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달마는 사람인가? 법인가?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 김형학의 思考
-各自의 태어난 原命式대로 살아간다.-
# 이 글 또한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 이글은
사람은 사주명리학 理論 上 48,500여 가지의 性品과
서양 心理學 상16가지의 性格에 따라
그 느낌과 의미가 다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생각’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자~
금강경의 내용을
三十二分으로 나누었다고 전해지는
소명태자는
양나라 무제의 맏아들이랍니다.
무제는 남조시대 많은 불사를 일으켜
불교를 융성하게 한 군주인데
달마대사의 對話로도 유명하답니다.
달마가 중국에 왔을 때
광주지사 소망의 소개로 금릉에서
무제와 問答을 하게 되었답니다.
무제가 자신의 불사 경력을 거론하며
공덕이 크지 않겠느냐고 물었지요.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
(所無功德)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의
제일가는 이치인가?
(聖諦第一義) (諦-살필체)
‘짐을 대하고 있는 자는 누구냐?’
달마가 선문답을 했답니다.
‘모릅니다.’( 不識) (識-알식)
그리고 그는 자리를 떠~
하남성 숭산 소림사에서
정상으로 가는 절벽 같은 산의
작은 바위동굴 ‘달마굴’에서
9년 동안
매일 면벽하며 좌선하였답니다.
캄캄한 동굴의 어둠 속에서 달마는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허물었던 것이죠.
선불교는~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니며
내가 본래 부처이니~
내 안에 불성을 바라보라’고 가르친답니다.
선에서는~
마음을 닦는 일을 가장 중요시 한답니다.
마음을 잘 닦음으로써 자기의 근본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는~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답니다.
자~
禪은~ (禪-봉선 선)
드야나 dhyana(禪那)의 音譯으로 표기한 것이
끝의 모음 ‘아’가 생략되어서~
그냥 ‘단’으로 된 것인데
한자로 옮겨지면서 禪이라 발음하게 되었지요.
禪은~
‘마음 닦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인도선’, ‘천태선’, ‘달마선’으로
구분할 수 있답니다.
☀인도선은~
부처님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요가 yoga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정신과 육체적 건강을 도모하는 방법으로
수련되어 왔지요.
☀천태선은~
중국에 와서 천태 智者大師(538~597)가 세운
법화종에서 강조되었답니다.
법화경 사상과 인도의 요가 수련법이 한데
이루어졌답니다.
☀달마선은~
6세기 초 서기 520년에
석가모니의 28대 조사인 菩提達磨
(보리달마)대사(?~528)가
인도에서 6종을 굴복시키고
배편으로 중국에 와서
선법을 선양함으로써 비롯 되었답니다.
五燈會元에는
달마가 南天竺國(남인도) 香至王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보리달마는
‘부처가 따로 있지 않다.
네가 바로 부처다.’라고 했지요.
달마는
그 당시 중국 사회가 아직은 禪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알고
면벽하는 기다림을 택했던 것이지요.
어느 해 겨울
도교에 정통한 神光이 찾아와
눈이 펄펄 날리는 동굴 밖에서
꼬박 사흘 밤을 세웠답니다.
달마가 그에게 물었지요.
‘무엇을 구하느냐?’
‘뭇 중생을 건져주십시오.’
‘만약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법을 주리라’.
이에 신광은 칼을 뽑아
자신의 왼팔을 잘랐다는군요.
사방으로 피가 튀고 주위의 눈발이 붉게
물들었답니다.
달마는
팔을 자른 神光의 무모함에서
비움의 싹을 보았답니다.
그래서 신광에게 법명을 내렸지요.
이를 斷臂求法이라 부른답니다.
☀이 신광이
바로 제2祖인 혜가 선사(487~593)랍니다.
☀혜가가 다시 달마대사에게 물었지요.
‘마음이 불안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하게 해주겠다.’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
네 불안한 마음이 모두 없어졌느니라
너는 보는가?’
달마대사의 유명한 安心 법문이랍니다.
☀짓고 부수는 내 안의 숱한 마음이
본래 없는 것임을 알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마음이 없어진 자리.
거기를 보라는 뜻이랍니다.
☀제3祖는 僧璨선사(511~606)인데요.
출가 전 그는 나병에 걸려 있었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주위에서는 그에게 질시의 눈으로
쳐다보았지요.
그는 자신의 죄가 많아서
그런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했답니다.
40대에 들어선 그가 해가선사를
찾았답니다.
‘전생의 죄로 인해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저의 죄를 업장 참회하게
해주십시오.’
‘그 죄를 가저오너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대의 죄가 다 참회
되었느리라.
佛, 法, 僧 三寶에 안주하라“
‘오늘에야 죄의 성품이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해가 선사는 그가
법을 담을 그릇임을 알고,
직접 머리를 깎아 주었답니다.
그리고 승찬이란 법명을 주었지요~.
원죄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승찬은~
죄도 없고 그걸 담는 마음도
본래 없음을 깨우친 것이지요.
☀제4祖는 道信 선사인데요.
1,400여년 전,
어린아이가 승찬 대사를 찾아왔답니다.
’해탈할 수 있는 법을 주십시오‘
’누가 너를 묶었더냐?‘
’아무도 묶은 이가 없습니다.‘
’그럼 무슨 해탈을 구하느냐?‘
그 말에 아이는 깨달은 바가 있었지요.
그 길로 그는 승찬 대사를 모셨답니다.
결국 스승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달마로부터 내려오는 가사와 법을
받았답니다.
이렇게
불안감, 죄의식, 구속감을 없애준~
조사들의 말씀은
모두 ’내가 없다. (無我)‘는 것과
우리의 本性이 佛性이란 것을
일깨워 준 가르침이지요.
☀제5祖 弘忍선사(602~675)인데요.
홍인의 어머니 주씨는
처녀의 몸으로 홍인을 낳았답니다.
애초 도신 대사에게 출가를 원했던
늙은 수행자가
너무 늙었으니 몸을 바꿔오라는
말을 듣고
빨래하던 주씨 童貞女 몸에 잉태해
홍인을 낳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그러니 姓조차 알 길이 없었지요.~
그가 일곱 살 때
길을 가던 도선 대사의 눈에 띄었답니다.
’네 姓이 무엇이냐?‘
’姓은 있지만 일정치 않습니다.‘
’무슨 姓인가?‘
’佛性입니다.‘
’그럼 있네‘
자~
이 佛性은
空한 까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홍인 선사에게서는
유명한 신수 선사(606~706)와
혜능 선사(638~713)가 배출되는데요.
신수 선사는 북쪽 지방을 중심으로
선법을 폈기 때문에
북종선이라 하고,
혜능 선사는 남쪽 지방을 중심으로
선법을 폈기 때문에
남종선이라 한답니다.
금강경과 선종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으며,
혜능의 수제자인 하택사 神會(685~760)이래
남종에서는
금강경이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지요.
선은~
문자로 쓰인 모든 경전을
否定하는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강경이 선종의 대표 경전인 것처럼
착각되어 진 이유는~
혜능의 삶과 이 경에 얽혀 있는
이야기 때문이랍니다.
- 혜능 선사는 俗姓이 노씨인데,
그의 부친이 좌천되어
신주로 유배되어 갔답니다.
그런데 3세 때에 그의 부친이
돌아가셔서
모친과 함께 남해로 이사 갔답니다.
살림이 가난하여 산에서 땔나무를 해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지요.
어느 날, 안도성이라는 손님에게
나무를 배달하고 문 밖을 나서는데
바로 옆방에서 경을 읽는 소리를 들었지요.
☀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느 곳에도 집착하여
머무르는 바 없이
맑은 마음을 응당히 그대로
내어야 할지니)
나무꾼 혜능은
그 소리를 듣고 홀연히 마음이 맑아짐을
느꼈지요.
그리고
그 도성에게서
홍인 대사가 이르기를~
’금강경만 지니고 있어도
스스로 견성할 것이며 크게 성불할 것’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출가할 발심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노모를 모실 수 없은
딱한 사정을
도성이 알고 은전 백냥을 주었답니다.
혜능은
그 길로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지주 황매현 동선사에 도착하여
제5祖 홍인 선사를 뵙고
禪의 깊은 뜻을 구하고자 하였지요.
‘너는 남쪽에서 온 오랑캐 사람인데
어찌 부처가 된다는 말이냐?’
‘사람은 비록 남북이 있으나
불성에 어찌 남북의 차별이 있겠습니까?
혜능의 法器를 시험한 홍인은
그를 스님들의 식량을 찧은 방앗간으로
보낸답니다.
홍인 대사의 제자 천여 명 중 신수 화상이
으뜸이었지요.
온갖 학문에도 능통하고, 인물도 좋았답니다.
어느 날 홍인 대사는
법통을 전해줄 때가 왔음을 알고
계송을 지어오도록 하였지요.
신수 화상은 벽에다 계송을 썼는데요.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맑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매일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가 없게 하라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佛拭 莫似有塵埃)
(提-끌제=리로 잃음)
(拭- 닦을 식)(似-갈음사)
(塵埃-티끌 진, 티끌 애)
동자에게서 이를 들은
젊은 혜능이 고개를 저었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지요.
혜능은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기 때문이랍니다.
혜능은
장이룡이란 이에게
자신의 계송을 쓰게 했지요.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으며
맑은 거울 또한 받침이 없는 것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띠끌이 끼일 것인가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提-끌제=리로 잃음)
지금도 황매현 병무산 오조사에는
동자를 데리고 글을 쓰는~
혜능과 신수 화상의 모습이
글과 그림으로 걸려 있답니다.
# 이러하여
신수의 선법을~
부지런히 좌선으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여
漸修禪이라고 하였고요.~
혜능의 선법을~
본래 自性은 티끌이 없으므로
닦을 것이 없으며~
마음을 청정히 하는 자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깨닫는다고 하여
頓悟禪이라 하였답니다.
(頓-조아릴 돈, 悟-깨달을 오)
나이로 보나 인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해능은 신수화상의 상대가 아니었지요.
게다가 혜능은
당시 스님이 아닌 방아를 찧던
23살의 행자 신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홍인대사는
혜능이 空을 깨우쳤음을 알았지요.
깊은 밤 비밀리 그를 불러
이름을 혜능이라 지어주고
衣鉢을 전달하며 (鉢-바리때 발)
다른 제자들의 시기를 우려해
당분간 법을 펴지 말고 피신토록 하였지요.
그로부터 15년 후 혜능은
광주 법성사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답니다.
스님들이
☀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을보고
서로 옥신 각신 하고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닌
단지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군요.
이것이 유명한 風幡問答이랍니다.
(幡-기번)
이에 인종 법사가
혜능이 5祖 홍인의 법통을 이었다는 것을
알아보고~
머리를 깎아준 뒤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는군요.
이후 혜능은
686년 남방으로부터 교화를 펴다가
광동 조계산의 南華禪寺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하였다고 하는군요.
당나라 측천무후는 세 번이나~
혜능 선사를 초청하였으나
그는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는군요.
혜능선사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죽기 3년 전 탑을 세우라고 했다는군요.
막상 죽음을 앞두자~
제자들이 다 울었는데요.
어린 신희 스님만 울지 않았다는군요.
혜능 선사가 말했지요.
’어린 신희는 안 우는데 너희는 왜 우느냐~
내가 가는 자리를 모르니 우는 것이다.‘
라고요.~
혜능 선사의 등신불을 모신 전각 뒤에는
’진리의 자리(本來面目)라고 쓴
큼직한 현판이 걸려 있답니다.
자~
석가모니의 염화시중의 미소로부터
탄생한 禪은~
마하가섭 존자에서 시작되었답니다.
그 뒤로 인도에서
27대까지 전한 후 28대 보리달마가
부처님 자신이 입던 衣鉢을
동쪽 중국으로 가져와
중국 禪宗의 1 祖가 되었답니다.
달마는
‘한 꽃에 다섯 잎이 퍼져
열매가 저절로 맺으리라’고 하였다는군요.
그래서 이 의발은
달마로부터 다섯 번째 祖師인
6祖 혜능에게서 멈춘답니다.
처음 달마대사가 의발을 전한 뜻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해서였다고 하네요.
그러나
법을 듣는 일이 어찌 옷에 달렸겠는가?
200년이 지난 뒤면
의발은 자칫 눈먼 자들이 욕심때문에
싸움거리가 될 것이니~
법만 전하고
의발은 전하지 못하도록 하였답니다.
중생 모두가 부처라는
혜능선사의 禪은~
그동안 인간 대접을 못 받던
영남인에게
반가운 진리가 아닐 수 없었지요.
그로부터 조계는 선종의 성지가 되고
큰 가지가 뻗는답니다.
특히
북종선은 얼마 안 가서 대가 끊기고
남종선은 번창하여 중국 전역에 펴져
五家의 가풍이 일어나고
몽골의 지배로
마침내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답니다.
☀ 悟와 修, (悟-깨달을 오, 修-닦을 수)
定과 慧, 번뇌와 보리 등이~
모두 自性일 뿐이라는
大 自由人이 되는 새로운 길이~
혜능으로부터
새롭게 열리게 된 것이지요.
오직 자신의 本心을 알고
自身의 本性을 잘 보면~
자~
☀고요함도 없으며 生과 死도 없으며
가고 옴도 없으며 옳고 그름도 없으며
머므름도 가는 것도 없나니~
조주 종심 선사(778~891)의 제자가 물었죠.
‘조사(달마 선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선사는 화두를 던졌답니다.
’풀잎의 잣나무니라~
庭前栢樹子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