장에서 보니 1㎏에 큰 것(60여 개)은 3만 원, 작은 것(70여 개)은 2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용두마을 갯벌에서 채취한 가리맛조개는 수집상이 전량 수집해 수출하거나 주문한 곳으로 보낸다. 상인은 가리맛조개 구매비용을 어촌계에 지불하고, 어촌계에서는 어머니들에게 채취량에 따라 일당을 주고 나머지는 마을기금으로 쓴다. 가리맛조개가 많을 때는 한 사람이 90㎏ 가량 채취했지만 요즘은 잘 해야 50㎏ 안팎이다. 선창에서 장난스레 나왔던 ‘놀면서 뽑아도 50키로’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오늘은 11시 무렵 갯벌로 나갔다가 오후 5시가 지나 일을 마쳤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나가지만, 간단한 요기를 준비해서 뻘밭에서 해결한다. 용두마을 갯벌에는 가리맛조개뿐 아니라 전어, 칠게, 짱뚱어, 꼬막 등이 서식한다. 자율어업 마을로 금어기와 크기를 정해 자원관리를 하고 있다.
가리맛조개는 8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금채기이며, 6㎝ 이하는 채취할 수 없다. 용두마을 갯벌은 생물다양성과 경관적 가치가 높아 ‘순천만갯벌 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물이 빠지자 짱뚱어가 높이 뛰어오르고, 칠게는 먹이활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단단한 조간대 상부 갯벌에는 농게가 붉은발을 높게 쳐들고 있다. 가리맛조개를 뽑는 어머니들 주변으로 물새들이 오간다. 평화로운 갯마을 풍경이지만 참꼬막이 사라지고 있어 근심이 많다. 그나마 가리맛조개가 갯벌을 지키고 있어 다행이다.
가리맛조개는 삶아 먹거나 구우면 달짝지근하고 부드럽다. 자작하게 가리맛조개탕을 끓여도 좋다. 여름이 제철이다. 순천시장이 벌교시장에서 구할 수 있다.
김준 /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순천시 별량면 용두마을은 가리맛조개로 유명한 어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